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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해도 엉망이이도 괜찮아>



  머리가 복잡할 때 자주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봤다. 그래서 20대에 혼자 봤던 영화가 정말 많다. 그 기록들이 일기장에 영화표와 함께 빼곡히 남아있다. 그때는 영화를 보면서 삶을 돌아보곤 했다. 주변 인간관계와 삶의 여정에서 겪는 문제들을 영화 스토리에 대입해 가며 삶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몇 시간이고 걷고 또 걸으며 영화 내용과 삶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이 많아서 생각이 참 버거웠다. 20대에는 생각을 멈출 수 없어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은 생각을 멈출 수 있었기 때문에 내게 영화는 치유의 시간이자, 친구였다. 마침 영화관 자체 할인 행사로 조조와 심야 영화를 3천 원에 볼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영화관 전체를 3천 원에 빌려보는 일도 자주 있었다. 게다가 당시 살던 집 앞마당에(50미터 이내) 영화관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관에 대한 추억이 참 많다.


  룩백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요즘 인터넷 글들에서 후기들이 자주 보여서다. 룩백이라는 영화 제목과 엔딩 사진들이 자주 보였다.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남편을 졸라 주말의 시작을 룩백과 함께 했다. 지마켓에서는 한 달에 한번 12,000 원에 영화표 두 장을 살 수 있기 때문에(구독 서비스 신청자의 경우) 문화생활 비용 부담이 적다. 덕분에 한 달에 한 번은 꼭 남편과 영화관 데이트를 하고 있다.


  룩백 영화는 후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과 후회가 담겨있다. 나는 룩백 영화 속 내용처럼 10살, 11살, 12살에 만화가를 꿈꾸면서 함께 만화를 그렸던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더 즐겁게 봤다. 만화가를 꿈꾸며 만화를 그리게 만든 라이벌이 있었기 때문에 그림은 한때 내게 참 중요한 존재였다. 나의 라이벌은 정말 훌륭한 예술가여서 많이 배우고, 열등감도 많이 느끼게 했던 멋진 친구였다. 그 친구도 이 영화를 본다면 나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


  사람은 누군가의 삶에 원동력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가 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통해 원동력을 얻은 경험이 있고, 누군가에게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되돌아볼 때(현재 시점에서) 고마울 때도 있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오늘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룩백 영화를 마음속에서 상영하고 또 상영했다. 과거는 힘이 없다고들 하지만, 사실 과거는 잊히지 않고 끊임없이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 감정의 색채들이 입혀져서 현재와 미래에 끊임없이 잡음을 넣는다.


  후회가 두려워서 시작하길 두려워하고, 망쳐질까 봐 두려워하고, 차라리 가만히 있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최근 한 달간 무언가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영화 내용이 더 깊게 다가왔다. 내가 했던 의식, 무의식적인 선택들이 미래에 영향을 줘서 나는 또 현재처럼 많은 것을 망치게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완벽주의가 곁들여져 선택해 놓고도 선택을 제거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러다, 룩백을 떠올리며 한 걸음 내 디뎠다. 그래. 실패하면 어때. 엉망이 되면 좀 어때. 그냥 배웠다고 생각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학점 취득 과정을 시작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그린 주말을 보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서 주말 이틀을 거의 잠만 자면서 보냈지만 덕분에 잘 쉬었다. 그리고 새로운 월요일을 맞이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해 보자. 실패할 수도 있고, 엉망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선택들이 무용할 수도 있지만 뭐 어때. 그냥 오늘을 걷자 라며 한 걸음 내 디뎠더니 기분이 오히려 나아졌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나를 더 많이 행복하게 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들에 후회하지 말자. 그리고 배우고 또 배우자. 읽고, 쓰고, 배우는 걸음을 멈추지 말자며 오늘을 이곳에 남긴다.


  나는 엉성해도, 엉망이어도 괜찮아. 라며 내 자신을 다독이며 시작된 오늘을 내 걸음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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