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벌레와 나르시시스트>
집 거실에서 친환경적으로 키운 상추를 드디어 먹고 있다. 상추 샐러드 덕분에 식단이 훌륭해진다. 따로 식이섬유를 섭취하지 않아도 되니 참 편안하다. 우리 집은 식이섬유 가루를 항상 식단에 포함시켜 먹는다. 그래야 장이든, 간이든, 혈관이든, 심장이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상추를 직접 키워 샐러드로 먹으면 상추 안에 들어있는 좋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상추를 일 년 내내 쉼 없이 키우는 중이다.
일요일 점심, 남편과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들을 해서 먹는다. 고기를 굽고, 맛있는 완두콩 밥을 하고, 상추를 가득 수확해 과일을 얹어 샐러드를 만든다. 정말 맛있다.
상추 샐러드 안에 몸에 좋은 식초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넣어 영양가 좋은 샐러드를 완성한다. 응애 벌레가 생겨서 전부 버리고 새로 시작한 후, 신기하게 이전보다 잘 자라는 걸 매일 본다.
응애 벌레가 상추에 생기게 된 이유는 5년이 넘어도 꽃 한번 피지 않던 꽃나무 때문이었다. 이 꽃나무는 토오루 님 아버지께서 꽃이 피지 않는다며 화단에 버린 아이였다. 버려진 꽃나무가 나의 처지 같아서 나도 모르게 집어 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키웠다. 꽃나무를 정성 들여 보살피자 무성하게 잎이 자라났다. 금세 꽃이 필 거라 생각하면서 참 오랫동안 돌봤다. 그런데 잘 자라는 것 같다가도 푸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일들이 반복됐다. 그리고 꽃은 영영 피지 않았다.
이 꽃나무를 이사하면서 이사한 집으로 또 데려왔다. 반려 식물은 참 버리기 어렵다. 무엇보다 어려운 시기를 작은 방에서 같이 지냈기 때문에 정도 많이 들었었다. 이 꽃나무에는 오랫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응애 벌레가 살고 있었다. 토오루 님 아버지께서 버리신 이유도 응애 벌레 때문에 더 이상 잎도 자라지 않아서였다(응애 벌레 감염 때문이라는 걸 모르셨을 거다.).
완전히 앙상하게 말라버린 꽃나무를 데려와 정성 들여 보살폈다. 이 꽃나무가 무성해지다 천천히 말라죽으면서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게 됐다. 그 벌레가 응애 벌레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잎들을 하나하나 닦아보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했었다. 그런데도 남아있던 응애 벌레가 있었는지 잎이 무성해지면 어김없이 말라가고 거의 잎들이 떨어질 즈음 되면 거미줄이 툭툭 보였다. 응애 벌레 감염 여부를 알게 되는 최초의 시점은 응애 벌레가 어느 정도 자라서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을 때다.
잎이 떨어지는 걸 여러 번 반복하면서 없어진 줄 알았던 응애벌레가 또 잎이 푸르르게 무성해지자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사하면서 데려온 꽃나무를 상추 옆에 놓고 물을 줘가며 정성을 다해 또 키웠다. 그런데 그 꽃나무에 있던 보이지 않는 응애 벌레가 상추로 전부 넘어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정말 무시무시한 놈들이다. 응애 벌레를 퇴치하는 방법을 영상으로 찾아봤는데 일주일 동안 목욕실에 두고 퐁퐁 섞은 물을 뿌려가며 숨을 막히게 해서 죽이는 방법이 있단다. 흙 갈이와 화분 갈이도 필수다.
응애 벌레를 경험하면서 다방면에서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작게 농사를 지어보니 한 마리만 남아 있어도 전체 농사를 망치게 된다. 응애 벌레는 무성생식을 하기 때문에 한 마리 만으로 작물 전체 감염이 가능하다. 웬만한 방법으론 잘 사라지지도 않고, 친환경적으로 없애려다 보면 오히려 작물이 죽는다. 게다가 어느 정도 영양분을 흡수해 몸집이 커지지 않고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감염된 작물들을 들여다봐도 벌레 하나 보이지 않는데 시들 시들해지고 노랗게 변한 후 결국 말라죽는다. 한번 감염되면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나르 인간과 닮아 있다.
가장 적게 피해를 입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이 농약을 뿌려야 한다. 그러면 친환경 농사는 완전히 물 건너가는 거다. 상추를 키우기 시작한 이유가 농약 없는 채소를 먹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결국 최종 선택을 했다. 오랫동안 키우던 꽃이 피지 않는 꽃나무와 상추 30폭 -40폭을 전부 정리했다. 마음이 아팠다. 들인 시간과 노력들이 전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친환경적으로 없애보려고 친환경 제거제를 사서 가득 뿌렸는데 응애 벌레와의 싸움에서 졌다. 도통 없어지질 않아 내 마음에도 생채기가 생겼다.
2달 동안 자라지 않았던 상추를 들여다보다 전부 정리하고 씨앗을 새로 뿌렸다. 그렇게 시작한 작물들은 한 달 만에 이전의 경험이 무색할 만큼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응애 벌레를 퇴치하는 방법은 새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응애 벌레가 상추 뒷 면에서 보이지 않게(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상추가 거의 죽어갈 즈음 통통해진 응애 벌레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천천히 상추의 양분을 빨아먹고, 상추가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악성 나르인간도 나르 인간이 선택한 인간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영양분을 쭉쭉 빨아먹는다. 죽을 만큼 괴롭 하지만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나르 인간이 상대를 파괴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려면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드러나지 않게, 교묘한 방법으로 좋은 사람에게 붙어 천천히 그 사람의 영양분을 흡수한다. 나르인간이 선택한 인간이 거의 파괴될 즈음 그제야 가면을 벗어던지고 의기양양하게 착한 인간을 완전히 먹어 버린다. 식물을 키우면서 응애 벌레가 참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한번 닿으면 피해는 어쩔 수 없이 입게 되고,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한 식물이든 인간이든 자라지 않는다. 두 달 동안 단 1cm도 자라지 않았던 걸 봐왔기 때문에 별 기대 없이 씨앗을 뿌리고 한 달을 보냈다. 심은지 25일 즈음돼서 보니 벌써 먹을 만큼 무성하게 자라있다. 너무 놀랐다. 너무 아까워서, 열심히 자라고 있는 게 기특하고 안쓰러워서 지켜보던 상추들이었다. 그러다 오늘의 상추들을 보니 늦게 뽑아버렸던 것이 오히려 시간을 더 낭비하게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악성 나르시시스트 인간이든, 응애 벌레든 아주 빠르게 인생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걸 식물을 키우면서 다시 깨닫는다. 이전의 아픈 경험들은 오늘의 새로운 시작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상추 샐러드를 먹으면서 응애 벌레와 싸웠던 지난 나날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겪었던 일화들도 함께 떠올랐다. 인생에 응애 벌레를 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수확한 상추를 입에 넣으며 다짐하고 또 생각했다.
오늘 수확한 상추들은 달콤하고, 새콤하고, 신선하고, 개운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먹으니 맛도, 즐거움도 배가 됐다. 인생에 무엇을 들여갈지 천천히 생각 중이다. 지금까지 아주 빠르게 걸어왔으니, 천천히 느리고 기어가는 것도 괜찮지. 나는 오늘도 내 속도로 천천히 걷.. 기어간다. 매일매일이 소중하고, 즐겁고, 평안하고, 행복하다.
하나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오늘 예배에서 또 깊이 만나요. 나는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평안한 것이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 행복을 지속하며 인생을 채워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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