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우상>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이 글에는 트라우마와 상처를 자극할 만한 글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직 제 치유를 위해 작성한 글이니,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가장 아름다웠고, 찬란했을 20대. 나는 20대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한 구간으로 떠올리곤 한다. 사실 오늘의 내가 과거를 되짚을 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간은 20대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수업에서였다.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건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기대고 있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별처럼 반짝이는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눈을 보지 않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맑고 예쁜 눈으로 몇 분 동안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따갑게 느껴졌다. 어릴 때 가족과 친척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는 나를 가족이라는 어른들은 눈을 쳐다보지 않고, 못할 때까지 벌을 주고, 매질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만났을 때까지 타인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늘을 보거나, 땅을 보고 다녔다. 그랬기 때문에 누군가와 친해질 기회가 있더라도 항상 비켜 가곤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어느 날 친했던 선배가 내게 말했다. 항상 내가 하늘만 보고 다녀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쳐다볼 때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선배는 겸손하려고 했던 말이라고 생각했단다. 다른 후배들도 말해줬는데(대학을 졸업하기 전에야 알게 됐다.) 나는 학교에서 3대 미녀 <?> 중 한 명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타인의 말과 눈빛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수치심과 불안, 우울, 어둠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20대를 고스란히 사용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한참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내게 말했다.
“사람은 눈을 쳐다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 말을 신뢰하지 않아. 너도 사람을 만날 땐 눈을 보고 말하는 걸 배워야 해.”
그때 얼굴을 들어 한참 동안 마주했던 그녀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고, 나를 구원해 줬다. 그녀의 눈을 오랫동안 쳐다봐도 그녀는 나를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름다운 미소로 안아줬다. 그 이후 나는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리고 그녀 이외의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타인이 내 눈을 피할 때까지 바라볼 수 있는 강단 <?>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내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 교회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다 한번 오아시스를 만나듯 만났던 좋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내가 기억하고, 기억해야 사람들 중에 가족 구성원(가족, 친척 포함)은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칭찬을 하고, 그 외에는 나를 비난하고, 모욕하고(주로 친아버지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가족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다고 했다. 그들이 가족으로서 경험과 행복을 나눌 때 나는 닫힌 문 옆 마루에 앉아 그들의 행복을 귀동냥하며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노력하면 달라질까>
나는 그들이 그려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노력할수록 금은 더 깊고, 두껍게 그어질 뿐 작은 손짓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허락된다면 누나로서 무엇인가 해야 할 때, 그리고 가족 사업을 위해 일을 해야 할 때 그들의 가족으로 불려질 수 있었다. 가족이니까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못하는 게 없지만, 몸이 아파 그 무엇도 못하게 된 오늘을 맞이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화가 난다. 최근에는 내과, 외과, 피부과, 재활의학과를 돌아가며 치료 중이다.
