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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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25. 안녕, 자유야
엄마 목사님을 만나는 날, 혜령이 엄마 목사님이 좋아하는 커피숍에 미리 와서 앉아있다. 주변을 둘러보다 일어난 혜령이 따뜻한 커피 한잔을 시켜 푹신한 쇼파를 골라 다시 앉았다. 멀리서 엄마 목사님이 걸어온다.
“딸, 오늘은 아이스 아니네?”
“네, 엄마. 이제 따뜻한 거 먹어요. 따뜻한 게, 속도 따뜻하게 해 주고 좋더라구요.”
“그래, 엄마는 네가 항상 차가운 얼음만 먹어서 걱정됐는데, 반가운 소식이네. 요즘은 어찌 지냈고?”
“잘 지냈죠. 엄마는요?”
“엄마는 항상 같지.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들어주고, 기도해주고.”
“엄마, 저 요즘 정말 살맛나요.”
“대학원 갔다고 했지? 요즘 대학원 공부는 어때? 법학이랑 또 다를라나?”
“다르긴 한데, 재밌어요. 사람들도 좋고.”
“거기 있는 남편이 좋은 거 아니고?”
“남편은 매일 집에서 보는 데요 뭘.”
“딸, 요즘은 무슨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니?”
“요즘.. 저.. 용서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용서?”
“네, 예전엔 사람들이 용서하라고 하거나, 용서 이야기만 들어도 화가 났거든요.”
“음..”
“근데.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마음이 좀 달라졌어요.”
“그래?”
“옛날에는 그리 아픈 말이었는데, 이제 알게 됐어요. 용서라는 게 타인을 위한 게 아니구나. 용서는 나를 위해 하는 거구나. 용서하지 못하는 동안 저 많이 아팠잖아요. 몸도 마음도. 생각해보니까 용서 안 하면 나만 아프더라구요. 뼈가 녹고, 혈관이 터지고, 위장 다 상하고. 근데 용서 빌어야할 놈들은 하나같이 건강하고 잘 지내는 거에요. 용서를 하나 안 하나 상관없이.”
“용서라는 게 그렇지. 안 하면 나만 아픈 거니까.. 딸이 많이 성장했구나.”
“얼마 전에 한길 엄마가 오셨어요. 집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집 앞에 오셔서 초인종을 눌러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랬어? 그래서?”
“일단, 문을 열어서 안으로 들어오게 했죠. 그리고는.. 얼마나 우시던지..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이미 많이 지나선지, 아니면 용서를 이미 했어선지 몰라도 아무 감정이 안 들더라구요.”
“그 이야기 하려고 오진 않았을 거 같은데.”
“엄마, 참 정확해. 맞아요. 뭐라더라. 한길이가 결혼을 했는데, 그 부인이 결혼할 때부터 이혼녀였다나 봐요. 그 사실 알기 전까진 그렇게 잘 하더니. 누가 와서 그 여자가 이혼녀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미주알고주알 알려주고 갔다나 봐요. 원래 남 이야기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걸 알고 한길 엄마가 속이 상해서 결혼을 반대했대요. 그리고 여자 분이 갑자기 애가 생겼다고 하더니, 갑자기 일주일 만에 유산됐다고 울고불고 했대요. 그래서 한길이가 집을 나가서 따로 살림을 차리고.. 결국 결혼시키고..”
“그래가지고.. 지금은 잘 지낸대?”
“결혼하자마자 여자애가 집에 발을 뚝 끊었대요. 그렇게 잘하던 애가 결혼할 때 반대했다는 걸로 상처 받아서 유산도 됐고 했다고 인연을 끊자고 했다나 봐요. 한길이도 그렇고. 재밌죠. 결혼식까지는 다 불러놓고..”
“아이고. 그랬구나. 그래서?”
“그리고 나서 한참 후에 여자애가 남자가 생겼는지 돈 다 들고, 집 팔고 나갔대요. 한길이가 집에 와서 술만 먹고 있나 봐요. 회사도 안 가고.. 그래서 남편한테 상담이랑 부탁하려고 왔다고 하더라구요. 울고불고..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아이고.. 어쩌다 그랬대.”
“그러니까요. 그 날 한길 엄마가 오셔서 저한테 미안했다고. 자기가 죄가 있어서 그런 거 같다고 그러시는데.. 마음이 아프기만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용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용서라는 게 누가 용서를 빌든 빌지 않든 할 수 있는 거구나. 용서를 하면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내 마음을 지킬 수 있구나. 그런 것들을 알게 됐어요.”
“그래도 엄마가 와서 미안하다고 해줘서 나는 고맙네..”
