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8. 화. AM 7:58. - 2025. 4 29. 화. PM 1:43. 완독.>
<마음을 치료하는 법> 완독 후 기록.
로리 고틀립 지음
코쿤북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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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왜 이럴까? 자기 자식들의 어린 시절을 질투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들이 가진 기회. 부모가 제공하는 경제적, 감정적 안정. 자식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펼쳐져 있고, 자신에게는 과거만이 남았다는 사실.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모든 걸 자녀들은 갖게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행운을 누리는 아이들에게 미움을 품게 되기도 한다.
- <마음을 치료하는 법>, 로리 고틀립 지음/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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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리타의 자녀들이 그녀와 얘기하려 하지 않는 건, 비록 요청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녀가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가지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용서다.
리타와 나는 그녀가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은 이유, 아이들을 때리는 남편의 폭력을 방치한 이유, 아이들 곁을 지켰어야 할 시간에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테니스를 치거나 브릿지 게임을 한 이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스스로에게 했던 변명들을 넘어서자 그녀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이유에 도달했다. 리타는 자신의 아이들을 질투했다.
이건 희귀한 일이 아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여자는 딸에게 새 구두나 장난감을 사줄 때마다 잔소리를 한다. “네가 얼마나 복 받은 아이인지 알기나 해?” 비판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 그런가 하면 아들이 지망하는 명문 대학을 둘러보러 가지만 투어 내내 가이드와 학사 일정과 기숙사를 흠 잡아서 아들을 민망하게 만들고 입학 가능 가능성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아버지도 있다.
부모들은 왜 이럴까? 자기 자식들의 어린 시절을 질투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들이 가진 기회. 부모가 제공하는 경제적, 감정적 안정. 자식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펼쳐져 있고, 자신에게는 과거만이 남았다는 사실.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모든 걸 자녀들은 갖게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행운을 누리는 아이들에게 미움을 품게 되기도 한다.
리타는 형제가 있는, 수영장이 딸린 안락한 집에 사는, 박물관에 가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을 질투했다. 그녀는 그 아이들의 젊고 에너지 넘치는 부모를 부러워했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행복한 어린 시절을 아이들에게 허용하지 않고, 어려서 자신이 간절히 바랐던 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구원하지 않은 것엔 이런 무의식적인 질투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 <마음을 치료하는 법>, 로리 고틀립 지음/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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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얼마 동안, 줄리 바로 다음으로 잡힌 존의 진료 시간에 이 중요한 교훈을 되새기려고 늘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고통에는 순위가 없다는 걸. 괴로움에 순위를 매겨서는 안 되는데, 고통은 경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들은 종종 이걸 잊는다. ‘나는 하루 종일 애들을 봤어.’ ‘내 일이 당신이 하는 일보다 더 힘들어.’ ‘내가 당신보다 더 외로워.’ 누구의 고통이 승리하고, 누가 패할까.
- <마음을 치료하는 법>, 로리 고틀립 지음/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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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사에게도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전문가도 자신의 상처를 다루지 못한다>
심리치료사에게도 심리치료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던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이 책을 읽는 데만 무려 4개월이 걸렸다니, 처음 읽기 시작한 날을 적어놓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책을 다 읽었으니, 읽는 동안 느꼈던 것들 중 강렬했던 몇 가지를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심리치료사에게도 심리치료가 필요할까. 심리학 강의를 들으면서 이 부분을 많이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정말 많은 심리 상담 관련 종사자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상처조차 힘겨워 치료를 위해 찾아온 타인의 마음까지 오히려 파괴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리학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들도 그 부분을 여러 번 강조하셨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든 심리학자나 심리치료사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 일화들을 들었을 때, '이제는 완전히 열매를 맺었어야 할 분인데,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사실 암을 치료하는 의사도 암에 걸리기도 하지 않던가.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래서 더 전문가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상처가 매우 깊기 때문에 타인의 상처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친구와 함께했던 시절, 질투를 이해하게 되다.>
