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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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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가 얼마만큼 가벼울 수 있을까.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 덕분인지 이상한 꿈을 꿨다. 오랫동안 복잡한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았던 모양이다. 전혀 일어난 적도 없는 꿈을 꿨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꿈이었는데 너무 생생해서 꿈을 되돌아본다. 꿈속에서 나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어 아버지의 집에 있었다. 내가 스무 살이 됐다는 걸 안 건 방에 있는 동생에게 이곳을 벗어나자며 이제 내가 성인이 됐으니 뭐든 먹고살 수는 있을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는 아버지 집에 방문한 것 같았다. 외출했던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왔고, 안 방으로 들어간 아버지를 뒤로 하고 새어머니가 거실에 있는 나를 뒤돌아 봤다. 그리고 그 순간 잠깐 불이 꺼졌다. 불이 꺼진 찰나의 순간에 새어머니는 내 뺨을 세차게 두 번 때렸다. 꿈속에서도 정신이 퍼뜩 들 정도로 엄청난 뺨 세례였다. 눈알에 불이 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느낌을 알고 있는 건 어릴 때 자라는 동안 키워주신 어머니께서 자주 뺨을 때리셨기 때문이다. 아무튼, 뺨을 두대 때린 후 불이 켜졌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새어머니는 나를 껴안고 아버지 곁으로 갔다. 나는 얼얼한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아버지 근처에서 그녀와 서성였다. 이제 막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느라 안 방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새어머니는 거실로 나와 밥상을 차렸다. 거기에는 막내 동생과 새어머니의 막내아들이 앉아 있었다(막내 동생은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이다.). 동생이 방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동생의 방에 들어갔다. 동생은 꿈속에서도 여전히 밥을 잘 얻어먹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동생의 방 안에서 거실이 투명하게 비춰 보였다. 새어머니는 오색깔의 빈 유리병들을 잘게 부숴서 밥과 섞고 있었다. 그 밥을 내게 먹일 거라고 했다. 그녀가 오색 유리 밥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동생에게 새벽에 이 집을 벗어나자고 했다. 이제 더 이상 학대 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밥을 먹으라고 새어머니가 나를 거실로 불렀을 때 나는 그녀 곁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건네준 밥그릇을 들고 밥 숟가락으로 밥을 가득 푼 다음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의 목구멍에 가득 넣었다. 넣는 행위가 컸는지 내 입 안에도 작은 유리 조각 하나가 들어와서 어금니에 씹혔다. 그녀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한 후 동생의 방에 들어와 치아에 박힌 유리들을 빼내면서 반드시 오늘은 이 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일어난 지 한참 지난 후에도 유리 조각 밥을 한 움큼 먹었던 새어머니의 표정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꿈에서 깬 후 오색 유리밥과 새어머니의 표정, 동생의 쓸쓸한 뒷모습, 안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전화를 붙잡고 뒤돌아서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 무슨 일이 있건 맛있게 식사하고 있는 막내 동생과 새어머니의 막내아들이 생각났다. 꿈이 정말 이상하고, 어이가 없어서 한참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왜 이런 꿈을 꾼 것일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혀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었다. 나는 동생과 어릴 때부터 다른 집에 살았고, 각자의 집에 살면서 각자 집에서 이뤄지는 정서적, 신체적 폭력을 감당하며 살았다. 동생이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누구도 동생을 구해주지 않았다. 그 당시엔 아동 폭행이 친고죄였는지 경찰들도 결국 새어머니를 벌하지 못했다. 동생과 나는 10개월 터울로 태어났기 때문에 꿈에서처럼 내가 동생을 구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그걸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야 다시 깨달았다.


