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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과 실제 인물은 일치하지 않으며, 모든 인물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주제 : <가족편>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부제 : 코디펜던트의 가족 탈출기

1장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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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상처들

가족 체계 속 얽힘과 감정의 왜곡,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기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나는 꽤 오랫동안 ‘가족’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감각을 느꼈다. 내게 가족은 따뜻함이나 그리움이 아닌, 차갑고 고통스러운 무게로 다가왔다. 누군가가 “그래도 가족이잖아”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위로가 아닌 침묵을 강요하는 명령처럼 들렸다. ‘그래도’라는 접두어는 모든 감정의 표현을 금지시킨다. 비난도, 고통도, 외면도 허용되지 않는 말.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예민한 사람’으로 규정해야 했고, 내 감정은 언제나 과민반응이나 과장이 되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며, 잊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나는 서서히 내 감정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잃어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와 침묵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내면을 파괴했다. ‘너를 아끼니까’, ‘사랑하니까’라는 말은 사실상 감정의 억압과 기억의 왜곡을 정당화하는 장치였고, 그 구조 안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심리학을 공부하면서야 나는 이것이 '정서적 가스라이팅(emotional gaslighting)'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제자는 언제나 “널 위해서”라고 말하고, 피해자는 그 의도를 의심하지 못한 채 복종한다.

  그 결과,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잘못한 걸까?”를 먼저 떠올리는 아이로 자랐다. 나중에는 다른 이에게 나쁜 일이 생겼을 때조차 자신을 탓하게 되는 내면화된 죄책감의 패턴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패턴은 성인기에도 이어졌고, 나의 관계, 결정, 심지어 존재 가치마저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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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나는 지금도 그날의 공기를 기억한다. 10살 무렵 아주 맑고 평화롭던 오후였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잔잔했으며,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던 햇살이 마루 앞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웃으며 뛰어놀았고, 어른들은 방 안에 모여수박과 과일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날이었고 평화롭고 따뜻한 기억이 되었겠지만 나에게는 오랫동안 전혀 다른 의미로 각인되어 있다. 성인이 되어서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촌에게 그 날의 기억을 물으니 그 조차 아름다운 날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게 물리적 폭력을 가했던 남성이 아이들에게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내가 엄마가 없으니 너희들이 잘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십여 명의 어른 중 한 남자 어른이 내게 다가와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손에 들린 두껍고 무거운 쇠사슬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공포가 내면을 덮쳐왔다.

“밖으로 나오면 큰 쇠사슬로 묶어 개집에 가둘 거야. 저기 케이지 보이지? 이 쇠사슬은 너를 위해 준비한 거야.”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어른들 사이로 숨어들었지만, 보호받지 못했다. 오히려 파리채를 든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와 고함을 치며 마당으로 내쫓았다. 파리채를 든 여성이

“네년은 고집이 세서 고집을 좀 꺽어줘야 해.”

  라며 나를 마당으로 몰아냈고, 여자 어른이 휘두른 파리채 질을 등에 가득 후려 맞고 앞 마당으로 쫓겨났다. 마당으로 나온 나를 기다린 듯 그 남자는 주먹을 휘둘러 나를 바닥에 고꾸라지게 했다. 그리고 남자 어른은 근처 수돗가에 고꾸라진 나를 질질 끌고 가 오른쪽에 놓인 주황색 바가지로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바가지가 쪼개진 자리에 두피가 찢어져 피가 얼굴로 흘러내렸다. 피와 섞인 물이 눈가를 적시던 순간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주변에는 삼삼오오 모여 뛰어놀던 아이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날의 햇살과 나무,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든 풍경이 오직 나 혼자만의 공포를 위한 배경이 되어 오늘에까지 가끔 꿈속에서 마저 그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기억을 반복하곤 한다.

  왜 아무도 그 남자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을까. 왜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어른들은 나의 공포를 비웃고 방관했을까.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2차 가해’ 혹은 ‘집단적 방임’이라고 말한다. 실제 폭력보다 더 깊은 상처는 폭력을 본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폭력을 당한 아이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아이’라는 인식을 내면화하고 그 믿음은 이후 삶 전반에 정체성과 자기감각을 왜곡하며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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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의 시작

  나는 세살에 엄마를 잃고 동생과 함께 다섯 살 까지 보육시설에서 지냈다. 그 보육시설에서 만난 ‘엄마’ 역할을 하던 선생님들은 새벽마다 찬물로 아이들을 깨웠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그는 처벌을 했고 그것을 교육이라 불렀다. 새벽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하나둘 물속에 얼굴을 강제로 잠기게 했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얼굴 위로 부었다. ‘배변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던 물리적 고문은 어린 나에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포를 남겼다. 누군가는 이를 ‘배변을 위한 교육’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라고 정당화했다. 하지만 보통의 일반인이라면 이 행위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결코 행해져서는 안 되는 폭력이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무가치한 인간으로 천천히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찬물 속에서 질식하듯 깨어나는 경험과 마늘과 양파를 억지로 먹으며 식당에 홀로 남겨진 장면이다. 이 기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특정 음식에 대한 혐오와 감각기억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음식이나 물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무시당한 존재로서의 나’라는 핵심정서로 남았다. 점심시간부터 저녁 무렵까지 불 꺼진 식당에 홀로 앉아 식판 위에 가득 쌓인 양파와 마늘을 먹고 토하던 기억은 오늘날까지 깊은 상처로 남아 나의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선생님들은 식이 습관을 고쳐주겠다며 양파와 마늘을 아이들에게 강제로 먹였고 토하더라도 먹고 삼킬 때까지 무리한 교육을 이어갔다.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에는 찬물이 몸에 닿으면 과 호흡이 일어나서 수영을 배우지 못했고, 성인이 된 오늘까지도 양파와 마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여전히 양파를 먹으면 토한다.

