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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오픈 사전: ⁠흑화하다 ( 흑화한다 ) 동사 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이 어둡거나 나쁘게 변하다.>

흑화 한 여주인공 ?!


요즘 웹소설과 웹툰이 재밌어서 한참 빠져 보는 중이다. 가장 재밌는 주인공이 있다면 흑화 한 여 주인공이 나올 때다. 온갖 억울한 일들을 다 겪고 죽어서 다시 회귀하거나, 문제가 생기기 전 시점으로 회귀한다. 그들의 인생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비슷하고, 회귀한 후 인생을 보면 항상 개운하다. 그래서 자꾸만 흑화 한 여주인공이 나오거나, 악녀로 설정된 주인공이 나오는 것들을 보게 된다.


요즘의 나를 보면 흑화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과 너무 달라진 나를 볼 때 진작 이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를 하곤 한다. 주인공들처럼 회귀해서 다시 시작하거나, 회귀해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쉬움이 느껴진다. 주인공들을 볼 때 왜 저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선택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에 답답해진다. 그럼에도 그녀들을 보면서 안다. 제삼자 시각으로 봤을 때 보이는 것들이 본인이 되어 보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착하고, 용서를 잘하며, 항상 남을 돕고 싶어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돕는 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멍청한 주인공 타입이 내 기본 설정이었나 라는 생각을 할 때 웃음이 난다. 원래 나는 그런 설정으로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태어나 만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설정일까. 그리고 오늘의 나는 설정 값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만화처럼 네모 설정 창이 떠서 볼 수 있다면 참 편안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과거를 돌아봤다


가족, 친구, 연인, 만난 사람들.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오늘을 맞이하게 된 건 순전히 그들 덕분이다. 책 한 권도 펼 마음과 기력이 없을 때 나는 독한 맛이라고 할만한 중국 고장극들을 찾아서 봤다. 주인공의 한 맺힌 마음에 공감하면서 주인공이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들을 같이 헤쳐나가며 마음의 에너지를 쌓았었다. 그때는 정말 글 한자, 책 한쪽 읽기도 힘들어서 글을 남기기는커녕 읽었다는 기록들만 블로그에 남겼다. 그러다 블로그 친구분 중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며 내게 글을 남기셨다. 한 줄이라도 책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도 괜찮다고 말이다.


마음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 몸부림칠 때 내 옆엔 오늘의 남편인 토오루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기댈 곳도 없었고, 돌아갈 곳도 없었으며, 손을 내밀어도 잡아줄 가족도 없었다. 내게 항상 손을 내밀며 도와달라고 했던 그들은 당연한 듯 내 손을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모욕에 가까운 말과 함께 적선하듯 무언가를 던져줬다.


그때 읽었던 책들 중 한 권에서 어떤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위해 꼭 도움을 청해봐라라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잘했지만, 받는 것에는 매우 취약한 사람이라 부탁을 하면서도 깊은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꼈었다. 너무 힘든 때였다. 몸도 마음도 매우 지쳐있을 때였다. 그때 그들이 나타났다. 다음을 위한 준비로 도움을 꼭 주고 싶다는 분에게 책을 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부탁으로 나를 안 좋게 보면 어쩌지.라는 마음과 부탁한 것 때문에 나를 떠나면 어쩌지 라는 마음 때문에 매일 괴로웠다. 한참 코로나가 최대치로 진행되던 때라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어려울 때였다. 오늘 그때를 다시 돌아보니 참 도움을 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수치심과 모욕감 덕분에 나는 그분들과의 관계를 완벽히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흑화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이전 삶에서 매달렸던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고 될 대로 되라지 뭐.라는 마음으로 살자 드디어 주인공의 삶이 풀리기 시작한다. 나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상황이 펼쳐지고 나서야 모든 설정 값이 잘못됐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그전엔 살다 보니 살아졌다는 식으로 어떻게든 살아졌다. 내 것을 빼앗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내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과 에너지, 돈을 누군가의 삶을 위한 대용품으로 사용당해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참된 선이며, 참된 종교인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들이 계속 쌓여서였을까. 진짜 '이생망'이라는 상황이 벌어지자 정말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거의 2년을 그동안 일들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듯이 엄청나게 아팠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억울한 마음에 글을 적고 있다. 근 시일 내에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서다.


요즘 빈대가 전국에서 출몰하는 중이라 나는 우리 집에도 빈대가 생긴 줄 알았다. 모든 침구와 천으로 된 것들을 전부 세탁하고, 열풍 건조를 하고, 털었다. 그 이유는 매일 밤 온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과 따끔따끔한 느낌이 있어서였다. 일주일 넘게 계속된 고통에 생각을 거듭하다 증상을 찾아봤다. 그리고 알게 됐다. 원인 불명으로 인구의 5-15%가 겪고 있다는 하지불안증후군에 걸렸다는 걸. 병원에 가서 확실하게 그런 것인지 확인받고 앞으로의 치료를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늘 아침에서야 했다. 아무리 찾아도 우리 집에 빈대는 없었으니, 이제는 병원에 가야 할 때다. 이 증상도 과거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 질환 중 하나 같다. 안타깝지만 내 삶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현재 상태에서 다시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족관계든, 건강이든 뭐든 아니타 무르자니 님처럼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니니(이제는 각성하기 위해 극독과 같은 병에 걸릴 필요가 없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오드 공부를 하면서 요오드 부족 체크리스트의 3분의 2가 넘는 항목에 체크되는 것을 보고 이건 단순히 요오드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는 내가 나를 살뜰히 챙기고, 보살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지난 시간들을 통해 얻은 열매다.


