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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다>

<활력있는 삶을 위해>



[사진 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

우울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심리학 강의를 듣다가 ‘우울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나도 그렇지만, 우울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행복’을 꿈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울의 반대가 꼭 행복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행복이라는 것은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때로는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오랜만에 몸 상태가 참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오늘은 유독 활력이 돌았다. 그래서 간단한 운동 겸 외출을 나섰다. 김밥 몇 줄을 사고, 대학 교정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밥집은 아직 준비 중이었고(나는 익숙한 곳만 간다), 대학 교정은 햇빛이 너무 강해서 오래 걷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결국 김밥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향하던 길, 우연히 헌혈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생긴 이 활력을 좋은 일에 써보면 어떨까 싶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활력이 있다는 건 다른 모험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타인을 돕고 싶다는 마음의 에너지가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도 버거워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보내곤 했으니, 오늘 이 감각은 참 특별하게 느껴졌다.

  헌혈의 집은 거의 1년 만의 방문이었다. 얼마 전, 요즘 헌혈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말처럼 안에는 사람이 드물고 직원 분들만 가득했다. 혈압을 재고 간단한 피 검사를 받았는데, 혈색소 수치가 아주 좋다는 말을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 헌혈을 하며 팩을 바라보는데, 400ml를 뽑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간호사님께 여쭤보니 400ml가 기본 옵션으로 바뀌었다며, 선택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그런 안내를 받지 못했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곧 생리 예정일이 다가오는 터라 걱정이 됐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간호사님께서 “요구르트 한 병 더 뽑는 거예요.”라고 하시며 웃으셨지만, 그 말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산부인과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보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성의 일주일 동안 총 생리량이 요구르트 한병보다 많을 경우 자궁 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다음에는 꼭 320ml로 해달라고 미리 말씀드려야지’ 하고 메모장에 적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 손으로 천천히 헌혈 볼을 쥐었다 폈다.

  헌혈을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피를 받는 사람은 꽤 좋은 피를 받는 거 아닐까?’ 지난 3년 동안 나는 여행은 물론 외부 음식도 거의 끊고, 매일 10가지 이상의 영양제를 챙겨 먹었고, 4시간마다 비타민C 3000을 복용하며 철저히 관리해왔다. 몸을 이렇게까지 챙기게 된 건, 바로 그 3년 동안 병치레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고통이 신체적 증상으로 옮겨와, 정말 많이 아프고 힘든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지나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오늘의 활력을 얻게 된 것이다.

  직원분이 별다른 설명 없이 400ml를 선택한 것도, 내 혈액 수치가 매우 좋아 보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임신 경험이 없기에 비예기 항체도 없고, 혈액 관련 질환도 없다. 그래서 내 피에 대해 나름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

  헌혈을 마치고, 다이소 쿠폰과 편의점 쿠폰, 그리고 과자 하나를 챙겨 건물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푸른 풀밭 위로 아이들이 소풍을 와서 웃고 있었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던 지난 시간 동안에도 세상은 여전히 제 속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 흐름 안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낡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예전보다 건강해진 몸과 마음 덕분에, 나는 오늘을 살아갈 힘을 다시 얻게 되었다.

  지난 3년간 나는 몸과 마음의 병을 깊게 앓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 지내며, 천천히 나 자신을 다시 찾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울을 지나 활력을 되찾은 지금의 나는, 그 시간 덕분에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믿는다. 과거의 나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타인의 인정과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신념에 사로잡혀 살았다. 어린 시절, 살아남기 위해 친척들의 눈치를 보고, 사랑받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떠맡던 시간들이 많이 있었다. 그 모든 기억들을 마주하고, 나의 핵심 신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었을 때, 분노와 슬픔,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타인의 기준으로 내 시간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심리상담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두 가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첫 번째는 “너는 너의 인생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는가?”, 두 번째는 “그 행복을 타인을 위해 나누었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내 행복을 자주 희생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도, 타인도 행복하지 못했다.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관계 중독과 보살핌 중독이라는 이름의 고통을 얻었고,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하나님이 ‘너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를.
자기 사랑 없이 이뤄지는 사랑과 희생은 결국 무너진다. 내 안에 자율성과 독립성이 없는 타인을 위한다며 희생만 하는 건, 결국 모두를 지치고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천국에 가기 위한 질문 두 가지 모두에 부정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최근 열흘 동안 심리학 보고서를 쓰며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보고서에는 스스로의 삶을 적용해 서술해야 했기에, 나는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타인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시기에 심리학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불행도 지나고 보면 꽃길이라는 말. 매일이 꽃길일 순 없겠지만, 오늘의 활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은 내가 가진 활력과 평안을 헌혈이라는 방식으로 세상과 나누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글을 쓰며, 오늘의 기록을 그렇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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