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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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가족 안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상처와 갈등을 그렸다. 그 과정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가족이야기다. 상처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90% 이상의 가정에서 드러내지 않는 상처와 고통의 과정이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상처와 아픔을 가진 성인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상처와 고통을 물려준다. 자유 소설은 한 아이가 태어나 구성원 안에서 희생자가 되어 자라는 과정과 치유여정을 담았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한 곳에 묻고 모습만 성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혜령이 다가온다. 자유는 모습만 어른이 된 혜령과 함께 치유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회복과 치유를 담은 성장 소설이다. 자, 이제 혜령과 함께 자유를 향해 떠나보자. 진정한 자유가 당신과 혜령에게 찾아올 것이다.
자유
자유
24. 문을 열다
24. 문을 열다
따뜻한 오후, 연후의 교수실 안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가운데 놓인 동그란 테이블에 혜령이 앉아있다. 헤이즐넛 향을 풍기며 한참 커피를 내리던 연후가 옴팍하게 낮아 금테가 둘러진 잔에 커피를 담아 혜령 앞에 놓는다.
“음.. 향이 너무 좋네요.”
“이거 며칠 전에 친구 놈이 외국 갔다 왔다면서 사온 커피에요. 향기가 아주 진하고 좋은게.. 혜령씨가 생각났어요. 마셔봐요. 커피 좋아하잖아요. 오늘은 아이스 말고 따뜻한 걸로 먹어요.”
혜령이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으로 넘긴다. 커피의 향기와 따뜻함에 혜령의 얼굴에 평온함이 떠오른다.
“혜령씨, 이번 주에 저희 부모님이 혜령씨 보고 싶다는데. 부담되겠지만 만나줄 수 있나요? 부모님이 혜령씨 정말 보고 싶어 해요. 우리가 이제 만난 지 1년도 넘어가고요..”
“아... 제가 보여드릴 게 없어서.. 나중에 뭔가 되고 나서.. 뵙고 싶어요.”
혜령의 난처한 표정에 연후가 유리 주전자를 들고 와서 벌써 비어버린 혜령의 잔을 가득 채운다.
“저희 부모님, 정말 좋으신 분들이세요. 연애 결혼하셨는데 지금도 얼마나 사이가 좋으시다고요. 제가 자주 혜령씨 이야기해서 그런지 너무 궁금해 하세요. 제가 이제 나이도 있고.. 그래서 더 걱정이 많으신가 봐요.”
“아.. 연후씨가 괜찮으면.. 저도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연후의 간절한 표정을 본 혜령이 말을 했다. 혜령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작은 걸 눈치 챈 연후가 바로 말을 잇는다.
“그러면, 말 나온 김에 이번 주 주말에 같이 밥 먹는 건 어때요? 어머니께서 집에서 밥 해주고 싶다고 오라고 하시네요.”
“아.. 네. 좋아요.”
혜령은 연후의 말에 여러 번 망설였다. 그럼에도 혜령도 연후의 부모님과 연후가 자란 곳이 궁금했다. 커피의 뜨거움이 말랑말랑해진 마음에 두근거림을 더한다.
주말, 복숭아 빛 원피스를 입은 혜령이 연후의 집 앞에 서 있다. 처음 와본 연후의 집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혜령이 기가 죽어 벨을 누르지 못하고 등을 돌려 앞에 서 있다. 그럴 걸 알았는지 시간 맞춰 연후가 대문 앞으로 나와 문을 연다.
“혜령씨, 들어와요. 부모님 모두 기다리고 계세요. 혜령씨 이렇게 서 있을 걸 알고 제가 마중 나왔어요. 잘 했죠.”
연후의 장난기 어린 표정에 혜령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떠오른다.
철컥. 대문이 열리고 혜령이 안으로 들어간다. 문 앞에 점잖아 보이는 나이든 남자와 여자가 서 있다. 여자의 옷차림에서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이 묻어난다. 혜령이 여자를 보고, 입고 온 옷차림을 다시 확인한다. 여자가 혜령에게 말을 건넨다.
