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따뜻한 집밥>

<네가 있는 곳이 내 집이라고>





“명장의 시간, 나를 만나는 시간”

– 반복의 힘과 관계의 상처를 지나, 오늘의 나에게 –

1. 저녁의 얼굴

  저녁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피곤에 잔뜩 절어 있는 그의 표정은 긴 하루를 무사히 마친 전사 같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온 소년 같기도 하다. 그래도 감사한 건, 지금 남편은 일이 많은 곳에서 ‘넉넉하게’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넉넉함은 여유가 아니라, ‘일감이 많아 숨 쉴 틈 없이 채워지는’ 상태이지만 그조차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명품 도자기를 만드는 실험에서, 한 그룹은 도자기 장인으로 구성해 1년 동안 단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도록 했고, 다른 그룹은 아마추어 장인으로 1년 동안 100개의 도자기를 만들도록 했다. 1년 후 결과를 보니, 반복하고 실패하며 100개를 만들어낸 아마추어 그룹에서 더 탁월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3년 전쯤 남편에게 해주며 말했다.

“지금은 어려워도, 오빠도 언젠가는 명장이 될 거야.”

  그렇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 남편은 정말 ‘100개의 도자기’를 굽듯, 대표 변호사님께 배우고 민·형·가사 등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며 성장해 왔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저녁 식탁 앞에서 서로의 하루를 건네며 함께 자랐다. 오늘도 우리는 내가 만든, 서툰 남편만을 위한 식탁 앞에 마주 앉아 따뜻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참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를 보듬는다. 오늘로 우리가 사귄 지 꼭 13년째다. 2012년 5월 13일, 우리가 처음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오늘의 우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행복한 부부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2. 열등감이란 이름의 유리문

  남편이 처음 고백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남편의 고백을 몇 번이고 거절했다. 그때 내 앞에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직전 연애에서 받은 상처가 컸다. 2년 넘게 만났던 전 남자친구는 내게 이제 결혼을 준비하자며 부모님께 데려갔다. 그날 그 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눈앞에 두고 다양한 말로 평가하셨다. 9가지 항목 중 8개는 낙제, 유일하게 통과한 건 ‘양친 부모님 아래서 사랑받고 자란 점’과 ‘그래도 듣는 내내 웃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는 것. 그런데 어머니가 칭찬해주신 그것마저, 내 실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날 마지막까지 웃으며 인사드렸지만, 마당을 나오는 순간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양친 다 살아계시고 사랑받고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었는데, 나는 나의 과거와 살아온 세상이 완전히 부정당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고, 부모도 선택할 수 없는데... 왜 이 모든 것들이 나라는 사람의 평가 요소가 되어야 하지?”

  그 질문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치고 들어왔다. 내 안의 결핍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그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믿었고, 연인이었을 때도 함께 돈을 아껴가며 데이트를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대기업에 취직한 엘리트였고, 중산층 이상의 집안, 나 같은 아이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재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그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애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이면엔 내 깊은 열등감,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기제, 그리고 피해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돈이 없었고, 돈 때문에 구 가족과 과거의 삶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넘어지던 때였다. 그래서 돈을 가진 사람들을 미워했다. 지금도 여전히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 친구에게 깊은 상처를 주면서, 아니 줘야만 하면서 헤어졌고, 덕분에 그 죄책감 속에서 오랫동안 갇혀 살았다. 오늘의 시부모님이 나를 아프게 할 때마다

“내가 그 친구에게 그런 상처를 줬기 때문이야.”

라며 스스로 그 고통들을 받아들이곤 했다. 그 친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를 떠올리며 미안하고, 속상하고, 고맙다. 다행히 그는 지금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마음이 놓인다.

  그날, 나는 내 모든 것이 부정당했다고 느꼈고, 그 경험 덕분에 내 안의 결핍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 이후 나는 ‘상향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열등감과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다. 아마도 그가 가진 조건을 숨긴 것도, 내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격렬하게 반응할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에, 나의 깊은 열등감이 이별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를 위해 부모님과 절연하겠다는 말까지 했고, 해외로 함께 떠나자고, 내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제안하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시부모를 통한 원가족의 빈 구멍을 메우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순간 오히려 확신했다. 그래, 내가 떠나야겠구나. 라고. 이때를 떠올리면 내 안의 열등감과 피해의식과 핵심 신념이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깨닫게 된다.

  그 친구와 어렵게 헤어지고 나는 가진 것 없는 상태에서 꿈을 꾸며 하루를 걸었다. 현실은 부끄러웠고, 사랑은 두려웠다. 그런 나에게 지금의 남편이 매일같이 다가왔다.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내 곁을 맴돌며 문을 두드렸다. 고백의 마지막 날, 손수 쓴 편지를 읽으며 울던 남편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같이 울었고, 그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날의 편지와 사진은 지금도 곱게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그날을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3. 관계의 거울, 그리고 다시 걷는 길

  삶은 참 묘하다. 전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전보다 더 강한 시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그분의 화살을 피하려는 시아버지의 비수 같은 책임 전가까지.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감사한 것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후회도 많다. 그럼에도 남편은 12년 전보다 더 깊고 진하게 나를 사랑해준다. 그 사실 하나로도 이 모든 후회는 덮이고 넘쳐흐른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도 한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시간을 지나야 했던 거라면, 나는 또 이 길을 선택하겠구나.”

  어릴 때 만났던 친구 중 3년을 만나다가 바람을 피운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어머니는 나에게 정말 ‘어머니’ 같았다. 그 어머니는 나를 따뜻하게, 딸처럼 사랑해주셨다. 지금도 그분을 떠올리면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절절하다. 그래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꼭 그분께 효도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 어머니만 보면서 그 친구와 1년을 더 만났다. 그 과거 덕분에 오늘의 남편을 선택한 이유가 됐다.

“그래도 남편이 바람피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라는 생각에서다. 시부모님이 어렵든, 남편이 문제가 있든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남편이 좋은 사람인 게 더 낫다는 생각에서다. 사실 지금의 시부모님도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잘해주신 순간도 많았다. 다만 그분들을 통해 내 안의 상처가 완전히 드러났다. 무의식에 묻어두었던 상처들이 그분들에 의해 끌려 나왔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상처들을 마주해야만 했고, 그 덕분에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과 단절될 만큼 깊은 우울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보면, 그분들은 내 인생의 은인이 아닐까 생각도 한다. 하나님께서 전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통해 내 과거를 청산하시려다 내가 그 길을 피하자, 결국 시부모님을 통해 그 일을 완수하셨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겪고 싶진 않다.

4. 그리고 오늘의 믿음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언젠가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쓰고 있는 책의 ‘가족과 연인’ 편에서 더 깊이 다뤄질 것이다. 구 가족, 신 가족, 친구, 연인, 종교 편으로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내 부족하고 부끄러운 과거들이 누군가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모든 여정 속에서 내 삶을 이끄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든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나님이 사랑으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선물이었다는 걸 이제는 진심으로 믿는다. 그리고 이제 나도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는 명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네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이든 그곳이 내가 살아갈 집이라고." 나는 남편에게 매일 말한다.

[사진 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