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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본 작품은 저작권이 있습니다.
무단 도용시 법적조치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프롤로그   

가족 안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상처와 갈등을 그렸다. 그 과정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가족이야기다. 상처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90% 이상의 가정에서 드러내지 않는 상처와 고통의 과정이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상처와 아픔을 가진 성인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상처와 고통을 물려준다. 자유 소설은 한 아이가 태어나 구성원 안에서 희생자가 되어 자라는 과정과 치유여정을 담았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한 곳에 묻고 모습만 성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혜령이 다가온다. 자유는 모습만 어른이 된 혜령과 함께 치유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회복과 치유를 담은 성장 소설이다. 자, 이제 혜령과 함께 자유를 향해 떠나보자. 진정한 자유가 당신과 혜령에게 찾아올 것이다.




자유

 

22. 감옥, 해방


22. 감옥, 해방

 

혜령은 매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려움과 걱정이 불면의 밤을 만들었고, 오랫동안 지속된 밤들이 혜령을 심연으로 데려갔다.

 

하나님 너무 고통스러워요. 저를 데려가주세요. 주님.. 너무 힘들어요. 앞이 보이지 않아요. 하나님..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울고 또 우는 날이 계속 됐고, 덕분에 눈가가 퉁퉁 붓고, 흰자위가 붉게 물들었다. 어김없이 아침 해가 떠올랐고, 혜령이 정독실로 출발한다.

 

괜찮아. 해보자. 괜찮아.. 하나님, 오늘 힘내서 해 볼게요.’

 

저녁, 집에 돌아와 벽에 등을 대고 누운 혜령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혜령은 무에 그리 서러운지 우는 이유도 모르고 운다.

 

왜 눈물이 이렇게 나는 거야.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너무 답답해요. 갑갑해요.. 흐어억..’

 

혜령의 눈물과 탄식이 뒤 섞인 밤이 깊어갔고, 어김없이 아침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면 혜령은 또 울었다.

 

하나님 오늘은 저를 좀 찾아와 주세요. 저를 안아 주세요..’

 

울다 지쳐 잠든 새벽 갑자기 혜령의 등이 따뜻해져온다. 하얗고 노란 느낌의 빛이 혜령의 등을 감싸 안는다. 덕분에 혜령은 아주 깊은 잠을 잤다.

 

개운하다!!!으아!”

 

힘찬 목소리로 개운함을 외친 혜령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나님, 저 알았어요. 제 문제를 알았어요.. 제 우상이 변호사였군요. 변호사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했어요. 변호사만 되면 행복해지고, 인정받고,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우상화하고 있었어요. 변호사가 된대도 어제 같이 매일 운다면 직업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 그날이 마지막이겠죠.. 고맙습니다. 하나님.. 변호사 안 주셔도 괜찮아요. 하나님이 계시니까.. 당신의 옳으심을 믿어요. 그러니까 오늘도 달립니다.’

 

혜령은 등이 따뜻하게 감싸 안아진 그날부터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리고 힘차게 일어나 정독실로 향했고, 마지막을 위한 공부에 매진했다.

 

정독실 안,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정독실원 한명이 오늘도 급하게 와서 잡음을 만들어낸다.

 

뒤적 뒤적. 부스럭. 쓰으윽. 퉁퉁. 툭툭.

 

그 실원은 당연한 듯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소음을 권리인 것처럼 만들어내고 정독실 문을 박차고 나간다.

 

저 사람은 왜 올 때마다 저렇게 하는 거지? 모르는 건가?’

 

혜령이 그 실원을 따라나선다.

 

저기요.. 제가 정독실장인데요..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왜요?”

 

잠깐이면 되요.”

 

휴게실 안, 가방을 든 실원과 혜령이 마주 서 있다.

 

오실 때마다 옷도 안에서 벗으시고, 가방도 안에서 여시면서 책도 마구 놓으시고.. 책도 던지시고.. 조금 소음이 있어요.. 문도 너무 세게 열고 닫으셔서.. 조금만 줄여주실 수 있나요?”

 

그쪽은.. 그쪽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르나보죠? 소문도 안 좋던데. 사람들이 그쪽 다들 피해요.”

 

? 제가.. 시끄러웠군요. 죄송해요. 앞으로 조심할게요.”

