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픽션
입니다.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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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가족 안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상처와 갈등을 그렸다. 그 과정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가족이야기다. 상처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90% 이상의 가정에서 드러내지 않는 상처와 고통의 과정이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상처와 아픔을 가진 성인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상처와 고통을 물려준다. 자유 소설은 한 아이가 태어나 구성원 안에서 희생자가 되어 자라는 과정과 치유여정을 담았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한 곳에 묻고 모습만 성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혜령이 다가온다. 자유는 모습만 어른이 된 혜령과 함께 치유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회복과 치유를 담은 성장 소설이다. 자, 이제 혜령과 함께 자유를 향해 떠나보자. 진정한 자유가 당신과 혜령에게 찾아올 것이다.
자유
7. 각자의 사정
7. 각자의 사정
한길어멈은 더 이상 범수에게 아픔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 아이들을 지킬 수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해.’
범수의 아내 한길 엄마에게 믿고 의지할 대상은 오직 아이들뿐이었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게 한길 엄마가 지닌 신념이었다. 매일 아침 한길 엄마는 혜령의 도시락을 싸고, 옥석의 아침상을 차렸다. 밥을 곱게 지어 보온 통에 담고 반찬통에 나물과 오징어 젓갈, 김치를 담는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이년이 왜 이렇게 안 일어나. 내가 언제 딸이 필요하댔어?
왜 마음대로 아무나 데려다 놓는 건데.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해. 검은 머리 짐승은 데려다 키우는 게 아니랬다고. 씨벌 것들. 두 년 놈을 내가 왜 책임져야 하나고. 내가 이게 아침마다 뭐냐고.”
범수의 아내 한길엄마는 옥석이 듣도록 크게 소리를 지르고, 도마를 쾅쾅 두드렸다. 옥석을 향한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아침, 혜령이 일어나 마루에 앉았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고운 햇빛의 냄새가 코에 파고든다. 혜령이 한길 엄마가 곱게 싸준 도시락을 메고 대문을 나선다.
산돌에게 새로운 부인이 생긴 후, 산돌은 더 이상 혜령에게 전화를 하지 않고, 교육비를 보내지 않았다. 한길 엄마의 아침 비명은 매일 더 강하게 혜령에게 닿았다. 그렇게 해야만 한길 엄마가 살 수 있었다. 혜령이 도시락을 들고 마루에서 일어서자 한길엄마가 혜령을 불러 세운다. 혜령이 엉거추춤 한길 엄마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다. 최대한 비굴하게 보이도록 손을 모으고 한길엄마의 처분을 기다린다.
“니 아빠는 돈도 잘 번다며. 대체 갖다 주는 게 뭐 있어. 니가 전화해서 말해.
이번에 학교에 얼마 내야한다고. 니 팬티 샀는데 그거 만이천원이라고 꼭 말해라.
그것도 달라고해. 알았어? 대답해. 대답하라고.”
“네.. 전화 할게요.. 근데.. 아빠가 전화를 안 받으셔서..”
“받을 때까지 해. 알았어? 대답 안 해? 야. 안경 벗어.”
안경을 벗자, 한길 엄마가 혜령의 얼굴을 오른쪽 손바닥으로 내려친다. 얼굴이 한쪽으로 내려진 혜령의 왼쪽 뺨이 붉게 탄다.
“빨리 옷 입고 학교나 가. 전화 꼭 하고.”
“...”
“대답해. 대답 안 해?”
“네..”
“애비나 딸년이나 싸가지가 없어 가지고.”
한길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고, 혜령이 마당을 나선다. 느릿 느릿 혜령이 왼쪽 볼에 손을 대고 대문을 나선다.
혜령이 중학생이 되자 교복이 생겼다. 혜령은 튀지 않아 안전한 느낌을 주는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게 좋았다. 학교가 끝나면 공중전화에서 혜령은 매일 산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산돌은 주마 주마하더니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혜령은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그리고 돈을 받아올 때까지 셋째 범수의 부인 한길 엄마는 매일 아침 혜령을 불러 세웠다.