“뭐랄까. 미안하다는 말보다 엄마가 우시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엄마도 목회하다보니까 용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더구나. 아무래도 상처 받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그러면서 엄마가 알게 된 건, 용서라는 게 누가 용서하라고 한다고 해서 해 지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엄마는 상처 받은 사람들한테 용서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어. 그게 또 상처가 되니까. 아물고 아물도록 들어주고, 또 들어주다보면 게워내다가 결국은 자신을 위해 용서할 수 있게 되니까.”
“맞아요. 엄마. 용서는 정말.. 타인이 강요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또 다른 폭력이 되니까요. 그래서 스스로 용서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게 내가 나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 딸이 더 성장해서 엄마가 참 기쁘다.”
“용서 안 하면 결국 손해는 나만 보는 거니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미워하던 게 참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미운 놈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만 그리 아팠으니.. 왠지 손해 봤다는 기분이 이제 들더라구요.”
“나중에 혜령이 네가 상처 받은 사람들 만나면 정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경험들로 하나님이 주신 거야. 엄마는 딸이 다 회복해서 참 기뻐.”
따뜻한 커피와 따뜻한 말들이 오가는 카페에 푸근함이 감돈다. 혜령과 엄마 목사님이 만나 그동안 풀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가득 풀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저녁 혜령의 집, 퇴근한 연후가 겉옷을 서재 옷걸이에 걸면서 혜령을 돌아본다.
“여보, 오늘은 어땠어? 엄마 목사님 만난다고 했었지?”
“네, 오늘 잘 만나고 왔어요. 엄마는 여전히 유쾌하고 예쁘셔요.”
“혜령씨는 참 혜령씨를 닮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 그래서 항상 기분이 좋아요. 밥은 먹었고요?”
“연후씨랑 먹으려고 기다렸어요.”
“그럼, 우리 빨리 밥부터 먹읍시다. 아, 그리고 한길씨 친구한테 연결해 줬어요. 요즘 술 안 마시고, 회사 잘 다니고 있다고 고맙다고 어머님께서 전화 주셨어요.”
“다행이네요. 아이구. 한길이.. 정말 행복해져야 할텐데.. 한길이도 어릴 때 집에서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니었을 거예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직접 겪지 않았어도,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마음에 상처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한길씨가 그 분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고요. 이번 기회에 상처를 돌아보고 회복하는 시간 잘 보내고 나면 행복한 선택들만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래요. 그럴 거예요.”
“이제 우리 더 늦기 전에 밥부터 먹읍시다.”
연후와 혜령이 부엌에 들어가 앉는다. 연후가 가장 좋아하는 계란찜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몇 개월 후 이른 아침, 혜령이 화장실 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두 줄이 그어진 막대기를 들고 연후를 찾는다.
“연후씨, 연후씨, 빨리 와 봐요.”
“지금 가요. 무슨 일 있어요?”
서재에 있다 혜령의 목소리를 듣고 연후가 다급하게 뛰어온다.
“이거 봐요. 이거.”
하얀 막대기를 본 연후의 입술이 양껏 끌어올려진다. 연후가 혜령을 와락 끌어안는다.
“고마워요. 고마워. 오늘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학교에서 강의 끝나면 바로 달려올게요. 뭐 먹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응, 알았어요.”
혜령이 오른 손을 아랫배에 올리고 미소를 짓는다.
“혜령씨, 아기 태명은 뭐라고 지을 거예요?”
“아.. 자유요. 자유.”
“자유요?”
“네, 너무 예쁘죠.”
“혹시. 이름도 자유로 할 건 아니죠?”
“왜요?”
“그러면.. 정.. 음.. 자.. 아. 그러니까. 이름은 우리 다른 걸로 해요.”
“이름은 어머니께서 결혼한 날부터 지어놓고 계세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연후가 출근한 후, 혜령이 연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어머니, 어머니, 제가 아이가 생겼어요. 방금 확인했는데 두 줄 나오네요.”
“뭐? 그래? 너무 잘했어. 대견해. 고마워. 고마워. 혜령아. 엄마랑 오후에 병원 같이 가자. 혜령이 너랑 아기 모두 건강하려면 병원에 일찍부터 다녀야해. 집에 있어 엄마가 자동차 끌고 거기로 갈게. 엄마가 이름은 이미 정했어.”
“알아요. 안 그래도 연후씨에게 말했어요.”
“그래, 그래 우리 금방 보자.”
전화를 끊은 혜령이 배를 두손으로 감싸 안는다.
‘‘내게 와 줬구나. 고마워. 고마워. 엄마가 너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줄게. 아가야. 우리 행복한 일 가득 만들자. 너랑 나랑 아빠랑 셋이서 정말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사랑해. 안녕, 자유야.’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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