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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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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빼면 훨씬 좋았을 책이다. 엄마라는 단어에 진입장벽이 있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책을 읽어봐도 엄마라는 단어를 삭제하거나 가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내용이 좋아서 꾸준히 읽었고 많은 사유를 하게 해 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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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내면 아이가 아픈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세상에 오직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만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만 극단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똑같이 그처럼 가혹하게 판단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생각이 확고해질수록 행동도 극단적으로 하게 된다. 따라서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사고와 행동은 스스로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준다. 가끔 전부 아니면 전무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끌릴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 주변에 있으면 곤란하고 고통스러워지기만 할 뿐이다.

엄마에게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너에게 :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고 있는 내면 아이를 다독이는 법 | 찰스 화이트필드 저/김세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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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 역시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극단적인 사고관. 항상 그랬다. 사람들은 흑과 백처럼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 두 종류만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어릴 때 극단적 감정들만 경험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좋거나, 나쁘거나 두 가지 경험이 주를 이루다 보니 사람들에 대한 느낌도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사람의 종류에는 감정의 스펙트럼처럼 아주 다양할 텐데 내겐 그걸 생각할 만한 여유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맺을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던 거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좋은데, 너무 이상하거나, 너무 좋은데, 약간의 문제가 있거나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둘 중 하나로만 생각하려다 보니 인지해야 했을 것들을 지나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그에 대한 결과 몫을 받아야 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하다.

오늘의 나는 감정의 스펙트럼과 인간 유형의 스펙트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엠패스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는 사기꾼도 있고, 나쁜 놈도 있고, 이상한 놈도 있다. 에코이스트에도 악성 나르시시스트만큼 이상한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니 어느 구간에 사람을 넣고 판단하는 것보다 아. 이 사람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구나. 이런 모습도 이 사람이 가진 것들 중 하나구나 라며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정말 좋아했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며 적당히 받아들이고 내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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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은 그 존재를 인정하고 바르게 대처함으로써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죄의식을 느낄 때는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의논하는 것이 좋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자신이 해를 입히거나 속인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치심은 죄의식과 어떻게 다를까? 수치심은 자신이 결함투성이고, 나쁘고, 불완전하고, 형편없고, 가식적이고, 무능하고, 실패자라는 생각이 들 때 느껴지는 괴롭고 불편한 감정이다. 죄의식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드는 불편한 감정인 반면, 수치심은 자신이 뭔가 문제가 있거나 결점이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따라서 죄의식은 바로잡거나 용서받기가 비교적 쉽지만, 수치심은 벗어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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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수치심과 죄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모든 행동을 해야 한다. 평균적으로 가진 수치심과 죄의식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일조하겠지만, 이 감정들이 지나치면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감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심과 죄의식의 근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성장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강화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내면에 마데카솔을 발라줘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만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고, 거기에 다양한 경험과 인간관계를 통해 내면의 그릇이 만들어진다. 수치심과 죄의식을 대할 때면 나는 더 깊은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꼈다. 누군가를 용서하려고 했지만 용서하지 못해서 느끼는 죄의식과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수치심들이 도대체 해결되지 않아 오랫동안 많이 아파야 했다. 사실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지나친 수치심과 죄의식이 기본값으로 설정된 경우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기 쉽지 않다. 게다가 기본 값들이 결정하는 모든 판단과 선택한 인간관계들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알기 어렵다. 모든 것들이 자신에겐 평균값이기 때문에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잘못된 인식을 옳은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본 값을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는 많은 관계들과 상황, 판단들은 결국 자신을 옥죄고 파괴하기에 이른다. 그제야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 경우 인생이 다 날아가고 흰머리가 가득 얹어진 상태가 된 경우도 많다.

타인들의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날카로운 아픔들을 느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깊은 아픔을 가져본 사람일수록 타인의 고통에 더 둔감해지기도 하고, 더 많이 민감해지기도 한다. 민감해지는 것이 다행일까. 오히려 둔감해지는 것이 다행인 걸까. 민감해지면 예민성 때문에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게 되고, 둔감해지면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아픔을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죄의식과 수치심. 이 주제를 대할 때면 참 많은 생각을 한다. 매일 조금씩 건강하게 자신과 대면해 가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 더 많이 건강해지고 건강한 관계와 행복으로 가득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오늘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수치심과 죄의식을 대면하려고 노력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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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사람, '나'
자신의 욕구를 버리고 외면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둘 다 거짓 자아가 하는 행동들이다. 인간의 욕구를 설명한 표를 다시 보거나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붙여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회복 단계를 지켜보고 거치면서, 사람들은 이런 욕구들이 건전한 방식으로 충족될 수 있는 장소와 사람들은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가 조금씩 충족될수록 매우 중요한 진실 하나를 알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이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더욱 잘 알게 될수록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찾으면서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내면 아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활발히 성장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한다. 버지니아 사티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신을 기적과 같은 존재로, 그리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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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숱하게 방임하고,  대신 그 자리에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채운다. 타인이 잘 되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해 왔던 숱한 경험이 있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작 챙기지 않고 방임하면서 타인의 삶에는 너무 진지한 나머지 많은 것들을 책임지려고 했다. 급기야 타인의 감정까지 책임지려고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항상 조급하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나를 많은 곳에서 발견했고, 나의 무능력을 발견할 때마다 더 깊은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꼈다. 나의 감정은 사라지고, 그 안에 타인의 순간적인 감정들에 지나치게 반응하면서 반짝였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타인 역시 그로 인해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슬픈 일이었다.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타인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 기본이 되기 않고서는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나를 덜어내고 상대에게 옮겨진 행복은 상대의 감사함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비난과 관계의 깨짐으로 이어졌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모든 희생과 사랑은 진정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자라야 했고 그렇게 해야만 존재 가치가 있다고 어린 시절부터 교육된 경우가 그럴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는 오직 타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상태. 이것은 신도 바라지 않았고, 바람직한 자세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 엄청나게 봉사를 많이 하시는 분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많이 보인다. 사랑과 희생 사이. 우리는 극단적인 희생을 사랑이라고 오해하고, 신의 사자로서 진정한 모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럴까.

