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해방사이를
읽고 기록>
"엄마. 한 번도 빛이 들지 않아 천년의 어둠이 쌓인 동굴에 빛이 드는 건 한순간이라고 하더라. 천년의 어둠을 걷어내는 데 필요한 건 천년의 시간이 아니라는 게, 한순간이라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몰라." 이 글을 봤을 때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오고 표지를 보고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표지 위에 투명한 비닐을 입히면서 살포시 껴안았다. 겉표지에 적힌 글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은 이다희 작가님이 엄마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이다. 모범생이라고 불릴 만큼 꾸준하고 성실히 길을 걸어왔던 그녀의 삶에 드디어 진짜 사춘기가 시작된다. 어린 시절 사춘기 시절에 반항 한번 하지 않았을 그녀가 눈앞에 그려졌다. 나도 그녀처럼 사춘기가 없어 삼십 대에 찾아온 사춘기로 몸살을 앓았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누구로 살아야 했던 과거들이 현재의 나를 향해 물음표를 던지는 순간 누구나 뜻하지 않은 사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걸 우리는 가끔 오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가님을 직접 만난 적도 없고, 그녀의 목소리도 모르지만 이 글에서 느껴지는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청아하고 고운지 마음을 쟁쟁하게 울린다.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처음 듣는 목소리가 글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따뜻하게 다가와 탁하고 놓이는 안도감이 책 곳곳에 저며있다. 첫 부분 며느리 미션 수행 대신 필요한 것을 읽으면서 너무 무리하게 착하고 좋은 며느리가 되려고 했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너무 무리한 나머지 나는 오랫동안 아팠고,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녀가 그녀의 감정을 먼저 챙기기로 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엄마에게 쓰는 글이 어찌나 고운지. 나도 엄마 생각이 났다. 하늘에 계신 엄마를 향해 편지 글을 띄워볼까 라는 마음이 참 오랜만에 들었다. 어린 시절 내내 그리워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곳곳에 녹아있다. 그래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사르르 녹기도 하고, 그녀처럼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가득 담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마지막에 그녀에게 그녀의 엄마가 남긴 글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너무 따뜻하고, 간지럽고, 부럽고, 행복했다.
잔잔하고 따뜻한 에세이 글이 가진 힘을 몰랐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많은 위안과 치유를 받았다. 저자의 따뜻한 메시지들이 마음에 와닿고, 닿은 자리마다 꽃들이 피어났다. 저자의 경험들 속에서 내 경험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엄마에게 쓰는 편지지만 독자를 향해서도 작가는 손을 길게 뻗는다. 우리 함께 걷자고, 그리고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더 괜찮아질 거라고 말이다.
살아온 삶과 걸어온 길들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마음을 모을 수 있다.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심하고 따뜻한 일상의 글들이 공감이 됐고, 마음에 스며든다.
'몇 달째 수련하다 보니 요가원에 거울이 없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거울에 비춰보며 완벽한 자세까지 도달하기 위해 몸을 끌어당기고 수시로 부족함을 체크하는 대신 마음속에 거울 하나를 들여놓는 거야. 몸이 건네는 소리를 듣고, 한계를 스스로 찾고, 보고, 연습하게 하는 거울. 그래서 요가는 내면의 운동이라고도 하나 봐.
"완벽한 상태에 집착하지 마세요."
<순종과 해방사이 196쪽>'
더 잘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나를 떠올렸다. 너무 완벽하게 모든 것을 잘하려고 했던 나는 마음에 해내야 할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 덕분에 나는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더 잘하려고 완벽하게 해 내려고 할수록 실수가 더 많아졌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정말 몸이 많이 아파지고 나서다. 그녀가 서른다섯이 됐을 때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처럼 나 역시 서른다섯이 됐을 때 모든 것이 끝난 듯한 낭떠러지 위에 서 있었다.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때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이라는 숨이 쉬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가 엄마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물음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처럼 나도 나에 대한 물음들을 묻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살아온 길, 내가 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그리고 살아가고 싶은 앞으로의 삶. 순종과 해방사이라는 책 제목이 너무 적절하다. 우리는 순종하면서도 해방을 끊임없이 꿈꾸기 때문이다. 완전한 순종도 불가하고, 완전한 해방도 어렵다. 우리는 계속 순종과 해방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 각자에게 맞는 해방을 꿈꾸고 찾는다. 그리고 급기야 자신 만의 해방을 찾아낸다.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된 거라고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정해놨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실히 깨달은 게 있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각자 멈춰있는 나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고, 겉모습에 노화를 입게 돼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천천히 진짜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따로 밟아야 한다. 어쩌면 이제야 나는 진짜 스무 살을 맞이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라는 걸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갔다. 저자가 진짜 자신을 찾아가고 해방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저자의 글을 통해 나는 멈춰 있던 어느 순간의 나를 또 발견했다.
책이 정말 잘 읽히고 재미있어서 금세 읽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참 많이 걸렸다. 오늘이 서평 마지막 날인데 나는 아직 책에 대한 어떤 평가도 감상도 정리하지 못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봤지만 까면 깔수록 더 하얀 살이 나오는 양파처럼 책이 깊고 또 깊다. 그래서 글을 쓰는 걸 미루고 또 미뤘다가 마지막 날이 돼서야 글을 한자씩 적어본다. 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걸까. 진짜 내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가고 싶을까. 많은 메시지들 사이에서 나는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착한 아이라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교육받고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삶을 성실히 꾸준하게 살아온 오늘, 지금의 눈으로 그분들을 보니 좋은 어른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게 아쉽고 슬펐다. 그리고 어쩌면 나 역시 왜곡된 순종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게 무서웠다. 그래, 나는 글을 읽으면서 내면에 있는 나의 두려움을 알게 됐다. 내 안에 품고 있던 깊숙한 곳의 두려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사실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그 마음이 결국 터져 나왔다.
내 모습 그대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받으며 살아왔던 것이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완전한 순종과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한 결과로 결국 병이 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삼십 대의 삶을 살아가면서 매일 나를 더 깊이 만나간다. 이제야 진정한 해방을 향한 행로가 시작된 거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그 와중에 이 책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그리고 따뜻했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그녀와 아름다운 그녀의 엄마. 세상엔 이렇게 아름다운 모녀 사이도 있구나. 그 그리움과 사랑이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눈이 부시다. 나도 그녀 같은 딸을 낳아 이렇게 아름다운 편지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부족해도 괜찮다고, 이제는 더 나아질 거라고, 나는 위안을 받고 또 위안을 받았다. 이 책은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인생에서 수많은 물음들 앞에 고개 숙여본 사람들이라면 이 책과 함께 첫걸음을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름다운 책이었고, 덕분에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고마워요. 이다희 작가님. 꿈공장 플러스. 그리고 인디캣님.
우리 진정한 해방을 향해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자. 우리는 결국 우리만의 해방을 찾아낼 거고 맞이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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