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집이 좋은 이유>


분란 많은 궁궐에 사는 것보다 초가집이 어도 자기 집이 좋다는 비슷한 말이 있다(성경 구절에도 있음). 또 성경에선 고기를 먹으면서 싸우는 것보다 화목하게 풀을 먹는 게 더 낫다는 비슷한 말도 있다. 나는 집순이라 거의 집에 있다. 우리 집은 궁궐처럼 으리으리하진 않지만, 초가집처럼 초라하진 않다. 지금 사는 집이 내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사는 것이라고 할 만큼 편안하고 쾌적한 곳에 살고 있다. 앞으로 나는 훨씬 더 좋은 집에 살게 되겠지만, 오늘의 감사함과 행복을 기억할 것이다.


여행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내가 여행을 좋아했던가. 여행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할 만큼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다. 익숙지 않음은 여행을 불편하게 느끼게 만든다. 결국 불편함이 여행보다 집에서 쉬는 것을 선택하게 한다. 그리고 여행을 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점도 진입장벽이다. 가까운 곳에 여행 한번 다녀오면(국내여행이라도) 요즘 물가 수준에선 10만 원이 금세 사라진다. 10만 원이면 한 달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되기 때문에 망설이다 결국 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여행 갈 돈과 힘이 있으면 집에서 그냥 쉰다. 여행 한번 다녀올 돈이면 일주일 동안 집에서 왕처럼 쉬면서 배달음식까지 시켜 먹을 수 있다. 정말 왕처럼 지낼 수 있다.

 


<여행에 대한 생각>

 

여행 가는 길에서 겪는 불편함과 피곤함보다 편안하게 누워 사부작거리는 게 좋다. 그냥 이게 가장 익숙하다. 그러면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에 속하는 건가. 싶은데 좋은 곳에 많이 다녀보고 싶은 마음도 사실 조금은 있다.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오랫동안 가난한 수험생활을 한 게 원인 중 하나고, 어릴 때  가족이라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별로 없어서기도 하다. 구 가족들은 여행을 떠날 때 항상 나를 집에 놓아두고 갔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친인척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라 내가 있는 게 불편해서였던 것 같다.

오랫동안 가난한 수험생활이 가져다준 이점 중 하나는 정말 집을 좋아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필요 없는 곳에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써야 하는 돈과 가치를 비교형량해서 더 높은 쪽을 선택한다. 내 입장에서 아주 큰돈을 써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나는 써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죄의식 없이 쓴다. 그러려고 아끼는 거니까. 집에서 쉴 것인가, 여행을 갈 것인가 고민이 되면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하다 왕처럼 지내는 집순이를 택한다. 나도 그렇지만 토오루(남편)님도 집에서 편안하게 쉬는 걸 더 선호해서기도 하다.


이사 후 방이 많아진 덕분에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튼튼한 책상을 놔두고 카펫이 깔린 거실에 담요를 깔고 누워 책을 본다. 그 이유는 익숙해서다. 어릴 때 살던 집에선 중학교 2학년 무렵이 돼서야 멀쩡한 책상과 의자가 생겼다. 그래서 그전엔 두꺼운 베개를 깔고 누워 공부를 했다. 어릴 때 그런 생활을 해서 그런지 배를 깔고 누워 책을 보는 게 참 편안하다. 물론 어깨와 목뼈에는 좋지 않다. 단단한 바닥에 몸을 고정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두꺼운 베개를 가슴에 대고 엎드리면 참 편안하다. 익숙함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익숙한 물건, 익숙한 사람, 익숙한 환경을 참 좋아한다. 몇 년 전 직업훈련 학교에서 직업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직업 상담 중 성격 유형 검사를 반드시 하게 되어 있어 검사를 했다. 성격 유형 검사에서 두 개 유형이 극에 닿아있다고 했다. 프리랜서 형(목사, 예술가, 소설가 등)과 관료형(공무원 등)에 정말 높은 점수가 나왔다. 그걸 보고 직업 상담사님께서  어디에 속하든 잘 적응하고 다 잘할 수 있겠다고 하셨다. 특히 신앙 점수가 매우 높으니(100점에 닿아있다) 목사 길도 추천하셨고, 이 참에 사업을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도 물으셨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사업이 많다고 말이다.