  다섯 살 무렵 친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친척집으로 보내졌을 때 드디어 나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곳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구조화된 폭력의 공간이었다. 옮겨진 곳에서는 오히려 시설에서의 폭력보다 더 깊고 잔인하게 언어적, 정서적, 신체적 폭력이 가해졌다. 친아버지는 재가를 하시면서 나를 차마 다른 곳에 입양을 보내지 못하고 자신의 동생 가족들에게 맡겼다. 나중에 성인이 되면 자신의 아이로부터 받을 수 있는 효를 기대한 선택이었던 게 아니었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친아버지와 길러주신 가족들의 “내 딸이다.” 라는 심리적 쟁탈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곳의 가족들은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풍족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가족 구성원이었다. 그러나 내부에서 보면 곳곳이 썩고 병들어 있는 가족이었다. 심리학에서 한 사람의 고통이 3대를 내려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가족 역시 3대에게 내려지는 고통과 저주가 있는 가족이었다. 한 명 한명 고통과 상실이 없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였고, 불행했고 불쌍했다. 대가족 내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짐처럼 배치되었고, ‘가족 내 희생양’으로 기능했다. 학대는 다양한 형태로 일어났으며, 나는 생존을 위해 ‘가치 있는 아이’가 되기를 강요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직접적 폭력을 가하는 어른들과 방임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나는 “도움이 되어야 사랑 받는다”는 핵심신념(core belief)을 형성했고, 이는 심리학에서는 '코디펜던트 성향(codespendent tendency)'의 주요 기제 중 하나로 꼽는다. 타인의 정서에 지나치게 반응하고,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며, 타인의 승인으로만 자존감을 유지하는 심리적 구조다. 내가 맞고, 벌을 받고, 조롱당한 이유는 ‘고집이 세다’, ‘예민하다’는 것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친아버지는 실질적인 양육에 참여하지 않았고(양육비를 보내주지 않음), 명절에 나타나 군림하듯 굴며 폭력을 행사했다.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직접 대항하는 대신 나를 희생양 삼아 분노를 풀었다. 나는 그들 모두의 고통을 흡수하며, 살아남기 위해 내 감정을 억눌렀고 어린 시절 내내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원하는 것을 알아서 채워주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리고 내가 가족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매일 보여주면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사랑 받아야 존재가치가 있다는 핵심신념이 내면에 자리 잡았다.

  할아버지께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할아버지가 키우는 염소에게 먹이와 물을 주는 것을 대신했고, 가족구성원들이 벌여놓은 농사와 축산, 내가 할 수 있는 가사 일을 도왔다. 그들에게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에 보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 잘 곳이 제공됐고 그들은 나를 키워주는 대가로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라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지시켰고 살아남기 위해 친절하고 얌전하며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했고 사랑받으려 애썼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증오했다. 이것이 정서적 학대와 방임이 만들어낸, 가장 비극적인 내면화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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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이제야 나는 “그래도 가족이잖아.” 말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가족은 절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돌봄과 존중이 전제될 때에만 의미 있는 관계다. 침묵을 강요당하던 과거를 돌이켜보며, 나는 내 안의 감정을 배신하지 않는 것을 삶의 윤리로 삼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되돌아보는 일이 내게는 상처를 이해하고 회복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불편한 일이지만, 내 안의 ‘어린 나’를 지키고 감정을 배신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 진짜 나를 돕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지키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말하고 쓰며 살아간다. 이 여정이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누군가에게, 고요한 용기와 회복의 씨앗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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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김청택·정경미, 『아동발달의 이해』, 학지사, 2020, p. 115.
→ 정서적 가스라이팅과 자기정체성 왜곡에 대한 아동기 발달 설명 기반
2. 김은정, 「아동기 정서적 방임이 성인기 애착 유형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지: 임상』, 제35권 제1호, 2016, pp. 79-95.
→ 가족 내 방임이 자아 인식과 애착에 미치는 영향 설명 참고
3. 권석만, 『현대 이상심리학』, 학지사, 2021, p. 167.
→ 코디펜던트 성향 및 내면화된 자아상 개념 정리
4. 한성열, 『트라우마 심리학』, 학지사, 2018, p. 140.
→ 생애 초기 외상 경험이 자기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 관련 설명
5. 박은영, 「가족 내 정서적 학대 경험과 심리적 외상 간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제23권 제3호, 2011, pp. 211-229.
→ 가족관계에서의 2차 가해 및 방임의 심리적 결과 참고
6. Craig Nakken, 『The Addictive Personality』, 번역: 최호영, 학지사, 2017, p. 103.
→ 중독적 가족 구조와 '희생양 역할'의 형성과정 설명에 참고
7. Judith Herman, 『Trauma and Recovery』, 번역: 황승숙, 이후, 2004, p. 98.
→ 외상 후 자기 인식의 재구성과 반복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론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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