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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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가족 안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상처와 갈등을 그렸다. 그 과정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가족이야기다. 상처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90% 이상의 가정에서 드러내지 않는 상처와 고통의 과정이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상처와 아픔을 가진 성인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상처와 고통을 물려준다. 자유 소설은 한 아이가 태어나 구성원 안에서 희생자가 되어 자라는 과정과 치유여정을 담았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한 곳에 묻고 모습만 성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혜령이 다가온다. 자유는 모습만 어른이 된 혜령과 함께 치유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회복과 치유를 담은 성장 소설이다. 자, 이제 혜령과 함께 자유를 향해 떠나보자. 진정한 자유가 당신과 혜령에게 찾아올 것이다.
자유
6. 붉은 성경책
6. 붉은 성경책
학교 교실 안.
교실 안 적막이 감돈다. 칠판 앞에 두 명의 여자와 남자 어른이 서 있다. 남자 어른이 자신들이 온 기관을 설명했고, 온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명의 선생님들은 성교육 전문 및 가족 성폭력 전문 상담 기관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소개한 세 명의 선생님들 중 단발머리를 한 여자 선생님이 여성과 남성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플라스틱 모형을 들고 한참 설명이 이어지자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단발머리 여자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 머리를 뒤로 올려 묶은 여자 선생님이 검정 테이프를 기계 안에 넣었다. 잠시 후 텔레비전에서 영상이 나오기 시작하고, 영상 안에는 다양한 성폭력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혜령이 영상을 보다 얼굴이 붉어진다. 영상이 끝나자 남자 선생님의 말이 이어진다.
"자 이제 눈을 감고, 영상에서 본 것 같은 일이 있었던 친구는 손을 들어보세요. 손을 들면 우리가 전부 해결해드릴 거예요. 무서워하지 말고 반드시 알려주셔야 도와드릴 수 있어요."
혜령은 책 상 아래로 내린 두 손을 꽉 쥐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펴본다. 친구들이 모두 눈을 감고 있다. 혜령이 어깨를 좁히고, 아래로 고개를 파묻듯 숙였다.
“눈을 감아요. 선생님이 볼 거예요. 눈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
손을 들면 안돼. 엄마랑 가족들이 다친다고 했어. 혜령은 몸을 으스스 떨었다.
“손 드셔도 되요. 주변에서 이런 일을 봤거나,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경우에 반드시 알려 주셔야 해요. 괜찮으니까 손 들어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는지, 교실엔 고요하고 쓸쓸한 느낌이 가득해졌다. 영상 속에 혜령과 비슷한 아이가 나왔다. 혜령은 아이가 겪은 일을 보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과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혜령은 셋째 범수의 부인인 한길 엄마 얼굴이 생각나 손을 들 수 없었다. 처음으로 혜령은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알게 됐다. 혜령은 다시 눈을 살짝 뜨고 주변을 살펴본다.
‘손을 들어도 될까. 손을 들고 난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지?’
혜령은 가족들을 배신한다는 기분이 들어 결국 손을 들지 못했다. 전 날 선생님들이 방문하기 전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요즘은 할아버지 랑도 그걸 한대. 좀 그렇지 않냐. 내가 봤어.”
“그런 일이 있대? 와.. 마친 거 아니냐? 으웩. 말도 안돼.”
누구를 향한 말이었을까. 혜령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자신을 봤을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 염소 막으로 옥석이 혜령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혜령을 뒤로 돌게 한 후 옥석이 자신 만의 의식을 치뤘다. 혜령은 그때를 떠올렸다. 그 사이 선생님들이 교실을 나갔고,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왁자지껄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집에 오는 길, 손을 들지 못한 혜령이 속상한 마음에 교회로 향한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돼. 아니. 알려야 하는 거 아닐까? 어떡하지. 나는 더러워진 걸까. 나는 죄를 지게 된 걸까.’
