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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감사하며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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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그와 매일 아침과 저녁을 맞이한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행운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항상 비어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 한편이 빛으로 가득 채워진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매일 배워간다.
매일 감사함으로 눈을 뜨고, 감사함으로 밤을 맞이한다. 출근 준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평온하고 아름다운 하루들을 맞이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매일 감사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면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일 텐데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앉아 한참 듣고,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나도 내가 이렇게 행복한 하루들을 맞이하게 될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고, 가족은 원래 가족이 아니며, 사랑은 드라마나 책 어딘가에서 그리움으로 노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사랑은 존재하고, 아픔은 치유될 수 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됐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에 어려움은 끊임없이 닥쳐온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을 감사함으로 살아갈지 불평으로 살아갈지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어려움도 아픔도 감사함으로 성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신의 은총이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내 안에 힘이 남아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 안에 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이 주신 오늘의 삶을 나라는 존재 그대로 사랑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하나님이 베푸는 사랑은 조건이 없다는 것도 돌고 돌아 이제는 알겠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해야만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며 내가 만든 믿음의 방에 갇혀 믿음생활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신은 원한 적이 없다는 아이러니함에 웃음이 난다. 인간이 만든 틀 안에 신과 믿음을 끼워 놓고 오랫동안 나는 신을 오해했다. 나는 오랫동안 행위를 통해 믿음과 사랑을 그에게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신에 대한 사랑을 보이기 위해 나는 과한 노력을 했었다. 사랑의 결과물은 사랑이 차고 흘러넘쳐서 무언가로 결국 보이게 된 것뿐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항상 자연스럽지 못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 안에서 배웠고, 알았던 조건적 사랑들을 통해 신의 사랑을 바라봤었다. 그런데, 신은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원하신 적이 없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해 왔고, 오해했던 신의 사랑은 이 땅에서 만난 사람들의 상처와 오해들로 사랑처럼 가장하고, 보인 것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신은 너로 충분하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너는 사랑받을 존재고, 소중하단다.라고 아름다운 평안을 선물해 주신다. 내가 있는 그대로 하루의 삶을 살아가도 충분하다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평안을 주셨다.
오늘의 나는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해했던 신의 사랑을 새롭게 배워간다. 과거의 나는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새벽 예배와 숱한 봉사, 성경 매일 읽기, 오디오 성경을 잠자면서도 듣기,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 듣기, 매일 좋은 일 하기, 고아원에 봉사활동 가기, 어려운 사람 돕기, 보이지 않게 선행하기, 기독교 서적 읽기, 예배 영상 매일 듣기, 원수 사랑하기, 가족 용서하기와 효도하기, 교회에서 살기,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주기 등등 내가 만들어낸 믿음의 항목들을 정해 놓고 스스로를 괴롭혀 왔다.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공허함과 고통 속에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 만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고,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나의 모든 것은 누군가들에게 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믿음으로 행위한 결과는 극심한 우울감과 고통, 상실, 수치, 불안, 두려움에 갇히게 했고, 나는 더 이상 나와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됐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나라는 존재 만으로 충분하다며 신나는 하루들을 산다.
요즘 나는 오후가 되면 어스름한 햇빛이 들어오도록 침실의 커튼을 반쯤 걷고, 노란색 조명 등을 침대 양 끝에 켜 둔 채 한참 누워 있다. 빛과 빛들이 섞여 아름다운 빛이 방 안에 가득해진다. 아름다운 하루들이 방 안에 가득 채워지고, 나라는 존재 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부어진다. 무언가를 해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나에게 말해 준다. 그리고 매일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간다. 신기한 건 그럴수록 내 주변은 더 맑아지고 정돈되고 아름다워졌다.
과거에 나는 보이지 않는 관계와 굴레 속에서 홀로 있어도 양팔과 다리가 당겨지는 고통 속에 머물렀다. 더 이상 아무 관계를 하고 있지 않아도 과거 속에 파 묻혀 홀로 고통에 잠겼다. 그랬던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라며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산다. 그리고 더 이상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나를 아프게 하는 관계 들 속에 나를 두지 않는다. 한 때는 매일 아침 일어나 나를 아프게 하는 관계와 상황에 두지 않겠다는 글을 읽고 또 읽어야 했다. 지금은 그조차 필요치 않게 됐다.
오늘의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행복으로 느끼고, 신의 진실하신 사랑과 신의 사랑과 함께 온 토오루에 감사하며 하루를 산다. 그리고 과거 속 관계들에 대해서는 나를 진실하게 만날 수밖에 없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며 산다.
요즘 주디스 올로프의 감정의 자유를 읽어가는 중인데 거기에서 나온 글이 매우 인상 깊어 나눠본다.
'자유의 관점에서 볼 때, 뱀파이어들은 당신을 들볶음으로써 자신감과 감정적 탄력과 자기 돌보기 능력을 발달시키도록 자극하는 선생님들이자, 위장한 보살이다. / 감정의 자유 / 쥬디스 올로프 / 189쪽.'
나를 괴롭혔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니. 엄청난 혜안이었다. 은혜가 되는 말이었다. 정말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늘의 나를 찾고, 돌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항상 좋은 사람, 고마운 사람은 됐을지언정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스스로는 돌보지 못하면서 타인은 어떻게든 끝까지 돌보려고 했던 병적인 나를 버릴 수 있었던 것도 지난날들의 고통스러운 관계들 덕분이었다.
이렇게 좋은 나이에, 이렇게 빠른 나이에(비슷한 경험들을 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아주 젊은 나이다.) 나를 찾고, 삶을 되찾은 건 기적이고, 신의 은총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을 행복과 감사함으로 살아간다.
매일 감사함으로 살아가리. 이제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나와 잘 살아갈 수 있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참된 신의 사랑을 온전히 받으면서 하루들을 살아간다.
기쁨 속에서, 아름다운 신의 은총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감사함으로 매일을 살아가려고 한다. 오늘 하루가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나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다 갈 거다. 예수님과 토오루와 그리고 가장 소중한 나와 함께. 나는 행복 속에 살다 갈 거다. 사는 동안 감사하며 살아가리. 오늘도 그래서 나는 감사한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해요. 토오루. 고마워. 나.
#행복속에살아가리
#사는동안감사하며살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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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감사하며 살리라
2023. 12. 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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