책을 읽으면서 한 인물이 떠올랐다. 나의 이십 대를 가득 채워줬던 친구다. 당시 나는 정말 이상한 아이였고, 이상한 아이인 나의 대부분을(정서적으로) 받아줬던 유일한 친구기도 했다. 그 친구와 정말 많은 것들을 함께했다. 봉사활동도 같이 다니고, 독서실도 함께 다녔으며, 심지어 친구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몇날 며칠을 친구 집에 머물기도 했다. 친구 집에서 자고 대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친구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세상 모든 것을 이룬 듯한 느낌이 들었던 내게, 정말 많은 것들을 남겨준 친구다. 참 많은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러다 내가 하고 있던 봉사활동에 어느 날부터 친구가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와 봉사활동을 다녔을 때, 내가 다니던 시설의 아이들이 마침 많은 분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원장님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통의 아이들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누리게 되기 시작했다(60억 되는 건물을 새로 짓고,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 모든 면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친구가 오기 전까지 시설 아이들은 보통의 시설 아이들처럼 참 안타까운 부분이 많아, 사비를 털어 로션과 학용품을 사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아이들은 바이올린을 배우고(그 외에도 원하는 악기와 취미생활을 선택해서 할 수 있었다), 성장이 다소 느린 아이들은 성장 호르몬 주사도 맞고, 카이스트 교수님 같은 분들께 직속으로 교육도 받는 등 정말 많은 혜택을 누렸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많이 도움을 주러 오셨다.
당시 나도 그렇지만, 친구도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모를 생활고에 시달리던 때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이 맞아 봉사활동을 함께 다녔고, 주말마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며, 시설 청소와 정리를 도맡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더 이상 봉사활동에 나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시설의 아이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도움을 줄 필요가 있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그렇게 갑작기 봉사활동을 접었다. 그때 친구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10년이 훨씬 지난 오늘에야 친구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시설의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버림받고 상처를 가득 입었기 때문에 좋은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참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더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나 당시를 다시 돌아보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 오늘의 내가 벗어나지 못한 질투를 친구는 그때 느꼈던 것이다.
<조카를 통해 마주한 내 안의 질투>
1년도 더 된 즈음에 남편에게 조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조카는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많은 사랑을 조건 없이 받았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나는 그 아이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축하해줄만한 행사가 있어도 참석하지 않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사실 친동생의 아들들이 태어난 후에도 한 번도 만나러 가지 않았기 때문에, 죄책감이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생이 아이를 낳았다며 내게 와주길 바랐지만, 나는 동생의 초청에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 동생이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곳과 깊은 인연을 맺어갈수록 동생과의 만남을 더욱 줄였고, 지금은 완벽히 차단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죄의식만큼, 남편의 조카를 만나는 것이 꺼려졌다.
<시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느낀 아픔과 이해>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내게 자신이 사용했던 커튼을 주겠다며 남편분과 아이를 안고 집 앞으로 오셨다. 그때에도 나는 인사조차 하러 나가지 않고 남편에게 받아오라고 했다. 그때는 그동안 시부모님과 있었던 일 때문이라고, 그리고 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상처 받았던 경험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돌아보니, 내가 옹졸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알았다. 과거, 반찬 하나를 가져갈 때도 가끔 시아버지는 나를 돌아보며 "지 부모님한테 챙겨주라고 해."라며 무안을 주곤 하셨다. 시아버님은 나의 상황과 형편을 모두 아시는 분이신데도 그런 말을 거침없이 차갑게 하셨다. 사실 그 반찬도 내가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주신다며 준비해 주신 것들이었다.
