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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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가족 안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상처와 갈등을 그렸다. 그 과정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가족이야기다. 상처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90% 이상의 가정에서 드러내지 않는 상처와 고통의 과정이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상처와 아픔을 가진 성인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상처와 고통을 물려준다. 자유 소설은 한 아이가 태어나 구성원 안에서 희생자가 되어 자라는 과정과 치유여정을 담았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한 곳에 묻고 모습만 성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혜령이 다가온다. 자유는 모습만 어른이 된 혜령과 함께 치유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회복과 치유를 담은 성장 소설이다. 자, 이제 혜령과 함께 자유를 향해 떠나보자. 진정한 자유가 당신과 혜령에게 찾아올 것이다.
자유
19. 그건 니 사정
19. 그건 니 사정
정신과 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던 혜령이, 핸드폰 벨소리에 눈을 뜬다.
“언니, 오늘 언니 집에 가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아? 언니 혼자 자는 거 무서우니까. 밤에도 내가 같이 있어 줄게.”
“고마워. 밤에 보자.”
해가 질 무렵 경희가 혜령의 집에 왔다. 경희와 혜령이 침대 위에 같이 누워있다. 부스럭 소리를 내며 경희가 혜령 쪽으로 돌아눕는다.
“언니, 나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 돈도 없고. 배운 것도 별로 없고. 가족도 없고. 내세울 게 하나도 없어. 우리 교회 사람들은 부자에, 많이 배운 사람도 많고, 잘생기고, 예쁜 사람도 많은데.. 나는 그저 그래.”
“니가 왜 가진 게 없어. 이렇게 예쁘고 건강한데.”
한참 경희가 아무 말이 없다. 그 이후 경희는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거의 매일 혜령의 집에 머물다 갔다. 경희가 한참 머물다 발을 끊을 무렵, 혜령의 집 대문을 밤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두드리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퉁퉁퉁퉁.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와 당기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문고리를 잡고 열려고 하는 소리 몇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 몇 번, 그 때문에 경찰이 자주 출동했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덕분에 혜령은 밤이 더욱 두려워졌다.
“경희야, 요즘 모르는 사람이 자꾸 문을 두드리고, 열려고 해. 그리고 사라지는데 무서워 죽겠어. 너가 집에 좀 오면 안 돼? 경찰도 몇 번 불렀는데.. CCTV를 달아라고만 하네.”
“언니, 언니가 우리 교회 오면 나랑, 교회 사람들이 지켜줄게.”
“그건 또 뭔 소리야. 아무튼 잡히기만 해봐. 선처고 뭐고 감방에 넣어 버릴 거니까.”
혜령은 경희가 들으라는 듯 전화를 걸어 으름장을 놨다. 한동안 계속 됐던 문 두드림은 전화 이후 소리 없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한바탕 경찰들의 방문으로 정신없는 밤을 보낸 혜령이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앉아있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울린다. 산돌의 전화다.
“그 자식 잡았대? 내 그 놈을 잡기만 하면 바닥까지 털어서 가만 두지 않을 거다.”
“경찰 분들이 열심히 찾고 있긴 한데요. 아직 못 찾았대요. 이사를 가라고 하는데, 이사 갈 곳도 마땅찮고, 돈도 없고.. 아무튼.. 잡으면 먼저 연락드릴게요.”
“그래, 그나저나 내가 친척 중에 돈 꽤나 있고, 권력 있는 놈들한테 전화를 걸었거든. 그 사람들한테 그 놈 좀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지. 그랬더니 며칠 뒤에 연락을 준거야. 흥신소 이런 데서 너 뒷조사 했다더라. 근데, 너 어릴 때부터 난잡해서 동네 할아버지랑 그런 거 하고 그랬대매. 원래부터 그런 년이었다고. 내가 그 말 듣고 얼마나 쪽팔렸는지 아냐? 니가 그래서 사고가 난거 아니냐?”
“아빠... 그거 동네 할아버지 아니고요.. 할아버지예요. 아빠.. 아버지요.”