진짜 나의 오늘을 살자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흑화 한 여주인공들을 보면서 가상임에도 그녀들이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건 그녀들을 통해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고, 가족이 없어도 외롭지 않다. 지난 10년 동안 같은 원룸에 살면서 내 집에 방문한 가족은 없었다. 시험 막 바지에 다다랐을 때 몇 번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분들이 방문했을 뿐이다. 숱한 명절과 생일 같은 특별한 날들에 오히려 옆 집에 살고 있는 주인아주머니께서 내게 맛있는 음식을 해 주시고, 반찬을 나눠 주셨었다. 명절인데 아무도 찾지 않고, 어디에도 가지 않는 것 같다며 그녀는 소고기 전골을 비롯한 맛있는 전들과 음식들을 해 주셨었다. 좋은 사람들을 가족으로 만나진 못했지만 내 인생엔 좋은 스승, 좋은 이웃, 좋은 사람들이 항상 존재했다. 그랬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만큼 내게 사랑을 주셨던 서울 엄마 목사님이 계셨고, 내게 책들과 필요한 것들에 도움을 주셨던 교수님들이 계셨고, 내 미래가 정말 잘 되길 바라주던 친구가 있었고, 사랑을 가득 부어주는 오늘의 남편이 있었다. 인생을 돌아보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적당히 뒤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의 비극 <?>이 비극이 아니라는 걸 안다. 오늘의 내가 되려면 반드시 악인이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이 필요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흑화 한 여주인공처럼 변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오히려 감사하고 내 인생을 이제 내 것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식물을 키우고, 취미 생활을 하는 등 혼자서 생활한다.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이라면 숨쉬 듯 편안함을 주는 남편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 행복함, 안락함 등의 아름다운 감정을 매일 마주한다. 물론 회귀해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인생은 영화가 아니니까. 흑화 한 여주인공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아직은 젊은 나이잖아. 지금 내 나이가. 라며 내게 작은 위로를 보낸다. 흑화 한 여주인공이 말만 흑화지 사실 흑화하고 나서야 진짜 자신을 아끼면서 살아가는 설정으로 변한다. 즉, 정상인이 되는 것이다. 그걸 전과 완전히 달라졌으니 흑화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진작부터 흑화 한 설정 값으로 살았다면 여주인공으로 풀어낼 이야기도 없었겠지만...


흑화 하다. 부정적인 단어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총체적으로 건강한 사회, 법망 안에서 인생을 스스로 잘 살아간다면 그게 흑화 한 걸까. 여주인공들은 흑화 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흑화라기보다는 이제야 네가 정신 차렸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오니까. 그러니 나도 이제는 제삼자가 보는 것처럼 내 인생을 바라보면서 흑화 해서 살아가려고 한다. 이제는 정말 아프고 싶지 않으니까.


지난 2년 동안 정말 감사한 게 있었다면 몸이 매우 아파서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댈 수 없었다는 거였다. 나는 술 한 방울이라도 먹게 되면 일주일 간 시름시름 앓아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우리 집에는 친가, 외가 모두 알코올 중독자의 그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하지만 사실 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책임에 대한 회피다. 몸과 마음의 지친 상태를 술을 통해 내일의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내일의 내게 맡긴다라며 긁는 신용카드와 비슷하다. 결국 엄청난 원금과 이자를 물게 된다.


시험에서 망하고 집에 틀어 박혔을 때 30년 만에 외가 식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어디서 들었는지(아마 동생을 통해서일 거다.) 내가 좋아한다는 레드와인을 가져오셨다. 그리고 함께 나눠 마시자고 하셨는데 거듭된 요청에도 나는 응하지 않았다. 정말 몸이 아팠기 때문이다.(이십 대 초반엔 레드와인을 정말 좋아해서 와인잔과 병을 들고 자주 혼자만의 산책을 했었다. ) 그때 그 만남도 거절하고 또 거절했었는데도 한 번만 만나자고 요청하셔서 만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차라리 망한 상태에서 만나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날 것 그대로 누군가를 대면할 수 있었던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나는 보통 화가 나고 억울해도 말하거나 따지지 않는 편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어서기도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입씨름을 할 에너지가 없다. 무엇보다 그런 일들을 한다면 관계를 지속할 생각이 있을 때다. 그냥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접는다.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설득할 필요도 없다. 나도 상대도 잘 맞는 상대와 만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만나면 최고로 빛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흑화 한 여주인공들. 아니 드디어 정상인이 된 여주인공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안으로 행복의 감정이 스며 들어온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균형감 있게 적당히 섞여 풀어지는 게 인생이니까 이제 내 인생은 잘 되고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 그러니 나는 이제 행복해질 거고, 행복해져도 된다. 그래도 된다. 내가 일단 허락한다. 흑화 하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제는 내 행복을 우선에 두고 살아가자고 나를 보듬는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인생을 살아라. 흑화 해야만 내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과감히 이제는 정리하고, 병든 자신을 돌아보고 치료할 때가 왔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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