옥석의 집 앞 마당, 대문과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며 옥석이 대문을 쓸고 있다. 옥석은 자신을 신이 데려가든지, 사람들이 잡아가든지 둘 중 하나가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혜령이 늦어질수록 두려움이 더 깊이 들어왔다. 멀찌감치 혜령의 모습이 보이자 옥석이 빠른 걸음으로 혜령에게 다가간다. 마당 곳곳의 흙이 파여 있고, 파인 자리 하나로 혜령이 서 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오늘은 재밌었고? 왜 이렇게 늦었냐. 바로 돌아왔어야지."
“손을 들어 라고 했는데, 손을 들면 안 될 거 같아서.. 왠지 이상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요.”
“잘 했다. 잘 했어.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야. 그 놈들이 다 같이 널 속이는 거야. 니가 오늘 가족들을 지킨 거야. 정말 잘 했다. 잘 했어.”
옥석이 학교에서 벌어졌던 일을 한참 묻고서야 깊은 숨을 토해냈다. 자신을 잡으러 올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에 깊은 한숨을 내 쉬는 옥석 옆으로 파인 마당 한 곳을 혜령이 발로 비비고 있다.
“잘 했지. 할아버지. 왜인지 아무도 손드는 사람도 없고, 나만 들면 이상하잖아.”
옥석은 다시 낮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숨이 토해진 곳에 무엇인가 채울 요량이었다. 건강을 위한다는 말로 한 잔씩 마셨던 인삼주가 점차 과해졌다. 덕분에 술이 금세 떨어졌고, 이번엔 더 많은 인삼과 소주를 사서 인삼주를 만들었다. 만들다보니 꽤 맛이 그럴싸했다. 매일 여러 잔, 마음을 충분히 적셔줄 때까지 마셨다. 인삼주는 막걸리보다 진하게 취하게 했지만 다음 날 머리는 개운했다.
‘역시 인삼이 몸에 좋군.’
옥석은 본격적으로 인삼주를 담아냈고 얼큰하게 취하는 날들을 보냈다. 그 이후 옥석이 거하게 취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밖으로 내놨다. 인삼주를 먹고 나면 마음이 토해졌고, 거나하게 취하는 날이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니 년이 날 죽일라고 밥에 독을 넣었지? 내가 다 알아. 니 년이 이 시아비를 무시하니까 인사도 제대로 안 하지. 내가 니 년을 죽이고 말거다."
술이 거하게 취하면 옥석은 범수의 부인 한길 엄마에게 욕지거리를 했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을 던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옥석은 벼루와 붓은 던지지 않았다.
"낫으로 목을 베어 버릴 거다. 이리와. 이년."
다음 날 아침 옥석이 새벽 4시 기도를 드리고, 작은 유리잔에 인삼주를 따라 입에 털어넣었다. 캬. 맛 좋고. 인삼과 알콜의 냄새가 섞여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매일 때마다 마시는 인삼주는 옥석을 더욱 불안정한 사람으로 만들어갔다.ㄴ
셋째 범수가 집에 돌아와 바로 옥석의 방문 앞에 서 있다. 범수는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옥석의 방으로 향하곤 했다.
“아버지, 저 다녀왔어요. 제가 좀 들어가도 될까요?”
“그래. 그래. 들어와라.”
“아버지 오늘 애 엄마한테 소리 지르셨어요?”
“한길 애미가 그러더냐?”
셋째 범수는 옥석의 행동을 직접 보지 못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저녁에야 들어오는 범수가 옥석의 행동을 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한길 엄마로부터 낮의 일들을 전해 들었던 범수는 한길 엄마의 등쌀에 밀려 옥석에게 왔고, 어쩔 수 없이 물어야만 했다. 옥석의 주변은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덕분에 범수는 낮에 일어난 일을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그럴 일이 무에 있다고. 걱정하지 마라. 시골 삶이 팍팍해서.. 한길 애미가 힘이
든가 보다. 내가 더 잘 하마. 걱정하지 말고. 너는 니 일만 잘 하면 된다.”
“네 아버지. 쉬셔요.”