“뭐라고? 누구라고?”
“동네 할아버지가 아니고, 아빠 아버지라고요. 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아.. 그래 아무튼 잡으면 연락주고. 다음에 통화하자.”
산돌은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혜령이 한참동안 끊어진 핸드폰을 바라본다. 그날부터 산돌은 술을 마시고, 범수를 비롯한 시골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폭풍같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다. 덕분에 모든 가족들이 옥석과 혜령의 비밀을 알게 됐다.
며칠 후, 산돌의 생일을 맞아 혜령과 경희가 산돌을 찾았다.
“아빠, 오늘 아빠 생신이라 왔어요. 잘 지내셨죠?”
“그래, 밥 먹자. 같이.”
산돌은 혜령과 경희가 올 때마다 빈손으로 오지 말고, 좋은 걸 사오라고 당부했었다. 과거에 산돌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통을 치며 무안을 주곤 했다. 그래서 혜령은 산돌의 집에 가기 전 돈을 모아 비싼 선물을 사려고 노력했다. 혜령과 경희는 함께 사온 꽃과 선물을 내려 놨다. 혜령이 바닥에 내려놓은 경희의 선물을 보자 산돌의 호통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경희랑 선물 고르고, 같이 샀어요. 아빠 마음에 드시면 좋겠어요.”
혜령은 자신이 사온 선물을 경희와 함께 사왔다고 말한 뒤, 산돌의 앞에 경희가 가져온 작은 선물과 올려놨다. 산돌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린다. 경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혜령을 바라본다. 산돌의 표정을 보던 성철엄마의 표정에 불쾌함이 가득하다.
“너는 그렇게 웃지 좀 마라. 듣기 싫으니까.”
가라앉은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깔깔 웃던 혜령에게 성철엄마가 한마디 뱉는다. 그리고 잔뜩 화난 표정으로 부엌으로 가더니 작은 식탁을 들고 들어온다. 밥상 위에 미역국과 밥, 간단한 나물과 김치가 올라와 있다. 침대 위에 앉아 티비에 시선을 고정하던 산돌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혜령에게 말을 건넨다.
“옛날 시대에는 가족끼리 결혼하고 그랬어. 할아버지 랑도 결혼 하고, 사촌끼리도 결혼하고 그랬지.”
산돌은 티비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역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혜령은 산돌이 하는 말의 의도를 몰라 한참 듣고 있다 한마디 뱉는다.
“그건 사극에서나 나오는 거잖아요. 가족끼리 결혼해서 권력을 이어가려는 건데.. 결국엔 그것 때문에 기형아 출산하고 문제 생겨서 가족끼리 결혼 안 하게 된 거 아닌가요.”
“넌 내가 말할 때 끝까지 듣고 말해라. 말대답하지 말고. 어른이 말하면 네네 하면 되지 니 생각을 왜 갖다 붙여? 니가 그러니까 미움을 받는 거야. 여자는 원래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암 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안 그러든? 싸가지 없다는 말 안 들으려면 가정교육을 잘 받아야해.”
혜령은 올라오는 마음을 꾹 눌러 잠근다.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적당히 다 했으면 이제 가라. 또 오고.”
혜령과 경희가 밖으로 나온다.
“언니, 일부로 같이 사왔다고 한 거지. 아빠가 뻔히 다 알 텐데.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내가 언니 때문에 불편했잖아. 내 선물이 하찮아서 그래?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뭔 소리야. 아빠가 또 소리 지를 까봐 그러지.”
“그니까. 그걸 왜 언니가 알아서 판단하고 마음대로 이야기 하냐고.”
“나는 너 생각해서 그런 거지.”
“그건 언니 입장이고. 불편하니까 그러지마.”
경희는 혜령에게 톡 쏘아붙이고 돌아선다.
“간다. 연락할게.”
경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혜령이 한참 서 있다. 혜령의 눈가가 촉촉하게 번진다.