“왔어요. 혜령씨. 그동안 얼마나 궁금하고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혜령은 연후가 미리 일러준 대로 프리지아와 안개꽃이 가득한 꽃다발을 들고 왔다. 혜령이 들고 온 꽃다발을 연후 어머니에게 안겨준다.
“아.. 프리지아네요. 내가 이 꽃 정말 좋아하는데. 어찌 알고 사왔어요? 센스가 좋네요. 음.. 향기 좋다. 들어와요. 불편하겠지만 내 집이다 생각하고 들어와요. 식사 준비했는데, 우리 먼저 밥부터 먹어요. ”
연후의 어머니가 혜령의 손을 잡는다. 주방으로 들어가자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식탁에 차려져있다.
“이 녀석이 장가를 가라가라 해도.. 글쎄.. 마흔 훌쩍 넘긴지가 언젠데.. 늦게까지 안 가서 속 썩이더니.. 혜령씨 만나려고 그랬나 봐요. 이거 먹어봐요. 원래 평소에 음식 해 주시는 분이 계신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제가 했어요. 맛이 좀 덜 해도 영양가는 좋으니 많이 먹어요.”
금테가 둘러진 고급 식기 위에 음식들이 정갈하게 담아져있다. 혜령이 조심스럽게 음식을 집어 밥 그릇 위에 놓는다.
“혜령씨,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제가 오늘 부른 건 혜령씨에게 상의할 게 있어서예요. 연후가 이제 나이가 마흔 중반인데 아직도 결혼을 안 하고 있으니 고민이 이만 저만 한 게 아니에요. 혜령씨도 연후랑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에 불렀는데 괜찮죠?”
혜령의 얼굴이 당혹감에 붉어진다.
“네..?”
“제가 성격이 급해서 그래요. 오늘 처음 만났는데 놀랐죠? 평소에 혜령씨 이야기 연후 통해서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만난 게 처음 같지 않아.. 너무 급했네요. 음.. 연후 이야기 들어보니까 혜령씨가 성실하고 좋은 아가씨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런데.. 결혼식을 올해 가을에는 했으면 좋겠는데.. 어때요? 혜령씨 사정 들어서 알고 있어서.. 결혼식은 따로 양가 부모님 부르지 말고 작은 교회에서 간단하게 식 올리고, 저랑 연후 아빠랑, 연후, 혜령씨랑 같이 한달 간 여러 나라 여행 다녀오는 걸로 했으면 하는데.. ”
“아.. 네..”
부모님 자리를 채울 수 없는 혜령을 배려해 연후 어머니는 간단하게 결혼식을 치르자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던 혜령이 고마움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다.
“요즘 누가 결혼식을 으리으리하게 하나요. 요즘은 결혼식 누가 한다고 해도 부르면 반가워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가볍게 하고, 같이 여행가서 중간에 이탈리아에서 헤어져요. 거기부터는 각자 부부끼리 여행하는 걸로 하게요. 어때요? 이번 기회에 여행도 가고 너무 좋을 거 같아. 그쵸. 여보? 친구들이야 가족끼리 조용히 식 올렸다고 하면 되니까..”
연후 어머니가 연후와 연후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본다. 연후 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연후의 입꼬리 양끝이 가득 올려져있다. 연후 어머니의 배려에 혜령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그릇에 있던 음식을 입에 넣던 혜령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그 옆으로 연후 어머니가 와서 혜령을 감싸 안는다.
“괜찮아요. 괜찮아. 이제 혜령씨 우리 가족이니까.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요. 그러니까 이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았어요.”
그 이후 혜령과 연후 어머니는 자주 만나 데이트를 했다. 연후 어머니는 혜령에게 엄마 대신이라며 같이 음악회, 뮤지컬, 미술관 등 예쁘고 좋다는 것이라면 혜령과 함께 하려고 했다. 혜령은 연후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했다.
드디어 결혼식, 작은 교회 안 복도에 혜령이 하얀 레이스가 가득한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연후씨, 빨리요. 빨리.”