 

사람들이 다들 그쪽 피해요.”

 

왜요? ”

 

그걸 모르니까 그쪽이 문제가 있는 거예요.”

 

알려주세요. 저는 몰랐어요.”

 

남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쓰레기 보듯 혜령을 내려다본다. 가방을 오른쪽어깨로 올려 멘 남자의 입 꼬리 한쪽이 위로 끌어올려진다.

 

소문 들어보니까.. 그 쪽이랑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왜 너 같은 거랑 대화하면서 시간을 낭비 해?”

 

남자의 더부룩하다는 손동작과 표정에 혜령의 마음이 따끔해진다.

 

? ..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화장실로 간 혜령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울린다. 다시 휴게실로 돌아간 혜령이 힘을 내서 남자에게 묻는다.

 

알려주세요. 제가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하니까요.”

 

.. ... 그쪽 사람만 만나면 전도해댄다면서요. 사람들이 싫어해.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 이야기 하고 전도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알면 안 해야지. 지금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 시간 아깝고.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해? 아이 씨발.”

 

징그러운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남자의 표정에 혜령의 눈에 물이 가득 고인다.

 

그렇군요.. 정독실 안에서 시끄럽다고 하신 거.. 고쳐볼게요. 말씀 고마워요..”

 

남자의 표정에서 승리감이 묻어난다. 혜령은 화장실에 가서 한참 운다. 어제까지 혜령은 하나님을 믿었다가 상처 받아 떠난 사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사이비 종교에서 작업이 진행 중인 사람을 만나면 득달같이 달려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달려왔던 혜령에게 오늘의 일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나님 보셨죠? 하나님을 전하는 게 소명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세요. 하나님이 해결해주세요.’

 

남자의 이야기에 눈물을 쏟아내던 혜령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듯 눈물을 닦는다.

 

어제까지 밤들이 아니었으면, 오늘 망가졌을 거야. 이 정도는 괜찮아. 어차피 인생 뭐 있어. 상관없어. 사람들이 뭐라 건.’

 

혜령은 남자의 말에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이유도 모르면서 울었던 밤들보다 오히려 가벼웠다. 숱한 눈물의 밤들이 오늘을 위한 것이었나 라는 생각에 오히려 불면의 밤들이 고마워졌다.

 

, 사람 무시하고 그래. 좋게 말해주면 덧나나. 그리고 누가 지랑 친해지고 싶댔어? 아주, 국을 사발로 들이 키고 있네. 혼자 잘났어. 정말.’

 

혜령이 겪었던 불면의 밤들이 오히려 혜령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모의고사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6월에 1차 모의고사가 진행됐고, 8월에 2차 모의고사가 진행됐다. 그리고 103차 모의고사가 진행됐다. 덕분에 혜령은 정신없이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제 정리하자. 보러만 가면 돼. 괜찮아. 변호사 그거 어차피 다 하나님 뜻이고 다 알아서 먹여 살리시겠지. 지난 밤들처럼 매일 울면 그날이 내 마지막 날인데 뭐. 가자. 괜찮아. 괜찮아.’

 

1, 마지막 변호사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산돌이 갑자기 혜령에게 전화를 건다. 과거 산돌은 폭행사건으로 시비가 붙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고, 그 때문에 혜령과 연락이 끊겼었다.

 

과거 산돌이 교도소에 들어가자 성철엄마와 범수가 혜령에게 산돌에게 가볼 것을 요청하며 수차례 연락을 해 왔다. 혜령은 공부를 핑계로 가지 않았고, 그 이후 산돌과 연락을 끊었다. 그 후, 혜령은 잠이 들면 산돌이 칼을 들고 찾아와 찌르려는 꿈을 꿨다.

 

그리고 얼마 전 산돌이 출소 소식을 셋째 범수가 전해왔다. 늦은 밤 혜령의 핸드폰이 울린다. 산돌이다. 갑자기 걸려온 산돌의 전화에 혜령이 한참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누른다.

 

, 그래. 아빠다. 아빤데. 잘 지냈냐? 아빠가 너 사랑한다. 범수한테 들었는데 너 마지막 시험이라며.”