로스쿨의 합격 발표가 있고 소식을 들은 산돌은 이틀을 울었다.
“앞으로는 내가 너 뒷바라지 다 해 주마. 걱정 말고.”
산돌이 철석같이 혜령에게 약속을 했다. 학교생활이 시작됐고, 혜령은 정말 열심히 해 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럼에도 공부는 쉽지 않았다.
'머리를 많이 다쳐서 그런가. 왜 잘 안되지. 왜 이해가 안 되는 거지?'
처음 느껴보는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혜령을 짓눌렀다. 첫 중간고사가 시작하는 날 혜령은 꿈자리가 사나웠다. 혜령의 꿈 속에서 산돌이 운전하는 버스가 뒤집혔다. 그리고 산돌이 죽었다는 소식을 꿈에서 보고 듣는다. 놀라서 잠에서 깬 혜령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꿈에서 아빠가 죽는 꿈을 꿨어. 너무 무서웠어. 아빠는 아직 예수님도 못 만났는데.. 죽으면 어쩌냐고 예수님께 따지고 울고.. 그러다 겨우 깼어.”
“괜찮아. 괜찮아. 꿈이잖아.”
친구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혜령을 다독여줬다. 전화를 끊고 혜령은 바닥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아빠.. 너무 불쌍한 사람이에요. 데려가시면 안돼요. 이렇게 데려가시면 아빠는 분명 지옥 갈 텐데. 하나님이 아빠를 구원해 주시려고 아빠에게 저를 보내신 거잖아요. 아빠를 사랑하는 아빠의 아버지 되신 나의 하나님..아빠를 살려주세요..’
혜령의 간절한 기도가 계속 됐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혜령이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본다. 긴 바늘이 6을 향해 있다. 그 순간 성철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니 아빠 사고 났으니까. 니가 와서 수습해. 버스가 뒤집혔다는데. 니가 경찰서 가라.”
“저, 오늘 중간고사 시험이 있어요. 엄마. 못 가요.”
“딸이 되가꼬. 아빠 다쳤다는 데 안 가보냐. 버스가 뒤집혀서 삼중 추돌 나가지고. 삼 십명 넘게 사람들 다치고, 니 아빠도 다치고. 버스는 완전히 망가졌어. 지금 니 시험이 중요해? 딸년이 정신머리가 없어서. 끊어!”
전화가 툭 하고 끊겼다. 혜령이 바로 산돌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 괜찮으세요?”
“팔만 좀 다치고, 괜찮아. 차 폐차 하러 간다. 어제 브레이크 점검하고 고쳐왔는데.. 아침에 이상하게 브레이크가 안 들고 차가 안 멈추더라고. 그래서 전봇대를 박고 겨우 섰지. 이만하길 정말 다행인 게지.”
“다행이에요.. 정말.. 병원 꼭 가시고요.."
산돌과 통화를 하자 마음이 놓인 혜령이 그제야 짐을 챙겨 학교로 간다. 3중 추돌 사고가 나 버스가 뒤집혔음에도 산돌의 기지 덕분에 승객들을 모두 살렸다고 했다.그 일로 산돌은 완전히 직업을 잃었고, 매일 밤 술을 원 없이 마셨다.
혜령은 대학원에 다니기 위해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말에 과외를 했고, 월세를 벌었다.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 로스쿨을 졸업하려면 돈도 많이 필요하고, 생활비도 필요한데.. 도와주세요.’
로스쿨 2학년이 되자 혜령의 생활이 더욱 궁핍해졌다. 그럼에도 혜령은 목표를 바라봤다.
‘그래, 나는 나 같은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잖아. 괜찮아. 원래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 더 견고해지는 법이니까. 성경을 봐. 다들 이런 훈련 하나쯤 하잖아. 이건 필요한 과정인 거야. 하나님은 필요 없는 건 안 주시니까.. 하나님 그래도 너무 힘들어요.’
