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어가는 나>
작년 만해도 누군가 포스팅 댓글에 기대한다는 글을 달면 나도 모르게 부담이 되고 불편함을 느꼈다. 오늘의 나는 작년 보다 마음이 더 편해졌는지 누군가의 평, 응원, 기대가 편안해졌다. 사람은 자기 입장과 경험 속에서 상대를 바라보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랫동안 자유를 기대하며 살았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그리고 진짜 자유를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간다. 자유라는 것이 꼭 경제적인 독립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직업을 꼭 가져야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물론 경제적 자립은 꼭 필요하다.
이십 대에 어떤 책에서 본 글 중에 내게 박힌 글이 있다. 돈이 없을수록 열심히 공부하라고. 그래서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공부하는 데 모든 돈을 다 사용했다. 덕분에 공부는 정말 원 없이 해 봤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노력가인지 칭찬하고 안타까워했다.
항상 다복하게 일이 터지는 인생이라 나만을 위해 시간과 돈,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삶은 항상 바쁘고 피곤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간단히 무시하고 내 길을 갔으면 됐는데, 그때는 죄의식과 죄책감에 갇혀 스스로를 억압했다.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원래 다들 그런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편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직업을 갖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스스로를 조건형으로 사랑한 건 바로 나였던 거다. 무조건적인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유년 시절 덕분에 깨진 사랑을 채우기 위해 돌고 또 돌았다. 오늘의 나라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지만 과거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지난날들 동안 아무것도 없고, 무엇도 되지 않은 무가치한 듯한 나를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디부터 문제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괜찮아졌다 싶으면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것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래서 지난 2년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참 많이 변했다. 오늘의 나는 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그리고 나와 토오루를 위한 진짜 선택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행동한다. 정말 원했던 직업은 갖지 못했지만, 나는 나를 찾았고 나를 얻었다. 그래서 앞으로가 무섭지 않다. 앞으로는 더 잘될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과거의 나는 모든 것들을 다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는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처에 있는 예수님을 모른 척하지 않기 위해 선행을 했고, 없는 돈을 쪼개 십일조를 하고 구제하는데 돈을 사용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내 행복은 항상 뒤로 미뤘다. 심지어 누군가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내 건강까지 쪼개기 일쑤였다. 그렇게 사는 게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오랫동안 나를 방치한 나머지 진짜 내가 원하는 걸 모르는 상태가 됐다. 오늘의 나는 어떨까. 오늘의 나는 원래의 나였었던, 나였어야 하는 상태로 돌아왔다.
어릴 때 유일하게 결혼하지 않은 삼촌이 내게 말했다.
"처음 왔을 땐 사람 눈도 잘 보고, 말도 잘하고, 따지기도 잘하더니.. 지금은 사람도 못 쳐다보고, 아무 말도 안 하는 아이가 됐네."
라며 삼촌은 안타까운 눈을 하며 말을 뱉었다. 나는 그때 잠시 삼촌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수치심을 느꼈었다. 수치심을 느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인식했다. 삼촌은 자라면서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께 가장 많이 맞았다고 했다. 그 사실도 삼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삼촌은 그걸 풀고 싶었는지 유년시절 내 곁에 있던 어른들 중 가장 나를 많이 때렸다. 그리고 삼촌은 그 많은 조카들 중 유일하게 나만 때렸다. 내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 친동생은 삼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분노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삼촌이 불쌍하다는 말을 하며 나를 내려다볼 때 내 나이가 열 살 무렵이었다. 그 맘 때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걸었다. 눈을 마주치면 어른 눈을 쳐다본다며 뺨을 맞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나를 보고 그때 그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히 생각난다. 그는 자신뿐이니라 여러 명 어른들의 매타작 대상이 되는 나를 보고 아주 잠깐 미안함을 느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키워주신 어머니, 아버지 모두 모른 척하며 지나가셨고, 가끔은 동조하기도 하셨다.
