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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도리>


1. 인간의 도리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의 도리', '사람의 도리'
라는 건 쌍방일 때 아름답다는
걸 배웠다.


일방 만의 도덕과 도리의 잣대는
상대를 조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도 삶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일방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라면' 이라는 도덕적
기준은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도 받아들이게 됐다.


폭력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너무 익숙해서
혹은 상대가 당연하게 사용해서
어느 순간 폭력의 강도가 높아져도
폭력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생겨나고, 결국 삶의
파괴로 이어진다.


홀로 있는 시간,
사람의 도리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게 사람의 도리에 대해
이야기 했던 인간들은
재미있게도 자신은 사람의
도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었다.

그리고 정말 '사람의 도리'를
아는 사람들은 그 말을 꺼낼
필요 없이 자신의 삶을 인간답게
제대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 없이
아주 당연하게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는 그들은 세상의 밝은
면을 담당하며 당당한 '리얼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의 도리'를 입에 달고
살며 상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폭행하는 또 다른 그들은
당연스럽게도 타인의 삶을
파괴하며 자신의 이익을
찾아먹는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스마트'함 이라며.


착함, 착한 사람들은
착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데,
착함을 인지하는 사람들은
착함과 착하지 않음의
기준이 뚜렷한 사람일 것이다.

착함이 당연한 사람들에게
착함은 착함이라기 보다
당연한 삶의 자세일테니까.

돌아보니,
그 폭력 속에 참 오래도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리고 화가났다.

어떤 순간에도 나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며 선택해야한다는
것을 배운 건, 지나왔던 삶에서
혹독하게 배운 교훈이다.


2. 인과응보에 대한 생각



인과응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러나
세상엔 인과응보의
결과를 누리지 않고 벗어나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보면
가끔 화가났다. 그러다가도
사탄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삶에 있어 어떤 자세로
살아갈지 알게 된 건
몸이 많이 아프게 되서
였지만,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육체적 아픔이 아니어서
감사하고 있다.

하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그리고,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나의 아버지께 또 감사.


세상에 나를 보내주신 그 분의
사랑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고,
주변에 채워진 인물들이,
그들의 행동이 말이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내 삶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가 가혹하다 느낄 때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흐려지고
원망도 아픔도 물에 흘려
보낼 수 있는 내가 된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알려주시려는
나를 향한 그 분만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시간의 마법은 많은
것들을 망각의 늪에 던져놓는다.

차츰 차츰 흐려져가는
많은 과거들이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배운
많은 교훈들이 내 삶 속에,
세포 하나 하나에 아로 세겨졌다.


단 하루를 산다면
내가 오늘의 그 선택을
할 것인지, 오늘의 만남을
선택했을 것인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많은
것들이 가벼워진다.


하루 만 생각하며 사는 삶에
힘든 것도 어려운 것도
오늘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의
어려움도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진다.


3. 나를 위한 선물. 오늘을 살자.


인간의 도리, 사람의 도리라는
엄청난 문 앞에서 나는 돌아선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일방에게만 강요되는
사람의 도리라는 건 폭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쌍방이 아닌
일방에게 향하는 그 말은
과감히 씹어먹어주기로 한다.


그 말에 따라 참 많이도
움직였다. 마음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린다. 내가
나를 공격하고, 급기야 타인을
위한 선택을 하며 나를 버렸다.
그랬던 숱한 경험들 속에서
나는 나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착하다.' 라는
칭찬 한마디로 다시 폭력을
감행한다.

내가 했던 많은 행동들이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상대가 생각하도록 한
'허락'이 되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니.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그러니까 오늘을 살자.
나의 오늘은 너의 오늘보다
더 소중하니까.

너의 오늘이 너에게 중요한 것
처럼, 나의 오늘 역시 나에게
중요하다.



나의 '착함'이 너의 오늘을 위한
도구가 아니 듯, 나의 '착함'을
나를 위해 발휘하도록 한다.

그것이 내가 내게 주는
오늘의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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