혜령은 주말 외에는 집에 가지 않고, 매일 학교 독서실에서 선 잠을 자며 공부를 했다. 로스쿨 건물 휴게실에서 자고, 옆에 마련된 샤워실에서 씻었다. 그리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학교 수업에 들어갔다. 드디어 중간고사 기간이 시작됐다. 갑자기 인수의 아들인 기석이 혜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대. 지금 중환자실에 계신다는데. 니가 와 봐야할 거 같아.”
“나 지금 중간고사 기간이고. 진짜 중요한 시험이라 못 가. 그리고 내가 할아버지를 왜 만나러가. 나한테는 원수 같은 사람인데.”
“성경에 못 읽어 봤어? 일흔 일곱 번도 용서하라잖아. 우리는 다 죄인이고, 용서해야지. 나도 대충 들었어. 근데 할아버지 돌아가시는데 당연히 니가 가봐야지.”
“그러니까 내가 왜 가? 가족도 많은데 다른 사람들이 가면 되지. 그리고 내가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 시작이라 정말 못가. 정말 중요해. 이번 시험..”
“할아버지가 너 기다리셔. 그러니까 가봐. 그리고 용서해야지. 용서해드려.”
“니가 용서라는 개념을 잘 모르는 거 같은데.. 대체 왜 용서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거야. 나는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겪어보지 않아 놓고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는 거. 그거 선 넘는 거야.”
“믿음이 있는 사람은 용서를 하는 거야. 니가 믿음이 약하고 없으니까 그걸 끌어안고 사는 거지.”
“허.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일단 너.. 정말 알고 말하는 거 같아서 이야기 하는 건데. 지난 번에 할아버지랑 내 사건 아빠가 전화해서 뒤집는 바람에 다 알고 있다는 거 알어. 근데 니가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나 지금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데. 너도 만약에 니 딸 태어나서 같은 일을 당하면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 일단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 하자. 나 너한테 상처 주고 싶지 않고, 지금 내 생각 만하기에도 너무 벅차.. 너무 힘들고 아파. 다음에 통화하자.”
그날 이후로 넷째 인수의 아들 기석은 한동안 전화를 걸지 않았다. 혜령은 둘째 관수의 딸 은성언니의 장례식장에서 하늘 가늘 길을 간절히 부르던 넷째 인수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네. 정말.’
그리고 잠시 후 경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언니. 할아버지 아프시다며? 언니가 가봐야지.”
“그러니까 왜? 내가 가야하는데. 갈 사람도 많잖아.”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지금이 마지막인데 언니가 봐야지.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내가 왜 가야해? 가면 더 후회할거 같은데.”
“암튼 모르겠고. 언니가 가서 보내드려. 아빠가 언니 가라고 계속 전화하셔. 언니가 가봐야지. 그래야 언니도 마음 홀가분해 질 거 아냐. 그리고 언니 같은 일 언니만 당하는 거 아니야. 사람들 다 그런 일 당하고도 잘 살아. 유별나게 언니만 그러지마. 할아버지 잘 보내드리는 것도 믿음의 사람이 하는 거야.”
“그러니까. 왜 내 생각을 니가 해 주냐. 참. 어이가 없네. 허. 참.”
경희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야한다며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 용서하며 보내드려야 한다며 걸려오는 경희의 전화에 혜령은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후 산돌이 혜령에게 전화를 건다.
“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데. 니가 가봐라. 나는 내 아버지가 아니라 도저히 못 가겠고. 너라도 가봐.”
“아빠. 할아버지 정말 못 보겠어요. 무섭기도 하고, 못 가겠어요.”
“니가 가봐. 내가 못 가면 너라도 가야지.”
“그러니까.. 지금 제가.. 시험기간이고 마음이 힘들어서 못 가겠어요.”
산돌은 갈 때까지 전화를 걸 요량이었는지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혜령은 돌아가며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의 말에 화가 나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용서를 못 해서구나. 용서 하고 보내드리지 않으면, 그건 하나님 사람이 아닌걸까?’