자신과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챙기지 못하고 희생시키면서, 오히려 함부로 대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만 반응하고 희생하는 모습. 십일조와 구제는 열심히 하면서 자식에겐 공책하나 사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 만의 깊은 아픔을 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뿐 아니라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지 못하고 희생하게 된다. 신은 성경에서도 항상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타인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러니 신도 자기 사랑이 먼저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사랑이 충분하다 못해 악성 나르시시스트에 이른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할 희생과 타인 사랑은 자기 사랑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먼저 알고, 파악하고,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누군가를 보듬으려고 하는 감정이 들 때면 그 근원을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왜 돕고 싶은지, 왜 주고 싶은지, 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등.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나를 먼저 챙긴 후 타인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물건도 자주 두 개씩 산다. 나에게 먼저 주고, 나머지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고 싶으니까.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건강해져가고 있다. 건강을 선택하고 행복을 선택하고 관계를 선택한다. 오직 나를 위해. 진정한 행복과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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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

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더욱 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을 삶에 통합시킨다. 치유와 통합, 성장의 과정을 거칠 때는 퇴행하거나 뒤로 미끄러지거나 과거로 되돌아가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뭔가를 얻었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혼란과 절망을 느끼고 고통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때가 바로 삶에 매우 중요한 시점이며, 내면 아이에 대해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재의 감정과 경험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해도,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 고통을 그대로 겪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 있음으로써,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혼자서 고통과 기쁨을 경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시기의 고독은 삶 속에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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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벗어나는 건 온전히 고통을 겪는 것이다.라는 말이 와닿는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고통을 겪는다니.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안다. 고통을 모른 척하고 묻어두면 언젠가 그 상처는 곪고 곪아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이다. 고통을 온전히 대면하는 것 만이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고통을 대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피가 흐르고 고통에 눈물이 쏟아진다. 그럼에도 고통을 대면하는 일은 자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고통을 덮어둠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고통의 결과 값은 내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진화하고 물린다. 그러니 내 세대에서 반드시 치유하고 끝내야 한다. 고통을 온전히 겪고, 대면하고, 치유하면서 인간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글처럼 가끔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고통이 남긴 상흔을 지워가면서 진정한 자기 사랑과 행복을 깨닫게 된다. 고통이 주는 고통은 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고통을 통과하면서 이뤄가는 인간의 성장은 삶이 주고 싶어 했던 많은 선물들을 받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고통을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치유하려고 노력한다. 내 아이에겐 행복과 아름다운 정서를 물려주고 싶으니까. 나는 건강한 아내,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아름답게 살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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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려울 수는 있지만 용기를 내서 도전한다면 겸손한 상태가 되어 “만약 그곳에 전능한 존재가 계시다면 부디 날 도와주소서.”와 같은 부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상실이 생기면 언제든 그것을 확인하고 슬퍼하는 것은 이제 익숙해졌을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상실을 슬퍼하면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끔 뒤로 성큼 물러나 가만히 지켜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일정한 유형을 따라 밀려들었다 빠져나가고, 성장하고 퇴행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위쪽으로 점점 확대되어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결국에는 회복하고 성장하게 된다.

어릴 때는 특별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대우를 참을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회복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3~5년 정도가 되면 통합 단계에 도달한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 스트레스가 생겨 다시 생존 단계의 감정에 빠져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핵심 문제를 재빨리 자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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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단계로 나아가는 단계를 거쳐갈 때 어려움이 많다. 그러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좋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한다. 신에게 기도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등의 모든 노력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성큼 한 단계 올라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치유될 수 있고, 치유의 열쇠는 모두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치유되고 싶고, 치유되겠다고 스스로 선택만 하면 된다. 놔두면 언젠가 알아서 지워지겠지라는 건 다음 세대에 더 큰 아픔과 고통을 물려주겠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처리하지 못한 감정 쓰레기들은 결국 누군가가 해결해야만 한다. 그것이 자식이 될 때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내면 치유를 할 때 가장 먼저 3세대를 살펴보는 일부터 이뤄진다고 한다. 세대 간에 고통과 아픔이 물린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세대를 통해 물린 고통과 아픔, 슬픔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건 정말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고통을 대면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내 가족에게 내가 겪은 그 어떤 아픔도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신에게 맡기고,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대면해 간다. 오랫동안 묻어뒀던 먼지 쌓인 기억들과 아픔들을 꺼내놓고 한참 울고 아파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들이 나를 결국 위로 끌어올려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리학 관련 도서를 읽고 글을 적어가면서 내면이 많이 단단해졌다. 언젠가 나처럼 많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사용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가장 기대하는 건 내 가족은 총체적인 건강을 경험하게 될 거라는 거다. 오늘을 사랑하고, 행복을 선택하다. 관계든, 먹거리든, 행동이든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

#엄마에게사랑이아닌상처를 받은너에게
#상처받은나를치유하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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