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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책을 RHK 출판사로부터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를 읽고 기록 / 라마니 더바술라 / RHK 출판사 / 출판사 지원 도서


내게 실물로 마주할 스승이 계셨다면 그분이 내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이제 하산하도록 하여라."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책은 내게 스승님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이제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와 곁에 없어도  항상 존재해서 숱하게 쉐도우 복싱을 하게 했던 나르시시스트와의 시간들을 마무리한다. 지난 3년 간 고통 속에 머물면서 고통의 원인을 찾게 됐고, 이유를 찾기 위해 공부를 하고,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또 공부했고, 나중엔 치유하기 위해 공부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이 책을 통해 최종 마무리했다. 책을 읽었던 2주 동안 고마웠고, 행복했고, 멋진 시간을 보냈다. 책을 보내주신 RHK 출판사에 감사함을 전하며 서평을 시작한다.

1. 치유의 여정으로 떠남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와의 '비수인적' 관계, 즉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서러움을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따라서 나르시시스트 자체가 아니라 치유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처음에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나르시시즘의 개념을 다루지만, 주된 초점은 당신을 '위한' 그리고 당신에 '관한' 경험 그리고 상처를 회복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26쪽]

나르시시스트라고 할 법한 사람과 언제 처음 만났을까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태어나면서부터였다는 걸 알게 됐다. 지난 3년 간 나는 방구석 폐인(?)이 되어 내가 만난 나르시시스트들을 쫓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르시시스트라는 개념도 몰랐을 때, 나는 왜 내가  죽음을 원하는지, 그리고 왜 망가졌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드디어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 더 많이 알고 싶고,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발견 덕분이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최소 10년) 시험에 최종 낙방한 후,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건강마저 잃었을 때 드디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당시 내가 한 일은 유튜브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듣는 일이었다. 마침 나르시시스트라는 주제의 영상들이 유행을 타고 있었는지 알고리즘이 나르시시스트를 주제로 한 영상들을 지속적으로 추천했다.

당시 나는 글자도 볼 수 없었고, 우는 일 밖에 할 수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이때 정신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도 10년 동안 거의 동거동락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지냈던 나르시시스트 덕분이다. 오늘에 와선 그분께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화가 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분 덕분에 깨닫게 된 것들이 많고,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분노 버튼이 눌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불안과 환희 속에 살았던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행복이라고 착각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르시시스트와 돌봄 중독자가 가득한 집에서 자랐고, 자라서는 내가 돌봄 중독자가 돼서 끊임없이 돌볼 상대를 찾아 삶에 들였다.

내가 돌봄 중독자라는 것, 코디펜던트라는 것, 구원자 증후군, 스톡홀름 증후군 등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사실 스스로가 문제 있는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내 정체를 알고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힘들던지, 몇 달 동안 정신을 놓을 정도였다. 내가 문제가 있어서, 나와 반대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인생에 끊임없이 들였다니.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가해자였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밤마다 천국에 데려가 달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죽음을 원한다는 사실도 모른 체 끝없이 하나님께 다음 날이면 천국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기도를 하면서도 나는 스스로가 선한 기도를 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이 모든 것들이 끝난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리고 어느 날 나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게 했던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꿈을 꿨다. 그 상대는 내게 천사 같았고, 악마 같았고, 환희, 두려움, 불안에 중독시켜 두려움에 갇히게 만들었다. 함께 있으면 행복했고, 불안했고, 두려웠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상대가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점점 그분의 모든 것들에 맞추는, 맞출 수 있는 완벽한 AI 로봇이 되어갔다. 내 감정은 완전히 버려두고 상대 만을 위해 완벽히 기능이 맞춰진 로봇이 되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를 미워하면서, 그분을 끝없이 미워했다. 상대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부하면서 알았다. 그만큼 감정을 느끼는 감각까지 완전히 마비됐었다. 상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꿈에서 깨어나면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고, 덕분에 그분에게 더 최선을 다해 맞춤형 인간이 되어 드렸다. 그렇게 대가를 치러야만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치유 과정 단계를 밟으면서 알았다.

치유의 과정을 밟아야만 살 수 있게끔 만드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으니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분 덕분에 나는 나의 바닥을 봤다. 그리고 인생에서 바닥이라고 할만한 좋은 경험을 했다. 덕분에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야만 했다. 무기력했고, 자기애를 잃었으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내가 그분 덕분에 오늘의 내가 됐으니 아이러니하게 고맙다.


