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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심리학사 끝>

<이제 졸업장만 받으면 된다>





<사진 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

오늘의 심리학사를 마치며

  처음 심리학사 공부를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이미 민간 심리 관련 자격증만 열 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내면은 무기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최악의 심리 상태였다. 예를 들면, 한국사 시험을 볼 때마다 점수가 5점씩 떨어졌고,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해도 결과는 나아지지 않았다. 성적을 확인할 때마다 ‘역시 내가 될 리가 없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험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곤 했다. 그리고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 시절의 나는 말 그대로 “뭘 해도 될 리가 없지.” 상태였다. 나중에서야 이전의 반복된 실패들이 내 안에 “나는 역시 안 돼.”라는 역기능적 핵심신념(dysfunctional core belief)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신념은 무의식 속에서 조용히 반복되며 결국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처럼 나를 다시 실패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는 한국사 1급이야.”, “나는 공부만 하면 뭐든 붙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나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울었다. 나도 한때 어떤 시험이든 상위 퍼센트에 들었던 사람이었기에, 그 말들이 내 안의 자기비하, 자격지심, 그리고 피해의식을 날카롭게 찔러댔다. 교만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면서도, 나를 미워하고, 상대도 미워하며 나를 더 깊이 갉아먹고 있던 때였다.

무기력의 뿌리를 찾아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건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였다. 의욕도 사라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시기, 몸이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아프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기존의 역할과 책임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는, 심리학 유튜브와 상담사,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흘려듣던 이야기들이, 점점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심리학은 나의 감정과 행동 패턴을 ‘메타인지’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곧 자기이해로 이어졌다. 중독된 사람처럼 하루 종일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관련 내용을 정리했다. 그러다 아주 조금 힘이 나기 시작했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취업센터에 가고, 글을 쓰고, 민간 자격증을 하나씩 준비하면서 잊고 있던 ‘나’와 다시 연결하기 시작했다.

'작은 성취'가 회복의 시작이었다

  민간 자격증을 하나씩 쌓으며 나는 내 인생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지나온 시간의 상처들을 조각조각 분해하고, 그 위에 나를 다시 쌓았다. 누군가는 강의만 틀어놓고 자격증만 취득한다고 말하지만, 그 시기의 나는 작은 성공 경험 하나가 절실했던 사람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 부른다. 작고 반복적인 성공이 ‘할 수 있다.’는 내면의 확신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작은 반복이 결국 심리학사 공부로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재미도 붙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대변인이 되다

  홀로 3년을 보내며 나는 진짜 나를 만났다. 그리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또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다. 누군가 다시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할 때면 나는 나의 내면아이(inner child)를 보호하는 성숙한 보호자로 나섰다. 그동안 가해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그들 역시 또 다른 상처 입은 피해자일 수 있음을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이건 내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심리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졌고, 나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만약 내가 변호사 시험에 붙었다면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익숙한 패턴대로, 굳어진 자아로, 스스로를 점점 더 잃어가며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실패조차도 나를 구원한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

  삶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남편이다. 심리학을 통해 나는 사랑의 진짜 의미를 배웠다. 의존과 상호의존의 차이, 감정적 착취와 감정적 돌봄의 차이, 그 모든 개념이 남편을 만나며 실감 나게 다가왔다. 사랑은 통제도, 가르침도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그의 존재를 존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애착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내 친구였고, 거울이었고, 내가 무너질 때마다 조용히 곁을 지켜준 든든한 지지자였다.

  나의 실패와 무너짐,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모든 순간에 함께해준 유일한 사람. 무엇보다 내가 집에서 나와의 연결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이 나를 ‘신나게 노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줬기 때문이다.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삶의 경제적 기반을 든든히 책임지며, 오직 나답게 살아가도록 배려해줬다. 살다 보니 이런 사람도 내 인생에 찾아오는구나. 싶을 정도로 감사했다. 그는 내게 행운이자, 복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다음 단계를 향해

  심리학사를 마친 지금, 나는 이제 다음 단계를 향해 걷는다. 항상 잘 될 수는 없지만, 항상 넘어지기만 하지도 않는다는 걸 나는 안다. 실패와 눈물로 가득 찬 삶이었지만, 그 덕분에 내 인생은 훨씬 더 다채롭고 깊어졌다. 그래서 언젠가, 나처럼 무기력과 실패 앞에 주저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괜찮아. 너는 네 속도로 잘 가고 있어.”

"괜찮아. 네 모습 그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네 삶을 너를 위해서만 사용해도 괜찮아."

  오늘의 나는, 그 여정을 시작한 또 하나의 출발점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을 오늘 이렇게 조용히 기록해 둔다. 언젠가 이 기록이, 또 다른 나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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