멋지게 머리를 한다며 화장실에서 한참 머리를 만지던 연후가 혜령에게 뛰어온다. 예배당 문이 열리고 혜령과 연후가 안으로 들어선다. 피아노 연주 소리가 가볍게 깔리고 걷는 길 양쪽으로 꽃들이 가득 장식되어있다. 연후 어머니와 연후 아버지, 연후의 가까운 친척들과 혜령의 외가 식구들, 그리고 엄마 목사님과 등불 교수님이 양쪽으로 나눠 앉아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이어지고, 혜령의 왼쪽 손에 연후가 반지를 끼워준다.
“고마워요. 혜령씨. 이제 제가 행복한 일만 가득하게 해 드릴게요. 나한테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혜령의 눈에 눈물이 가득 채워진다. 음악과 꽃들이 가득한 길을 연후와 혜령이 걷는다.
일년 후, 이른 아침 혜령의 집 초인종이 울린다.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이지?’
혜령이 인터폰의 화면을 보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 화면 안에 셋째 범수의 아내 한길 엄마가 서 있다.
“혜령아, 나야. 나. 부탁할 게 있어서 찾아왔어. 이야기 좀 하자.”
혜령이 한참 고민하다 문을 연다. 한길 엄마가 혜령의 마당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집까지 오시고. 무슨 일 있으세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자. 내가.. 너무 힘들어서.. 너 찾아왔어.”
눈물을 가득 쏟아낼 듯한 표정으로 한길 엄마가 혜령을 바라본다.
“네.. 여기로 오세요.”
혜령이 거실에 놓인 식탁 앞에 방석을 깔고 한길 엄마를 앉게 한다.
“여기 앉으세요.”
“그래. 고맙다. 고마워.”
한참, 혜령이 내어놓은 커피를 마시다 한길 엄마가 입을 연다.
“내가.. 너무.. 힘들어가지고.. 너를 찾아왔어. 부탁할 사람이 너 밖에 안 떠오르더라.. 내가 미안한 게 많은 것도 있고.. 사과도 하면서.. 부탁도 할라고.. 흑..흑..”
한길 엄마가 울기 시작한다. 놀란 표정의 혜령이 한길 엄마 앞으로 앉는다.
“한길이가 요즘 매일 술만 마셔. 너 마지막으로 집에 왔다가고.. 한길이한테 여자가 생겼거든.. 근데. 그 여자애가 처음엔 그렇게 잘했어.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한번 갔다 왔던 거야. 혼인 신고가 됐고, 이혼한 게 분명한데.. 남자가 마음대로 신고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그리 울더라.. 그래서 그거 듣고 내가 반대를 좀 했어. 한길이는 초혼이잖아. 내 아들인데 이혼한 여자한테 보내기가 영 그렇더라고.. 그랬더니.. 한길이가 집 나가고 자기들끼리 살기 시작하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했지. 결혼하고 나서는 여자애가 우리 집에 발을 뚝 끊었어. 한길이도 그렇고.. 아들 하나 잃어 버린거지.. 근데.. 그 여자애가.. 최근에 뭔 놈이랑 눈이 맞았는지.. 한길이 돈 다 들고, 집도 마음대로 팔고 나간거야.. 우리 한길이 어쩌냐.. 흐흐흑흑흑.. 취업하고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흐흐흐흑흑흑..”
한길 엄마가 한참 운다. 혜령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한길 엄마 앞에 앉아있다.
“내가 이 이야길 어디 가서 하냐. 동네 챙피해서.. 그 년이 바람나가지고 서방 버리고, 재산 다 들고 날랐다고 어디 가서 말해. 눈물이 너무 나서..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넘어가고.. 염치 불구하고 너 집 물어 물어 온거야. 그동안 내가 너한테 그리 나쁘게 했던 게 다 돌아온 가벼.. 미안해. 미안하다. 나도 너무 어렸고 나만 생각하느라.. 내가 너를 혼자 크게 했어.. 미안해.. 내가 그리 못 되게 하고.. 너한테 내가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흑흑흑.. 내 죄가 커서.. 이렇게 벌을 받는 게 벼.. 미안하다... 흑.. 흑.. 으억..”
