나와의 대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꿈을 꾼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선명하게 꿈 내용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꿈속에서도,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 동안 꿈을 돌아본다. 꿈속에서 자각을 하기도 하고, 깨고 난 후에도 깨어있는 삶과 꿈속 내용들을 붙여가며 돌아본다. 그래서 하루의 시작이 길다.
독서 지도사 자격 과정을 들으면서 나와의 대화도 독서에 포함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책을 읽는 것만 독서인 줄 알았는데 나와의 대화, 저자 강연 참여 등도 독서에 포함된다니 놀라웠다. 그러면 나는 매일 빠짐없이 독서를 하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어 풋 하고 웃음이 났다.
재작년 국가에서 주관하는 청년직업훈련에 참여하면서 컴퓨터 학원에 다닐 기회가 있었다. 3개월 과정이었는데 그 과정을 들으면서 나는 들어가고 싶었던 기업에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도 열심히 했다. 최소한 55 사이즈가 넉넉하게 들어가는 체형을 만들어야 해서(정장에 몸을 맞춰야 하니까) 라며 운동도, 음식관리도 열심히 했었다. 그때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만났던 컴퓨터 학원 선생님께서 집중력 환기의 일환으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었다. 그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충격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까 9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꿈을(밤에 자면 꾸는 꿈) 흑백으로 꾼다고 하셨다. 칼라로 꾸는 사람은 거의 드물고, 있으면 대부분 영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거나 점을 치는 분들이 칼라 꿈을 꾼다고 하셨다. 그때 그 말을 듣고 너무 의아해서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도 물었다. 그런데 남편도 꿈을 흑백으로 꾼단다..
꿈을 칼라로 꾼다는 걸 안 건 잠에서 깨면 돌아보는 꿈속에서 만났던 사람이 입었던 옷이나, 먹었던 과일, 동물들의 색상이 선명하게 기억나서였다. 꿈 속에서 본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보석이라든지, 너무 하얗다 못해 온 세상을 빛으로 물들일 것 같은 대형 흰 고래라든지. 칼라로 꿈을 꾸는 게 어쨌든 좋은 거겠지라며 매일 칼라로 된 영화 같은 꿈을 꾼다. 오늘도 나는 꿈에서 깬 후 꿈속에서 만난 오래전 친구를 생각했다. 그 친구와 절연한 게 엄청난 축복이었구나를 꿈속에서 3자가 되어 살펴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땐 진지하게 슬펐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되고, 안도가 되다니 참 인생은 살아볼 일이다.
나는 내가 깐다
꿈을 꾸고 꿈 내용을 적으면서 서평 <?>을 해 볼까 하다 어쩌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될 것 같아서 그만둔다. 물론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글을 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글로 기분 나빴던 그 사건들과 이야기를 고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내가 내 손으로 나를 욕먹게 하는 일은 좀 다르다. 가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지나왔던 과거를 돌아보고,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일을 위해 기록을 하고 꼼꼼히 읽어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어쩌면 먼 미래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내가 글을 적는 것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토오루의 누님이 내게
"왜 블로그에 글을 적는 거야?"
라고 물은 적이 있다. 물은 것도 의아했고, 뭐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는데. 가끔 내 글에 남기는 내용들이 오히려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만한 내용도 있으니. 물어본 건가 싶기도 하고. 언니의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냥 무슨 의도인지 물어볼 걸 그랬나. 싶어 한참 후회했다.
내 이야기를 적게 된 건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안타깝게 내 주변엔 사이비라고 불리는 이단 종교에 심취되어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 친척들 중에 있었고 그들이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호두까기 요법으로 내가 내 입으로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15년 만에 하게 됐다. 그냥 뒀더니 임신 한번 해 본 적 없던 내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했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그 외에도 나를 가장 잘 알고, 내 옆에 가장 친한 사람들처럼 붙어 다녔던 사람들이 나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니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걸 알게 된 건 어느 날 아빠가 내게 전화를 하더니
"너 남자를 밥 먹듯 바꿔가면서 만난다며? 낙태도 하고. 몸을 막 굴리냐."
라고 전화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다음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냥 안 하겠다. 충격이 지금도 가시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한 번이라도 임신했거나 유산의 경험이 있는(낙태 포함) 사람은 전혀 할 수 없다는 혈소판 성분 헌혈을 한다. 임신을 하면 혈액에 항체가 생겨서 혈소판 헌혈을 할 수 없단다. 헌혈증을 보여줘 가면서 내가 임신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니 (그것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너무 슬픈 일이다. 그런 이야기가 나돌던 게 20대 중반이었는데 이상하게 지금도 증명해야 한다. 지금은 대화를 나누질 않는다. 내가 남자를 밥 먹듯 바꾸는 사람이었다면 대체 12년을 만난 법률혼이 된 남편은 그러면 어쩌라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다. 시간이 지나면 대충 다 알아서 해결되겠지 라는 안일한 사고를 가진 내 탓도 있겠지. 이것보다 더한 소문도 있다. 안타까운 건 모두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에게서 나온 소문이라는 거다. 그러니 내 이야기는 진지하게 내가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기 시작했더니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단다.
나는 내가 지킨다
사랑하고, 아껴주기에도 부족한 가족과 친척을 나부랭이 들이라고 부르게 될지 몰랐다. 내가 노력하고 사랑하면 언젠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오판이었다. 그러니 그냥 진지하게 남편과 둘이서만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벌써 2주째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숨이 막히기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나는 진짜 빛이 있는 곳에서 활동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외향과 내향의 중간에 완벽히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일단은 사람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끝내고 천천히 아름답고 귀한 사람들을 내 집에 초청해야지.
남편이 퇴근 중이다. 드디어 남편을 만나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저녁엔 따끈한 수프와 딸기잼을 바른 식빵을 나눠 먹어야겠다. 하나님 오늘도 고맙습니다.
#안전한게제일
#나는내가지킨다
#행복하게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