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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대한>


약하지만 나약하지 않다.

참 위로가 됐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약했고 그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약해서
자주 넘어져 울었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툴툴 털고 일어섰다.

그래 약하지만 나는 나약하지 않아.
자신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준다.

숱한 이야기들을 거쳐
지금을 맞이했다. 요즘은 어떤 일들을
거쳐왔는지 흐릿 해 지곤 한다.

죽을 때까지 기억할 거야. 라든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복수할 거야.
라든가. 어릴 때 나는 그렇게
많은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반복해서 재생하고 또 재생했다.
왜 법학을 공부하게 됐는지.
나는 왜 이 삶을 지속하고 싶은지.
당위를 찾기 위해 다시 일어서기
위해 기억을 날카롭게 갈고닦았다.


그러다 '용서'를 강제로 배웠다.
망가져가는 마음과 몸이 '용서'를
강제로 안겨다 줬다.

용서하지 않으면 결국 망가지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만성 알레르기, 만성 천식, 음식 알레르기,
자가면역질환... 숱한 자기 공격성
질환들을 가지게 됐고 천천히
마음과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내게 고운 말을 해줄 상대를 찾기
위해 그렇게도 찾아 헤맸는데
내가 자신 만의 친구가 되어줄
생각은 못 했다.

요즘 매우 아팠다.
심장 주변이 아팠다. 가만있어도
쑥쑥 하고 쑤시는 듯한 통증.
마음이 아팠다.

아프고 싶지 않다 생각하면서도
금세 아파졌다. 생각한다고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시간의 무게만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요즘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지
왜 공부를 시작했는지 생각하곤 했다.



'인생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거다.
산으로 가고자 오르고 올랐으나 원래
바다로 가야 했던 삶이었다.'는
한 강연자의 말이 마음에 닿는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지만
생각보다 훨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태어나보니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 '문제적 가족'들부터
숙명처럼 그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 만들어온 이야기들까지.

그럼에도 걸어왔고 덕분에
만난 소중한 인연들도 많았다.

비슷한 환경 속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해왔던 일들과
만남들이 나를 치유해 줬다.

보고 싶다. 민지도 민영이도.
그리고 보육시설에서 만났던
예쁜 아이들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나는
그 아이들과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라고 느끼는 건 삶의 배경 때문일 게다.
누군가의 삶을 공감하려면
어느 정도는 비슷한 삶의 바탕이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가족도, 이야기도 주셨나 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나의 아버지시니까.


공감력을 갖추라며 내게
겪어봐야 안다며 선물처럼
가득 안겨주셨다.


돕고자 했으나 내 삶을 건져준 건
삶을 바탕으로 한 만남이었다.
아이들, 아이들과 나누고 걷는 삶.
나는 아이들이 좋다.


아침 일찍
보건소로 PCR 검사를 하러 간다.

지난번엔 통닭을 먹었는데
응급실에 가야 했다. 아낙필라시스.
기도가 막히고 혀가 부어 숨쉬기
어려워진다. 온몸엔 두드러기가
생기고 블랙아웃이 시작된다.

알레르기 반응 음식들이 많아졌다.

고등어만 먹어도 이젠 반나절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있어야 한다.
고등어도 새우도 꽃게도 너무 좋아
했는데.. 짜장 라면을 끓여 먹었다가
하루 종일 배가 아프다.
대체 짜장 라면은 왜?
의사 선생님들은 알아서 조절하고
알아서 조심하라 신다.
약물 부작용도 많고 음식 알레르기도
복불복이니 발현되면 그때부터
그 음식은 먹지 않는 걸로 하라며.

지금 목록에 추가하며 알게 된 것들.
고등어, 꽃게, 새우, 내장국밥,
내장 구이(소, 돼지 등), 족발,
몇 가지 발효음식들..
몸 상태에 따라왔다 갔다 하니..
정말 힘들다. 가끔은 간장에도 얼굴
수포가 생긴다.