관료형이 높게 나온 건 오랫동안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공부하고, 무리에 소속되어 오랫동안 공부를 해서라는 생각을 했다. 예술가 형이 높게 나온 건 원래 태어난 성향이 모험적으로 태어났다. 태어나길 예술가 형으로 태어났는데 후천적으로 20년 넘게 관료형 인간으로 교육받고, 그 안에서 살아왔으니 둘 다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상담사 님도 두 가지 유형이 반대되는 속성이라 같이 높게 나온 건 처음 본다고 하셨다. MBTI 검사든 에니어 그램이든 내 성격은 후천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게 많아 정확히 뭐라고 꼬집기 어려운 부분이 좀 있다. 어릴 때부터 뭐든 한다면 하는 놈, 사막에서 살아도 농사를 지어먹고살 수 있는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는데 이젠 사막이든, 사막 같은 사람이든 경험하고 싶지 않다. 무엇에서든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스트레스와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건강 점수도 충분하지 않다. 어릴 때야 하루 자고 일어나면 뭐든 회복했으니 그렇다 쳐도, 지금은 하루 동안 리본 핀 몇 개만 만들어도 다음 날 앓아눕는다. 면역 질환 중 하나로 원인 모를 관절통증을 오랫동안 겪었다. 피검사도 하고, 호르몬 검사도 하고, 엑스레이도 찍고, 스테로이드 약도 먹고, 스테로이드 관절 주사도 맞아보고, 병원도 최소 5군데 이상 다니면서 관절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고치지 못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내 질환은 자가면역질환인 것 같고, 스트레스로 생긴 병이다. 그러니 일반 병원이 아니라 기능 의학 병원에 가야 했던 질병이었다.

관절들에 정형외과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몇 주 맞았는데도 낫지 않았다. 그러다 최대치를 넘으면 안 된다고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하신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도 계셨다. 고칠 수 있는 관절 통증이 아니라고 하셨다. 류머티즘 관절염도 아니고, 일반 관절염도 아닌데 지속적인 통증을 느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 나중엔 볼펜도 쥐어지지 않아서 답안지를 한 장도 겨우 쓰고 나왔을 때도 있다(법학에선 한 과목당 최소 8페이지는 쓰게 되어있다.). 그땐 정말 안과 밖으로 스트레스를 최대치로 받던 때였다. 공부도 공부지만, 돈 문제도 그렇고, 가족 문제도 지속적으로 터지고, 종교 전쟁도 있었고, 외부 친구 문제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열불이 나고, 또 내가 나를 잡아먹을 듯 탓하고 싶어 지니 그만둔다. 선택은 결국 내가 했으니까. 후천적으로 그런 선택들을 하게 길러진 탓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어릴 때의 환경과 사람들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지 않은가. 그러니 하나님. 책임지세요.  

최근 관절통에 효과를 많이 본 음식물은 콩나물(신기하게 콩나물을 먹고 나서부터 관절통이 현저히 줄었다.)이 있고, 약으로는 아이오도랄(요오드)과 MSM, 비타민 C 가 있다. 이 네 가지는 죽을 때까지 먹을 생각이다. 병원에 가도 해결하지 못했던 통증들을 이제 많이 잡았다. 콩나물을 계속 키워 먹으면서 어쩌면 여성 호르몬 부족이었나 라는 생각도 했다. 호르몬 검사에서는 부족한 게 없다고 했는데 그건 평균치 이야기고, 사람마다 필요량이 다를 수 있으니까. 콩나물은 체내에서 여성호르몬 같이 행동한단다. 음식도 약이 된다는 생각에 매일 콩나물을 열심히 키운다. 이제 살아가야 할 나머지 인생에선 음식이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이제 제대로 들여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한다.

익숙한 습관에서 벗어나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멀리 있는 좋은 분들을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서울은 너무 멀다. 쉽게 가기 어렵고, 마음먹으려면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미루고 또 미루다 보니 벌써 1년이 훨씬 지나버렸다. 아이코. 망했..

오늘은 월요일이다. 오늘도 나는 집순이로 평화롭게 보낸다. 인생에서 가장 한가롭고 평안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보여줄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다. 더 이상 누가 뭐 하든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났기 때문에 오늘이 더 즐거울 수 있다. 가족이든, 친척이든, 친구든 나를 아프게 하고 함부로 대한다면 더 이상 내 인생에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으니까, 나는 제일 먼저 나의 행복과 감정을 생각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지난날들 동안 잃었던 것들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오늘의 나와 잘 살아갈 것이다.

나 님. 파이팅. 비워내고, 비워내고, 또 비워낸 자리에 좋은 것들을 가득 채우자. 내 인생 내가 챙겨야지.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