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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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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편이 내게 물었다.
"왜 여행을 안 좋아해? 남들은 휴가면 해외든, 국내든 가고 싶어 하는데 항상 자기는 집 근처에서만 놀자고 하고.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신혼여행도 국내로 (영종도?) 가자는 내게 남편은 어느 날 진지하게 물었다. 남편의 말에 나는 꽤 오랫동안 여행을 왜 불편하게 느끼게 됐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여행이 불편할까. 하루 떠나는 여행에도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면 어김없이 며칠을 누워있어야 했다. 나는 왜 여행이 불편해진 것일까.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내가 그녀에게 온 순간부터 매일 나를 원하지 않으셨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는 어머니의 의사를 묻지 않으시고 나를 그녀 앞에 데려 앉혔다. 그렇게 아버지는 나와 할아버지를 어머니께 떠맡겼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침에 깨울 때부터 매일 마주할 때마다 자신의 굴곡진 운명을 탓하실 때가 많으셨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머리 검은 짐승'이 되어 있었다(머리 검은 짐승은 데려다 키우는 게 아니라는 말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는 매우 마음이 보드라웠던 사람이었고, 죄책감과 죄의식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덕분에 원치 않으신다 말씀하셔 놓고도 매일 아픈 나를 보살피고, 매일 술을 마시고 욕지거리를 해대는 할아버지를 살뜰히 모셨다. 따뜻한 밥과 깨끗한 옷과 침구로 그녀는 나와 할아버지께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더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있다. 인간에겐 5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다는데(5가지 사랑의 언어 책 중에서) 특히 나는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사주고, 좋은 곳에 데려가고, 맛있는 것을 먹게 해 줘도 애정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의 말이 가장 중요했다. 맨 밥에 김치만 매일 먹어야 한다고 해도,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단 한마디에 목이 마른 사람이 나였다. 덕분에 숱하게 바람둥이, 사기꾼, 나쁜 놈에 취약했다. 그래선지 살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상처에 노출될 때가 많았다. 말로 박힌 상처가 빠지지 않아 오랫동안 고생하고 또 고생했다.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 말로 받은 상처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물지 않아서다.
나를 원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나를 데려왔을 때 이미 3살 터울의 아들을 키우고 계셨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아이를 한 명 더 낳으셨다. 어머니는 바다에서 자랐고, 매년 때가 되면 바닷가에 있는 친정 집에 일주일 혹은 그보다 더 긴 기간 아이들과 함께 집을 떠나셨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그때 홀로 남겨진 할아버지와 함께 집을 지키면서 참 많이 울었다.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여름이든, 가을이든 여행을 자주 떠나셨다.
"할아버지 왜 나는 엄마가 안 데려가는 거야?"
" 너만 안 데려간 게 아니라, 나도 집에 있잖아."
그렇게 우리 둘은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여러 날 집을 지켰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새까맣게 탄 피부의 껍질을 벗겨내며 즐거운 소리를 질렀다.
"이번 여름에는 햇빛이 너무 따가워서 이렇게 많이 탔어."
상대적으로 하얀 살결의 내 피부와 동생의 피부는 내 감정처럼 더 붉게 대조를 이뤘다. 동생의 탄 피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냄새를 그리워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바다의 짠기가 참 싫었다. 그래서 어쩌면 어른이 되고서도 바다에 가지 않았었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그런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나. 어머니와 아이들이 짐을 챙겨 집에 도착한 승용차에 올라타셨다. 그때 나는 승용차 옆에 한참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들을 배웅했다. 얼마나 부럽고 마음이 따갑던지 자동차가 출발해 집을 나설 때 나는 자동차를 뒤따라 달렸다. 혹시나 멈춰줄지도 모른다며 달리고 또 달렸다. 백여 미터를 달렸을 때 숨이 차서 멈췄고, 집에 돌아왔다. 그들이 떠난 후 집에 돌아와 홀로 남겨진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눈물을 닦았다.
