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자는 자신뿐>
요즘 전미경 정신의학과 선생님과 법륜스님 강의에 푹 빠졌다. 두 분 다 MBTI로 보면 T 성향이 매우 강하신 것 같다. 그래서 두 분의 강의를 듣다 보면 속이 다 개운하다. 오랫동안 병든 F로 살아와서 그런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경계가 참 모호했다(내 경우만 그렇다. 건강한 F 분들이 다수다.). 내가 병든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경계를 과하게 침범당해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잘못된 선택을 반복했기 때문에 건강한 경계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 내게 법륜스님과 전미경 선생님 두 분의 강의는 사막에 내리는 단비처럼 해갈을 줬다. 두 분의 강의의 새로운 것을 찾아낼 때마다 듣고 또 듣는다. 정말 재밌고 명쾌하다.
과거의 나는 인생이 꼬인 것에 대한 탓을 타인에게 돌렸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들을 미워하고 스스로를 미워했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항상 편치 않았다. 어쨌든 선택들을 한 건 나였고, 알면서 그 선택을 했던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가족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비슷한 부탁을 하면 들어줬던 것도 나였고(내 마음 편하기 위해서), 타인이 (친구, 연인, 가족 포함) 함부로 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눈을 감았던 것도 나였다. 덕분에 내면이 쑥대밭이 됐고, 비슷한 선택들을 한 스스로를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만큼 내면이 파괴됐고, 결국엔 몸까지 아프게 됐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상한 부탁을 해서 뒤집어쓰는 일도 여러 번이 있었다. 전부 다 말할 수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이곳에 적지 않을 뿐이다. 이 부분은 개인 일기장에 빼곡히 적어놨다. 그래야 돌아가고 싶어도(습관처럼), 돌아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습관이 된 우정과 사랑을 다시 되찾고 싶을 때(나는 상대를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이 들 때, 상대가 이제 변했다는 생각이 들 때), 극 처방을 내게 주기 위해 빼곡히 적어놨다. 그 글들을 읽으면 입 맛까지 사라진다. 그리고 그 글들 덕분에 내가 타인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완벽히 내려놓을 수 있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의 선택권마저 타인에게 모두 줘 버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았다. 무슨 일이(대부분 나쁜 일)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그때는 그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병들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다.
당연함의 당위를 찾기 위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불편함들을 무마시켰다. 그리고 스스로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상태(무기력한)가 되고야 말았다. 타인이 원하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무엇이든 해 내는 타인 맞춤형 슈퍼맨이 됐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때는 그래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그랬겠거니 싶은데,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면 참 안타깝다.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서다.
최근에 보고 있는 책 중 황투시안 님의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있다]라는 책이 있다. 그 책 내용 중 마음에 닿은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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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을 가장 잘 해석한 「인생 5장」이라는 짧은 시가 있다.
제1장
큰길을 걷고 있었는데
인도에 깊은 구멍이 하나 있어서
빠져 버렸다.
길을 잃었다. 절망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많은 힘을 들여서 겨우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제2장
같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인도에 깊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못 본 체하다가
또다시 빠졌다.
나는 내가 같은 곳에 빠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다시 한번 기어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3장
같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인도에 깊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그것이 거기에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래도 떨어졌다…
이것은 습관이다.
나의 눈은 떠 있었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것은 내 잘못이다.
나는 즉시 기어 나왔다.
제4장
같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인도에 깊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길을 돌아서 지나갔다.
제5장
나는 다른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모든 관계는 나에게 달려 있다 | 황시투안 저/정은지 역
[크레마 예스24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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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내가 항상 빠졌던 구멍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엔 몰라서 빠졌고, 그다음엔 어쩔 수 없이 빠졌고, 종국엔 알면서도 빠졌다. 패턴이 반복적으로 이어졌고, 습관이 됐던 관계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망쳤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렇게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었어. 가족이잖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잖아. 연인이잖아.라는 이유로 내가 질 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타인의 짐들을 지고, 땀을 뻘뻘 흘렸다. 무거운 짐들 덕분에 내 삶은 엉망이 됐지만, 마음 만은 편했다.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지 오랫동안 몰랐다. 그리고 비슷한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과 강연들을 통해 보고 들으면서 깨달았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진실. 타인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내 마음 편하기 위해서 나는 그 선택을 한 것이다. 결국 스스로를 위해서 한 선택들이었다는 걸 인정했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만나기 전, 만나는 시간 동안, 만나고난 후 항상 쓴 맛이 나는 관계가 있었다. 불편하고 불안했고, 고마운 관계였다. 이 관계를 나는 무려 15년 동안 이어 왔었다. 고마운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불편함들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것에 우정,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씌웠다.
