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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본 작품은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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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가족 안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상처와 갈등을 그렸다. 그 과정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었던 가족이야기다. 상처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90% 이상의 가정에서 드러내지 않는 상처와 고통의 과정이 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상처와 아픔을 가진 성인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상처와 고통을 물려준다. 자유 소설은 한 아이가 태어나 구성원 안에서 희생자가 되어 자라는 과정과 치유여정을 담았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한 곳에 묻고 모습만 성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혜령이 다가온다. 자유는 모습만 어른이 된 혜령과 함께 치유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회복과 치유를 담은 성장 소설이다. 자, 이제 혜령과 함께 자유를 향해 떠나보자. 진정한 자유가 당신과 혜령에게 찾아올 것이다.
 

자유

 

17. 니 탓

 

17. 니 탓

 

 

응급실 맨 끝 침대 위, 누워있던 혜령이 침대 긴 쪽으로 다리를 내려 일어나 앉았다. 침대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져 있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쯤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을까.’

 

혜령의 눈 사이로 노란 액체가 연신 흘러내린다. 혜령의 건너편 침대로 얼굴이 붓고 피가 군데군데 묻은 남자가 앉는다. 얼굴 전체에 밴드를 붙여놓은 혜령과 얼굴이 깨진 남자의 눈이 마주친다.

 

아가씨는 어쩌다 다쳤어요?”

 

집에 가다 강도를 만났어요.”

 

아이고, 재수가 없었네. 이참에 얼굴 전부 갈아엎으면 되제. 성형외과 기다리는 거죠?”

 

남자는 혜령의 얼굴을 쳐다보다 혀를 찬다. 억울한 마음에 혜령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주민등록증을 보여준다. 지갑을 받아든 남자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조. 나쁜 놈이 따로 없네. 아이고매.. 이쁜 얼굴이 다 망가져서 어쩐대요. 으이구. 범인은 잡았어요?

 

아니요. 경찰이 이제 잡아주겠죠..”

 

남자는 혜령이 건넨 지갑에 걸린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돌려준다.

 

"아저씨는 어쩌다 다쳤어요?"

 

술 먹고 집에 가는데, 그 놈이 먼저 시비를 걸어가지고.. 이길 줄 알았는데 나만 얼굴이 이 모양이 되 불었어라. 아이고. 진짜 한 대라도 때렸어야하는데.”

 

 

얼굴 만 가득 다친 혜령과 얼굴만 가득 터진 남자가 응급실에서 침대 가장 끝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상처는 응급실에서 가장 경한 상처에 해당됐다. 양쪽으로 늘어선 침대 줄이 줄어들 기미가 없자, 얼굴이 터진 남자가 혜령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혜령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한명한명 모여든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오랫동안 침대에 혼자 앉아있던 남자는 쓸쓸한 표정으로 혜령과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 드이어 수술방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건 혜령이 침대 줄서기를 시작하고 12시간이 훌쩍 지나서였다. 여름휴가를 맞아 성형예약이 많아 수술 방 자리가 없다고 했다. 겨우 수술방에 들어가게 된 혜령이 조용히 기도를 한다.

 

하나님 제발 얼굴이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제발요..’

 

수술 시작합니다. 국소 마취 할 거예요. 마취가 안 된 부분은 아프다고 느낄 수 있어요. 아프면 말하세요.”

 

혜령의 얼굴의 긁어내는 소리가 방안에 퍼진다.

 

선생님 아파요.”

 

아파도 참으세요. 이 부분을 전부 다 긁어내야 얼굴에 흉이 안 져요.”

 

얼굴 전면이 시멘트에 긁힌 것처럼 찰과상이 있네요. 전부 긁어내야 흉이 덜져요. 그리고 벽돌에 맞아 움푹 파인 이마는.. 에고.. 시간이 좀 많이 걸리겠네요. 두 곳이 파였는데 다시 꺼내 올릴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어요. 이마는 어쩔 수 없이 흉이 많이 질거예요. 그래도 흉이 가장 적게 지도록 해 봅시다. 아프더라도 참아요.”

 

 

의사의 말에 혜령이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제발요..’