2. 치유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한 치유의 여정을 따라갔다. 결국 나는 피하고 피했던 지난 10년 동안 겪었던 아픔들을 종이에 적었다. 현재 55개를 적었고(A4 10쪽 분량) 지금도 적어가는 중이다. 저자는 반드시 적어놔야만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 적어놓은 글을 읽고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를 관계에 중독시키기 위해 극단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준다. 노예도 죽을 만큼 때리기만 하는 주인을 만나면 반드시 도망갈 거다. 그러나 노예를 이따금씩 죽기 직전까지 때리긴 해도, 행위가 끝난 후엔 최고의 약을 발라주고, 따뜻한 집과 음식, 필요를 모두 채워주는 주인을 두고 도망가는 노예는 없을 거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는 그런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고통의 기억(망각의 축복이 가끔 망각의 저주가 된다.)이 지워지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러면 상대에게 돌아가고 싶어 진다. 그럴 때 피해자는 반드시 상대와 겪었던 일들을 적은 글들을 읽고 각성해야 한다. 돌아가지 않을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받고 그대로 따라 했다. 종이에 겪었던 일들을 적으면서 그동안 내가 피했던 것이 트라우마가 가져올 아픔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따뜻한 기억이 떠오를 때 나는 내가 적고 있는 (현재 55가지 항목) 글을 천천히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변하지 않을 상대와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할 거라고 믿고 싶은 건 욕심일 뿐, 상대는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 바뀌어야 하는 건 나였다. 상대가 변하지 않고,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나였다.

나르시시스트의 자존감 배터리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끊임없이 상대만 바뀌었을 뿐 비슷한 대상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상대가 주는 인정과 잘못된 사랑에 의존하고, 그런 나를 배터리 삼아 정신적, 육체적으로 의존하는 나르시시스트와 시간을 걸어왔다.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베풀고, 나누는 행동이 의존의 형태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나르시시트와 한 번이라도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그 길을 걷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동안 치유의 길에서 단계마다 밟아왔던 길들을 책을 통해 되짚어가면서 돌아봤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르시시트와의 동행으로 시간과 열정, 꿈들을 잃으면서 인생을 낭비할 수 있는 사람, 소진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낭비되지 않고, 치유된 행복한 생존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3. 중등도 나르시시즘이란

[특히 스펙트럼의 중간에 있는 '중등도 나르시시즘'이 가장 보편적 유형으로, 그들의 컨디션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기분이 나쁜 날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이 책도 '중등도 나르시시즘'을 중심으로 그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39-40쪽]

대부분 우리가 만나는 나르시시즘 인간 유형은 중등도에 속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악성의 경우 유해함이 완벽히 드러나서 피해가 극명해 알기 쉽고, 약한 정도의 나르시시즘의 경우 상대를 파괴할 만큼 영향을 주진 않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나 역시 대부분 경험한 나르시시즘이라고 할 법한 사람들이 중등도에 속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날은 천사 같았고, 나쁜 날은 악마 같다고 느꼈다. 기쁨과 불안, 두려움을 번갈아가며 극과 극을 오가는 느낌은 겪어본 사람 만이 안다.

극에 닿은 경험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면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결국 무기력하게 만든다. 자기애적 공급원이 필요하고, 자기중심적인 데다, 일관되게 감정 기복이 심하고, 평정심 없이 들뜬상태에, 과대망상이 두드러지고(스스로를 최상의 인간으로 생각하고 상대에게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한다), 여러 가면을 바꿔 쓰는 데다, 특권의식이 강하고, 내면이 불안정하며, 비판에 예민한(그 외에도 많다. 40-51쪽 참고) 그들과 함께 살다 보면 반드시 생존자는 그들의 필요를 맞추는 인간이 된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걸으면 정신외상을 입고 다양한 정신적 질병을 얻는다. 스톡홀름 증후군, 구원자 증후군, 돌봄 중독자, 우울증 등 평생 치료해야 할지도 모를 다양한 외상을 입고,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도 모른 체 나르시시스트의 배터리로 살아간다.

피해는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알게 된다면 피해자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가 되어야 할 거다. 나르시시스트도 새로운 피해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가 파괴돼서 각성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돌봄과 학대의 사이클을 맞춤형으로 반복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공부해 왔던 나르시시스트와의 경험과 이론들을 완벽히 정리했다. 그리고 책은 치유에 단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천천히 독자들을 이끈다. 피해자가 치유되는 데는 가해를 당한 시간과 깊이만큼 단계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책 전반에서 그런 배려와 사랑이 느껴졌다. 피해를 겪어보면 알게 되는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두둔한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되는 나르시시스트가 권력과 힘, 돈을 가진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배터리가 있으니 그들을 양분 삼아 잘 되기 얼마나 쉽겠는가.) 피해자가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가해자의 목소리보다 언제나 작고, 약하다.

