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친절함에 대하여>


아주 오랜만에 외출한 날이었다. 햇빛이 뜨거운 한 낮이라 선크림을 가득 바르고, 시원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날이 더워서 공기 열기까지 뜨거웠다. 외출을 하면 항상 누군가 마주치게 된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눈인사만 하던 이웃, 우리 집에 매일 출근하듯 오시는 택배기 사 님들. 내겐 이들이 참 반가운 이웃이다. 이웃 분들은 내게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주신다(눈이 나쁜 편이라 내가 먼저 알아보는 일이 적어서다.). 주는 것 없이, 받는 것 없이 참 감사하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받는 게 훨씬 많다. 택배 기사님들은 안전하게 내 물건을 늦지 않게 가져다주시니 내가 훨씬 받는 게 많지.

그중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이웃은 역시 택배 기사님들이다.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택배 기사님들도 나도 서로를 이웃처럼(나만 그럴 수도 있다. 오실 때마다 뭘 이리 많이 사는 겨.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느끼게 된다. 오랜만에 외출은 당일까지 써야 하는 1,500 원 커피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에게 주기도 부끄러운 금액의 쿠폰이라 운동 겸으로 빠르게 다녀와야겠다 마음먹었다. 급하게 집을 나서면서 집에 쌓아뒀던 재활용 상자를 가지고 나갔다. 상자를 수거하시는 분이 거치시는 길목에 내려두고 돌아서면서 반가운 이웃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는 기사님. 사실 택배는 대한통운, 롯데택배, 로지텍, 한진택배, 우체국 택배 등 정말 많기 때문에 나는 어느 회사의 택배 기사님인지 알아보기 위해 한참 바라봤다.

"아, 안녕하세요. 00 택배기사님이시죠?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에 만난 기사님은 10년 사이 더 빠짝 마르시고,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지 절뚝이셨다.

"네. 00 님이시죠."

"네. 잘 지내시죠?"

기사님은 내가 이사한 것까지 알고 계셨다. 잠깐의 담화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 돌아서서 길을 걸었다. 두 발짝쯤 뗏을 때 갑자기 아침에 읽은 이시헌 작가님이 쓰신 친절함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뒤돌아서서 택배 기사님을 불렀다. 갑자기 나도 가까운 누군가에게 친절함을 선물하고 싶어진 것이다.

"기사님, 저기 보이는 편의점에서 음료 사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나는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도 반드시 상대의 의사를 묻게 됐다.

"아. 좋죠."

불편한 다리로 걸어 내 곁으로 오셨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기사님께 5천 원 선에서 혹은 그 이상 돼도 되니 마음대로 고르시라고 했다(가끔은 주는 것도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피곤 한다.). 기사님은 식혜가 있는 코너에 갔다가 2천 원인걸 보고 내려두셨다.

"같이 온 동료가 있어서.."

라며 1+1 인 보리차 코너로 가셨다. 그 모습을 보고 바로 식혜 두 개를 들었다. 식사를 하지 않으신 것 같아서 빵이나 식사 대용 무언가를 사드리고 싶었는데 식혜 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셨다.

"1년 만인가요? 많이 마르셨네요. 다리가 아프신가요?"

"무릎이 좀 문제가 있어서.. 아이고, 식혜가 비싼데. 잘 먹을게요."

"건강하세요. 항상 감사해요."

식혜 두병(플라스틱)을 들고나가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는 감사함이 느껴졌다. 1,500원 무료 쿠폰이 내게 준 행복이었다.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의 선을 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하곤 한다.

식혜를 들고 동료 분께 향하는 택배 기사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내게 친절함을 선물하기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다. 무료 쿠폰으로 마시는 음료는 평소보다 훨씬 시원했고, 맛있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얼굴로 미소를 선물하는 것, 작은 친절들이 모여 일상을 이루는 게 아닌가. 싶어 참 기분 좋은 하루였다. 내게 따뜻한 미소를 선물해 주신 택배 기사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나는 내게도, 타인에게도 친절함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내게 친절하고 싶은 만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만큼 나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그 친절함이 베어났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도 선을 넘지 않고, 타인에게도 선 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만으로 사실 충분히 친절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오늘 기록 끝.

#친절함에대하여
#친절함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