 

혜령의 꺼진 이마 높이를 맞추기 위해 진행된 수술은 2시간이 지나서야 마무리 됐다. 저녁이 돼서야 혜령이 수술 방에서 나왔다. 수술 방에서 나오자 혜령의 후배가 제일 먼저 혜령을 마주 한다. 고민이 많아 자주 혜령을 찾던 여자 후배였다. 후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하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진 혜령을 후배가 받아들고 응급실로 휠체어를 민다. 손잡이를 잡고 휠체어를 미는 후배의 손의 떨림이 휠체어에 그대로 전해진다.

 

언니, 언니가 다쳤다고 들어서 놀라서 뛰어왔어. 언니 많이 다쳤네. 어쩌지... 기도하면서 여기 서 있었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복도에서 만난 여자 간호사가 혜령을 멈춰세운다.

 

병실이 없어요. 주변에 다른 병원 찾아보고 있는데. 조금 기다리셔야겠어요. 1인실도 도통 자리가 없네요. 방학이라 수술이 많아서 다인실도, 1인실도 병실이 없어요.”

 

병원에서 입원할 병실이 있는 병원을 알아보는 사이, 혜령에게 치과에 다녀오자며 교회언니가 찾아왔다. 교회 언니는 잘 아는 분의 치과 종합 병원에 가자며 혜령을 차에 태웠다. 교회 언니의 진한 색 명품 청바지 옆에 흔들리는 구찌 가방이 혜령의 눈에 들어왔다. 교회 언니는 자주 트레이드 마크처럼 구찌 가방을 메고 다녔다. 일부로 그런 것처럼 가슴 앞으로 올려 메는 그녀에게서 구찌 가방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마크였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이 평소 나한테 만나 달라. 만나 달라 이야기하는 원장이 하는 곳이야. 내가 가면 바로 너 진료 해 주실 거야. 다른 데도 내가 알아봐 줄 테니까. 걱정마. 나 밖에 없지?”

 

구찌 언니의 가방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커 보인다. 으리으리한 병원 건물 앞에 도착하자, 자동차가 멈춰선다. 세워진 자동차 안에서 혜령이 내려 병원을 올려다본다.

 

앞 치아 두 개가 덜렁 거리긴 한데. 꿰맬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자연스럽게 다시 붙을 테니까. 그동안 치아를 사용하지 마세요. 꿰매면 오히려 늦게 치료 되요. 그러니까 가만히 두면 되요.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씹지 말고 사용하지 않으면 붙을 겁니다. 다만, 전처럼 사용하는 건 불가할 거 같고.. 꿰매는 수술을 하는 것 보다 자연 치유를 기다려 봅시다. 아랫니 망가진 건 향후에 만들어 세우면 되고요.”

 

그럼 뭘 먹어요?”

 

병원에 가면 유동식이라는 게 있어요. 그걸 빨대로 일주일 동안 드세요. 이를 사용하면 안돼요.”

 

..”

 

자연스럽게 붙는다는 말에 혜령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병원에 돌아오자 간호사가 수납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라고 전한다.다행히 일방 폭행사건이라 국가에서 일정부분 지원해 준다는 말에 혜령이 또 한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병실이 있는 병원으로 이동하는 사이 혜령은 산돌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 제가 집에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많이 다쳤어요. 병원으로 가는데 입원해야 할 거 같아요.”

 

차라리 죽어버리지 왜 살아있어? 돈만 들게.”

 

산돌의 말에 혜령은 전화를 끊어버린다. 병원에 도착한 혜령이 1층 원무과에서 입원 수속을 한 후 8인실에 들어갔다. 병실 안 침대에 눕자 그제야 혜령이 잠이 든다.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고 누운 혜령의 뒷머리가 쑤셔왔지만 통증도 잠을 이길 수 없었다.

 

한참 잠을 자고 일어난 혜령의 눈에 막내 삼촌 춘풍이 들어온다. 그 곁으로 넷째 인수의 딸 연기가 서 있다. 그 뒤로 연기의 동생 기석과 혜령의 교회 사람들, 형사 분들이 병실 안으로 차례로 들어온다. 춘풍이 혜령의 오른쪽 머리 맡으로 자리를 옮겨서자 둥그렇게 침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서 있다. 넷째 인수의 딸 연기가 말을 먼저 꺼낸다.

 

경희 이야기 듣고 왔어. 경희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고..”

