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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의 두 얼굴>

<세상엔 완벽한 악인도, 선인도 없다>

  평강공주는 행복했을까. 평강공주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어쩌면 평강공주도 코디 펜던트적인 성향(의존적 성격장애)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평강공주가 잘못할 때마다 평강공주의 아버지는 농담으로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했고, 평강공주는 불안해하다 정말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간다. 많은 이들이 평강공주는 현숙한 여인으로 표현하는데, 만약 바보 온달이 진짜 바보였더라도 현숙한 여인으로 평가될 수 있었을까.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평강공주에 대해 생각해 본 이유는 평강공주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른 인물이 있어서다. 바로 나를 어쩔 수 없이 키워주신 어머니다. 나는 아버지가 재혼을 위해 자신의 동생에게 버려준 덕분에 아름다운 평강공주님 같은 어머니 손에 키워졌다. 나를 키워준 어머니는 최근에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깊게 해 주셨다(불과 3-4년 전). 누군가의 소개로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고 시작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30대에서 20대로 진행되다, 10대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첫 만남에서 자기랑 결혼해서 시아버지를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 만나자마자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기막혔을까.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이었다. 그만큼 어머니가 모든 걸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함과 착함(상대방이 느낄 만큼)을 가져서였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원래 사기꾼은 사기당할 만한 사람을 가장 먼저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알아봤고, 놓칠 수 없고,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주고, 안아줄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성장 배경을 아버지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 만남 후 아버지를 만나지 않던 중 어머니는 어떤 사람을 통해 아버지가 큰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버지는 병원에 누워 어머니만 찾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찾아갔고(어쩔 수 없다고 표현한 이유는 성격상 지나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나을 때까지만 보살핀다는 것이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역시 딸을 착하게만 키워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병원에서 다 나아 퇴원한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니면 죽음까지 각오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결혼을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소개팅을 해준 사람을 만나면 뺨을 족히 열 대는 때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하셨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었는데, 한편으로 마음이 참 서늘했다.