산돌의 사업이 잘 되갈수록 산돌에게 시간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책임질 식구들이 많았다. 산돌은 자녀가 네명이 있는 여인과 결혼했다. 덕분에 산돌이 책임져야할 자녀가 경희를 포함해 다섯명이 됐다. 그리고 몇 년 후 여인과 사이에 자녀가 한명 더 생겼다. 덕분에 산돌이 책임져야할 아이가 여섯명으로 늘었다. 산돌에겐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매일 같이 일어났고, 산돌은 범수가 혜령을 잘 챙길 거라 믿고 혜령을 내려놨다. 매일 혜령이 전화를 걸자 산돌은 전화를 꺼버렸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통화 연결음을 듣고 혜령이 전화기를 내려논다. 공중전화 안에서 나온 혜령이 교회로 발길을 돌린다.
‘하나님 저.. 오늘은 어떡해요..’
산돌의 두 번째 부인은 음식을 맛있게 했다. 그녀는 늦은 밤에 들어가는 산돌에게 따뜻한 밥과, 국, 정갈한 반찬을 식탁에 올렸다. 산돌은 그녀의 밥을 먹을 때마다 따뜻함을 느꼈다. 그러다 산돌이 그녀의 사정이 궁금해져 물었고, 드디어 이야기를 듣게 됐다. 남편 역시 버스 기사였다고 했다. 어느 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냈다는 그녀가 산돌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남겨진 아이들 때문에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산돌은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산돌은 그녀를 책임지리라 마음먹었다.
그녀는 한명의 딸과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녀라면 산돌의 아들을 한명쯤 낳아주는 건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름이 성철인 그녀의 막내아들이 튼튼하고 잘 생긴 게 산돌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도 성철이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돌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날부터 그녀를 성철엄마라고 불렀다.
산돌은 매일 열심히 일했다. 산돌에게 시간은 금과 같은 같았고, 모든 시간을 돈으로 바꿔서라도 성철엄마와 아이들을 책임지리라 마음먹었다.
그 즈음 셋째 범수의 모든 신경은 온통 농장을 확장하는데 쏟아졌다. 범수 역시 책임져야할 식구가 많아졌다. 그래서 범수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산돌에게 전화를 걸었고, 산돌은 혜령을 잘 키워달라며 돈을 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범수의 사업은 끊임없이 적자가 났고, 돈이 들어갈 곳이 계속 생겨났다. 가족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다. 범수는 산돌에게 돈이 필요할 때마다 손을 벌리기 시작했고 산돌은 범수의 요구가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혜령을 생각해 돈을 보냈다. 이 사실을 한길 엄마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 같이 잘 살면 되지. 조금만 더 하면 돼. 조금만 더.’
셋째 범수는 인정이 많아 외상을 주기 일쑤였다. 덕분에 농장은 커져갔지만 한길 엄마의 주머니는 비어갔다. 생활력이 강한 한길 엄마는 빈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닭을 잡아 팔기 시작했다. 매일 고된 하루들이 한길 엄마에게 쏟아졌다.
중학교에 다니시 시작한 혜령은 집에 가는 길이 기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혜령은 클로버 잎이 가득 피어있는 길가에 들러 네잎클로버를 찾았다.
‘클로버를 많이 찾으면 내게도 행운이 오겠지.’
클로버를 열심히 찾고 또 찾았다. 혜령의 손에 네잎 클러버가 늘어갈수록 행복이 많아진 기분이 들었다. 혜령은 클로버 하나를 입 안에 넣었다.
‘이걸 먹고 집에 가면 오늘은 혼나지 않을 거야.’
혜령은 한길이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행운은 항상 혜령의 것이 아니었다. 집에 가는 길목, 멀리서 천리향 꽃향기가 맡아졌다. 혜령은 멈춰 서서 천리향의 향기를 맡았다. 인생이 꽃향기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혜령은 미리 나와 반기는 향기에 위안을 얻는다.
혜령이 도착해 한길엄마에게 인사를 한다. 범수의 아내 한길엄마가 옥석에게 한바탕당한 후인지 표정이 가득 굳어있다. 한길 엄마는 혜령을 보자 담아뒀던 마음의 찌꺼기를 가득 쏟아낸다.