그녀를 만나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많은 말 들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옷 입는 것부터 공부할 것들, 미래, 만나야 할 사람들까지 그녀가 정해주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다. 다행히 그녀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고, 그녀가 선택해 준 많은 것들이 내게 좋은 것들을 가져다줬다. 그녀가 정해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녀가 말한 책들을 보고, 그녀가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할지도 묻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내게 의지하고, 의존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으면서 어느 순간 그녀에게 내 모든 것들을 의지하고, 의존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깨닫게 됐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왔을 때, 그녀가 감당해야 했을 나와의 관계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싶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녀가 구두를 신지 말고,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다니라고 해서 운동화를 샀고, 치마를 입고 오지 말라고 해서 청바지만 입고 학교에 갔다. 대학 시절 원래 내 기본 스타일은 원피스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것이 기본값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예쁜 옷과 장신구, 구두에 한이 맺혔기 때문에(사업 수완이 전혀 없는 가족 구성원들이 무작위식으로 늘린 사업 덕분에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해졌고 덕분에 예쁘고 좋은 것을 가져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매일 머리에 팩을 하고 긴 생머리에, 구두를 신고, 원피스를 입고, 두꺼운 책을 들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머리를 질끈 묶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랬던 내가 그녀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녀 말대로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하자 학교생활과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 머물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근로장학생 자리도 부탁해 마련해 줄 만큼 내게 많은 선물들을 안겨줬다. 그녀가 내게 준 것들을 생각하면 그녀가 준 상처들은 아무 미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찮게 여겨졌다. 그런데 그게 하찮은 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녀가 내게 했던 수많은 좋은 말들과 글, 문자 메시지들이 모두 일기장에 그대로 적혀있다. 물론 그녀가 내게 했던 치명적인 말들도 적혀있다. 그녀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10년이 훨씬 지나서 물었을 때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착각한 거라고. 사실 아직도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평소 일기에 적는 글씨체는 엉망일 때가 많은데, 그녀가 했던 말들을 적은 글들은 공을 많이 들인 것이 보일 만큼 정갈하게 쓰여있다. 그때 그 글들을 최선을 다해 적었던 이유는 나중에 아이들을 낳고, 손자가 생겨도 그 글들을 읽어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처된 말들을 적은 부분은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고심하고 또 고심한 흔적들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드디어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자는 용기를 갖게 됐고 물었지만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고, 착각이라고 했다.
그녀의 글들을 다시 읽으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하다. 살면서 내게 따뜻한 마음을 그렇게 오랫동안 준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라면 그 무엇도 용서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그릇이 커져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 역시 어느 순간 나를 의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을 내게 많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녀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원래 완벽하지 않으니까.
20대 초반 사채 빚을 내서 돈을 해 달라고, 당연히 내가 해 줘야 한다고 화를 내고, 협박도 하고, 회유도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내게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해주고 나면 나와의 관계를 끊을 거라고 했다. 내가 불행해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말이다. 나는 가족을 잃는 것보다 그녀를 잃는 것이 더 무서웠다. 그녀는 20대 시절 내게 빛이었고, 행운이었고, 선물이었고, 구원이었다. 그녀는 많은 부분에서 나를 구원했고, 그 사실들을 돌아볼 때면 지금도 매일 감사한다. 내 인생에서 옳고, 좋은 판단을 그녀가 모두 내려줬기 때문에 나는 아주 천천히 그녀 곁에서 성장해 갈 수 있었다.
<걸어갈 길>
그랬던 그녀와의 사이가 삐그덕 대기 시작한 건 악성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들어오고 나서였다. 물론 그 사람이 나르시시스트건 아니건 그건 병원에서 전문가의 판단하에 진단되어야 할 문제지만, 그분이 했던 많은 행동과 거짓말, 정치질, 이간질 등이 어릴 때 봐 왔던 가족들이 했던 행동이었기 때문에 너무 익숙했다.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라는 개념을 몰랐을 때 사람은 무조선 선하다는 출발에서 그분의 행동과 말을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많이 흐르기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모든 것들은 시간이 다 밝혀주고, 나쁜 것들은 다 사라질 거라고 나는 또 어릴 때처럼 회피하고 모른 척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분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내가 느끼기에 그녀를 거스르면 그녀를 잃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내게 세상과 같은 존재였지만, 나는 그녀에게 실 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언제나 대체 가능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덮고 또 덮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사라질 거라고 믿었던 것과는 다르게 매일 집에만 있고, 누구도(가족 포함) 만나지 않는 생활을 하는 내게 여전히 영향을 미쳐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녀를 통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들을 받았다. 나의 구원이었고, 행복이었고, 빛이었던 그녀는 나 때문에 그분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사실 나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나까지 엮은 듯하다. 복수는 반드시 열 배로 돌려준다.라는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이랄까.). 나 때문에 친구 관계들을 잃거나 소원하게 된 그녀는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나를 버려 달라고 했다. 나를 버리고 그들에게 돌아가달라고 말이다.
