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육체적 에너지의 한계점> / <나의 모든 것은 무료 서비스가 아니다>

내가 나의 것들을 무료 서비스처럼 타인에게 공급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타인도 나의 모든 것을 무료라고 생각했는지 물건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오늘 실패한 내 삶이(내가 원하던 삶을 살지 못하게 된 것)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심리 공부라는 건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된다면서 교만하게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가끔 뉴스나 매체를 통해 하늘 높이 날다 한 순간 실수로 바닥에 떨어진 대단한 사람들을 볼 때 인생이라는 것이 잘 되고 못 되는 것도 인간의 관점이지 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생의 잘됨과 못됨이 조삼모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우리가 개미집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드니까. 참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천지차이처럼 시선과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심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어쩔 수 없다고 표현한 것은 당시 삶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해서 납득할 만한 이유가 나름 필요했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했고, 뭐라도 한 것 중 하나가 심리 공부였다. 심리공부를 하면서 나는 내가 나를 파괴할 만한 사람들을 삶에 일부러 끌어들이고, 허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니 그동안 나는 나를 무료로 사용하고, 정서적, 육체적으로 학대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굳이 골라서 삶에 들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기까지 자기 방어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다(내가 나를 파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자기 용서 부분이어서 더욱 어려웠다.). 그리고 그 결과 내 삶이 완벽히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 들었던 지팔지꼰의 선두주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씁쓸했다. 과거의 나는 이미 내면의 방이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들일 수 없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더라도 가볍게 스쳐 보냈다. 그 점이 지금도 참 아쉽고 씁쓸하다.
과거의 나는 신이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살아간다면서 방전되지 않는 건전지처럼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산하며 돕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돕고 다녔다. 덕분에 돕지 않아도 될, 도와서는 안 되는 사람들까지 자석처럼 내 인생에 끌어들였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스스로가 매우 교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들을 돕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교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내면의 무능감을 극복하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라는 탈을 쓴 이름만 어른인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내면에 채울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의 행, 불행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하루들을 살아갔고, 그 때문에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웠다(타인의 요구와 욕구의 허들은 뛰어넘을수록 높아지고 험해진다.).
게다가 초예민자라고 부를만큼 예민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역경과 모험처럼 느껴졌다. 초예민자에 가까울수록 타인이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과 욕구를 느끼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타인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타인을 돕는다. 그리고 초예민자가 나처럼 공의존자(코디펜던트)라면 모든 것을 동원해 타인을 도우면서 자기 자신은 철저히 외면하고 방임, 방치한다. 타인은 돕지만, 스스로는 돕지 않는다는 것이 타인을 돕느라 자신에게 사용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이런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내 성향상 아이를 낳으면 또 아이를 위해 살게 될 거라면서 스스로를 포기할까 봐 아이 낳기를 미루고 또 미뤘다. 10년 넘게 봐 왔고, 함께 했으니 내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배려해 주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남편뿐이다.