11살 무렵 어머니의 친정 바다에 간 적이 있다. 방학이라 다른 사촌들과 친동생까지 모두 함께 바다로 휴가를 갔다. 그때의 기억이 어린 시절 길게 간 휴가의 두 개 중 하나의 기억이다 (다른 하나는 사촌들까지 모두 함께 어머니의 친구분을 따라 강가로 캠핑을 갔었다.). 그때 봤던 아름다운 바다가 지금도 마음에, 머릿속에 남아있다.
마침 여행을 준비할 때 새어머니가 친동생을 시골로 보내셨다. 그래서 바닷가 여행에는 친동생도 함께였다. 나는 방학 때마다 던져지듯 시골로 오는 친동생에게 따뜻한 언니가 되어주지 못했다. 동생이 올 때마다 어머니와 친척들이 동생과 함께 친 아버지 댁으로 돌아가 버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나에게 위험 요소가 된 것이 친동생의 방문이었다. 덕분에 친동생은 언니인 나에게 따뜻한 애정을 받지 못했다. 나도 동생도 오랫동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왔다.
그게 자라고 나서도 한참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래서 동생은 친언니인 나보다 사촌 언니를 더 좋아했고, 그 언니를 따라 사이비 종교에 발을 들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그리고 자주 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그녀도 어렸지만 나도 매우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 동안, 그리고 여러 번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럼에도 그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다. 동생은 깊은 상처만큼 사이비 종교에 심취했고, 그 안에서 자신 만의 가족을 찾았다. 나는 동생을 볼 때마다 치유의 열쇠는 스스로가 갖고 있기 때문에 타인이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여행에 대해 생각하면서 참 많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즐거웠던 기억, 아팠던 기억, 억울했던 기억 등 다양한 기억들이 여행이라는 단어와 함께 줄줄 말려 나왔다.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가 된 걸까.
남편 말대로 지금도 나는 여행보다는 집에서 편안하게 있는 게 좋다.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옥상에 앉아 평안한 오후를 만끽하고, 거실에 앉아 향긋한 차를 마시는 게 좋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내 집 앞마당이라며 외치며 걷는 대학 캠퍼스가 좋다. 대학 캠퍼스가 집 근처인 덕분에 아름다운 조경 아래 우리는 멋진 산책을 매일 할 수 있다.
진짜 내 가족이 생긴 후 나는 매일 평안함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아 간다. 그리고 나의 행복을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 행복은 내가 챙겨야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 줘야 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매일 내게 박히듯 이야기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 디올 립스틱 하나를 샀다는 건 안 비밀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건 살인 사건 피해자로 오랫동안 PTSD를 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보다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있는 것이 불편하다. 그러니 어린 시절이든, 다 자라서든 경험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거다. 여행과 삶에 대해 떠올리면서 오늘의 나는 더 이상 여행이 불편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매일 사는 삶이 여행이고, 오늘의 평안함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선택한 오늘이 좋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매일이 좋다.
오늘까지 남편과 함께 산지 딱 1년이 됐다. 벌써 1년이라니. 참 빠르게 지나갔다.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여행을 불편하게 느끼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그냥 오늘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감사하다. 삶이 여행이니까. 나는 새로운 오늘을 여행처럼 맞이한다. 그리고 더 이상 여행을 불편해하지 않을 거다.
이제는 내 행복을 온전히 책임지고 선택할 거고,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 거라고 내게 다짐했다. 타인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 하든, 무엇을 먹든, 어디에 가든, 누구와 함께 하든 내가 행복한 게 우선이다.
이 글을 혹시 읽었을 당신도 당신의 행복을 남에게 맡기지 않기를.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오직 당신이니 말이다.
나는 오늘도 내 행복을 선택한다. 나는 나와 함께 잘 살아가기로 했다.
#오늘의행복
#나를책임지기
#내행복을내가선택하기
#나는나와함께잘살아가기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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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하여
2023. 12. 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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