  그 이후 그녀는 자신의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했다. 나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녀의 삶에 많은 공감을 했다. 어릴 때부터 어린 양은커녕 항상 어른 아이였던(어른이어야만 했던) 그녀는 사랑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학업 성취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동생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며 동생의 뒷바라지를 했던 그녀였다. 그리고 할머니라고 부를 만한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그때 공부를 마치지 못했던 걸 아쉬워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왔던 그녀가 눈앞에 그려졌다. 그래봐야 겨우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이었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랬던 그녀가 운명처럼 현재의 남편을 만났고, 남편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구애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남편이 떠넘긴 책임을 떠안아 어쩔 수 없이(!) 시아버지와 나를 키우게 된다. 평강공주는 그래도 온달을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진짜 바보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선택했지만, 어머니의 자의는 타의라고 볼 수밖에 없는 선택들이었다. 그럼에도 평강공주의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던 그녀는 다수의 사람들이(시댁 식구들) 떠넘긴 것들을 모두 책임지면서, 자신의 인생을 태웠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던 선택지들에서 그녀는 자신의 시간과 열정, 재정을 모두 포기했다. 그러나 포기의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포기할수록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 더 많은 책임을 떠넘겼고, 그녀에게 의존했다. 그녀의 희생이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그녀 주변에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녀의 인생과 삶을 갉아먹고, 파괴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에게 의존하고, 그녀는 그런 그들을 책임지면서 의존하는 형태로 공생관계를 아주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 많은 책임들을 떠맡아 책임지면서 아름답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던 그녀도 천천히 변해갔다. 그녀도 한 명의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주어진 마음의 힘과 시간, 재정이 바닥나자 그녀의 에너지를 채워줄 공급원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 공급원 중 하나가 안타깝게도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착하고 귀한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내게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무섭고,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녀에게 사진첩을 부탁해 그녀의 젊은 날의 모습을 살펴봤다. 아름답고, 귀해 보이는 그녀는 동화 속에서 보였던 평강공주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아름다웠으니 자신이 이미 할머니라고 부를만한 나이가 됐다는 걸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여전히 과거 속에 멈춰있었고, 과거 속에 살면서 오늘을 살아갈 힘을 끌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멈추지 못하고 움직이며 뭔가를 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뿌리 깊은 우울한 마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고 오면 한참 동안 몸과 마음이 아팠다. 그 이후로 그녀는 마음이 아프거나, 울고 싶을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온전히 자신만의 선택으로 선택한 것들이 몇 개나 있었을까. 그녀는 스스로 살기 위해 나를 끊어내고(고등학생이 된 순간부터 어머니는 나를 더 이상 보지 않으셨다.), 시아버지를 끊어내고, 나중에는 자신의 자식들마저 끊고 깊은 시골로 들어가셨다. 아마 그것이 그녀가 했던 유일한 선택들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와 몇 년간 과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머니도 나도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 닮아있고, 닮아졌다는 걸 알게 됐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께 내가 자신을 너무 많이 닮았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나를 낳지 않았지만, 나도 어느 순간 어머니와 매우 닮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내 시간과 인생을 채웠던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평강공주는 착하고, 귀하고, 아름다웠지만 그녀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다. 만약 평강공주가 선택한 바보 온달이 모든 면에서 나아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녀 역시 어머니처럼 철저히 망가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누구나 쓰러지기 마련인데, 어머니와 나는 그 범위가 남들보다 넓고 깊었을 뿐이다. 그걸 알아챈 일부 사람들이 철저히 사용했으니, 이용한 그들이 이용당한 사람보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웃픈 생각도 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적절하게 섞여 살아간다. 그 사람들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관계를 맺기 때문에 스스로가 건강하지 않으면 결국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물리학 법칙 중에 같은 것끼리 공명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정말 무서운 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를 만나도 양방이 영적, 감정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관계를 맺는다는 거다. 그래서 너무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이 알고 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통된 감정 혹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끼리끼리 사이언스라는 말도 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다.). 과거에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상처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너무 놀랐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아픈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그 부분이 어느 면에서는 내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안을 준 면도 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참 안타깝고 슬프다. 그러니 끼리끼리 공명하지 않으려면, 총체적으로 건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진짜 이해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어머니는 참 안타깝고 아픈 사람이었지만, 내게 아픔을 가장 많이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덕분에 조각난 마음들 속에서 오랫동안 헤매고 또 헤맸다.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짐승도 은혜를 안다고 말했던 우리의 관계는 사실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감사를 끌어내며 그녀에게 느끼는 진짜 감정을 회피했다. 그 덕분에 오랫동안 결핍과 파괴적인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 회피는 건강하지 못한 인간관계로 이어졌다. 나중에 바닥이라고 할만한 감정의 바닥에 나앉았을 때에야 그녀에 대한 감정들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다(나처럼 성공지향형 인간이 실패를 경험한다는 건 세상을 등질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 대면한 그녀에 대한 진짜 감정은 무겁고, 파괴적이 이어서 나를 정말 힘겹게 했다. 그럼에도 그 감정을 마주하는 시간을 제대로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고마운 감정도, 미운 감정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녀도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드디어 생겨났다.

  평강공주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세상에는 완벽한 악인도, 선인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흑백으로 완벽히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그러려면 내면의 거울에 잔뜩 낀 먼지와 굴곡들을 정리해야 한다. 삶을 마주하고 살아가면서 이제는 타인보다 내 감정을 가장 먼저 보듬고, 살피고,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간다. 그리고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내 사람들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보살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희생 속에 이루어진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기 위해 내게 그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건 아닌지 생각도 이제야 하게 됐다.

