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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픽션
입니다. ​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본 작품은 저작권이 있습니다.
무단 도용시 법적조치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프롤로그   가족 안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상처와 갈등을 그렸다. 그 과정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가족이야기다. 상처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90% 이상의 가정에서 드러내지 않는 상처와 고통의 과정이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상처와 아픔을 가진 성인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상처와 고통을 물려준다. 자유 소설은 한 아이가 태어나 구성원 안에서 희생자가 되어 자라는 과정과 치유여정을 담았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한 곳에 묻고 모습만 성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혜령이 다가온다. 자유는 모습만 어른이 된 혜령과 함께 치유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회복과 치유를 담은 성장 소설이다.   자, 이제 혜령과 함께 자유를 향해 떠나보자. 진정한 자유가 당신과 혜령에게 찾아올 것이다.

자유

 

4. 비가 오던 날

 

 

4. 비가 오던 날

 

옥석은 바로 보이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시로 나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얼마를 건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비가 부슬 부슬 내려 옥석의 옷을 가득 적셨고, 다리가 후들거려 걸음이 불규칙했다. 옥석의 이마에 비와 땀이 섞여 구슬들이 가득 맺혔다. 비가 온 덕분에 병원 앞은 한산했다. 몇 층 몇 호실이라고 했더라. 그제야 옥석은 여인이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 젊은 여자 한명 죽어 간다고..”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관계는요?”

 

이름은...”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아, 하얀 병실 문 앞에 옥석이 한참 서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비에 젓은 옷과 구두가 축축했다. 문을 열고 나오는 범수와 얼굴을 마주한다.

 

아버지 오셨어요. 안에 들어가 보셔요.”

 

범수가 연 문 안으로 여인이 보인다. 하얀 이불처럼 여인의 얼굴이 하얗다. 여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옥석은 종일 치성을 드렸다. 새벽 4시 기도만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발 데려가지 말아주소. 인화를 잃은 후 여인을 위한 기도는 두 번째였다. 지난 번 정성이 부족했으니 이번엔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통하지 않았다. 여인에 대한 기도는 신도 들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성을 들여 빌고 또 빌었지만 소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비가 연일 세차게 내렸다. 여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기도로 매일을 보냈다. 그러다 여인의 마지막 날이 되자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었다. 옥석은 데려가소.’ 기도 응답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시간들이 천천히 흘러가고 눈 앞에 여인의 빛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여인의 가녀린 팔이 보인다.

아가 어쩌다 이렇게..”

여인을 살리기 위해 산돌은 그렇게도 돌아 다녔다. 백방 알아보고 다니다 양귀비 꽃이 효험이 있다는 말에 죽으로 만들어 먹였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여인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고 했다. 말라죽는 식물처럼 조금씩 생명 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옥석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여신. 그의 사랑. 그의 열망이었던 여인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옥석은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한참 허공을 바라보던 옥석이 입술을 꽉 베어 문다.

 

나 때문에 죽은 그 놈들이 복수를 하고 있는 게지.’

 

옥석은 애꿎은 나무 잎만 가득 쥐어뜯는다. 닿을 수 없어 간절했던 그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간다. 연정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손 안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다시 돌아간 병실에서 눈을 겨우 뜨고 있는 여인을 모두가 바라보고 있다. 옥석은 여인의 얼굴이 보이는 곳에 멀찌감치 서 서 산돌이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본다.

 

장례식장.

 

왜 그렇게 됐대요?”

 

둘째 관수 부인이 셋째 범수에게 묻는다. 옥석은 근처에 앉아 밥을 한술 뜨다 말고 귀를 기울인다.

 

형님이랑 자주 싸웠대나 봐요. 형님 아기라고 뭔 남자아이를 여자가 데려 왔는데. 그것 때문에 싸우고. 그 여자가 매일 같이 형수님을 찾아왔대요. 형님이 돈을 좀 벌기 시작하니까. 그런 여자들이 생겨 난 게지요.”

 

그래서요?”

 

둘째 관수 부인의 눈이 반짝인다.