“니네 아빠한테 가 버리라고. 내가 왜 너를 맡아야 해. 너 같은 거. 니네 아빠는 짐승이야. 짐승도 자기 새끼는 안 버려. 짐승 새끼 자식이니까 너도 짐승 자식이지. 개 만도 못한 놈. 지 딸이랑 지놈 아버지를 나한테 던져놓고. 할 도리도 안하고 말이야. 나한테 머리로 신을 지어줘도 모자랄 판에.”
한길엄마의 말은 혜령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혜령은 한길엄마가 미워하는 산돌을 같이 미워했고, 미워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혜령은 자기 자신도 미워하게 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혜령의 편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받을 수 없는 한길엄마의 빈 사랑이 아팠다.
학교 교무실 안. 혜령이 국어 과제물을 들고 교무실로 갔다. 국어 선생님 책상 위에 과제물을 올려놓고 나오려다 들려오는 이야기에 걸음을 멈춘다.
“이번에 어버이날 어버이 상은 정해졌대요?”
“누굴 할지. 아직 정하는 중이라네요.”
“아.. 그래요? 큰일이네. 괜찮은 이야기 가진 어머니 어디 없을까요?”
“글쎄. 받을 분들은 이미 다 받으셔서..”
선생님들이 어버이 상 대상자를 찾고 있었다. 혜령은 선생님들 곁을 다가간다. 그리고 한길 엄마의 위대함을 이야기 한다. 포장하고 또 포장해서 정말 좋은 어버이 모습으로 포장해 전달했다. 덕분에 한길 엄마는 어버이날 자랑스러운 어버이 상을 받았다. 남의 아이를 정성들여 키우는 여인, 어버이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이 시대의 본받을 만한 어버이 상. 한길 엄마 만을 위한 상이었다. 혜령은 이제는 한길엄마의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길 엄마의 마음에 나눠줄 사랑은 남아있지 않았다.
혜령이 중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범수의 가족 사업은 무너지고 있었다. 수 만 마리의 닭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가적인 어려움까지 닥쳐 범수의 사업은 완전히 접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산돌의 사업도 말라가는 시기였다. 범수는 확장한 사업을 접을 수 없었고, 이리저리 돈을 빌리러 다녔다. 범수의 아내 한길 엄마는 점 점 더 살길이 막막해졌다. 사업을 함께 이뤄가던 식구들의 삶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중학교 졸업하면 집에 오지 마라. 이젠 여긴 니 집 아니야. 이제 돌아올 곳은 없어. 니 물건이랑 다 태워 불라니까 오지마. 오기만 해봐. 알아들어? 대답 안 해?”
한길 엄마는 졸업을 앞둔 혜령에게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을 매일 약속하게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날 혜령은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서로 헤어지게 돼서 그럴 거라고 우는 혜령을 안쓰러운 듯 기분 좋게 바라봐 줬다.
졸업 후, 혜령은 자라온 집을 떠나 도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는 기숙사 시설이 있었다. 기숙사 시설에 들어가기 전 혜령은 관수의 집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관수의 집은 혜령의 고등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관수의 집에 있는 동안 혜령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관수의 눈엔 날카롭고 예리한 칼이 들어 있었다. 가끔 혜령을 바라보는 관수의 눈빛에 찔리는 기분을 느꼈다. 혜령과 같은 나이의 넷째 인수의 아들 기석이 관수의 집에 함께 머물렀다. 넷째 인수의 아들 기석은 총명하고 잘생겼다. 둘째 관수는 기석에게 가장 좋은 방을 줬다. 그리고 혜령에겐 모두 지나다녀야하는 거실 같은 방을 줬다. 기숙사에 자리가 날 때까지 혜령과 넷째 인수의 아들 기석이 관수의 집에서 남인 듯 생활했다. 기석은 혜령에게 학교 가는 길에 다른 길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 누구도 기석과 혜령이 사촌임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기석은 여러 번 약속을 받았다.
혜령은 더 이상 시골집에 갈 수 없었다. 셋째 범수는 가끔 혜령에게 찾아와 책값과 용돈을 주고 갔다. 그리고 시골집에 들어와서 놀다가라 했다.