동생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걸 나를 되돌아보면서 더 많이 실감한다. 그러면서 의문인 건 나는 왜 동생에 대한 지울 수 없을 만큼의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점이다. 사실 이 의문도 최근에서야 든 것이다. 그전까진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려웠고, 당연하게 동생에 대한 미안함을 마음에 짐처럼 지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동생을 보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최근에서야 동생의 아픈 과거는 내가 책임질 부분도 아니고, 책임질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릴 때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는 새어머니께 전화를 걸게 해 동생을 또 때리면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말하라고 시키셨다. 그때는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받으면서 했기 때문에 전화를 해서 큰 소리로 새어머니께 이야기했지만 이 일로 오랫동안 새어머니께도 아버지께도 욕을 먹었다. 어린놈이 싹수없다는 말로 시작되는 말이었다. 아무튼 사실 그 말은 어른들이 했어야 하는 말이었는데, 새어머니와 중립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어른들이 직접 할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새어머니와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는 자주 돈거래를 했고, 새어머니와의 관계 안에서 거래되는 돈 액수가 꽤 컸을 거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래서 가족, 친척들 모두 동생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고, 방치, 방임했다. 덕분에 현재 동생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거다. 아무튼 나는 꿈속에서 동생을 구하려고 하는 나를 봤다. 구할 수 없었던 무력감과 미안함들이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 곰팡내가 나고 있었다. 사실 나도 그 당시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 말이다. 정말 은혜고, 감사할 일이다.


꿈속에서 나는 동생을 구하고 싶었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꿈속의 나는 다행히 스무 살이 된 어른이었고, 동생은 아직도 중학생이었다. 내 기억 속 동생도, 나도 오랫동안 상처받은 그 자리에서 그 나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최근에서야 나는 무의식 세계에서 내가 스무 살이 됐다는 걸 알았는데, 오늘 아침 꿈속에서 스스로 스무 살이라는 걸 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최근 2년 동안 3살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꿈속에서 그 나이 대의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중학교 모습에서 계속 머물렀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시절에서 머물면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고, 당시에 친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이 기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얼마 전엔 대학을 어떻게 졸업하지 라며 고민하는 나를 꿈에서 만났다. 꿈에서 깨기 전에야 내가 대학을 졸업한 걸 넘어 대학원까지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학 생활을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항상 막막했기 때문에 다시 다녀야 한다면 정말 불가능하다.


동생을 만나고,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동생을 지켜줘야 했을 아버지는 동생이 학대 속에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치했다. 오히려 동생을 학대했기 때문이라며 술을 마시고 새어머니를 때렸고, 그 이유로 새어머니는 아버지가 나가시면 동생을 때렸다. 그 일을 아주 오랫동안 반복했다. 동생이 방학이 되면 내가 살고 있는 시골에 왔었는데 나도 동생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챙겨주지 못했다. 나는 언니였지만 동생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없었다. 동생이 학대를 피해 시골에 오면 내겐 또 다른 정서적 폭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과거에 동생을 만나면 동생은 자주 시골에 갈 때가 천국 같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때가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웠다고. 반면 나는 동생이 오면 언제든지 아버지 집으로 내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밤을 보내야 했다. 핑계지만 그래서 나는 동생의 방문이 반갑지 않았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언니가 되어주지 못했다. 내 앞길 열기도 막막했다.


꿈속에서 오색 유리 밥을 새어머니 목구멍에 가득 넣어주고 삼키게 한 후, 동생 방에 들어와 동생 손을 잡아끌고 나가자고 했던 나는 꿈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이다. 나는 동생을 구해준 적도 없었고, 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꿈에서라도 죄책감을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꿈속의 나는 정말 좋은 언니였다. 실제와 다르게 말이다.


