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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와 응애벌레>


이제 5월이니까. 상추도 나도 새롭게 시작한다. 기존에 잘 자라던 상추들을(약 30 개 정도)를 전부 뽑아 버렸다. 이유는 한 두 상추에서 시작한 응애 벌레들이 대거 창궐하더니 모든 상추들을 뒤덮었다. 응애 벌레를 없애기 위해 물로 헹궈 보고 한 잎씩 닦아봤다. 그리고 식초를 푼 물에 머리 감듯이 헹궈 보기도 했다.

거실에서 키우는 식물이다 보니 약을 치는 게 좀 그래서 친 환경적인 방법으로 제거하려고 해 봤다. 그래도 응애 벌레는 없어지지 않고 더욱더 커져서 어느 순간 기어 다니는 모습까지 보였다. 아주 당당하게 상추 위를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원래 응애 벌레는 눈에 거의 보이지 않아 응애 벌레가 생겼다는 걸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거미줄이 쳐진 걸 보고서야 응애 벌레가 생겼다는 걸 아는 게 수순이다. 그런데 우리 집 상추들에 몸을 엄청나게 불린 응애 벌레들이 당당히 기어 다녔다. 그래서 상추들이 자라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열심히 키운 상추들의 영양분을 어찌나 먹어버렸던지 상추들이 파들 파들 해지고, 노래지고, 죽어갔다. 세 달 넘게 키운 상추들을 전부 제거하는 게 아까워 지켜보다 드디어 마음먹었다. 잘 크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남겨둘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도 전부 뽑아버렸다. 이왕 응애벌레를 퇴치하는 김에 완전히 뿌리 뽑아버리자라는 마음이 들어서다.

 

<과거를 떠올리며>

 

과거에 변호사 시험 공부하던 때 자주 토오루 부모님과 만남이 있었다. 토오루 님 부모님과 어딘가에 가던 중이었다. 토오루 님 부모님은 주말 농장을 하시기 때문에 주말 농장에서 이것저것 키우셨다. 지금도 키우신다. 두 분은 자동차 앞자리에서 주말에 가서 돌볼 작물에 관해 이야기를 하셨고, 그걸 뒷 좌석에 앉아 있던 내가 우연히 듣게 됐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약치고 기다렸는데 올해도 안 나겠지?"

"안 날 거 같은 게. 이번에는 그냥 잘라버리고 뽑아버려야겠어. 열매가 생길 생각을 안 하네."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식물에 감정이입해서 그 순간 본 적도 없는 그 식물이 됐다. 그때는 한참 공부하던 때였고, 공부를 해도 성과가 나지 않던 때였다. 꽃이 핀다고 모두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니듯, 식물도, 인간도 꽃만 피고 열매가 맺지 않는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을 기다리고, 잘 지나야 나중에 더 크고 아름답고, 맛있는 열매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기다림에 지치고 지친 두 분은 그 작물을 잘라 버리겠다고 이야기하고 계셨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시험에 매년 떨어지는) 내가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모르게 식물에 감정 이입해서 다소 큰 혼잣말을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열매를 맺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 주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만 따졌고, 과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과정도 열심히 참여했고, 그만큼 성과를 냈다. 열심히만 하면 성과가 나오는 삶이 얼마나 복 받은 삶인지 그때는 몰랐다. 성과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열심히 안 해서라고 나만의 잣대로 잘라댔다. 그랬던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자 그제야 과거의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문제 있는 인간이었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되지 않은 때가 있고, 열심히 해서 성과가 그만큼 나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게 된 것이다. 열심히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할수록 주변에선 내게 원하는 것이 많아졌고,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늘어갔다. 그때는 왜 그렇게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았는지 모른다. 나는 예수님을 내세우며 그게 기독교적 사랑이라며 그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겨우 조금 남은 시간으로 내 일을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불안과 두려움은 매일 같이 쌓여갔고, 그 두려움은 불면증으로 이어지고, 신경증으로 번지더니 우울증에, 번아웃까지 왔다.

마지막 시험에 떨어지고 매일 방 벽을 보고 울다 잠드는 일만 반복하다 드디어 병원에 갔다. 선생님은 내게 오랫동안 우울증 약을 먹어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과거 살인 사건 피해자가 됐을 때 우울증에 관련된 약을 한 움큼씩(약 10알 정도) 먹은 기억이 있어서 줘도 먹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도 약을 주지 않으셨었다. 줘도 먹지 않을 게 뻔하니 일단 상담부터 하자하셨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내 이야기를 들으신 선생님은 상담에만 1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때 내게 든 생각은 상담에 드는 돈은 어쩌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오랫동안 꽃만 펴놓고 꽃 잎이 떨어지는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두려움, 불안들이 내 안에서 매일 자라났고, 어느 순간 나를 삼켰다는 걸 그때 나는 몰랐다. 그래서 기도하고, 성경을 듣고, 읽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어려움 속에서 성공을 피워낸 사람들의 간증들을 찾아 듣고, 좋은 예배 강연들을 찾아 듣고, 기독교 서적을 읽고,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도와주면서 내게 복이 더 많이 생기길 기도했다. 그렇게 나는 다른 방법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다시는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자 나는 그때서야 완전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지금도 안타까운 게 있다면 대학원에 가보면 알게 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간절하고 피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죽을 듯이 공부한다. 죽을 듯이 공부해도 반드시 절반은 실패를 맛본다. 그래서 정신과 약까지 먹고, 카페인 알약까지 먹으면서 버티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말까지 들렸다. 모두가 죽을 듯이 공부하는 사람들 속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처럼 일해야 하거나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거나 큰 병이 걸린다면 정말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볼 때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내 삶에 충실하지 못했던 나와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애정, 인정을 받기 위해 나를 포기하면서 타인 사랑을 했던 내가 안타까워서다. 죽을 듯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죽을 듯이 남을 도와주면서도 나를 돕는 일에는 소원했다.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자기 사랑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타인의 삶을 채워주면서 내 안의 결핍을 채웠다. 그래야만 그때 나는 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 매일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에 에너지가 생기려면 남을 돕고, 남의 것을 대신 져야 했다. 그걸 통해 정신 승리를 해야 했으니까. 그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랬으니 그걸 10년 넘게 했겠지. 아니 그 이전부터니까 어쩌면 30년 가까이 그런 일들을 했을 것이다.