지금은 시아버님의 마음도 이해된다. 없는 살림에서는 한 명이라도 입을 줄여야 자신의 생활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충분할 만큼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숱한 정서적 학대는 지금도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내게 가까이 다가오시더니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아냐."고 물으셨다. 그때 느꼈던 수치심은 지금도 마음을 붉게 한다. 그래서 아직도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겁이 나서 보지 못하고 있다. 당시 가난한 학생 신분으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때라 스스로도 기생충처럼 느껴졌던 시기였다. 그때 느꼈던 불쾌함과 고통이 가끔 가슴을 찢어놓곤 한다. 사실 아버지는 나를 언제든지 대체되어 사라질 수 있는 존재로 여겼던 것 같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서도, 아버지는 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나를 만나는 아들이 이해되지 않으며, 아들이 좋다니 어쩔 수 없이 보고 있다는 말을 문자로 보내셨다. 그래서 시아버님을 떠올리면 도와주셨던 일들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가슴이 덴 듯 아픈 양가감정을 느낀다. 아직도 시부모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생후 1년 아이를 질투한 나를 발견하며>
그랬던 시아버님이 조카가 태어나자 병원에도 직접 데려가고, 밥을 먹이고, 같이 놀아주고, 동화책도 읽어주며 온갖 사랑을 쏟아부으셨다. 남편의 가족 방에는 아이와 함께한 내용과 사진들이 모두 올라온다. 그래서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될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통스러워 남편의 가족 방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고, 지금은 거의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원하고 갈구하며 노력해도 얻지 못했던 인정과 사랑을, 아무 조건 없이 받는 아기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에 불이 일어났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러다 이 책의 한 부분을 보고 깨달음이 확 들어왔다. 내가 얼마나 옹졸한 인간인지, 태어난 아이를 축복해주기는커녕 얼마나 어리석고 나쁜 사람인지 깨달았다. 내가 받지 못했기에, 타인이 받는 것을 볼 때 질투하고 어리석게 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직 내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책 속 한 부분처럼, 나 역시 "네가 얼마나 복 받은 아이인지 알기나 해?" 비판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을 내 아이에게 줬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엄청난 수치심도 밀려왔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내가 생후 1살도 겨우 넘은 아이를 이렇게까지 질투했다니. 내가 얼마나 이상하고 옹졸한 인간인지 깨닫고 인정하니, 마음이 참 가벼웠다. 그리고 이제는 진심으로 아이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 넉넉한 어른으로 한 단계 성장했다. 미안하다. 아가야.
<과거의 핵심 신념과 나를 구한 시간>
과거의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했고(나 때문에 어머니는 자신의 원가족을 버려야 했기에 외가 식구들 입장에서는 나는 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태어난 후에는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내면에 '타인이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나는 아무 가치 없는 사람이다.'라는 핵심 신념이 생겼다. 그걸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할수록, 내 안의 나는 더욱 가치감을 잃었다. 신기할 만큼, 그리고 고통스러울 만큼, 노력해서 얻어낸 사랑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얻어야만 하는 사랑은 과한 고통과 스스로를 잃어야만 하는 상황으로 다가왔다. 완전히 황폐화된 마음과 몸이 되었을 때,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중단할 수 있었다. 과거처럼 에너지가 넘치고, 스스로 자원이 충분하다고 느껴졌다면, 나는 모든 관계를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불과 몇 년 전 내게 일어났던 불상사가, 오히려 나를 살리게 된 계기가 되었음을 이제는 안다.
<고통이라는 포장지를 씌운 행운>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고통과 상황, 그리고 내게 보내진 사람들이 내 인생에 선물이 되었음을 안다.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과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오늘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물론 그 휴유증으로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을(남편을 제외한) 신뢰하지 못하지만, 이 부분도 곧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세상은 고통만 가득한 곳이 아니라는 것. 나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통은 타인과 비교하는 경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다양한 사람과 고통은 '그래서 내가 너보다 더 불쌍해.'가 아니라, 세상을 더욱 넉넉하고 아름답게 채워가기 위해 허락하신 불행이라는 포장지 속에 숨겨진 행운임을 이제는 넉넉히 이해하고 감사한다. 그러니 오늘, 이 책을 4개월 가까이 읽어가며,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고 느낀다. 옹졸한 나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조금 넉넉한 어른이 되어보려고 한다.
<에필로그>
삶은 늘 상처와 치유가 교차하는 긴 여정이었다. 상처받은 기억은 때때로 나를 옹졸하게 만들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내 안의 질투와 아픔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지나오면서, 나는 배웠다. 고통은 결코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넓은 마음과 더 깊은 눈을 가지게 하려는 초대였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받지 못한 사랑에 머무르지 않고, 줄 수 있는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씩, 넉넉한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 글을 남기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마주하는 모든 이들의 고통과 기쁨 앞에서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넉넉히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은,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이제는 기꺼이 그 선물을 품고,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