작년에 키워주신 아버지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기로 했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게 누구나 그 정도는 맞고 자란다고 하셨다. 그리고 정신과에 가든 말든 듣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나를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매주 문자와 전화를 하던 그가 원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주 잠깐 고민했다. 아마 아버지도 자랄 때 누군가에게 맞고 자라셨나 보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아들들과 나와 같이 자란 또래 친척들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그들은 상대적으로 항상 안전했다.
권리의식이 뛰어나고, 가장 먼저 나를 챙기고, 문제가 있으면 문제점에 의문을 갖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말 많은 아이였던 나는 조용하고, 말 없고,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아이로 자랐다. 2년 전 삼촌의 누나인 고모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있다. 고모는 삼촌이 어릴 때 나를 그렇게 줘 패던 걸 무마라도 하듯 내게 말을 건넸다. 그때 토오루 님도 내 곁에 있었다.
"○○가 너를 그렇게 때린 건 큰 오빠가 ○○를 그렇게 패서 그랬어.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 줘야 돼."
위로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모에게 쏘아붙였다.
"그렇다고 조카를 파이프로 패진 않아요. 그리고 삼촌은 저만 때렸잖아요. 삼촌이 아이를 낳으면 저도 때려도 되겠네요?"
고모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삼촌에게 큰 형인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대항할 수 없는 존재였다. 삼촌이 다 자라서도 여전히 큰 형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반면 아버지를 닮은 작은 아이인 나는 큰 형에 대한 감정을 전이하기에 아주 적합하고 안전한 대상이었다. 그걸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과거를 되짚어가면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 것이 있어 글을 나눈다. 누군가를 용서하면 반드시 그 혹은 그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용서는 무겁고 힘든 일이었다. 어느 날 봤던 심리 책에서 내게 가볍게 말을 걸어왔다. 용서해도 만나는 건 별개라고. 영원히 보지 않는 선택을 한대도 괜찮다고 말이다. 당연한 건데도 나는 그 말이 처음 듣는 말처럼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아도, 그 누군가는 용서받았다며 잘 살아간다.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가든 상관없이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는 게 세상이다. 그러니 용서는 개인적인 거다. 용서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과(심지어 가족이더라도) 다시 볼 필요는 없다. 어떤 선택이든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선택을 하면 된다. 그 편안한 선택이 무엇인지 여러 사정을 따지기 전에 내면의 아이에게 직접 물어봐라. 대답이 없으면 대답할 때까지 묻고 신에게 기도해 봐라. 그 과정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무응답이 응답이라고 사실 다시 만나는 게 너무 싫어서 묻고 있는 거라는 걸 알게 될 거다. 용서한다고 해서 다시 만날 필요 없다. 아무런 문제 없이 각자 잘 살아주는 것이 사실 서로를 가장 돕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친구라고 도와야 한다고 돕지만 돕는 일이 오히려 상대를 망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돈을 벌어 형제들의 사업을 돕는다며 힘을 썼지만 결국에 아버지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형제들 모두 더 깊은 가난에 빠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형태의 도움은 서로를 파괴한다는 걸 눈앞에서 보고 알게 됐다. 이 부분은 언젠가 더 깊게 다루는 날이 올 거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패는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행운과 같은 친구일 수 있다. 만났을 땐 너무 불행해서 실패라는 놈과 함께 나를 가두게 되지만, 지나고 보면 오히려 나를 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불변의 진리가 된 걸 게다. 행복도 불행도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을 그냥 살아간다.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늘의 나를 더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오늘을 산다.
누군가에게도 인생 새옹지마. 당신은 더 잘 될 거고, 너무 소중하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은 내게 더 달콤해져 보련다. 달콤한 말은 당분간 나와 토오루에게만. 끝.
#내인생자유를향해
#진정한자유
#오늘을산다
내가 인생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강제로 멈춰진 지난 2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라는 껍데기로 쌓인 지난 휴식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의 나를 만날 수 없었을 거다. 직업을 얻고 직업적 성공은 했을지 모르지만, 더 큰 병에 걸려 강제로 멈춰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 실패는 큰 선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