시험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변호사 시험은 50퍼센트 정도 합격하고 나머지 50퍼센트는 불합격을 받는다. 그리고 5회만 시험을 볼 수 있고, 회차가 끝나면 영원히 문이 닫혀 시험을 볼 수 없다.) 나는 나를 드디어 만났다. 나를 만나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드디어 닥친 것이다. 공부하는데 모든 돈과 힘을 다 썼기 때문에(그 외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느라 다 사용해서) 시험 문이 닫히고 방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돈이 없는 건 당연했고, 쌓여있는 학자금 대출과 매달 내야 하는 이자,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눈앞에 닥쳤다. 때마침 코로나가 완전히 나라전체를 덮었고, 집 안에 일이 생겼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졌다. 차라리 완전히 점수가 부족해서 떨어졌으면 화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험 점수를 받아 들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단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나의 정신과 몸과 영혼을 지켜주신 예수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다시 새롭게 시작>

 

천천히 나를 세워가면서 그때 내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함께 있어준 사람은 토오루(남편) 뿐이었다. 정말 내가 인생에서 받은 복이 있다면 토오루 님을 만난 거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남편 정말 좋은 사람이다. 집안 문제 있고, 돈 없고, 미래도 없는 나를 떠나지 않고 옆에 있으면서 사랑을 준 사람이 지금 남편이다. 나는 결혼 시장에서도 저 멀리 9등급이나 될라나.. 싶다.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토오루(남편)님 부모님 두 분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베어 버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뒷자리에 있던 나의 마음이 굉장히 냉해졌다. 나도 뽑히고 잘려버릴 것 같아서다. 응애 벌레가 뒤 덮인 상추들을 보면서 그때가 생각났다. 뽑아버릴까 말까 한 달 내내 고민하면서 그때 내가 생각나서 조금 더 고민해 보자라며 한 달을 버텼다. 약간 노란 잎이 보이긴 해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상추들도 있었는데 그 상추들을 뽑을 때 정말 아까웠다. 친환경적으로 응애를 제거하는 방법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봤지만 수경 재배 상추에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약을 치는 것도 알레르기가 많은 내게는 그러려면 차라리 사 먹는 게 나았다. 친환경 약을 만들어 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거실에서 친환경 약 냄새가 나는 것이 걱정됐다(달걀로 만드는 것도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상추들을 정리했다. 사람의 삶도, 식물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가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삶처럼, 식물들도 전부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상추들을 정리하면서 음식 쓰레기로 가득 나온 상추들이 매우 아까웠다.

새롭게 씨앗들을 심고 물을 줬고, 만 이틀 만에 싹이 났다. 싹이 난 상추들을 보면서 함께 잘 자라 가자고 말을 건넸다. 과거의 내가 겪은 불안과 고통들이 한순간 씻겨 내려갔다. 오늘의 나는 드디어 만난 나와 살아가면서 살아갈수록 삶이 더 좋아진다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 드디어 삶에서 제거해야 했던 것들로부터 자유해졌다. 상추가 잘 자라기 위해서 응애 벌레를 단 한 마리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내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진정한 나와 함께 살며 걷는다.

삶에 또 무엇이 나타날지, 또 어떤 실패가 나를 기다릴지 알 수 없지만 내 감정을 온전히 살피며 살 수 있는 오늘이 정말 좋다. 이제야 숨이 쉬어지고, 이제야 사는 맛이 난다.

상추가 자라서 먹으려면 한 달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일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니까 천천히 기다려본다. 내 인생도, 상추도 어차피 자랄 거니까.

상추도, 나도 인생에서 응애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많은 희생 <?>을 치렀다. 그러니 이제 응애 벌레가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잘 살피고, 잘 키워야지.라고 마음먹는다. 제발 이제 꺼져주라. 응애벌레. 나는 이제 나를 잘 돌보면서 살 거다. 그리고 토오루, 미래에 내게 와줄 내 아이를 잘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인생을 채워갈 거다. 그러니 이제 응애벌레는 아웃이다.

상추도, 나도 파이팅.

#응애벌레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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