 

술기운이 가득 묻은 산돌의 목소리에 혜령의 목소리가 떨린다.공부를 핑계로 혜령은 산돌의 숱한 요청에도 교도소에 방문하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린다. 불안한 마음에 목소리가 떨린다.

 

.. 아빠 저도.. 아빠 사랑해요.”

 

시험 잘 보고.. 날을 세서 공부해. 그러면 잘 볼 수 있어. 나도 매일 날 세서 공부하고 그래. 죽을 만큼 해야지.”

 

아빠, 저는 날 못 세요. 몸이 안 좋아서요.”

 

내일도 전화하마.”

 

제가 시험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아니 날마다 전화해.”

 

산돌은 매일 밤, 술을 거나하게 먹고 어김없이 전화를 했다. 혜령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올지도 모를 산돌이 무서웠다. 산돌은 혜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혜령의 집 근처로 찾아와 고성을 지르고 이름을 불렀다. 혜령이 사는 원룸은 주변 집들 시세에서 십여 만원은 저렴한 집이라 혜령은 이사를 가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산돌의 술주정이 심할 때면 공부를 핑계로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친구 집에 가서 몇 달 동안 살았다. 지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혜령은 산돌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마지막 시험을 이틀 앞두고 이사를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럼에도 이사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는 게 웃음이 났다.

 

산돌은 구속 재판을 받으면서, 먹지 못했던 술을 집에 돌아오자마자 들이키기 시작했다. 고성을 지르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산돌의 행동이 계속됐다.

 

그동안 챙겨드리지 못했으니까.. 전화를 받아서 안심시켜드리자..’

 

일주일 동안 시험이 진행됐고, 산돌은 매일 전화를 걸어 시험을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너 교회 다니지? 아직도 다니냐? 내가 니 엄마 교회 못가게 할 라고 그리 때렸는데. 다니더만. 결국 너도. 으크. 그 도사 놈 있잖냐. 니 엄마 죽을 거라고 했던 그 놈. 내 친구였거든. 교회 목사 아들 놈인데. 그 놈이 어느 날 갑자기 신을 받더만 돈 방석에 앉았어. 집도 으리으리해지고, 대궐 같은 집 사서... 그 집 앞으로 어찌나 줄이 길게 서던지. 만나기도 어려운 놈이 됐어. 그러더만 여자 생기면 지한테 데리고 오라더라. 친구니까 지가 봐 준다고. 그래서 내가 니 엄마랑 결혼 할라고 데리고 갔지. 그때 그 놈이 그러더만. 우리 둘이 만나면 애가 태어나는데 천명을 타고난 애가 나올 거라고. 그래서 누군가 죽어야한다고.”

 

“... .. .. 들었어요. 아빠가 자주 이야기 해 줬잖아요.”

 

, 내가 말을 하면 끊지 말고 들어. 싸가지 없이. 그러니까. 그때 그 놈이 그랬단 말이지. 나랑 니 엄마가 결혼하면 애가 태어날 건데. 그 놈이 천명을 타고난 애일 거라. 계모 밥 먹을 팔자 타고 날 거라고.. 그래. 3년 안에 니 엄마가 대신 죽을 거라고 하더라. 그 말 듣고 니 엄마가 죽을 날 받아 논 사람처럼 살았는가벼. 혼인신고 하라고 신고서 줬는데, 나중에 니 엄마 그러고 나서 농 열어보니까 그대로 있더만. 니가 엄마 죽게 한 거야. 알고 있지? 니 엄마 딱 3년 살았다. 듣고 있냐? ”

 

..”

 

그때 액땜한다고 니 이름 받아놨는데, 이름 올릴라고 면사무소 갔지. 내가. 근데. 하필 령 자가 중국 한자라서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 온다고 하고 놔뒀는데. 범수 그 놈이 지 맘대로 한자만 바꿔서 올린 거지. 이름을 그때 그 한자로만 했어도.. 니 엄마... .. .. 니가.. 니가.. 그런거야. 듣고 있냐? ? 듣고 있냐고? 대답을 해야지.”

 

“..... ”

 

혜령은 다음 날 시험을 위해 급한 눈으로 책을 훑어본다.

 

, 변호사 되면 내가 예수든 뭐든 다 믿으마. 그러니까. 열심히 해.”

