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명절> / <기록>

명절이 아주 긴 덕분에 남편과 충분히 같이 잘 놀고, 잘 쉬었다. 이번 설에는 눈이 많이 와서 남편이 본가에 갈 때 아주 커다란 배 상자를 들고 가지 못했다. 엄청나게 큰 배 박스도 준비했는데(대표님께서 주셨다. 꽤 값이 나가보여서 선물로 포장해 뒀다. 대략 10 만원 가까이 되어 보이는 아주 아주 좋은 배였다.) 대중교통을 타고, 걷기(약 15분 - 20분)도 해야 해서 배 박스는 보내지 못했다. 과일을 무척 좋아하시는 걸 알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작년 여름에 겨울에 눈이 오면 신겨야지 생각하고 구입했던 장화를 신겨 보냈다. 올해는 신지 못하고 넘어가나 했는데, 올해 눈이 여러 번 와서 이번까지 하면 두번이나 신겼다. 장화를 신고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패딩과 패딩 바지를 입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을 했다. 선물을 가득 등에 지고 가는데 검정 산타처럼 보였다. 남편이 나가면서 부모님께서 좋아하신다며 추가로 맥심 커피 믹스 박스를 챙겨 들었다. 무거울 것 같아 다음 번 방문 때 가져가라고 했다가 가지고 가고 싶은 것 같아 마저 챙겨 보냈다. 덕분에 선물 바구니는 등에 져야 할 정도로 무거워졌다. 나중에 들으니 점심으로 가족 모두 앉아(남편 부모님, 시누이님, 시누이님 남편, 남편이 함께 노랑이 커피를 함께 마셨단다.) 커피를 함께 마셨단다. 남편이 기분 좋은 미소로 상황을 전달해 줬다. 역시 어르신 분들 입 맛엔 맥심 커피믹스가 최고다.
남편이 계단을 내려가는데 장화가 눈에 포옥 잠겨서 깊은 발자국을 냈다. 눈이 와서, 콜 택시도 잡히지 않아 결국 버스를 타러 내려가는(버스 타러 가는 길까지 약 8분 걸어야 함) 남편을 보면서 속이 상했다. 나는 어쩌다 보니 본가도 시댁도 가지 않기 때문에 같이 선물을 지고 가지 못해 미안했다. 선물을 싸서 챙겨 보내면서 조심히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갑자기 많이 내린(내리는 중) 눈을 보면서 서로 보고 싶어 하는 마음과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눈이 펑펑 내려 이동이 어려운 때에도 시골 부모님 댁에 가기 위해 열차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계속 방송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건 참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을 보내면서 눈이 많이 오니 가능하면 본가에서 자고 오라고 했는데, 남편은 오후 늦게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귀소 본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다.
남편이 선물을 짊어지고 가면서 어찌나 무거웠는지, 집에 돌아와서 다음 날까지 어깨가 아파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정말 즐거워하시고, 좋아하셨다고 활짝 웃는 걸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께서 받으신 물품들을 찍어 보내주셨다. 사실 조금 더 준비했는데 더 보내드리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뭐, 다음에 또 남편이 본가에 갈 때 보내면 되니까.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죽기 직전까지 계속 되는 거니까, 시간은 아직 많지.라는 생각을 하며 편안한 마음을 가졌다.
어릴 때부터 주는 사람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다보니 누군가에게 뭔가를 줄 때면 항상 과하게 줄 때가 많다. 이걸 고치려고 여전히 노력 중이다. 그래서 선물을 주고 싶어서 준비해 놓고, 혹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선물들을 생각만 하다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가득이다.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받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기 때문에 선물을 줄 때도, 준비할 때도 검증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갖는다. 선물을 준비하는 이유라든지, 선물을 주고 나서 돌아오는 반응이 나빴을 때라든지 등 다양한 생각들 때문에 결국 선물을 전달하지 못했다. 집에 쌓아두다 언젠가 필요한 사람에게 흘러가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 함에 넣어뒀다.
살아가는 일이 무엇일까 가끔 고민한다. 가족, 친구, 연인. 마음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남은 인생을 채워가며 살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들을 산다. 인간의 도리, 해야할 것들, 하지 말아야 할 것들, 관계의 균형 등 다양한 생각들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돼묻는다. 그리고 선물이든 마음이든 덜어내고 또 덜어낸다.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을 생각하면서 관계의 균형을 찾는다. 상대방이 내게 상처를 준다면 이제는 과감히 조용히 관계를 종료한다. 그것이 가족이든, 10년 지기 친구든 상관없이 지금은 나만 참으면 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관계는 언제나 쌍방이어야 하고,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결국엔 그것이 관계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다. 덕분에 에너지가 많이 남아 할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예전보다는 딱히 하고 있는 건 없지만, 참 충만하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만,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만 뭐든 할 수 있고, 그만둘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참 감사하고 귀한 삶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오늘의 기록을 마친다. 하고 싶으면 하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천천히 걸으면 된다라며 완벽주의자였던 내게 숨을 허락했다.
추가: 배가 천천히 물러지고 있어서 결국 내가 먹기 시작했다. 정말 어마 어마한 배다. 대표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