 

짐짓 연기 언니가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병실로 막 들어온 형사 두 분이 침대에 누워있는 혜령을 내려다본다.

 

이런 사건이 워낙 많아요. 범인도 못 잡고. 아마 이것도 안타깝지만 미제 사건이 돼서 덮일 거예요. 잡힐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형사의 말에 혜령은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지금도 비슷한 사건이 몇 건 터졌는데. 여기에 사인 해 주셔야하고..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형사 두 분이 방에서 나가고 뒤를 이어 연기와 막내 삼촌 춘풍도 나간다. 그날부터 연기는 매일 혜령의 병실에 왔다.

 

하나님 어쩌죠..’

 

혜령은 친구에게 부탁해 노트북을 병실로 가져왔다. 병실 옆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던 혜령이 그제야 로스쿨 면접을 위한 접수가 얼마 남지 않은 걸 떠올렸다. 혜령은 등불 교수님께 연락을 드린다.

 

교수님 제가 집에 가다 좀 많이 다쳤어요. 얼굴이 다쳐서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등불 교수님은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바로 오셨다.혜령의 얼굴을 본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내신다. 교수님이 우시는 걸 본 혜령이 같이 운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지 등불 교수님이 복도로 나가신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와

 

왜 이렇게 많이 다쳤는지.. 이번 시험은 다음 해로 미루고, 일단 낫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기도할게요.”

 

교수님의 기도와 눈물에 혜령은 마음이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교수님이 가시고, 혜령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래, 내 사건을 조금이라도 알리자.’

 

혜령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노트북을 덮고 다시 잠을 청한다. 머리가 아프고 배가 고팠지만 피곤함이 다시 잠으로 이끈다. 일어나보니 주변이 시끄럽다. 방송사에서 나왔다고 했다. 전화도 여러 건 와 있다.

 

 

취재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덕분에 혜령은 여러 방송사에 출연하게 됐다. 모자이크와 목소리 변조를 부탁하고 혜령이 촬영에 임한다.

 

이런 식으로 방송에 나오고 싶진 않았는데..’

 

혜령은 이어지는 상황들에 웃음이 났다.소식을 들은 성철 엄마도 병원으로 왔다. 병실 앞 복도에서 성철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야 너 이년. 빨리 퇴원하라고. 병원비 하나라도 주라고만 해 봐라. 너 가만 안 둔다.”

 

병실 안에서 얼굴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던 혜령을 복도로 끌어낸 성철 엄마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너 때문에 돈 하나라도 들어봐라. 내 딸도 넘어져서 얼굴 다쳤는데 입원 안 했다고. 누굴 죽일라고 병원에 입원해? 내가 널 가만 둘 줄 알고.”

 

산돌 대신에 왔다는 성철엄마가 혜령의 팔을 잡아끌며 계단 쪽으로 향한다. 지나가던 환자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혜령과 성철 엄마를 바라본다. 상황이 궁금한 사람들이 주변으로 모여든다. 혜령은 창피한 기분에 같이 소리를 지른다.

 

 

돈 주라고 안 할 테니까. 가시라고요. .”

 

성철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씩씩대며 엘리베이터에 탄다.

 

전화하지 마라. 너 또 전화하면 내가 다시 올랑게. 씨볼 년 놈들.”

 

 

성철 엄마가 사라지고 병실 안과 밖의 사람들이 혜령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혜령은 다시 침대 위에 눕는다.

 

잠이나 자자.’

 

혜령이 눈을 뜨자 형사 두 분 보인다. 사건 기록을 혜령 앞에 놓은 형사 한명이 혜령에게 사건이 재수사 될 거라 전한다. 사건 기록들을 살펴본 혜령이 수정 요청을 하고, 사인했다. 사인한 기록을 들고 형사들이 나가고 그 뒤로 연기 언니가 들어온다. 연기는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혜령 앞에 놓는다.

 

줄 건 없고, 병원비에 보태 써.”

 

고마운 마음이 들어 그동안 연기를 미워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동안 혜령은 경희가 달라진 것이 연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연기 언니를 보내고 혜령은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오는 연기 언니를 생각하며, 그녀에게 줄 옷과 선물을 사기 위해 병원 근처로 나간다. 마침 장이 섰는지 사람들과 물건들이 정신없이 이어져있다.