 

아빠 정말요? 예수님 믿으실 거예요?”

 

그래, 니가 변호사만 되면 예수든, 부처든 뭐든 내가 믿어주마. 그니까 죽을 뚱 말뚱 해서 합격 해. 나 끊는다. 내일 시험 잘 보고. 날 세서해. 내일 또 전화 하마. 연락해서 잘 봤는지 말해주고.”

 

“.. .. ”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에 혜령의 가슴이 갑자기 희망으로 차오른다. 혜령은 바쁜 눈으로 마저 책들을 눈에 담는다.

 

마지막 시험을 보고 나온 혜령이 환하게 웃었다.

 

이제 4월까지 발표만 기다리면 되겠다.’

 

1월의 마지막 자락에 경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외갓 댁 식구들 찾고 싶은데.. 엄마가 살았던 동네 나랑 같이 가자.

 

싫은데. 너나 찾던가. 지금 와서 왜. 반가워하지도 않을 거 같은데.

 

몇 년 만에 연락을 해온 경희에게 혜령은 차갑게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일주일 후, 35년 만에 혜령을 찾을 수 있었다는 사람에게서 문자가 온다.

 

통화를 하고 싶은데.. 너무 떨리고 울다 말도 못할 것 같아서 톡으로.. 뭐라고 써야할지도.. 미안한 마음만 들고 이렇게 지금이라도 찾았다는 게 벅차고 떨리고 기쁜데.. 혜령이도 그래줄지도 무섭고.. 이모는 살면서 혜령이.. 생각 많이 하고 살았어.. 엄마랑은 나이 차이가 나서 큰 기억이 없지만 혜령이는 이모 어릴 때....... (중략) ...혜령아, 동생이 우릴 찾았거든. 정말 오랫동안 너희들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네. 정말 보고 싶다. 엄마 그렇게 되고 우리도 힘들었거든...... (중략) ..얼굴 한번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너 시간 될 때 우리 보자.

 

갑작스러운 연락, 돌아가신 엄마의 친 동생이라는 사람의 메시지에 혜령은 전화를 건다.

 

뚜뚜..

 

, 안녕하세요. 이모시라고요. 제가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요.”

 

경희가 너 로스쿨 다닌다고 해서 내가 거기 다니는 조카가 있거든.. 그래서 걔한테 물어봤어.. 너 마음이 될 때 보고 싶은데.. 잘 생각해 줘...”

 

시간을 건너 뛴 만큼 혜령과 이모의 통화가 길어졌다. 혜령의 이모는 혜숙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혜령도 자신의 이야기를 혜숙에게 한참 풀어냈다.

 

우리 자주 만나자. 이모가 엄마 대신이니까. 엄마라고 생각해.”

 

4월 마지막 주, 혜령의 시험 발표가 났다.

 

하나님의 승인이 어떻게 됐는지 보자.’

 

​「김혜령 님은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셨습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혜령은 불을 끄고 벽을 보고 눕는다.불을 끈 방에 혜령이 벽에 등을 대고 누워 자고 또 자고 밀린 잠을 자듯 혜령은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며칠 후 산돌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야 너 떨어졌다매. 나는 너 합격할지 알았다. 니가 멍청해서 떨어진거지.”

 

.. ..”

 

힘겹게 대답을 내놓은 혜령이 전화를 끊었다.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에 혜령이 몸을 동그랗게 만다. 그리고 자고 또 자는 날을 보내며 일어나지 않았다. 거의 한 달을 혜령은 불을 끈 방에 누워있었다. 거울을 볼 자신이 없었고, 아침 해를 볼 마음이 들지 않아 커튼을 걷지 않았다.

 

69,전화벨이 울린다. 힘겹게 손을 뻗어 혜령이 전화를 집어 든다. 범수의 아들 한길의 전화다.

 

누나,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OO 장례식장인데 누나 몇 시에 올 거야?”

 

? 뭐라고?”

 

할아버지 새벽에 돌아가셨어. 나 장례식장 가고 있어. 누나도 빨리 와.”

 

나 빨리 못가. 늦게 갈게. 근데 내가 가야해?”

 

다들 온대, 누나 몇 시에 오냐고 다들 물어봐.”