언제였지. 현재 삶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내게 누군가 봉사활동이라도 해 보는 건 어떠냐고 답을 줬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과거의 내가 타인들을 돕는 활동 중 가장 심취했던 것이 봉사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받지 않고, 좋은 일을 한다는 느낌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했던 적이 있어서 나는 정말 극단적으로 봉사활동에 심취했다. 그래서 10년 가까이 혹은 10년 이상 봉사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에(이것뿐이겠는가) 그분의 답변에 뭐라고 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다. 그러다 과거에 해 봤다고 하며 적당히 얼버무렸다. 남을 돕느라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내게 다시 남을 도와보라니. 돕다 보면 또 행복감을 얻겠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등한시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내면의 내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정말 최선을 다해 타인들을 도왔다. 그리고 돕지 않아도 될 타인들까지 도와서 그 타인들이 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그러니 자기 사랑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타인에 대한 도움은 자기뿐 아니라 타인까지 망가트린다. 타인을 돕는 대가로 순간의 만족과 일시적인 무능감 회복이라는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다음 날을 또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얻으려면 타인을 또 도와야 한다는 굴레에 빠졌었다. 그리고 또 잠깐의 행복을 느끼고(도파민 중독처럼) 또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도울 사람을 찾아다녔다. 과거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망설이다 답변을 내 놓았던 나는 더 이상 타인을 돕느라 무능감을 극복하려고 하는 행동들을 하고 싶지 않았고(타인을 돕는 건 자기 사랑이 기반된 상태에서 해야 한다.), 그 활동들을 통해 나를 소진시켜 나를 내 인생에서 소외시키고 싶지 않았다(자기 자신을 소진시키면 아주 자연스럽게 시선을 밖으로 돌려 자신을 방치할 수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육체적 에너지, 정신적 에너지, 물질적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많고 적음이 모두 다르겠지만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적절하게 잘 사용하지 않으면(한쪽으로 치우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의 한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타인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것들을 사용하면 결국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망가트린다. 그것을 완벽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이제 내 에너지들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
누구나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 체육인처럼 극단적인 재능과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지 않다.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이들 역시 다른 부분에서 한계가 반드시 존재한다.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적, 정신적 한계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의 한계가 어딘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타인을 도우면서 아름다운 인생을 함께 아우르며 살아갈 수 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누구는 뭘 먹어도 다 소화시키는 반면, 어떤 사람은 사과 한 입만 먹어도 하루 종일 화장실에 들락거리지 않던가.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에너지와 내 것들을 비교할 필요 없다.
과거의 나는 심각할 정도로 애정결핍이 있었고,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어서 누군가의 칭찬을 받으면(잘한다. 고마워. 역시 넌 최고야. 너 밖에 없어. 등) 없던 에너지도 생겼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한 상태에서도 타인을 위해 뛸 수 있었다. 오랫동안 심리적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 뛰어왔는지 오늘의 나는 뛸 힘도 없고, 뛸 수도 없다. 요즘은 타인이 자기를 위해 희생하라고 말하면(돌려서 말하든, 교묘하게 말하든, 직접적으로 말하든) 화가 난다.
코디펜던트든, 나르시시스트든, 에코이스트든 뭐든 간에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 내면에는 무능감이라는 텅빈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코디펜던트는 무능감을 극복하기 위해 나르시시스트의 깨진 항아리를 채우려고(만족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무능감을 해소하려고 하고,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처럼 보이는 방패를 들고(실제로는 자존감과 자기애가 낮음) 코디펜던트와 에코이스트 같은 사람들을 삶에 끌어들여 그들의 인생을 촛농처럼 녹여 자신의 불을 밝힌다.
이제야 나는 나의 삶과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무료가 아니라는 것, 가족이더라도 관계는 반드시 쌍방 호혜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과거의 나는 가족 내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폭력들과 아픔들이 내면화되면서 나는 더 깊은 절망과 무능감을 얻었다. 심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건 과거의 나는 남편을 남편 그대로 바라보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하루 반에 한번 꼴로 남자친구 어머니였던 오늘의 시어머니는 나를 자신의 편의를 위해 부르셨다. 그리고 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아들과 당장이라고 헤어지라고 하셨다. 한 번은 남자친구가 보지 않는 곳에서 벽에 밀치고는 '네가 아들한테 말했냐?' 며 위협하기도 하셨다(이 외에도 정말 많은데, 잘해주신 것도 많아서 내면이 엉망이 됐다. 미워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는 상대와 함께 한다는 건 파괴적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멀어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럼에도 보상처럼 내가 느끼고 싶었던 사랑과 애정을 부스러기처럼 주셨다는 것이다. 진정한 애정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어린 시절에 해 왔던 것처럼 똑같이(비슷하게) 어머니와 과거를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정서적 학대를 받고 어머니와 멀어질라치면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학교에까지 찾아와 반드시 먹이셨다. 그러니 어머니와 멀어질 수도 없었다. 남편과 헤어지는 것도 불가능해서(남편이 정말 나를 많이 아껴줬다.) 그때는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음 날 천국에서 깨어나게 해달라고 잘못된 기도를 매일 했다.