결국 백신 맞는 걸 포기하고 이틀에
한 번씩 PCR 검사를 하기 위해
보건소에 간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토오루와 통화

"무직자라고 체크하고 나왔어.
무직자 항목이 있더라.
하단엔 취업 준비생이라고 적고.
처음엔 부끄러워서 말도 못 했는데
지금은 받아들이게 됐나 봐."

라는 말에

" 학생이지. 학생 체크 항목 없었어?
왜 무직자야. 넌 꿈이 많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잖아. 괜찮아. 더 멋지게 되려고
준비하는 거야. 다음엔 학생에 체크해"

" 이 나이에 무슨. 무직자지.
내가 무직자가 될 줄이야.
예전에 재시 볼 때 교수님이
여러 번 학생이 아니라 나한테
무직자라셨잖아.
그때 엄청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무직자라는 말을 하는데
마음이 편하더라. 받아들인다는 게
이런 건가.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되니까
재밌기도 하고. 그냥 다 감사해..
널 만난 것도. 고마워. 고마워.

하나님이 알게 모르게 지켜주신 게
많았더라고. 요즘은 많이 감사하고 행복해.
이런 걸 알게 된 게 시험 떨어져서 인 거
같아서 그마저도 지금은 감사하고.
인간은 직접 겪어봐야 공감력이
높아지나 봐. 동굴 속에서 10년 있었다는
다윗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요즘. "

"괜찮아. 넌 꿈이 많은 사람이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더 잘 될 거야.
내가 도와줄게. 넌 훌륭한 사람이야."

"이런 시국에 무직자라 다행이야.
만나는 사람도 없고 독서실이랑
집만 왔다 갔다 해도 되니까
무직이 새삼 감사하다.. 직업인
이었으면 아낙필라시스가 있건
없건 무조건 주사를 맞아야 하잖아.
이것도 하나님의 배려이신가.
오빠가 직업인인 것도 감사하고."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했다고
느끼는 건 토오루를 만난 거다.
어디서 배웠는지 당연스럽게
진심을 담아 예쁜 말을 해 주는 그에게
감동을 느끼곤 한다.

훌륭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 주는 그가 너무 훌륭해서 마음이
토실토실 해 지는 간지러움을
느낀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데.
따뜻한 진심을 가진 고운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나의
'사랑의 제1조 건'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마다 사랑을 선택하는 첫 번째
조건이 다들 다르고, 그 조건이
무엇인지 알려면 자신의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지인 중 내게 '돈만 많으면 된다고,
잘 생겨야 하고 키 큰 게 우선이라거나
직업이 특출 나게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혹은 전부 있어야 한다거나.
이혼의 원인이 죄다 돈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요즘 이혼 사건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자들이더라.라는 말을 전해 들었으니.


1순위 조건이 '돈'인 경우
그 조건만 잘 갖춰져도 그럭저럭
서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자기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1 순위 조건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데 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솔직하지
못해서, 아니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몰라서. 일단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행복해져라거나 돈 없으면 지옥이지
하며 그것만 보고 결혼하면 그 결혼은
반드시 이혼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까.



자신에 대해 더 솔직해지고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려면
자신의 배경을 더 이해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자라온 배경은 적어도 어린 시절엔
부족함 없는 환경이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가득한 환경 속에서
내게 부족했던 건 정서적 행복이었다.

말, 나는 따뜻한 말이 필요했다.
다정한 말과 다정한 포옹이
맛있는 음식보다 절실했다는 걸
과거를 돌아보며 알게 됐다.

(이런 사람들은 참 사기도 잘 당한다지.
재밌게도. 사기꾼들은 사람 봐가면서
말을 잘하니까.)

사기꾼 안 만나고 토오루를 만나
행복을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하나님 축복이야.. 들어도 들어도
행복한 말과 다정함은 나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었다.


고마워. 토오루.
고맙습니다. 하나님.

나는 토오루가, 하나님이
참 좋다.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예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그 무한한
사랑을 갚을 길이 없다.

그분이 보내주신 토오루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단은 '무직자'여서
감사하다. 이 말이 이젠 아프지 않다.

그리고 고맙다.
오늘이. 걷고 있는 내가
대견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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