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시간의 주인이 되어 살고 싶다>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 것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과 인정을 교환하느라, 인생에서 사라진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오랫동안 몰랐다. 타인의 시간만 아까워할 줄 알았지, 내 시간도 그 시간 동안 같이 사용되고 있는 걸 몰랐다.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친구는 입버릇처럼 시간이 정말 아깝다고, 귀하다고, 바쁘다고 말했다. 바쁜 시간을 굳이 내서 내게 와준 친구가 고마웠고, 미안했다. 친구의 그 말들이 불편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친구의 시간에 맞추느라 내 시간도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내 시간은 하찮게 느껴졌다.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친구의 시간만 참 아까웠다. 그 시간 동안 나와 만나지 않았으면 오히려 친구는 더 많은 것을 이뤄낼 사람이라는 생각에 미안하기까지 했다.

    30대 후반이 되고야 과거 내게 있었던 시간들이 돈보다 귀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낭비할 권리, 낭비하지 않을 권리도 모두 내게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누군가 내게 지금 뭐 하냐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가 말한 것들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가만히 쉬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이 있으면 타인을 돕느라 더 많이 움직였다. 공부하는데 시간을 써야 할 때도 나는 친구 집 정리를 하고(친구의 일을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남자친구 어머니 옷장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봉사활동을 했다.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내 발등을 찍고 싶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그들을 대신해 시간과 열정, 돈을  아낌없이 쓰면서도 나를 위해 뭔가를 할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남의 방은 정리하면서도 내 방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남의 집 화장실은 청소하면서 내 집 화장실을 청소할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 안타깝다. 그 과거들을 모두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하기 때문에 씁쓸하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정말 많은데, 이상한 사람도 정말 많다. 나는 그중에 어디에 속하는 사람일까. 며칠 전 인간관계는 딱 50%만 하면 된다는 강연을 들었다. 나는 50% 정도는 하고 있는 인간일까.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생길 때마다 과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끓는 주전자처럼 팔팔 끓어 넘친다. 요즘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을까. 그럼에도 오늘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점도 있다. 오늘의 나는 불편한 게 있고, 걸리는 것이 있으면 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에게 말하고, 물어본다.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내게 가져다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오늘의 나는 더 이상 숨을 참고 견디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몸이 제일 먼저 아파져서 하고 싶어도 가능하지 않다.).

    과거의 시간, 지금의 시간, 내일의 시간. 시간을 생각할 때 그때 했어야 했던 것과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들이 생각나면 분노가 인다. 안타깝고, 속상하고, 열이 난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열을 가라앉히고 한참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금세 피곤해져서 만사가 귀찮다. 그냥 조용히 편안하게, 평안하게 살고 싶은데 신경 쓸 일들이 하나씩 불어난다. 신경이 긁힌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난다.

    개미군단이 방 안을 기어 다니는 걸 봐도 화가 나고(농약 성분이 들어간 약을 사서 전부 처리했다.), 바퀴벌레들이 출몰한 것도 화가 난다(바퀴벌레 퇴치 약을 오늘 설치했다.). 갑자기 멀쩡하던 창고 천장 LED등이 퉁 하고 떨어진 것에도 화가 났고(집주인 어르신이 오셔서 고쳐주셨다.), 에어컨이 얼어서 얼음이 가득 떨어지는 상황에도 화가 났다(에어컨 기사님이 오셔서 이유를 모른다고 하셨다.). 그 외에도 자잘하게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데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면 너무 피곤하다.

    화를 내다보니 끝도 없이 화가 일어난다. 과거에 화내지 못한 만큼 낼 모양인지, 요즘 나는 화가 참 많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낮추는 중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차분해진 나를 마주하기 때문에 나는 화가 나면 글을 쓴다.

    살아갈수록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 사람을 정말 좋아했고, 신뢰했던 내가 이제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됐다.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떠오르면 화가 치솟는다. 어떤 사이비 종교에서는 청춘 반환 소송도 한다는데, 나도 청춘 반환 소송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차라리 오늘의 내가 된 게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과거의 나는 지나치리만큼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다(과거의 나 같은 사람은 사기당하기 딱 좋다.). 지금은 눈금이 반대편으로 조금 더 치우쳤는지 어지간해서는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히려 오늘의 눈금이 더 건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과거의 내 성격으로는 지우개처럼 다 닳아서 사라져 버렸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랑을 가장한 희생 만으로 이루어진 희생이 전부였던 인간관계 안에서 뼈 아픈 교훈을 얻었다. 내가 좋은 인간이 되는 건 기본, 내 인생에 들이는 사람도 반드시 좋은 사람들만 들여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남편과 함께 기도한다.

"악한 사람과 악한 상황으로부터 미리 구하여 주세요. 좋은 사람들을 삶에 들일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람들로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라고 매일 기도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 나는 기도에 더 힘을 쓴다. 그리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하루들 속에서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을 명확히 구별해 간다.

    지난 3년 간 혹독하게 인간관계 디톡스를 했다. 덕분에 오늘의 나는 하루들이 매우 가볍다.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필요 없고, 타인에게 내 고통을 짊어지게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낭비되든, 아니든 온전히 나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낭비하면서도 즐겁고, 뭔가를 하면서도 즐겁고. 내 시간들이 너무 즐겁고 소중하다. 그러니 꽤 오랫동안 당분간 나와만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그래도 충분하니까.

    나는 이제 시간의 주인이 되어 산다.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사용하고, 낭비하고, 채우면서 즐거운 나로 산다. 그래도 되니까. 나만으로 충분하니까. 라며 오늘을 채워가는 중이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과제도 부여하지 않는다. 일단은 흐르는 대로 살고 싶으니까.

#시간의주인
#나로살기
#시간의중요성
#시간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