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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복날 잔치를 하면서>



기영이 숯불 통닭, 아보카도, 자몽, 상추 들깨 아몬드 샐러드, 버터식빵구이, 감자칩, 식초 무, 쌀밥을 준비해 복날 잔치를 했다. 이 맘 때 다들 닭 한 마리는 거나하게 먹는다고 하니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선물하고 싶었다.

닭은 기영이 숯불 통닭이라는 곳에서 주문했다. 배달 온 닭 요리를 보고 남편이

"어쩐 일로 배달을 시켰어?"

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시판 소스에 볶은 닭 요리 맛은 집에서 아무리 흉내 내려 해도 조금.. 다르지.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은 복날이니까~!"

라고 답변했다.

씻고 나온 남편과 맛있는 저녁을 양껏 먹었다. 둘이서 접시를 모두 비우고, 잔뜩 부른 배를 두드리며 한참 웃었다. 식사 후 식기세척기에 몽땅 나온 접시들을 모두 넣고 차 한잔을 했다.

별 것 아니지만 함께 작은 날들을 축하하고 채워가는 것이 참 즐겁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잔뜩 긴장해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온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과 부드러운 말투, 경청을 선물한다.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우리는 각자의 하루와 선택들을 응원한다.

응원은 역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게 가장 좋다. 언젠가  '이 세계 식당'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들(인간, 리저드, 용 등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이 먹는 것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게 된다. 하루 종일 일하고, 싸워 얻은 돈으로 이 세계 식당을 찾아 돈을 다 쓰고 간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 일본 드라마 중 '심야 식당'만 봐도 먹고 싶은 음식이 맛있기까지 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과 만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요리를 주제로 한 영화, 드라마, 소설, 애니메이션이 정말 많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에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들을 유튜브를 통해 공부하고, 기록으로 남겨 저장한다. 요즘 요리법들을 모두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으면, 쉽고, 간편하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참 축복받은 세대를 살 고 있다. 게다가 요리 레시피는 저작권에도 안 걸린다.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는 약 50여 가지. 이 레시피들만 가지고 있어도 그 안에서 모두 해결 가능하다. 뭘 먹고 싶냐고 물어도 재료와 양념이 거의 비슷해서 30분 내로 만들 수 있다.

남편은 자주 집에 자신 만을 위한 식당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음식이든, 뭐든 남편의 선택을 존중하는 편이라 항상 먼저 묻는다. 아무리 좋은 것도, 맛있는 것도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줘야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서다.

가령 남편이 텀블러를 구입해야 한다고 해 보자.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제품은 써모스 제품 중 350ML 용량이라고 한다면, 남편은 예쁜 캐릭터가 들어있는 중국산 제품을 갖고 싶어 한다. 두 제품의 제품력 차이가 엄청나는데(보온 시간, 재질, 완성도 등) 가격은 동일하거나 캐릭터 상품이 오히려 더 비싼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사용할 걸 생각하면 써모스 제품을 구입하라고 말하고 픈마음이 든다. 그래도 남편이 원하는 제품이 캐릭터 상품이면(유명한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그려진) 남편의 선택을 존중한다. 최근 남편은 아주 멋진 캐릭터가 들어간 텀블러를 샀고(유명한 애니메이션의 한정판), 매일 그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출근한다.

인간은 스스로 한 작은 선택들을 통해 자립과 자존감, 자기애를 완성해 가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으로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좋은 직업을 얻게 된 사람들 중 다수가 오히려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오랫동안 누군가 대신 선택해 주고, 의존하도록 했던 상대 덕분에 얻은 인생은 스스로 뭐든 할 수 없을 거라는 무능감과 자존감 결여, 우울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남들이 보기에 좋은 삶은 빛 좋은 개살구 일 수 있다. 연구 결과들을 보면 헬리콥터 부모의 선택으로 얻게 된 훌륭 <?>한 삶을 사는 분들이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술, 마약, 도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기록한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예전에 과외하면서 만난 학생과 카페에 간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천사 같고 예쁜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아이는 카페에 가자 자신의 언니에게

"언니 내가 뭘 먹을까? 언니는 뭘 먹고 싶어?"

라고 물었다. 이미 그 언니는 자기가 먹을 것을 골랐는데도, 아이는 언니가 자신의 음료를 먹을 것을 생각해 언니의 선택을 기다리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이에게

"네가 먹을 건데 왜 언니에게 물어? 네가 먹을 음료는 네가 원하는 걸로 고르는 거야."

"맛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경험이 되니까. 괜찮아. 다음에는 안 먹으면 되지. 또 알아? 엄청 맛있을 수도 있잖아."

라고 대화를 나눴던 때가 있다.

의지, 의존은 굉장히 좋은 단어지만, 선택에 있어 의존은 스스로에 대한 무능감을 가지도록 만들 수 있다(어린아이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의존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의 선택은 믿을 수 없고, 똑똑한 누군가가(부모님 등) 대신해 줘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면 스스로의 무능감과 자기애 결여로 이어진다.

인생에 모든 자갈을 누군가 치워줄 수 없듯 인간관계에서 겪는 고통과 살아가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은 결국 그 사람을 완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러니 고통과 슬픔을 통해 성장하는 기쁨이 오히려 인생에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 선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토오루(남편)님의 어떤 자갈도 치워주지 않는다(함께 치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를 진심으로 믿는다는 신뢰와 믿음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다.

사실 나처럼 코디펜던트(돌봄 중독자) 병을 오래 앓았던 사람은 타인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정말 힘들다. 타인 삶에 깔린 자갈들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치워주면서 상대가 의존하도록 만드는 병이 코디펜던트 병이기 때문이다. 상대는 코디펜던트(돌봄 중독자)에게 의존하고, 코디펜던트는 상대의 의존에 의존하는 그 형태가 병적인 상호 의존이다. 오랫동안 상호 의존에 머물렀던 경험이 다수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매일을 산다.  

뭔가 필요할 것 같고, 주고 싶은 게 있어도 상대에게 먼저 묻고 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주고 싶어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내 병도 고치고,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토오루(남편)님이 원하는 사랑을 주면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더 행복해졌다. 나를 알아가고, 토오루(남편)님을 매일 알아간다. 우리는 12년을 함께 했지만 아직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실수도 많아 사과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매일 한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 만의 복날 잔치를 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 마일리지를 쌓았다. 행복한 저녁식사였고,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고맙습니다. 하나님. 고마워요. 토오루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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