 

그러다가 아니라고, 아니라고 형님이 이야기해도 날마다 그 여자가 찾아와서 괴롭히니까.. 형수님이 사실대로 말하라고 형님 앞에서 약을 먹어버린다고. 그랬었나보더라고요. 또 데려온 애가 남자애였는데. 어째 형님을 좀 닮기도 했고. 형님이 또 아들 낳을라고 그렇게 형수님을 볶기도 했던 때고요. 그때 형님이 포도밭을 하고 있었지요. 지금은 팔아버렸고. 그 포도 농약할라고 놔둔 제초제를 한 모금 먹었다나 봐요. 형님 앞에서 보여 줄라고만. 그게 이렇게 된 거지라.”

 

아이고.”

 

운이 없을랑게. 그런거지요.”

 

아이고. 하필..”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듣던 옥석이 여인이 죽은 이유를 듣고 얼굴이 붉게 끓는다. 들고 있던 숟가락을 던진 옥석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그 날부터 옥석은 산돌을 세상 누구보다 미워하게 됐다. 여인은 그녀를 대신할 두 아이를 남겨두고 떠났다. 고왔던 여인은 한 줌의 재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옥석의 마음도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여인이 떠나고 난 후 산돌은 관광버스 사업을 한다며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아이 둘을 맡길 곳이 없어 아이들은 친척 집을 전전했다. 그러다 아이들은 결국 고아원에 맡겨졌다. 셋째 범수를 통해 옥석은 아이들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아이들을 어찌해야할지 고민하던 차에 어느 날 셋째 범수가 자신의 부인이라며 여자를 데려왔다. 여인보다는 덜 했지만 고운 얼굴의 아이였다. 범수는 옥석을 모시겠다며 고운 아이와 시골로 완전히 들어왔다. 고운 아이의 표정이 그리 밝진 않았지만 옥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도 힘들테지.. 그래. 이곳에 누가 옆에 있든 그게 무어라고.’

붉은 사과를 볼 때마다 여인이 생각났고, 여인에게 주기 위해 심었던 어린 사과 나무를 옥석은 도끼로 베어버렸다. 여인이 떠난 후, 옥석이 사과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산돌이 올 때다 사과를 한 박스씩 사왔다. 붉고 예쁜 사과만큼 산돌이 미운 옥석은 사과들을 텃밭에 거름으로 줬다.

옥석의 집에 식구가 생긴 후 고운 아이는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를 임신한 고운 아이는 옥석에게 이번이 두 번째 임신이라고 했다. 첫 아이를 도시에서 영양실조로 조산했고, 아이를 남모르게 묻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옥석은 그제야 고운 아이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보였다.

10개월 후 셋째 범수의 부인은 순탄하게 아이를 낳았다. 건강한 사내아이였고, 아이가 태어나자 옥석은 고운 아이를 한길 에미라고 불렀다. ​한길이가 태어나자 집안이 아이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덕분에 집은 더 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아이의 분유를 사들고 셋째 범수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옥석의 방으로 범수가 들어왔다.

 

아버지, 저 다녀왔서라.”

 

"그래, 그나 산돌이 놈 애들은 어디로 갔다냐. 고아원에 있능가. 지 외할미 집에

갔능가. 알아는 봤냐.“

 

아이들 소식을 한참 듣지 못해 옥석의 애가 닳고 있었다. 셋째 범수는 한참 뜸을 들였다.

"고아원에 있다가 입양 되려는 걸 겨우 설득해서 막았다나 봐요.. 아버지, 애들 중 하나를 제가 키우기로 했어요. 그 애들 중 하나를 다음 주에나 데려오려고요."

그래.. 잘 했다. 산돌이가 새 장가 가기 전에 잠깐 맡아 키워도 좋지. 그나저나 한길 애미는 알고 있고?”

 

애를 데려와서 이야기 하려고요.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할 거 같고. 애를 보면 또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라 그러마 할 겁니다.”

산돌이의 관광버스 업은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일하는 것이 어려웠던 산돌은 외갓집에 아이들을 맡겼다. 그러나 아이들을 볼 때면 죽은 딸이 생각난 장모는 아이를 산돌에게 돌려보냈다. 산돌이 여러 곳에 아이들을 맡기는 일을 반복하다 결국 고아원에 아이들을 보냈다. 그러다, 혜령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주민등록 번호가 필요하게 된 산돌이 범수에게 전화를 건다. 산돌은 혜령이와 둘째 경희 중 한명 만이라도 키워주면 범수가 하려고 하는 사업에 돈을 투자하기로 약속한다. 범수는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드디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산돌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둘 다 키우기로 했고?"