 

다음 날 연기가 오자 그녀에게 옷과 선물을 내민다. 그리고 혜령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병실을 나간다. 혜령이 화장실에 다녀오다 복도 구석에서 통화 중인 연기의 목소리를 우연히 듣는다.

 

 

돈을 줬는데, 내 선물들을 사버려서 어쩔지 모르겠어요.”

 

무슨 내용인지 한참 생각하다 혜령은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방에 들어온 혜령에게 연기는 번개에 맞았다가 다시 살아난 여성의 이야기를 쓴 간증 책을 건넨다. 연기는 책을 꼭 읽어봐야 한다며, 혜령의 손을 꽈악 잡은 후 병실을 나갔다. 간증 집은 번개를 맞아 죽음 전까지 간 여자가 살아난 후, 하나님을 전하고 다니는 내용이었다.

 

그 무렵 혜령은 밤마다 찾아오는 검은 그림자와 매일 밤 싸웠다. 결국 혜령은 형사들의 권고를 듣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로 한다. 병원에는 정신과와 치과가 있어 덕분에 혜령은 병원 복을 그대로 입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치과에 들러 보수 치료를 받고 정신과로 향한다. 정신과 병원 앞에 앉아있는 여인의 표정 없는 얼굴이 눈에 밟힌다. 혜령의 이야기를 노란 종이에 적기만 한 의사가 약을 받아 가라고 종이를 건넨다.

 

약이 몇 개 더 추가됐어요. 입이 마르고, 혀가 갈라질 수 있어요. 물을 충분히 먹고, 충분히 주무세요. 수면제도 넣어드릴게요.”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갔다. 신경과에서 뇌 사진을 찍은 날.

 

다행히 뇌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뇌라는 게 복잡한 조직이라 나중에 어떤 장애가 나타날지 몰라요. 일단은 뇌출혈이나 뇌 문제는 없어서 다행입니다만 잘 보셔야합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병원에 오셔야 해요.”

 

신경과에서 약을 받아들고 병실로 올라온다. 침대에 누워 자려던 찰나 산돌이 병원에 온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산돌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혜령은 병원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병원 근처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후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자, 옆 침대에 누워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며칠 전 스스로를 교통사고 나이롱환자라고 소개한, 나이롱 아주머니였다.

 

아빠라는 사람이 왔다갔어요. 많이 우시던데. 키워주지도 못하고 자기가 버렸다고. 그리고 혼자서 잘 컸다고 미안해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내가 눈물이 얼마나 많이 나는지.. 이름이 혜령이라고 했죠. 제가 다니는 교회가 있어요. 거기 가서 말씀 듣고 저도 많이 회복 됐어요. 같이 말씀 공부도 하고..”

 

아 또 시작이군. 이 세상에 참 교회라고 부르는 종교가 많구나.’

 

혜령은 그러거나 말거나 뒤돌아 잠을 청한다. 나이롱 아주머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한 달 입원이라고 했던 경희가 이른 퇴원을 하고 연기와 혜령의 병실에 왔다.

 

경희야, 내가 병원에서 쉬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옆에서 아줌마가 계속 말씀 같이 배우자고. 너무 힘들게 해. 어떡할지 모르겠네. 으유.”

 

뭘 그래. 언니 나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되지. 무시해. 그러던가말던가.”

 

매일 스물네 시간 같이 누워있는데 무시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 어제는 아주머니 교회 전도사님도 왔다가고.. 교회 다닌다고 해도 전도하고 내 말을 무시하네.”

 

몰라. 그러다 말것지.”

 

인터넷으로 글을 올린 후, 매일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말을 걸었고, 덕분에 혜령은 매우 피곤했다. 나이롱 아주머니 건너편에 입원한 여인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혜령에게 말을 건다. 명함을 내민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제가 검찰 쪽에서 일하는데 거기에 .. ....”

 

뭐라고 하는지 한참 듣다 혜령은 적당히 명함을 받아들고 귀를 닫는다.

 

세상엔 도움을 주는 사람도 많지만 생각보다 피곤하게 하는 사람도 많구나.’

 

연기가 또 왔다.