 

혜령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돌아가셨구나. 근데 나한테 왜 오라고 하는 거야. 올 건지부터 물어봐야하는 거 아니야?’

 

혜령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혜령은 범수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 저예요. 할아버지 돌아가셨다면서요.”

 

그래, 새벽에 그렇게 됐다네.. 산돌 형한테는 이야기하지 말고. 알았지? 또 알게 되면 난리 나니까.”

 

괜찮을까요? 아빠가 나중에 알면 화 많이 내실 건데요.”

와서 술 처먹고 장례식장 뒤집고 던지고 할 건디. 장례식을 잘 치러야하니까. 예전에 친척 할머니 돌아가신 곳에 와서 술 몽땅 먹고 다 뒤집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때 경찰도 부르고. 이번엔 조용히 잘 치러야하니까. 말하지 말렴..꼭이다. 너 언제 올 거니?”

 

저녁에 갈게요. 이번 주에 시험이 있어서 그것도 좀 봐야하고요.”

 

그래 이따 보자. 아빠는 이미 와 있다.”

 

오후가 되어가자 한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누나 언제와. 엄마랑 전부 다 장례식장에 있대. 누나 언제 오냐고. 물어보네.”

 

한길아, 지금 가고 있어.”

 

한길의 재촉에 혜령이 한숨을 내쉰다.

 

도착한 장례식장 1층에서 혜령은 전광판에 있는 옥석의 사진을 찍는다. 입관 6913, 발인 6107

 

드디어 가셨구나. .. 오래 사셨네..’

 

혜령은 옥석의 장례식 장 앞에서 그가 떠난 걸 재차 확인이라도 하듯 전광판을 보고 또 본다. 그리고 한 계단 한 계단 무게를 주며 혜령이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혜령이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옥석의 핏줄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든다.

 

이거 입어.”

 

넷째 인수의 부인이 혜령 앞으로 검은 옷을 내민다.

 

작아서 안 입어요. 살이 좀 쪘거든요.”

 

사이즈 많으니까, 맞는 걸로 입으면 되지. 넌 무슨 애가 장례식장 오면서 입술을 칠하고 와. 이걸로 좀 닦아.”

 

휴지를 가득 뜯어 넷째 인수의 부인이 혜령의 입술을 닦아댄다. 그리고 혜령에게 잡아낼 트집이 없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혜령이 자리에 앉자 인수 부인이 혜령의 정면에 앉는다.

 

이걸로 마저 닦아. 장례식 장 오면서 화장 하고 오는 건 예의가 아니야.”

 

작은엄마, 제가 사실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거 아세요? 중학교 이후로 스물 세살까지 하나님 안 계시다고 한 거. 그거 작은엄마 때문이에요. 교회 안에서는 항상 착한 천사고, 나오면 맨날 나한테 짐승 자식이다. 니 같은 게..부터 못된 말만 하셨잖아요. 작은엄마들끼리 모여서 엄청 험한 말만하고. 정말 다 죽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제가 죽고 싶었고요. 자살하면 천국 못 간다는 거 알고 죽지도 못 했어요. 하나님 안 믿었으면 저는 나쁜 사람이 됐을 거예요.”

 

내가 언제?”

 

혜령은 멀찌감치 서서 다가오지 않는 춘풍을 바라본다. 춘풍과 혜령의 눈이 마주친다.

 

저기 삼촌한테 물어보시면 되겠네요. 항상 현장에 계셨으니까.”

 

눈을 마주친 막내 춘풍이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는 사람과 무어라 대화를 나눈다.

 

여기 제가 왜 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체 왜 저한테 이런 강요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솔직히 정말 화나요.”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원래 맞은 놈만 아프죠. 오늘 너무 힘들어요. 언른 가고 싶어요. 오늘은 아빠 봐서 왔어요. 아빠는 할아버지를 정말 사랑하니까. 정말 아빠 봐서.. 할아버지 참은 거니까. 할아버지 사건 13세 미만 범죄라 공소시효 없는 거 아시죠? 정말 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다 죽어서 사라지면 좋겠어요.”

 

넷째 인수의 부인 연기엄마는 인상을 잔뜩 구기고, 음식을 뜨러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자리에 셋째 범수의 부인인 한길엄마와 한길이 다가와 앉는다.