  불안과 결핍을 기본 값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을 운명처럼 만났다는 이 사실을 몰랐다.) 것을 생각할 때 이제야 내가 진짜 내가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나는 이제 사는 것이 지겹지 않다. 가끔 나도 모르게 남편 앞에서 '사는 게 참 지겨워. 인간이 참 지겨워.'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지겹다는 말이 안 좋은 말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말을 배웠냐고 물을 때도 있었다. 남편의 말을 듣고서 나는 왜 지겹다는 말을 하고 있고, 하게 됐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들을 떠맡으면서 그것들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뱉었던 말이 지겹다는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 이제 나는 지겹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겹다는 말 대신 행복하다,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됐다.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준비하는 남편을 포옥 껴안고, 내게 와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 기본 값으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건강하고 의리 있고, 사랑이 많은 남편을 만난 게 얼마나 신의 은총인지~! 사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에게 전혀 끌리지 않았고, 별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온 배경과 그때 감정에서는 운명처럼 그를 끌어당길 수 있는 요인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타의에 의해 남편과 어쩔 수 없이 만나면서(부탁한 사람 덕분에) 남편의 진실하고 귀한 면을 많이 보게 됐다. 그리고 남편이 손 편지를 써서 읽어주며 울던 그날에 남편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그때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감동해서 남편과 시작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야 나는 진실하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과거에 아이를 낳았다면 분명 어머니처럼 자신과 비슷한 사람으로 아이를 키워냈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늦은 나이까지 아이가 없는 것에 참 감사하다. 이제 내게 아이가 와줄지 아닐지는 오직 신의 뜻에 달렸지만, 내게 어떤 삶이 주어지든 감사할 수 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님이 주신 것은 온전히 옳은 것이라는 걸 믿고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을 온전히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나를 다독이며 오늘을 걷는다. 초라해 보일 수는 있어도,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들로 껍데기를 뒤집어쓸 필요 없으니 모든 면에서 자유하다. 늦어도, 실망스러워도, 나는 오늘을 내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무엇이 되든, 되지 않든, 채워졌든, 부족하든 일단 살아있고, 살고 있으니 그냥 살면 된다.

  오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 코디펜던트란?

  "코디펜던트"라는 용어는 심리학이나 관계에서 "공의존"을 뜻하는 **코디펜던시(Co-dependency)**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관계에서 서로 지나치게 의존하며 감정적, 심리적, 또는 물질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형성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히 가족 내 중독 문제나 어린 시절의 정서적 학대와 같은 배경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1).

2. 코디펜던트 관계의 특징

가. 코디펜던트 관계의 주된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의존: 자신의 행복이나 자아존중감을 상대방의 행동, 태도,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4).

2) 자신보다 타인의 필요를 우선: 자신을 돌보지 않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합니다(3).

3) 경계선 부족: 자신과 타인의 경계선(boundary)이 불분명하여, 상대방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느끼고 책임지려 합니다(2).

4) 과도한 통제 욕구: 상대방의 삶이나 행동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할 수 있습니다(1).

5) 자아감 상실: 자신만의 목표나 관심사보다 상대방의 삶에 집중하게 되면서 정체성이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5).

나. 코디펜던트 관계의 원인

코디펜던트 관계는 주로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정서적 학대나 방치(1).
부모의 중독 문제(3).
비건강한 가족 문화(2).
낮은 자존감과 자기 사랑 부족(5).

다. 해결 방법

1) 자기 인식: 자신의 감정과 행동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4).

2) 심리 치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건강한 경계선 설정과 자존감 회복을 연습합니다(3).

3) 경계선 설정: 상대방과 자신 사이의 건강한 선을 설정하고 자신의 필요와 감정을 우선합니다(2).

4) 지원 그룹 참여: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로 격려를 얻을 수 있는 그룹(CoDA, Co-dependents Anonymous) 참여(3).

5) 자기 돌봄 연습: 자신의 삶과 목표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연습을 합니다(1).

3. 참고문헌

1. Melody Beattie, Codependent No More: How to Stop Controlling Others and Start Caring for Yourself.
2.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 Co-dependency.
3. Co-Dependents Anonymous (CoDA), CoDA 공식 웹사이트.
4. Mental Health America, Codependency and Relationships.
5. John Bradshaw, Healing the Shame That Bind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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