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남편과 데이트할 때 입을 생각으로 원피스를 샀다. 이 원피스는 블랙과 화이트 두 색상이 나온다. 화이트 색상은 결혼식 피로연이나 파티, 돌잔치 등 하얀 드레스가 필요한 날 많이 입는단다. 드레스 재질이라 실물이 훨씬 아름답다. 사진만 보고 사진과 비슷하기만 해 다오.라는 마음으로 구매했는데 사진과 완전히 같아서 정말 좋았다.
타오바오에서 좋은 제품을 구매하는 방법은 구매자가 많은지로 보면 된다. 3만 원이 넘어가는 옷은 재질이 생각보다 괜찮은 제품이 많다. 타오바오를 사용하게 된 건 고구마 같은 일 때문이었는데 그 덕분에 오히려 즐거운 구매를 할 수 있게 되어 고맙다. 국내에서 파는 대부분의 물건들을 타오바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제품들이 타오바오에서는 최소 3분의 1 가격으로 구매 가능하다.
크리스마스에 입을 원피스를 구매하겠다며 한참 타오바오에서 원피스들을 검색했다. 그리고 하나를 골라 장바구니에 넣었다. 배송비가 있기 때문에 위안으로 된 가격과 배송비까지 고려해야 한다. 구매한 후 일주일 정도 기다렸다. 보통 2주 기다려야 한다는데 빨리 왔다.
원피스가 도착한 후 바로 등 부분의 긴 끈을 잘라 리본으로 만들어 달았다. 원피스의 긴 끈은 입을 때마다 직접 리본으로 묶어 입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디자인은 입고 다니면 반드시 풀린다. 묶은 리본은 또 너무 통통해서 어디에 앉거나 기댈 때 불편함을 준다. 그래서 내가 마음에 드는 리본 느낌으로 만들어 바느질했다. 리본을 만들어 단 후 불질로 깔끔하게 마감하고 바로 세탁해서 걸어뒀다.
이제 크리스마스에 입기만 하면 된다. 별 것도 아닌데 원피스 덕분인지 마음이 두근 거린다. 예전엔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디에 가기 전 옷과 장신구를 구매하는 토오루 님 어머니를 보고 한번 따라 해 봤다. 덕분에 어머님이 느꼈을 설렘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어릴 때 소풍 전이나 수련회 전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슨 옷을 입고 갈 건지 이야기하고 옷을 구매하러 함께 가는 일들이 많았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건 멀치 감지 떨어져 아이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행사 전 함께 대화를 나누며 준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입맛이 쓰게 느껴진다. 그래야 했을 때, 그러고 싶었을 때 집에 아주 큰 가난이 닥쳤고, 나를 챙겨줄 어머니도 계시지 않았다. 그때는 천원도 아쉬울 때라 교복을 입고 소풍에 갔었다. (다행히 주임 선생님께서 전 교생 교복 착용을 강제 권고하셨다. 고맙습니다..)
친구들의 대화에 낄 수 없어 아쉽고 속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래서 그랬는지 수능을 보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 돈으로 옷을 샀다. 그때 버는 돈이래야 너무 적어서 산다고 해도 3천 원 - 5천 원, 많으면 만원, 이만 원 옷을 입었다. 그래도 나름 패셔너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학교에는 재벌집 딸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단다. 역시 신비주의 콘셉트가 될 만큼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빴던 것이 오히려 내겐 좋은 이미지를 가져다줬다.
다행스러운 건 명품에 눈을 뜨지 않아 소비는 항상 거기서 거기였던 게 지금도 참 감사하다. 물론 지금도 명품은 잘 모르고 필요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 돈이 차라리 통장에 들어있는 게 마음이 훨씬 편하다. 돈이 있으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해서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때 생각이 났다. 주변 친구들이 함께 쇼핑을 가고, 옷들을 맞춰 입을 때 참 부러웠다. 그때 수건공장집 딸인 친구가 옷을 빌려주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고마운 친구였구나.. 고마워.. ㅠ.
사람에겐 자라온 환경에 따라 다양한 경험이 주어진다. 내겐 어른들의 실수와 실패로 가난이 주어졌고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돈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눈으로 보이는 부함보다 통장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이 훨씬 좋다. 그래서 돈 걱정을 조금은 내려놔도 되는 요즘에도 나는 보일러를 최소한으로 틀고, 불도 끄고 다니고, 음식을 거의 집에서 해 먹는다. 그동안 벌었던 돈들은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다 써버린 덕분에 통장이 너덜너덜 해져서 현재 백수가 된 내가 대학원까지 나와야 했었는지 요즘 깊게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도 내게 빨대 꽂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빨대를 꽂고 싶어도 학교에 다니는데 다 써서 빌려줄 돈이 없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문제 되는 일이 돈 문제라는데 나는 행운처럼 주어진 가난 덕분에 돈 문제로 인간관계가 틀어진 일이 없다.
옷을 받고 기분 좋아서 한참 안고 있었다. 톡톡한 천 위에 곱게 그려진 꽃 모양 감촉이 볼에 닿는다. 기분이 좋다. 그리고 밤에 다시 기분이 살포시 나빠졌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동일한 원피스가 배송비 포함 2만 4천 원 정도에 팔고 있어서다. 알리든, 타오바오든 다음엔 두 곳에서 동시에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기독교 역사로는 태양신이 태어난 날이지만, 뭐. 아기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축하하고, 기쁘게 누리면 충분하니까.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나도 진짜 생일을 제대로 세지 못한 경우가 많았구나. 싶어서 위안이 되고 웃음이 난다. 사랑해요. 예수님.
어릴 때 외롭고 힘들 때마다 찾아들어갔던 교회에서 나를 유일하게 위로하시고 사랑을 주시던 예수님. 예수님 덕분에 오늘의 내가 살아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항상 매 순간 감사하고 있다. 나의 삶은 그분의 허락하심 하에 주어졌고, 이뤄진 거니까. 감사하고 행복하다.
#크리스마스를기다리며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