 

내가 다니는 병원이 있는데, 거기 수녀님이 예언 은사를 받으셔서 거기 같이 가보면 좋을 거 같아. 마침 부탁도 해 놨고. 평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받지도 못 해. 오늘 가보자.”

 

얼굴에 붕대를 감고 환자복을 입은 혜령의 손을 이끌고, 겉옷을 대충 챙긴 연기가 밖으로 나간다. 병원에 외출 기록을 써 놓고, 연기의 자동차에 올라탄 혜령은 그제야 묻는다.

 

거기가 어딘데. 근데 꼭 가야돼? 예언하는 수녀님은 뭔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아무나 안 만나주시거든.”

 

연기를 따라 간 곳은 한적한 곳에 있는 성당 같은 곳이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고, 마을과 동 떨어진 곳에 세워진 곳이었다. 혜령은 적당히 내려 연기를 따라간다.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네. 다행이다.”

 

1층 복도 혜령의 앞에 다섯 사람이 엉성하게 줄을 서 있다. 다섯 사람이 사라지자 드디어 안으로 들어간 혜령은 수녀님과 그녀의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얼굴과 머리 전체를 붕대로 칭칭 감은 혜령을 수녀라는 사람이 바라보고 말을 한다.

 

자네 아이를 죽인 적이 있지?”

 

아니요

 

낙태를 한 적이 있잖아. 그러니까 얼굴이 그렇게 됐지.”

 

무슨 소리세요? 저는 애를 임신한 적도 없고 낙태를 한 적도 없는데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나와 있는데.”

 

어디에요?”

 

남자는 몇 명 만났고? 잠자는 지금까지 몇 명이랑 했어? 낙태를 하지 않았어?”

 

무슨 소리예요? 남자는 둘 밖에 없었고, 낙태는 해 본 적도 없는데요. 검사해서 보여드려요?”

 

이상한 소리만 주절거리다 예언한다는 대단한 수녀는 마지막 말을 뱉었다.

 

다친 얼굴보다 마음에 상처가 깊으니 마음을 잘 다독이도록 해요. 얼굴은 깨끗하게 나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한참 항변만하다 나온 혜령이 볼멘소리로 연기에게 말한다.

 

언니 예언하는 수녀가 맞아? 뭐 맞는 게 하나도 없어.”

 

.. 밑에 사람들이 모여서 찬양을 한다는 데 같이 내려가자.”

 

착한 표정과 착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찬양을 하고 빙글 빙글 손을 맞잡고 돌고 있다. 거기에 혜령을 끼워 혜령도 동동 술래 놀이처럼 한참 빙글빙글 같이 돈다.

 

여기 사람들은 다 마음 치유하려고 온 사람들이야. 생각보다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많거든. 다음에 우리 또 오자.”

 

오기 싫은데..’

 

혜령은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빙글빙글 돌던 착한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밟힌다. 그 이후로도 연기가 몇 번 더 찾아왔고, 연기는 자꾸만 어딘가에 같이 가자며 혜령을 잡아끌었다. 혜령은 연기가 가자고 하는 곳에 가지 않는다며 한참 입씨름을 했다.

 

정말 좋은 곳이 있거든.”

 

언니, 나 지금 너무 피곤해. 옆에서 아줌마가 매일 전도하려고 말 걸고. 자기 교회사람들 데려와서 또 이야기 하고. 너무 피곤해.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데.. 왜 언니도 옆 아줌마도 난리야. 둘이 서로 전도를 좀 해봐. 둘이 다른 종교고만 들어보니까.”

 

혜령이 퇴원할 즈음이 되자 연기는 나중에 다시 보자며 발을 끊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 드디어 병실에 평화가 왔다. 그리고 합격 후 공무원이 된 자영이 혜령의 병실에 왔다.

 

급하게 온다고 왔는데. 이제 왔네. 많이 다쳤네. 어쩌다 이렇게 됐어..”

 

자영을 보자 혜령은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내가 면접도 얼마 안 남았고. 대체 인생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어쩌면 하나님이 이 길과 인연이 없으니까 그만 두라고 하시는 건 아닐까?”

 

니가 싫으면 안 하는 거지. 왜 거기 하나님 이름을 갖다 대. 니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마. 병원비는?”

