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독립적인 삶을 설계하는
방법? 정신과 의사가
알려주는 '가스라이팅'
예방 지침!
/ 정신과의사정우열>

<강의를 보고 생각정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독립적인 삶을 설계하는 방법? 정신과 의사가 알려주는 '가스라이팅' 예방 지침! / 정신과의사정우열
https://www.youtube.com/watch?v=9NYUUCHhX-I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닥터 차정숙 드라마는 짧게 편집된 영상으로 유튜브에서 지나치며 본 적이 있다. 그녀의 고구마 같은 성격이 속상했고, 드라마 속에서 보인 모습이 뭔가 불편해 드라마를 보지 않았었다. 정우열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왜 그랬는지 정말히 알게 됐다.

차정숙이라는 의사 선생님은 어쩌면 몇 년간 계속 고민했던 '공동의존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관계 지향형 인간, 그리고 타인의 만족을 위해 희생을 불사하는 사람. 사랑의 아이콘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철저히 파괴되고 그 파괴의 모습은 '간 '문제로 나타난다. 나 역시 참고 참고 또 참다 결국 간이 완전 망가질 뻔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강의를 보면서 또 알게 됐다. (간 만 망가질 뻔했던 가. 내 건강은 완전 적신호였다.)

언제부터 발현 됐는지, 어쩌다 공동의존자가 됐는지, 그리고 자라서는 어떤 모습의 공동의존자가 되어 살아왔는지. 많은 공동의존자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각자 천천히 단계를 밟아 간다. 그나마 차정숙 캐릭터는 사랑 많고 자기편이 되어 주는 엄마라도 있다. 참 부러웠다.

차정숙 드라마 클립을 보면서 '시어머니' 캐릭터가 어찌나 싫던지. 눈살이 찌푸려졌다. "우리 며느리는~"이라며 자랑하는 것 같지만 결국 드러내고 싶은 건 내가 이만큼 대우받고 사는 사람이라는 자기 자랑이다. 드라마 속 차정숙은 공동의존자일까. 아닐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정우열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녀가 다시 비슷한 사람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너무 좋은 사람, 좋은 엄마지만 그녀는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나이 오십이 넘어 제2의 인생을 시작하지만 실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드라마가 그리는 장면들과 해피엔딩이 와닿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직업적인 커리어, 부유한 환경 등을 차정숙은 가졌지만, 대부분의 공동의존자가 차정숙의 입장이었다면 이미 병들어 죽었거나, 미쳤거나,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 냈을 거다.

자신의 성향과 성격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치료받는다고 진짜 치료가 되는 경우가 적다.  의사가 된 차정숙이 공동의존에서 벗어났을까. 차정숙이 마지막에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사는 따뜻한 의사가 된 것처럼 그녀의 마지막 역시 너무도 관계 지향적이다. 관계에 의존하는 형태. 상대방의 만족에 의존하는 의존형 인간의 모습으로 결론이 그려졌다.

독립성과 의존성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불쾌하다. 나는 내가 과한 의존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 성격과 성향을 그대로 발휘하며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을 거다. 그것이 진정한 기쁨이라면서 말이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왜 하은 씨는 줄 줄은 알고 받을 줄은 몰라요?"

그의 정확한 지적에 머리를 맞은 듯, 한참 그 말이 뱅글뱅글 마음에 돌아다녔다. 과거를 돌아보면 그랬던 나를 곳곳에서 발견했다. 공동의존 중에는 내가 받은 만큼 돌려받고 싶었지만 돌려받지 못해 화가 나있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주고 또 줘야만 살 수 있는 인간도 있다. 나는 주고 또 주면서 상대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거나, 거의 받지 않아야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럴수록 나의 만족감과 행복은 우주만큼 커졌다. 하나님이 아실 거라는 스스로가 만든 기쁨에 취해 그 감정에 의존하며 살았다. 누구에게 무엇을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종교중독에 빠진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이 결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내가 조금씩 찢어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상대방이 뭔가 돌려줄라치면 마음에 부담감이 몰려오면서 상대방의 사정을 내 사정처럼 인지하곤 했다. 상대방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거절하고 또 거절했다(실제는 내 주머니 사정이 훨씬 심각했다.). 결과는 상대에게 많은 부담을 줘서 관계의 파탄으로 나아갔다. 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분명 정말 많은 것을 주고, 도와주고, 나보다 더 많이 보듬고 챙겼는데 왜 상대와 나는 이별의 수순으로 나아간 걸까 하고 말이다. 오히려 상대가 내게 뭔가를 주려고 했을 때 받았다면  훨씬 더 깊고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지금에 와선 하게 됐다.

정우열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의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의존성 문제를 겪는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상대에게 의존한다. 의존하고 있지만 의존하고 있는지 외부에서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의존은 서로가 서로에게 결합된 상태라 견고하고 아름다워 보일 때도 있다. 부모와 자식 안에서, 부부 사이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 내에서, 종교 생활 내에서 우리는 각자 의존하며 살아간다. 건강한 의존이면 좋겠지만, 차정숙처럼 가족이라는 이름에 매여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형태의 의존은 병적이다. 물론 차정숙의 행동들과 결과들만 놓고 보면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본인에게 어떠하든지 말이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비슷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고, 마침 나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그 사람이 나와 같은 헛 발질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다. 책을 알려주고, 공부 법을 알려주고, 나름 오랜만에 공동의존자 다운 행동을 열심히 했다. 매우 혐오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옳고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몇 번 도움을 주자 상대에게서 신기한 말이 들려왔다. 장소를 바꿔 무려 세 번이나 약속을 강요받았다. 나는 매우 당황했고 당혹스러웠다.