인간관계에 대한 강의들을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좋은 관계는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관계라는 것이다.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관계는 하루빨리 벗어버려야 하는 관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인간관계라는 건 원래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 역시 어린 시절 가족과 맺었던 관계에서부터 왔다는 걸 알게 됐고, 나는 꽤 오랫동안 분노했다. 그리고 나만 관계를 위해 노력했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제야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들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말만 했을 뿐이고(들어주면 좋고, 안 들어줘도 어쩔 수 없지만, 당연히 네가 해야지.라는 태도.), 그 말 때문에 불편함과 걱정, 불안을 겪은 건 나뿐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편한 관계,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관계를 인생에 들여야 하는 관계라니. 그런 관계가 얼마나 있을까. 전미경 선생님은 강의마다 '나에게 의미 있는 타인'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게 의미 있는 타인이 누굴까 라는 생각을 했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토오루(남편)님이었다.
다행히 내겐 의미 있는 타인이 있었고, 그 타인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편한 관계,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타인이었다. 토오루(남편)님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감사의 말이 흘러나왔다. 잘못된 선택을 한 나와, 잘못된 선택들을 하도록 유도한 타인들 덕분에 내가 이 지경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선택들 덕분에 내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타인이 생긴 것이다.
여러 가지 가정을 해 봐도, 토오루(남편)님을 만날 수 있고, 맺어질 수 있는 과정은 이것뿐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자 역시 하나님의 선택과 예비하심에는 잘못된 게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났다.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 구 가족과 구 인연들 덕분에 열심히 글을 쓰고, 공부하고, 강의를 들었으니까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거겠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의미 있는 타인 중 나 자신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일을 의미 있는 타인인 내면의 나와 살아가면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타인이 질 짐을 내 마음 편하자고 대신 지지도 않는다. 연습을 통해 타인의 짐을 타인에게 돌려주는 일들을 반복해서 했다. 이 연습들을 하면서 타인도 나도 매우 불편해했다. 당연히 했던 일들을 하지 않으니 타인이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리고 당연히 내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습관이라는 관성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타인에게 짐을 돌려주는 것이 진심으로 타인을 위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런 일들을 쓰고, 생각하고, 반복하면서 오늘의 나는 드디어 편안함에 이르렀다. 이제 타인이 져야 할 짐을 내게 떠 넘기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이 가볍고, 평안하고 즐겁다. 조짐만 느껴져도 100m 이상(심리적 거리) 거리를 둔다.
나를 돌이키기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던져대고, 꼭두각시가 됐을 때 내가 가질 수 있고, 얻을 수 있다는 미끼들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선택해서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얼마나 큰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보상과 물질 덕분에 잃는 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것들과 나를 교환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경험했고, 깨달았고, 밟아왔던 길들을 알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까지 생겨났다. 관계 속에 있으면서 불편함, 불안함, 아픔,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내게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세상엔 정말 제거해야 할, 제거하고 싶은 인간들이 많다. 그 사람들을 전부 제거할 순 없겠지만, 나와 비슷한 전철을 밟는 사람들이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겠지...
그래서~ 곧. 심리학 학사 과정을 시작한다. 이 과정을 선택한 이유는 항상 말했듯 심리학 대학원에 꼭 진학해서 공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학사 과정 학점을 취득하면서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만둘 수도 있다. 그래도 시작하는 이유는 뭔가 해봤다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선택에 따른 경험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실패든, 성공이든).
삶이 끝나는 날까지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을 내게 주어진(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시간 동안 꾸준히, 조금씩 내 걸음에 맞춰해 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내게 의미 있는 타인 토오루(남편)님이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관계에 목마르지 않다. 매일 행복할 순 없겠지만 평안을 선택할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평안과 내가 정말 원했던 하나뿐인 가족인 토오루(남편)님과 행복과 감사를 쌓아간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 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는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타인 역시 타인 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나는 매일 나를 위한 선택을 해 나간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나는 나의 습관들을 도장 깨듯 하나씩 부숴간다. 하나씩 부숴가는 재미가 있다.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와 내가 멈춰야 할 곳이 어딘지 매일 공부하고, 생각한다. 내게 의미 있는 타인이 되기 위해, 의미 있는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곳에 남긴다. 오늘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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