20대의 모든 것들을 의존하고 의지했던 나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아 졌고, 의지할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아 졌다.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고, 내 존재조차 희미해져 갈 때 그녀를 통해 나를 공격했던 그분 덕분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라지려고 했던 내가 먼지 속에서 일어났다. 이걸 고마워해야 할지, 화가 난다고 해야 할지 나는 그렇게 사랑했던 그녀마저 미워하게 됐다. 무슨 말을 하든 내 말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내 생각을 가지고 그녀에게 대항 <?>했던 적이 있었던가 라는 물음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를 위해줬던 빛처럼 밝게 반짝이던 그녀가 왜 내게 더 이상 빛이 될 수 없었을까.
그녀와 대화를 하던 지난 몇 년은 정말 가족(시댁 포함)들 덕분에 암흑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왜 그러는지, 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만큼 나는 그들이 막연히 선할 거라고 생각하고 나를 탓했다. 그들의 모든 요구를 받아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매일 느끼는 불쾌감과 무능함이 주는 수치심, 죄책감, 효를 빙자한 정서적 폭력 등에 오랫동안 노출됐다. 그때의 나는 엄청난 수치심을 매일 느꼈고, 가족들과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여러 번 반복한 덕분에 그녀를 매우 힘들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내게 한 번만 더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들을 만나면 친구 관계를 끊을 거라고 했다.
가족, 시댁.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족 구성원들을 마주할 때 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내게 무엇을 주고 싶으셨던 걸까. 하나님은 왜 내게 이들을 주셔야만 했을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우연히 가족이 된 사람들이 나를 아프게 해도 그걸 온전히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 나는 어릴 때 마주했던 무능감이라는 수치심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 수치심은 내게 그냥 사라지라고 자극하고 또 자극했다. 내가 없어져야만 한다고 말이다.
오랫동안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온전히 의존하던 대상인 친구에게 많은 상처를 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불쾌감, 수치심, 걱정, 불안 등을 그녀에게 떠넘겼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친구는 나를 위해 아주 극단적 처방을 내려줬는데 친구가 준 처방을 그대로 따를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나는 처음으로 벽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께 다시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친구를 우상의 자리에 놓고, 친구에게 마음대로 프레임을 씌워서 그녀가 아닌 또 다른 그녀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대로 찬양하고, 그녀를 여신의 자리에 올려놨던 거다. 그녀는 나의 우상이 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녀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덕분에 하찮아졌지만 말이다. 지난 2년 동안 그녀와의 관계를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잠시 그녀와 연락을 끊었다(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줄도 몰랐다.). 그녀에게 거의 유일하게 허락받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주 긴 글을 메시지로 남기고 나를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해 왔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모르는 분노와 마주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여전히 오늘의 내가 되게 해 준 그녀를 생각한다. 내 삶에서 그녀라는 우상은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흔적은 운석이 떨어져 지구에 남긴 흔적만큼 거대하고 깊다. 아마 사는 내내 그녀의 도움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갈 거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에게 의존하던 나를 떼어내 진짜 그녀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때가 왔다. 그동안 내가 그녀에게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알게 됐으니까. 그녀를 놓아준다. 그녀가 나 때문에 힘들지 않도록, 내가 평생 동안 갖고 싶었던 우정과 사랑을 그녀에게 받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련다. 언제나 행복하기를, 언제나 건강하기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이 가득하길 바라본다.
그녀가 운 없게 나를 만나 고생했을 시간들을 생각하면 미안해지고, 또 한편으론 그녀이기 때문에 내게 했던 과한 부탁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터질 것만 같다. 그럼에도 이제는 이미 과거가 된 지난날들을 흘려보낸다. 내가 그녀에게 받았던 많은 은혜만큼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주는 사람으로 남아 생을 살아가고 싶다.
안녕, 나의 우상. 안녕, 나의 스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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