그 이후에도 범수는 여러 번 한길엄마의 부탁에 옥석 방에 들어왔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한길 엄마는 셋째 범수가 없는 한 낮이 더욱 두려워졌다.한길 엄마에게 기댈 집도, 기댈 사람도 없었다.
그 무렵, 범수는 농장의 크기를 크게 늘려갔다. 매일 엄청난 양의 병아리를 시골로 들여왔다. 일손이 부족해지자 둘째 관수의 부인과 넷째 인수와 그 식구, 막내 춘풍을 시골로 불러들였다.
‘다 같이 잘 살 수 있응게. 반드시 성공할겅게.’
셋째 범수가 시골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가족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셋째 범수가 더욱 바빠지자 집에서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것이 일과가 됐다. 옥석은 대 낮이면 인삼주에 취해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질렀고, 저녁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선비 같은 표정과 자세로 붓글씨를 썼다. 그럼에도 셋째 범수의 부인 한길엄마는 매일 정갈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옥석을 대접했다. 한길 엄마는 더 이상 옥석을 쳐다보지 않았다.
‘사람이 아닌 건 쳐다볼 필요가 없어.’
한길 엄마는 마음을 점차 닫아갔다.
“아버님, 진지 드셔요.”
옥석의 불안정한 행동들이 반복되자, 옥석과 혜령 단 둘의 식사로 바뀌었다. 한길 엄마와 한길, 운길은 다른 방에서 상을 차려 식사를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옥석이 한마디 내 던진다.
"여기에 독이 들었는지 은수저를 넣으면..."
옥석은 두려움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문이 잠겼는지 여러 번 확인하고 확인해야만 잠이 들었다. 그 즈음 춘풍은 옥석의 집에서 물건들을 챙겨 농장이 자리한 집으로 옮겼다. 춘풍이 떠난 덕에 혜령은 방이 다시 생겼다. 그때부터 혜령은 창호지 바른 문고리에 숟가락을 꼽아놓고 옥석의 방문을 막았다.
혜령에게 방이 다시 생긴 후 늦은 밤이 되면 어김없이 혜령의 방 앞에서 혜령을 불렀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옥석의 밤 두드림은 애절하게 계속 됐다.
퉁퉁. 툭툭.
“문 좀 열어봐. 이번엔 만원을 주마. 아니 2장을 줄 거야. 3장은 어떠냐. 아무 것도 안 할 테니까. 열어봐. 자냐. 자는 거 아니지?”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에 혜령이 귀를 막았다. 혜령은 교회에서 받았던 세면이 붉게 칠해진 성경책을 품에 안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질끈 감은 눈에서 물기가 흘러나와 베개를 적셨다.
‘신이 있다면 저를 지켜주세요. 엄마를 보내 주세요.’
매일 밤 사각사각 자갈을 밟는 소리,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혜령은 눈을 꼭 감고 옥석의 목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 사랑을 배우기 전 혜령은 두려움을 먼저 배웠다. 조용하고 쓸쓸한 밤 공기가 혜령 방 안을 휘감았다. 붉은 성경책이 혜령의 심장 위에서 오르내렸다.
혜령에게 방을 다시 생긴 이후, 옥석과 혜령은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됐다. 혜령은 더 이상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혜령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사람의 온기를 피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걸어 다녔다. 여자 친구들과 손을 잡고 다니지 않았고, 팔짱을 끼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불편했다.
‘사랑은 마음으로만 해야 진짜인 거야. 그 누구도 마음을 알아선 안돼.’
늦은 밤이 되면 옥석은 혜령의 방문 앞에서 애절한 소리를 냈다. 다음 날 아침엔 언제 그랬냐는 듯 옥석은 좋은 가족이 되어 있었다.
‘쉿. 비밀이야.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너 때문에 망가질 거다. 그건 다 네 책임이 될 거야. 그러니까 입 닫고, 너만 조용하면 돼.’
혜령의 비밀은 창호지를 바른 문처럼 약하게 흔들렸다. 누군가 구멍을 뚫어주길 바라면서 창호지 문 너머로 작은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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