"제가 되고 나면 저는 할 일이 많으니까 자격증만 회사에 놓고 돈만 주시면 돼요. 대표하시고 월급 만 주세요. 60% 가지시고, 40% 주시면 되겠네. 저랑 같이 일한다고 약속하세요." (약간의 각색이 있다. 무슨 자격증인지 말하고 싶지 않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상대도, 나도 혐오하게 됐다.)

  나는 그 이후로 공부든 뭐든 돕지 않는 것이 나도 상대도 돕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같이 공부하고 공부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된 후에 나 혼자 독박을 쓰라고 당당히 말하는 상대의 말을 듣고, 나는 누군가를 돕고자 했던 나를 혐오하는 날들을 보냈다. 상대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마지못해 그 사람에게 그때가 돼서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계약 사항을 위반하면 아웃인 걸로. 라면서 유쾌한 듯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 내면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오늘도 이 글을 정리하면서 정말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느낀다.

그때가 다시 생각난 건 아마 차정숙 이야기를 들어서일 거다. 물에 빠진 놈 구해놨더니 보따리까지 내놔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도 그런 사람일까. 아니면 정말 내 능력을 한치 의심 없이 믿어서였을까. 알 수 없다. 그의 내면의 말은 그 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뱉은 말이 내 귀에 들어왔고, 마음을 여러 번 후벼 팠다는 것 밖에.

공동의존의 해피엔딩은 공동의존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이 공동의존자임을 깨닫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거쳐 천천히 허물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나와 만나는 것. 그것이 공동의존자의 진정한 해피엔딩이다. 오늘의 나가 사람이 전혀 필요치 않게 된 것처럼. 공동의존자의 해피엔딩은 정말 아름답고 즐겁다. 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오늘의 나는 누구를 만나도 즐거운 사람이다.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은 나처럼 재밌고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평을 해 줬다. 단 한번 만났는데도 평생을 만난 듯 즐겁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 길다가 목소리를 들으면

"어? 저 사람 나랑 친한 사람인데."

라는 생각이 들 거 같단다. 정말 좋은 칭찬이다. 깊고 깊은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며 헤맸던 결과가 천천히 나타나고 있다. 편안하고 즐거운 상대가 상대에게 만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나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그리고 매일매일 나에 대한 만족을 쌓아가고 있다. 실패는 뼈저리게 아프고 슬펐지만 그로 인해 배운 것이 많다. 그리고 얻은 것이 많다. 나는 큰 일들을 겪을 때마다 큰 선물을 받아왔다. 사실 큰 일을 겪지 않고, 큰 선물도 받지 않고 싶을 때가 많다.  

정말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신 분이다. 자기 파괴적인 공동의존자로 키워졌고, 그런 삶을 살아왔던 나를 잠시 멈추게 하신 분.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나를 치료해 주신 분. 나의 하나님. 나의 치료를 돕기 위해 남편을 보내주신 사랑의 하나님. 나는 하나님이 너무 좋다. 그리고 남편이 너무 좋다.

내가 태어나 만난 가족과 자라면서 만나게 된 가족들은 모두 건강하지 못했다. 닥터 차정숙의 이야기는 순한 맛이다. 진짜 매운맛을 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성경에 원수가 집 안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정말 공감한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오늘의 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던 점이 아주 조금은 있으니 감사하려고 한다. 어찌 됐든 일단 나의 결과가 좋으니 흐르는 강물에 감정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용서든 뭐든 그냥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말이다.

언젠가 들었던 강의에서 그랬다.

"가족끼리 좀 안 보고 살면 어때요? 그것도 가족의 한 형태고. 그리고 결혼하면, 전 가족은 가족이 아니에요. 그것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진짜 당신의 역할입니다. 당신이 선택한 남편을 책임지고, 당신이 낳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사회의 좋은 구성원이 되도록 키우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족을 만들었고 선택한 당신의 역할입니다."

나는 나의 역할을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싶다. 구 가족이 어쨌든 간에 그들이 내게 준 많은 이야기들은 강물에 흘려보내고, 그들도 같이 흘려보낸다. 나는 나의 선택으로 매일을 살아가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당신도 당신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멀어져도 된다. 괜찮다. 당신이 아니라도 그들은 살 수 있다. 당신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이라고 강요받는다면 당신은 지금 치료받아야 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있다. 당신의 역할은 당신의 삶을 사는 것이지 당신의 삶을 녹여 누군가의 삶을 이뤄주는 것이 아니다. 신도 그건 바라지 않는다. 신이 그러라고 했다면 그건 당신의 착각이다. 신은 진정으로 당신이 가장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가득하다면 정말 어려운 누군가를 도우면 된다. 당신 옆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외치는 사람들은 당신의 의존성을 이용하는 의존형 인간일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 재정을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 진짜 도와줘야 하는 누군가를 위해 당신이 정상에 올라설 수 있도록 일단 당신을 먼저 도와야 한다. 지금 당신이 도울 사람은 당신 옆의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다.

그러니 당신을 먼저 도와라.

라고 내게, 그리고 혹 글을 읽었을 분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인생을 당신 만을 위해 살아도 된다고 말이다. 그래도 된다고. 당신은 행복하기 위해 이 지구에 왔다고 말이다.


#정우열정신과의사
#정신건강의학정우열
#정신과의 사정우열
#독립적인 삶설계
#의존성극복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