“혜령아, 전부 너 기다린다. 아빠도 매일 너 기다려. 주말에는 공부만 하지 말고
집에 와서 좀 놀고 쉬다가.”
혜령은 주말이 되면 항상 울었다. 서러워서도 외로워서도 아니였다. 그러다 셋째 범수의 계속된 요구에 용기를 내 가보기로 했다. 혜령은 자신이 살던 옥석의 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항상 다니는 길이었지만 오늘 만은 매우 멀게 느껴졌다.
‘정말 날 기다릴까? 괜찮을까? 엄마가 오지 말랬는데.. .’
옥석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혜령은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마침 셋째 범수가 집에 없었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혜령이 옥석의 집 대문 앞에 서자 마당에 풀을 뽑던 한길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재수 없으려니까.”
혜령을 발견한 범수의 아내 한길엄마가 뽑던 풀을 패대기치고 혜령의 앞으로 다가온다.
“야, 안경 벗어.”
그 말에 혜령이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은 혜령의 얼굴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은 한길 어멈의 세찬 손이 얹어진다. 오랜만에 익숙한 아픔에 뺨이 얼얼하다.
“내가 너 오지 말랬지?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니 년은 항상 이렇게 사람 말을 무시해. 지 아빠랑 똑같애. 짐승같은 년 놈들. 꺼져. 꺼지라고.”
혜령을 뒤로 하고 한길 엄마가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부엌에서 바가지에 소금을 가득 담아가지고 나온다. 소금을 가득 집어 마당에 뿌리고 혜령이 닿을 거라까지 소금을 뿌린 후 바가지 안의 소금을 털어낸다.
“다신 오지 말라고. 재수 없이. 씨벌.”
갈 곳이 없어진 혜령이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혜령은 끊겨버린 버스 정류장 앉아 서럽게 울었다. 이제 막 어두워진 거리를 두리번거리다 어린 시절 친구 집이 생각나 그곳으로 걷는다.
‘친구에겐 뭐라고 하지.’
친구 집에서 자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걷는 혜령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 혜령아.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오늘만 재워 줘.”
가득 붉어진 눈과 코 주위로 물기가 가득하다. 밤새 울고 또 운 혜령은 아침이 되자 인사를 하고 나온다. 그 날 이후 사정을 모르는 셋째 범수가 혜령에게 전화를 계속 걸었고, 집에 오라고 끊임없이 화내 듯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딸 보고 싶다고 오라했는데. 넌 왜 한번도 집에 오질 않냐. 공부에 바빠도 가끔은 얼굴을 비춰야지. 아빠가 딸 키웠는데 너무 서운하다.”
혜령이 갔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범수는 혜령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올 것인지 묻고 또 물어 다짐을 받았다. 혜령은 한길엄마의 이야기를 할 수 없어 힘없이 대답만 네네 하고 끊었다.
“이번 주엔 꼭 와라. 아빠가 기다릴 거야.”
그러나 언제나 혜령을 맞이한 것은 산돌을 미워하는 셋째 범수의 아내 한길 엄마와 둘째 관수부인, 그리고 넷째 인수의 부인이었다. 셋은 입을 맞춰 혜령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범수에게 말했다.
“걔가 원래 자라면서도 누구 말 듣던 가요?”
둘째 관수의 부인이 범수에게 말했다.
“맞아요. 걔가 원래 대답만 하고 뭘 안 하는 애 였잖아요. 너무 서운해 하지 마셔요. 진짜 딸도 아닌데. 어쩔 수 없죠.”
넷째 인수의 부인이 한마디 얹는다. 혜령은 어린 시절부터 믿어온 하나님을 원망했다. 혜령은 하나님이 미웠다. 옥석이 미워지고, 산돌이 미워지고, 자신이 미워지고, 하나님이 미워졌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걸까.’
혜령은 이제 신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고 살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신 같은 건 나한테 관심도 없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혜령은 그렇게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거지 같이 돌아가지도 않았을 거야. 혜령은 집 대문 앞에서 쓸쓸히 뒤돌아 나왔다.’
혜령이 돌아선 옥석의 집 대문 앞에 쓸쓸히 나뭇잎이 굴러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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