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를 기억하는 사람>
나를 기억하는 사람, 기억해 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예전엔 매년 11월 11일에 작은 선물을 언니와 서로 주고받았던 것 같다. 그러다 몇 년 사이 내가 모든 인간관계를 내려놓으면서 언니에게 선물을 서로 그만하자고 부탁했다. 그렇게 언니와도 1년 넘게 얼굴을 보지 않았다. 최근의 나는 내게 집중하느라 대부분의 사람들과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툭 하고 내 감정이 파도처럼 휩쓸려 나와 상대까지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관계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나도 상대도 당황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관계를 중단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몇 년 사이 나는 타인과는 멀어졌을지 몰라도 나와는 정말 많이 가까워졌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 동안 스스로와 시간을 보내고, 생각을 하고, 생각들을 정리해 나가면서 나는 이제 내가 정말 좋아졌다. 예전엔 스스로가 너무 밉고 싫어서 타인을 바라보는데 힘을 쏟았는데, 이제는 내가 너무 좋아서 매일의 시간이 즐겁고, 평안하다.
오늘의 글은 언니에게 받은 선물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언니와 마지막으로 만나고 대화를 나눈 것도 1년이 넘은 것 같다. 마지막에 봤을 때 레스토랑에도 가고, 비싼 커피숍에도 갔던 것 같은데. 기억은 어제 같은데, 벌써 시간은 기억보다 훌쩍 지나있다.
언니의 손 편지를 읽었다. 자기가 써보고 너무 좋아서 샀다는 언니의 랑콤 립밤. 예전엔 너무 비싸서 사볼 엄두도 못 낼 화장품들을 언니 덕분에 참 많이 사용해 봤었다. 언니 덕분에 경험한 것들이 참 많다. 배려심 많고, 생각이 깊고 많은 언니는 다양한 부분에서 나와 통하는 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언니의 인생에 깊게 관여하고, 언니의 인생이 잘 되길 바라면서 나는 너무 많이 언니에게 개입할 때가 많았다. 언니가 해야 할 일도 내가 하고 있을 때도 있었고, 뭔가 좋은 게 생기면 제일 먼저 언니에게 갖다 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어쩌면 언니는 시누이가 아니라 친구로 만났다면 영혼의 단짝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고 과거엔 생각했다. 그렇게 언니의 인생에 나도 모르게 책임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상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언니와 참 아름다운 추억이 많다. 산책도 많이 갔고, 쇼핑도 가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언니가 데려가서 가볼 수 있었던 특별한 카페와 음식점도 많았다. 언니는 예술가 눈을 가졌고, 한눈에 봐도 교양 있는(교양이 느껴지는) 여자였다. 그래서 나는 참 언니가 멋지고 좋았다.
이번 선물을 받고, 좋은 립스틱을 사용하면서 나를 생각했다는 언니는 여전히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양한 면에서 언니를 미워하고 상처 입힐 때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언니는 여전히 나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나를 기억해 주고 있었다. 예전에 소시지를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좋아하는지.라는 그녀의 글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한 심리학 강의 중에 한 내용이 떠올랐다. 10년 넘게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만났는데, 여전히 국밥 좋아하냐는 물음에 울컥해서 그 자리에 서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걸 잊어도 상대의 취향과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주는 건 사람을 얼마나 뭉클하게 만드는가.
그럼, 최근에 내가 사용해 본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도 내가 좋다고 느끼고,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 선물을 준비했다.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내일 글에 게시할 예정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구나. 그 사이 언니의 아이는 벌써 두 발로 서고 옹알이를 하는 듯하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봤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름다운 날들, 진짜 나를 찾아가는 날들을 보내면서 아주 오랜만에 나를 여전히 기억해 주는 사람 덕분에 뭉클했다. 그래서 잘 먹지도 않는 과자를 새벽에 먹으면서 감상에 젖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어디쯤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숱한 사람들이 말했던, 나를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모험이고, 인생이라는 말을 드디어 실감한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아무 일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일인지 이제 알겠다.
선물 고맙습니다. 제 선물도 기대해 <?> 보셔요 ㅎㅎㅎ 오늘을 온전히 보내면서 남편과 신나게 보내야겠다. 아,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이 먹고 싶다는 김밥을 만들고, 어묵 꼬치 국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 이 내용도 다음 주에 게시 예정. 밀린 글들이 정말 많은데.. 천천히 하나씩 써 가야지.
기록을 매일 하는 이유는, 오늘, 그리고 내일의 나를 위해서니까. 꾸준히, 천천히, 기록과 함께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