꿈에서 깨고, 한참 생각했다. 뒤돌아서 전화 통화만 하고 있는 아버지는 실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픔을 핑계 삼아 자기 아이들도 지키지 못했고, 새어머니의 아이들도 사랑해 주지 못했다. 그가 한 것은 돈을 무조건 많이 버는 일이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은 책임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 당시에 보통 사람이 벌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버셨다. 덕분에 친구도 많았고, 친척과 구 가족들, 새어머니의 가족들까지 돈으로 책임지는 일이 많았다. 그랬던 아버지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덕분에 자기 자녀 세대에 자신의 아픔을 유산으로 물려줬다. 그리고 덕분에 나도, 동생도, 새어머니의 자녀들도 마음에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생겼다. 그리고 나를 키워주셨던 두 번째 부모님들 역시 내가 당하는 학대를 알고 있었고, 눈으로 보고 있었음에도 방치, 방임했다. 아무래도 친 자식이 아니기도 했고, 친 아버지가 신경도 안 쓰는 자식이니 다른 친척들이 어찌하든 자기 자식들만 잘 챙기면 된다가 아니었나 싶다. 그건 이제 부차적으로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 해야 하는 일, 해야 했던 일들을 구별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내 책임이 아닌 것들을 떠맡아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타인을 책임지고 나를 희생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숱한 사람들을 책임지고 앞장서서 그들을 도와주면서도 나를 돕지는 않았다. 나를 돕고 나를 위해 사는 일에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에 나를 위해 살라치면 내가 나를 벌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시험을 일부러 망치거나, 이상한 사람을 선택해서 개고생을 하거나, 몸을 아프게 만들어서 계속 병원을 전전하거나 하는 다양한 처벌을 해 왔다. 이것도 지난 2년 동안 나를 정리하면서 알게 된 거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 많다. 심지어 나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일도 많다. 그래서 착하게 사는 일이 오히려 바보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착한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용해 타인의 인생을 갉아먹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을 내어주는 사람도 사실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도 모르는 죄를 씻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책 덕분인지 꿈속에서 다양한 유형의 이야기를 만난다. 책은 사람의 무의식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달아가면서 만나는 사람, 듣는 말, 보는 것들을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동생을 구해주지 못해 미안했던 과거를 나름 정리해 본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었다고. 그건 아버지가 해결해야 했을 문제라고. 그리고 과거가 어찌 됐든 이제 동생도 나도 현재의 자신과 현재의 가족을 책임지면서 더 이상 고통의 유산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고통을 주는 가족들로부터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나를 탓했던 과거 속에서 이제는 나는 나를 용서했다. 그럴만했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가 배웠고 믿었던 종교 안에서 가르침을 준 분들은 하나 같이 용서해야 한다고. 원수가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내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은 무조건 용서해야 하고 받아들이고, 효도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나는 내게 고통과 아픔을 주는 가족을 혼자 용서하고 그 안에 머물면서 내게 엄청난 고통을 줬다. 그 대가는 내가 나를 파괴할 만큼의 미워하는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선택을 한 나를 용서하기가 어려웠다. 뭐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나는 나를 용서했고, 다만 그들을 용서했는지는 모르겠다. 용서했다고 말하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용서가 뭔지도 모르겠고, 용서를 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그대로 흘러가도록 두기로 했다. 이왕지사 하나님이 주신 선물 같은 일이니 그분이 알아서 하시고, 알아서 쓰시겠지 라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그래선지 요즘은 마음이 참 가볍다. 내게 용서해야 한다고 구박하는 내가 사라지니 오히려 삶이 참 평안하다.


안타까운 일을 당한 나, 그리고 동생, 더 나아가 불우한 아동기를 가진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무겁다. 이제는 그 마음들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그분께 맡긴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신께 맡기라고 그래도 된다고 하셨으니 과감히 그분께 내려놓는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내가 내 편이 되어 잘 살아가려고 한다. 사랑하지만 한 순간도 동생이 원하는 사랑을 주지 못했던 것이 참 미안하다. 현재의 나는 동생과 만나는 것도 구 가족과 만나는 것도 다 포기하고 살고 있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내가 할 수 있고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동생. 그리고 나. 이제는 우리 각자의 인생을 아름답게 열어가자. 기도할게. 나도 너도 파이팅. 이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제대로 책임지며 살아갈 거다. 누군가의 책임을 대신 지느라 내 인생을 굽이치게 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다. 그러니 내게 책임을 전가하던 구 가족 여러분 각자 알아서 살아갑시다. 나도 내 인생이 여전히 덕분에 쉽지 않아요.

과거를 기반으로 나는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거다. 용서를 했든 아니든, 내가 용서를 하든 아니든 그들은 잘 살아갈 테니까 내가 힘들여 용서할 필요 없다. 내가 무겁게 느끼는 용서도 하나님께 맡긴다. 언젠가는 되겠지 라며.

#용서하지않아도괜찮아
#나는내가책임진다
#진짜나로사는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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