"아니요. 첫째는 형이 키우기로 하고 호적만 제 앞으로 해 놨어요.​ 아무래도 홀아비 앞으로 올라가는 것 보다 부모 이름 둘 있는 곳이 낫겠다 생각했겠지요. 일단은 혜령이가 학교에 가야하니까 혜령이를 올려놓고, 둘째 경희를 키우기로 했어요. 형도 곧 새장가 갈 거 같고요. 둘째 경희가 아직 어리니까.. 데려오면 한길 엄마를 엄마로 알고 클 겁니다. 아직 3살 겨우 넘었으니까요.”

그래, 잘 했다. 형제끼리 돕고 살아야지. 그래. 그래. 니가 사람이 된 놈이다.”

 

범수는 옥석의 말에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칭찬에 박한 옥석도 이 날만큼은 범수에게 칭찬을 가득 해 줬다.

 

700만원과 산돌의 둘째 경희가 옥석의 집으로 왔다. 부엌에서 일을 하다, 셋째 범수를 마당으로 마중 나온 한길 엄마가 아장 아장 걸어 들어오는 둘째 경희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범수와 옥석을 번갈아 쳐다봤다. 한길엄마와 눈이 마주친 범수가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여기서 키울라고.”

 

?”

 

아버지랑 형님이랑 이미 다 말 끝냈고, 그냥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돼.”

 

이제 막 걷기 시작한 한길이 방문으로 빼꼼 내다본다. 한길 엄마의 얼굴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하게요.”

 

어야. 한길 애미야, 둘째만이라도 니가 잘 키워주렴. 얼마나 불쌍하냐. 네가 안 키워주면 입양 가야하고 남의 집에 종살이 보내는 거야.”

 

한길 엄마는 표정을 가득 굳힌 채 범수와 방으로 들어간다. 옥석의 방으로 한참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옥석은 그러다 말겠거니 하고 웃음을 짓는다. 옥석의 방에 들어와 앉아있는 둘째 아이 경희를 옥석이 가만히 바라본다. 둘째 경희는 붙임성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옥석을 보면 항상 뛰어와 안기던 혜령이 생각나 옥석은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이쁜 구석이래야 하나도 없구만. 도대체 귀여운 구석이라곤 쯧쯧.​ 왜 첫째가 아니고.’

 

옥석은 여인과 인화를 닮은 혜령이 보고 싶어졌다. 둘째 경희는 곧 잘 어두운 곳에 숨어 찾기 어려웠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아 아이가 있는 곳을 알기 어려웠다. 겨우 찾아내도 어김없이 다음 날이면 다른 곳을 찾아 숨었다. 산돌을 찾아 아이는 매일같이 울었고, 옥석은 경희의 행동들이 피곤했다. 결국 옥석이 범수를 불렀다.

혜령이를 데려와서 여기서 학교를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 아무래도 호적도 니 앞으로 있고, 둘째는 아직 사랑이 필요한 나이니까. 아빠가 키우는 게 낫지 싶다. 산돌이가 재혼할 여자를 찾았다지. 그 여자 밑에 있으면 아빠도 자주 보고 성격도 지금보다 밝아지지 않겠니."

형한테 전화 해 볼게요. 아버지.”

 

혜령이 오는 날, 옥석은 누구보다 그 날을 기다렸다는 듯 혜령을 맞이한다. 옥석은 여인과 인화가 오는듯한 느낌이 들어 밤새 뒤척였다.

 

오이구. 오구. 왔냐. 할애비가 보고 싶었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폭 안기는 혜령이 그렇게도 귀여울 수 없다. 옥석은 혜령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돌봐주겠다 다짐했다. 혜령이 오던 날, 옥석은 마당에 다시 사과나무를 심었다.

"몇 년만 지나면 저 놈이 사과를 열거다. 그러면 네게 제일 먼저 주지. "

옥석의 입가가 올라갔다. 사과나무 위로 단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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