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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에 대하여>


  미워할 수밖에 없어서 미워하는 마음을 허락했더니, 어느 순간 미움의 상대방을 닮아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걸 발견했을 때 얼마나 슬프고, 아팠는지 모른다. 10대에는 나를 버린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20대에는 키워주신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0대 후반이 되니 시부모님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미워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상대방의 잘잘못을 떠나 스스로가 초라하고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친인척들은 하나 같이 아버지가 짐승이기 때문에 나도 짐승자식이라 더럽다고 대놓고 이야기했다. 이십 대 후반이 된 나는 용기를 내서 아버지 대신 당사자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아픔을 줬던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용서를 빌기 위해 전화를 걸고 나서야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당사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 타인의 죄를 아버지와 내가 뒤집어쓴 것이 몹시 억울하고, 아팠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마다 미워지는 스스로를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왜 이렇게 누군가를 끊임없이 미워하고 있는 걸까. 왜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을까. 를 생각하면서 숱한 밤을 눈물로 지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들의 과거를 파고, 또 파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찾아냈다. 덕분에 내면의 에너지를 모두 소비했다. 그리고 내장 기관에 문제가 생겨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280까지 치솟고, 각종 알레르기와 고칠 수 없는 만성 질환들을 갖게 됐다.

  내면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이 나자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났다. 타인을 이해하지 않을 권리. 나는 타인을 이해하지 않을 권리를 내게 주기로 했다. 더 이상 타인을 이해하며 타인들의 과한 요구를 모두 해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내면의 에너지가 조금씩 자라나면서 황투시안 작가의 책을 우연히 읽을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언젠가 봤던, 그래서 미움을 내려놓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었던 닮아감의 법칙을 황투시안 작가 책에서 발견했다. 그 순간 주마등처럼 10대, 20대, 30대의 노력들이 눈앞에 스쳐갔다. 내가 닮아가고 싶지 않았던 상대들의 말과 행동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랬었지. 그때 나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타인들을(가족도 타인이다. 가족의 타인성을 30대 후반이 돼서야 알았고, 받아들였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이때 나는 용서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다. 단순히 말과 글로 용서한다고 말하고 적는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최근 나는 내가 정말 미워했던 상대와 나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예민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나의 말과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게 화근이 됐다.

  지난 주말을 지내면서 아무것도 아닌 걸로 남편과 투닥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미워했던 상대들의 말투가 내게서 튀어나왔다. 그제야 나는 미움의 상대방과 내가 닮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늘의 나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가득 올라왔다. 그동안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내가 다시 버겁게 느껴졌다. 나를 다독이기 위해 새벽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을 보며 한참 앉아있었다. 마음을 게워내고 또 게워내면서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삶, 내 삶에 들어온 타인인 소중한 내 남편. 더 이상 짙은 어둠인 갈색세상이 아니라, 밝고 따뜻한 노란 세상에 살고 싶다. 그러니, 나는 타인들을 용서하지는 못하더라도 미워하는 마음은 나를 위해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서 나와 남편과 언젠가 내게 와줄 내 아이는 노란 세상에 살도록 할 거다. 그러니, 나는 나도, 타인도 미워하지 않고, 그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주말을 보냈다.

  미워하는 상대방을 닮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온전히 내 모습으로 살다 가고 싶으니까. 행복을 그리면서 살 거다. 지난날들의 타인들은 과거에 모두 버려두고,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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