 

누나 오늘 여기 있을 거지? 여기 옷. 몇 시까지 있을 거야?”

 

나 지금 갈 거야. 내일 해야 할 것도 있고.”

 

“.. .. 그럼 내일은 몇 시에 올 거야?”

 

못 와. 내일 일 있어. 주말에 시험도 있어서 못 와. 사람도 많으니까. 내가 올 필요 없겠네.”

 

그래도 와야 하는데. 가족이잖아.”

 

한길이 아쉬운 듯 말 꼬리를 흐린다.

 

나 이제 간다. 너가 잘 보내드려.”

 

혜령의 말에 한길 엄마가 입을 연다.

 

혜령이 너도 내일 와서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엄마, 제가 진짜 내일 해야 할 게 있어요. 엄마가 잘 보내드리세요.”

 

혜령이 한길 엄마에게 주려고 들고 온 선물을 가득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문을 나서는 혜령을 보고 옥석의 유일한 딸 인경이 따라나선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옆으로 범수의 자녀들과 인수의 자녀들이 혜령을 둘러싼다.

 

내일 올 거야? 너 오랜만에 봐서 좋은데.. 내일도 같이 보내드리고 그러면 좋잖아.”

 

내일 못 와요. 저 없어도 가족 많잖아요. 제가 꼭 올 필요도 없고요. 할아버지 잘 보내드리세요. 다들. 그리고 고모도요..”

 

장례식장에서 나온 혜령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둡기도 디게 어둡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겨우 도착한 혜령이 피곤한 듯 침대에 몸을 뉘인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정말.’

 

다음 날, 옥석의 장례식은 아침 일찍 그를 땅에 묻고 나서 끝이 났다. 경희가 보내온 영상을 통해 혜령은 드디어 마음을 놓았다.

 

드디어 가셨다. 드디어. 드디어 끝났어.’

 

안도의 숨을 내쉰 혜령이 잠이 든다. 시골 흙집, 마당에 선 혜령을 대문을 나서는 옥석이 돌아본다. 하얀 옷을 입은 옥석이 혜령을 향해 환하게 웃는다.

 

나 이제 간다.”

 

가세요. 할아버지. 천국 가서 만나요.”

 

그래.”

 

대문을 나서는 옥석이 하얀 빛과 함께 천천히 점멸해간다. 꿈에서 깬 혜령은 이제 옥석이 세상에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 잡는다.

 

그래, 이제 내 인생을 살아가자. 제대로. 나를 마주하면서. 나를 잃어버리지 말자.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살지 말고, 누군가에게 인생을 뺏기지 말자. 원한도 아픔도 내려놓고, 내 삶을 살자.’

 

혜령은 다짐한다. 하얗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돌아서던 옥석을 떠올리며 혜령은 드디어 그를 놓아준다. 그리고 혜령이 혜숙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그동안의 일들을 전해들은 혜숙 이모가 혜령에게 말을 건넨다.

 

령아, 그동안 네가 너무 고생 많았어. 이모가 없었던 시간동안 네가 너무 아팠겠다. 이모는 솔직히 그 사람들 너무 화가나. 이제부터 혜령아. 혜령이 너를 존중하는 사람, 그리고 너를 존중하는 장소에만 너를 둬야 해. 그게 너를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이야.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너를 아프게 하면 그게 뭐든 허용해선 안 돼. 너만 희생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바뀔 기회를 뺏는 일이 될 수 있어. 너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독해져야해. 이제부터는 이모랑 같이 걷자. 알았지?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이제는 네 가족은 네가 허락한 사람만 가족이 되는 거야. 약속하자. 우리.”

 

, 이모.. 고마워요. 이모.”

 

이제부터는 니가 선택하는 거야. 가족이든, 친구든. 네 삶은 네 꺼니까. 이제부턴 뺏기면 안 돼.”

 

혜령은 가족이라는 이름을 지웠다. 그리고 흰 종이 위에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 만을 채우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책상에 앉은 혜령이 하얀 종이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시 시작. 다시 가보자. 혜령은 종이 맨 위에 이름을 적었다. 김혜령. 그래. 이젠 내가 내 유일한 가족이고, 시작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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