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준비>
<나를 위한 선물>

[사진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
<어버이날,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며>
1. 조금씩 미리 준비해온 선물들
1월부터 5월에 있을 어버이날을 위해 조금씩 마음을 담아 준비를 시작했다. 매년 갑작스레 다가오는 날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조급함보다 따뜻함으로 채우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버이날을 챙기기 위해 남편이 지난 토요일에 준비한 선물을 싸들고 본가에 갔다. 하나씩 준비하며 미리 저장해둔 것들이 있었지만, 그 중 몇 가지는 미처 다 챙겨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 달 반 뒤면 시어머니 생신이 있으니, 그때 못 보낸 선물을 함께 전해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예전의 나는 이런 일에 스스로를 몰아붙였지만, 오늘의 나는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 매년의 과함과 그 이유
선물을 준비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늘 “이번엔 대충하자” 해놓고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과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확실히 전년도에 비해 적어진 편이다. 매년 생신, 명절 등을 이런 식으로 준비하다보면 지치고 힘들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는 "힘을 좀 빼야지." 하며 용돈을 미리 준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사실 요즘은 선물보다 용돈을 더 반가워하신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기 때문에 선물 하나 더 준비하는 것보다 용돈을 더 많이 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종종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선물과 용돈을 모두 준비한다. 적은 돈일지라도 용돈과 선물을 같이 준비하면 시어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그 반응들을 보며 기쁨을 얻는 내 마음이, 결국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든다.
3. 칭찬은 나를 더 움직이게 했다
십여 년을 이렇게 챙기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런 마음 씀씀이가 습관처럼 배어들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친구분들이 자신을 너무 부러워한다며, 내 얼굴을 모르는 분들조차 내 이름은 알고 있다고 하셨다. 얼마나 자랑을 많이 하셨는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마움과 함께 왠지 모를 복잡한 감정도 들었다.
“자네는 뭔 복을 그리 받아서 하은이 같은 며느리를 만났대? 자네는 참 복이 많네.”
그 말씀이 내 마음과 머리속을 자주 맴돌았아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더 챙겨드려야지. 더 자랑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선물 준비에 마음이 늘 넘치곤 했다. 시어머니 친구분들의 아드님들은 대부분 건물주 따님과 결혼해 어버이날이든 생신이든 용돈으로 백만 원, 이백만 원씩 편하게 드린다고 했다. 돈이나 신용카드를 건네며 필요한 걸 사라고 한다는데, 그 안에 마음이 담기지 않아 늘 허전하고 서운하다는 말을 하셨단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르신분들은 자신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주는 것을 원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친구분들 이야기를 자주 하시면서 덧붙이셨다.
“나는 그래도 하은이가 내 취향을 이렇게 잘 알아주고, 손수 준비해서 보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내가 참 복이 많지.”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내가 드린 정성이 어머니의 기쁨이 되고, 어머니의 자랑이 된다는 사실이 또 다른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더 다정하게 챙기고 싶어졌다.
4. 과거, 3가구의 가족 챙기기
한때는 챙겨야 할 집이 세 가구나 되었다(시부모님, 낳아주신 부모님, 길러주신 부모님). 명절이나 생신이 한 달 걸러 한 번은 있었다. 그래서 일 년 내내 행사를 준비하는 요원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돈은 없는데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뚜렷하게 느껴졌고, 때로는 대놓고 요구하시기도 했다. 대학생이었고, 또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아르바이트와 과외로 학비와 생활비, 월세, 책값, 시험 원서비 등을 겨우 채워가며 부족한 돈을 쪼개 선물을 준비했다. 정말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일환으로 새 책을 구입하지 못하고 주워 쓰기도 했다. 그래도 선물을 드리면 정말 좋아하셨고, 그 마음에 감동한 어른들은 내가 좋아할 법한 반찬과 쌀을 챙겨주셨다. 나는 챙겨주신 반찬과 쌀, 행복해하시던 표정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양분 삼아 수험 기간을 견뎠다.
5. 건강이 무너지며 시작된 변화
지난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를 돌아보며, 내 행동과 선택을 이끌던 핵심 신념을 점점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정말 많이 알게 됐고, 덕분에 많이 달라질 수 있었다. 지금은 내 마음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구가족들과의 만남을 멈추기로 했고 여전히 유지 중이다. 인간관계도 별처럼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다 불처럼 데이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숱하게 경험하고부터 가족도 하나의 인간관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정성을 다해 챙기되, 직접 얼굴을 마주하진 않는다. 과거처럼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데이고 무너지는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도 여전히, 얼굴을 대면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활성화되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나를 지킬 수 있는 거리에서 마음만을 전한다.
6. 새로운 관계 기준
가족이든 인간관계든, 한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구가족들 사이에서 맡은 역할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언제나 희생자였다. 누군가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그 후 가족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면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내가 참으면, 모두가 평안하구나.’
한번은 가족 구성원들이 싸우고 내게 화풀이를 한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화를 내자 '안 그러다 대체 왜 그래? 너만 가만히 있으면 되잖아.' 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과거의 나는 참고 견딜 때마다 예수님의 도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이곤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성경 구절에서 나온 말처럼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하나님이 안 계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3년 전, 몸과 마음이 완전히 부서지는 경험을 하며 모든 것을 멈췄다.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된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욕심내지 말 걸.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 하지 말 걸. 항상 나를 우선으로 지켰어야 했는데. 상대를 위해 무조건 맞추고 희생하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완벽히 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원치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선 상대가 뭐라 하든, 하지 않는다. 세상도 결국 내가 살아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니까. 나에게 있어 나는,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사회가 부여한 해야할 도리’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도리’라는 기준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무리 가족이라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나 장소에 나를 두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켜간다. 이것이 지난 3년, 아프고 쓰라린 시간을 통과하며 내가 나에게 허락한 가장 소중한 약속이다.
7. 올해의 어버이날, 나를 위한 선물
선물이라는 건, 얼핏 보면 타인을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일 때가 많다. 잘 보이고 싶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결국 나를 위한 노력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번 어버이날에도 내 마음 편하자고, 시부모님과 시누이 언니 선물을 준비했다. 준비하면서 즐거웠고, 그 분들의 반응을 보며 되려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반찬과 선물들도 도착해 마음이 따뜻했다.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이번 어버이날을 잘 보낸 것 같아 참 다행이다.
8. 죄책감과 거리두기, 그리고 나의 중심 세우기
시부모님과 잠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분들과의 사정만은 아니다. 나의 원가족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를, 내가 더 아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어찌 됐건 나에게도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었다. 그들과의 관계를 내 마음대로 끊은 사람으로서 남편의 가족들만 챙기면서 스스로 죄책감과 수치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남편의 가족이 진짜 내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10년에 걸쳐 처절하게 체험했다. 그래서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한 욕심을 드디어 내려놨다. 이제 나는 그저 내 마음과 몸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 ‘해야할 도리’라는 말로 내게 죄책감을 주려 한다면, 그 사람 역시 내 마음을 위해 거리두려 한다. 결국, 내가 살아야 세상도 의미가 있으니까.
이번 어버이날, 나는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선물 속에는 감사와 회복, 거리두기와 다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제 나는 관계라는 것도 나를 지키는 선에서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늘의 나를 최우선으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를 마주하며 드디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발견해가고 있다.
이제 그만해도 돼. 충분히 했어. 내가 네게 자유를 허락할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도 괜찮아. 라고 나에게 사랑과 자유와 회복과 아름다운 삶을 허락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