심리공부를 하면서 어머니와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봤다. 나를 키웠던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과거에서 완벽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팠던 건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남편을 내가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어머니께서 내게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면 아들과 헤어져.'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 남편을 신뢰했다면 그녀의 말을 가볍게 웃어넘겼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말을 절대적 위협처럼 느꼈기 때문에 나는 철저하게 어머니의 노예처럼 행동했다. 더 화가 났던 건 어머니는 자신의 딸은 남자친구 집에 가면 고생한다며 가지도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내게 '딸은 그늘에 있게 하고, 며느리는 땡 볕에서 일하게 한다.' 는 옛말이 있다며 말씀하셨는데(그날은 어머니와 언니가 함께 피부과에 가서 시술을 받고 오신 날이었다.), 그때 나는 며느리도 아니었다. 요즘처럼 이혼이 많은 시대에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남편과 깨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를 오랜 시간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은 남편과의 관계를 통해 남편의 가족들과 애정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남편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 남편을 통제하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일은 전혀 없겠지만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남편의 가족들이 나를 위해 든든한 성벽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 내 남편은 시어머니의 말은 거의 듣지 않는 '불효자' 이야기를 듣는 아들이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불효자 놈.'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뭘 하자고 하면 싫다.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남편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진 반응이었단다. 그러니 그런 남편을 설득하는 것보다 수치심과 결핍이 많은 나를 상대하는 것이 남편을 움직이기에도 편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뭔가를 부탁하실 때 '~~ 하나 못 움직이고. 네가 해달라고 해야지. 그거 하나 설득 못해서.'라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셨다. 과거의 일들을 집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이제야 남편과 내 관계가 모든 것의 첫 단추이자, 첫 단계라는 것을 깨닫고 남편에게 미안했다. 남편을 신뢰하지 못하고,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시어머니에게 복종했던 내가 결국 내 인생을 파괴한 것이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갖지 못했던 완벽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남편 가족을 통해 이뤄보려고 했기 때문에 명백히 내 잘못이다. 남편은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남편 가족과 잘 지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절대(평소에는 절대라는 표현을 굉장히 삼가는 편이다. 어감에서부터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실패하고 싶지 않았고,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완벽히 실패한 순간에 깨달음이 찾아왔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러나 인생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싶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돈만큼, 혹은 돈보다 소중하며 돈(재정)처럼 한계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스스로에게 알려주기 위해 내가, 그리고 신이 내게 주신 실패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니 오늘의 삶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가. 너무 많은 것들을 아주 깊게 반복한 인간관계와 가족관계 안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러니, 이제 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오늘을 걷는다.
가족도 타인이라는 것을 배운 과거 이야기들. 타인을 사랑하기 전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한다는 것, 남편과의 관계가 남편 가족들과의 관계보다 첫 번째라는 것, 영원한 우정은 없다는 것, 우정도 쌍방 이어야 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것 등 나는 이 시점에서 배울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달았다. 그러니 신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 많은 개미들 중 조금은 더 사랑받는 개미지 않을까 싶어 웃음이 난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라는 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으니까.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니까. 나는 내 멋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오늘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것이 내가,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내가 없는 관계, 내가 없어져야만 하는 관계라면 천륜이고 뭐고 무시하기로 했다. 이런 나를 욕해도 된다. 상관없다. 이 세상도 내가 존재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 아닌가. 그러니, 죄책감 때문에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항상 '을'이 되어야만 했던 사람, 자처했던 사람이 이 이 글을 우연히 봤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네 멋대로 살아도 돼. 무시해. 그러든가 말든가. 괜찮아. 내가 허락할게. 이제 내 인생만 잘 살아도 돼." 라고.
사실 자기 인생만 잘 살아도 타인을 돕는 거다. 수 많은 알코올 중독자 가족을 보면 알코올 중독자 한 명이 제대로 살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인생을 망가트리는가(국가에까지 피해를 입힌다.). 그러니 나는 내 인생만 잘 살아도 한 사람 몫 이상은 하는 거다. 당신이 자녀가 있다면 세 사람 이상 몫은 하는 거니까. 당신 인생만 잘 살아내도 최소 3명은 살리는 거다. 그러니 오늘부터 내 인생부터 행복하게 사는 걸로. 나를 제일 먼저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