범수의 전화까지 받고나서야, 혜령은 병원 이름을 물었다. 친구에게 부탁을 해 혜령은 병원에 같이 갔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침대에 묶여있는 옥석이 마른 가지처럼 말라 붙어있다. 지금이라도 곧 죽을 것처럼 온 몸이 까맣고, 얼굴은 해골처럼 뼈가 드러나 있다. 산소 호흡기를 확인하러 들어온 남자 간호사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쳐 깨웠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말 한마디 뱉지 못하는 옥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을 겨우 뜬 옥석이 혜령을 한참 바라본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할아버지 제가 기도 많이 했으니까. 할아버지 천국가실 거에요.”
혜령은 힘을 내서 옥석의 손을 잡는다. 그 순간 침대와 몸을 고정한 끈을 끊어내려는 듯 옥석이 몸부림을 친다. 산소호흡기가 벗겨지고 옥석이 마른 목소리를 뱉어낸다.
“가자. 왜 이제야 왔어.. 빨리 가자. 지금 가자.”
앙상하게 마른 손이 혜령의 손을 강하게 움켜잡고 옥석이 몸을 뒤흔든다. 지금이라도 당장 혜령을 데리고 떠나려는 듯 그는 세차게 몸부림을 친다. 혜령은 놀라 밖으로 나온다.
“너무 무서워. 왜 그러시지?”
“원래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 힘이 돌아오시는 분들이 있다더라..”
친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혜령을 바라본다. 혜령이 다시 들어가 그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다.
“할아버지 천국가실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왜... 이제야 왔어. 당장 가자. 빨리 당장.”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옥석의 얼굴에 혜령이 놀라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둘째 관수가 왔다. 둘째 관수는 옥석이 있는 중환자실 방으로 들어가 팔다리를 한참 주무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령이 뒤돌아 병원을 나왔다.
며칠 후 범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혜령이 다녀간 후 옥석이 기운을 차려 다시 일어섰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다. 시골 가족들은 그것이 알 수 없는 신의 힘이 거나, 혜령의 기를 받아서 라고 한참 떠들었다. 10년만 더 사시게 해 주시면 부처든, 예수든 다 믿겠다던 범수의 기도가 들어졌을 거라고 혜령은 생각했다.
그 날 이후 매일 혜령을 기다린다는 옥석의 이야기를 듣자 혜령은 속이 어지러웠다. 요양원으로 옮겨진 옥석은 제 발로 걸어 다니고 만나는 사람마다 호통을 칠만큼 회복되었다. 과거 형제들이 모두 신용불량자가 된 덕분에 옥석의 병원비가 모두 국가에서 보조됐다. 그리고 요양원 비용으로 달마다 옥석 통장으로 들어오는 국가지원금 덕분에 관수가 매일 같이 옥석의 요양원으로 드나들었다. 매일 오는 관수가 고마운 옥석이 둘째 관수에게 통장을 맡겼고, 관수가 통장의 관리했다. 그 이후 요양원 비가 부족해진 옥석은 요양원에 도둑이 있다며 매일 소리를 질렀다. 범수는 최근의 근황을 전화를 통해 혜령에게 전했고, 혜령은 역시나 관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범수는 옥석의 생일 날 찍은 사진으로 옥석이 혜령을 기다린다는 소식도 전했다.
“령아, 다음에는 너도 가족들 모임에 오면 좋겠구나. 모두가 널 기다리고 있어.”
“네.. 아빠.. 제가 학교 공부 할게 너무 많아서요.. 다음에 꼭 갈게요.”
혜령은 매일 밤 옥석이 찾아와 끌고 가려는 꿈을 꿨다. 한손엔 낫을 들고 따라오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고함치는 그를 매일 꿈에서 만났다. 혜령은 라디오 성경을 틀어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불면증과 악몽이 계속 됐고, 혜령의 마음에 어두움이 자주 찾아왔다.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도와주세요.. 하나님.. 너무 무서워요..’
혜령의 밤이 매일 더욱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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