한길 엄마가 눈물을 펑펑 쏟아낸다. 혜령이 각 티슈를 한길 엄마 앞에 놓는다. 한길 엄마가 티슈를 코에 대고 흥흥 풀어댄다.
“들어보니까. 너 남편이 정신과 의사라며. 뭐 심리상담도 한다고 하드만. 그거 듣고.. 내가 너한테 부탁할라고.. 왔어.. 한길이가 저러다가 큰 일 날까봐.. 너무 무섭고.. 어찌할지를 모르겠어서.. 혜령이 네가 정서방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안 될까? 내가 염치 없지만 부탁할 사람이 너 밖에 없어서 그래..”
“아... 저녁에 남편 오면 물어볼게요.. 한길이가.. 안타깝게 됐네요.”
“내가 정말 미안해. 혜령아. 정말 미안해.. 우리 한길이 좀 살려주라..”
한참 울던 한길 엄마가 기운이 다 빠졌는지 쇼파에 기대 눕는다. 잠이 든 한길 엄마를 보고 혜령이 한숨을 내쉰다. 진한 잠을 잤는지 한길 엄마가 일어나 겉 옷을 걸친다. 그리고 혜령을 바라본다.
“부탁 좀 할게. 꼭 부탁하마. 혜령아 고마워. 그리고 정말 미안했다. 미안해. 엄마 갈게. 연락 주라. 그리고 이거 얼마 안 되는데 결혼식도 했는데 가보지도 못하고 준 게 없잖아.. 그러니까 살림에 보내써..”
“아니에요. 엄마 쓰세요. 지금 집도 힘들잖아요.”
“아니.. 이건 내가 꼭 주고 싶어서 그래.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할 거 같고. 나 간다.”
현관을 나서는 한길 엄마의 뒷 모습을 보고 혜령이 한참 생각에 잠긴다. 늦은 저녁, 피곤한 표정의 연후가 대문을 들어선다. 혜령이 대문 앞에 나가 연후의 가방을 든다.
“요즘 통 피곤해보이고, 쉬엄쉬엄해요.”
“논문을 좀 써야 해서. 요즘 통 정신이 없네.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요? 요즘 졸업 논문 쓴다고 여보도 바쁘죠?”
“저야 뭐, 잘 쓰고 있죠.. 그나저나 낮에 한길이 엄마 왔다 가셨어요.”
서재에서 겉옷을 벗어 걸어놓던 연후가 혜령을 돌아본다.
“그래요? 집은 어떻게 아시고 오셨대요? 무슨 일 있으시대요?”
“물어물어 오셨다나 봐요. 한길이가..”
혜령이 낮에 있었던 일을 연후에게 전한다. 한참 듣던 연후가 혜령에게 말을 잇는다.
“원래 상담을 할 때 알다시피 가족이나 친구는 직접 하지 않잖아요. 내가 능력 있는 친구한테 연결해 줄게. 그 친구가 잘 치료해 줄 거예요. 많이 힘들겠네. 한길씨나, 어머님이나.”
“고마워요. 내일 전화 드릴게요. 한길이가 많이 안 좋은 거 같은데.. 걱정되네요.”
“걱정하지 마요. 괜찮을 거예요.”
주방 식탁에 앉아 혜령이 페퍼민트 차를 마시고 있다. 혜령의 복잡한 마음을 페퍼민트차가 가볍게 눌러준다.
‘그래, 남이라도 이 정도는 도와줄 수 있으니까. 이건 가족이라서가 아니니까. 하나님, 한길이를 지켜주세요.’
밤이 깊어가고, 혜령의 뒤로 연후가 와서 감싸 안는다.
“여보, 괜찮아요. 내가 있잖아. 그러니까 걱정 말고 들어가 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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