 

 

사람들이 조금씩 주고 간 거랑, 서울 목사님이 돈을 보내주셨어. 그거랑 해서 내려고.”

 

다음에 또 보자. 일단 오늘은 급하게 내려왔고. 다시 복귀해야 해. 언른 낫고. 기도할게. 내가 너 돈 안 주려고 했는데.. 너가 너무 불쌍해서 주고 간다. 이거 받아.”

 

자영은 일이 바빠 다시 서울로 급하게 올라갔다. 하얀 봉투 안에 5만원이 들어있다. 자영이 가고 난 후, 혜령은 자영의 말을 한참 생각한다.

 

 

얼굴에 붕대를 모두 풀게 되자, 혜령은 퇴원 수속을 밟는다. 퇴원하기 전 혜령은 정신과에 들러 약을 한가득 받았고, 수납을 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간다. 그동안 수험을 위해 모아뒀던 돈과 엄마 목사님이 보내주신 돈으로 원무과에서 수납을 했다. 드디어 집에 온 혜령이 겉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잠이 들자 꿈에 얼굴 없는 검은 그림자가 찾아와 혜령의 목을 졸랐다. 집에 온 혜령은 매일 두려움에 떠는 밤을 보냈다. 혜령은 더 이상 문 밖으로 한발 짝도 나갈 수 없게 됐고, 잡하지 않은 범인이 창문을 깨고 들어올까 무서워 떨던 혜령이 형사에게 전화를 건다.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어요.”

 

신변 보호 요청 이런 건 안 되나요?”

 

경찰 인력이 부족하고 요청한다고 해도 24시간 따라다닐 수 있진 않으니까요. 사설로 보안해주는 곳에 전화 하셔서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혜령의 작은 방을 둘러보신 형사는 언제든 전화하라며 개인 번호를 주고 가셨다. 퇴원한 후 집에 오고 며칠 후, 혜령이 셋째 범수에게 전화를 건다.

 

 

잘 지내셨죠 ? 제가 강도를 만나서 많이 다쳤었어요. 퇴원하고 집에 와서 전화 드려요.”

 

오랜 만에 듣는 셋째 범수의 목소리가 불편했지만, 죽음 전까지 다녀온 혜령은 이제 용서하며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전화를 받은 셋째 범수는 혜령에게 바로 오겠다고 하더니 그날 오후에 혜령의 집으로 왔다. 혜령은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범수에게 내어 놓는다.

 

아빠는 제가 서운하셨겠지만, 저는 고등학교 때 매주 집에 갔어요. 엄마들이 매일 거짓말 한 거죠.. 소금도 뿌리고, 뺨도 때리고..”

 

왜 말 안했어? 그러면 내가 해결해 줬을 텐데..”

 

저 때문에 아빠랑 엄마가 싸우시는 게 싫었어요. 아빠랑 왠지 엄마랑 사이에 껴서.. 그냥 제가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너가 하도 집에도 안 오고, 말도 안 듣고 그래서 이번 사건 들었을 때 차라리 죽어버리지. 했어. 너무 서운했거든. 근데 이런 이야기들이 있을지는 몰랐구나. 미안하다.”

 

범수와 혜령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을 하나씩 나눴다. 그날 이후 범수와 혜령은 가까운 부녀 사이가 된 듯 지냈다.

 

집에 온 후 혜령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 다시 해보자. . 이번에 안 되면 이젠 그만 둘 거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나님 들으셨죠? 이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이젠 다신 안 할 거예요.’

 

각오를 다지고 혜령은 다시 일어섰다.교회에 나가고, 봉사활동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선생님이 안 와서 서운했지. 선생님이 다쳐서 못 왔어.”

 

지난번에 선생님이 얼굴붕대 감고 와서 원장님 보는 거 봤어요. 으악. 너무 많이 다쳤던데. 이제 괜찮은 거예요? 애들이 괴물이라고 난리 났었어요. 너무 충격 받아서 저도 매일 악몽 꿨어요.”

 

이제 괜찮아. 하나님이 다 낫게 해 주셔서. 선생님 이제 주말 마다 다시 올게.”

 

선생님 안 오시면 안 돼요. 제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선생님이 대학도 가라고 해서대학도 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 계속 와요. 내가 대학 갈 때까지.”

 

 

혜령은 아이의 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 해보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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