4. 나르시시즘이 나쁜 것일까?

나르시시즘의 영상들과 글들을 읽을 때 가끔 나르시시즘이 매우 나쁜 성격 특성처럼 비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좋은 점이라는 걸 깨닫는다. [나르시시즘 다시 보기]라는 책 속에서 나르시시즘의 긍정성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인간이 가혹한 환경과 경험 속에 머물 때 [나르시시즘 다시 보기] 책은 절망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성격과 성향이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나르시시즘을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악성, 중증도, 약함 정도의 나르시시즘을 가졌다고 할만한 사람들이 보이는 성격적 특성들도 누구나 보일 수 있다. 나르시시즘 환자라고 할법한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 성격, 성향을 일부 사람들이 잠깐 보인다고 그 안에 속한다고 판단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결함을 가진 나르시시즘이라고 판단하려면 전문가의 심도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있어야 자기애와 자긍심, 자존감을 가지고 인생을 자기 것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힘들 때 나르시시즘의 부정적인 부분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주변에 부정적 나르시시즘의 형태를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나르시시스트인가?라고 판단하기 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상대가 보이는 행동이 지속적인지, 어느 한 시점과 구간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인지를 봐야 한다. 과거와 최근에 극히 다른 행동 양상을 보인다면 현재 매우 힘든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르시시즘을 공부하면서 나도 나르시시즘 환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나르시시즘 덕분에 인생에서(내 인생 기준) 가장 힘든 구간을 건강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르시시즘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다. 편향돼서 누군가를 파괴해야만(자존감 충전용 배터리로 삼아야만) 살 수 있는 나르시시즘을 보이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5. 초반에 나르시시스트 판별하기

[치료사조차도 내담자의 자기애적 성격 패턴을 확실히 이해하는 데 몇 달이 걸리므로, 관계를 정리하면서 왜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는가?"로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러브바밍 애정 공세를 받을 때 감동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을 때 해주길 바라는 것은 어리석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애정을 갈망하고 로맨틱한 행동에 고마움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러브바밍에 흔들리는 자신을 비하해서는 안 된다. 관계가 건강하지 않게 변했을 때, 러브바밍 때문에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관계를 유지해야 하거나, 관계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바로 러브바밍이 위험해지는 순간이다. -115쪽]

나르시시즘 가해자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가해자를 탓하기 전 피해를 입은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 선택을 한 사람도 자신이고, 상대의 문제를 알아보지 못한 것도 자신이기 때문에 자책하느라 더 깊은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그러나 책에서 말한 것처럼 전문가들조차 자기애적 성격 패턴을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일반인인 사람들이 정체를 감추고 가면을 매일 바꿔 쓰는 그들의 피해를 입지 않기는 정말 어렵다.

한 번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반드시 피해를 입게 된다. 피해를 줄이려면 피해를 당한 사실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스스로를 보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피해를 입은 자신을 탓해서는 안 된다. [거짓의 사람들]을 쓴 전문가 스캇 펙 역시 악성, 중등도 나르시시즘 인간들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꿀 수 있는 자신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피해 입은 스스로를 안타까워하며 다시는 그런 관계에 놓이지 않게 하겠다는 분명한 다짐과 실행이 필요하다.

그러니 초반에 판단하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나르시시스트와 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몸이 먼저 반응하는 징후를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분노와 불안, 자책과 수치심, 절망과 우울증, 공황 발작, 약물 사용, 급성 및 외상성 스트레스에 이르기까지 자기애적 관계가 생존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설명한다. 자기애적 행동을 견디는 데 따른 고통과 혼란은 당연하다. 감히 말하건대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점, 이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의 첫 단계다." -141쪽]

6. 수치심에 대한

[자기애적 가정환경에서 아무리 잘해도 "이것밖에 못 해?"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가족 간에 비밀과 거짓말이 난무하고, 가정에서의 고립감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수치심이 매우 일찍 찾아온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거짓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자기 가족을 다른 사람들에게 정상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하느라 파김치가 된다. 평소에 고립감을 느끼고,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또래나 이웃의 화목하고 건강한 가족을 마주할 때 수치심을 느낀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가족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상처를 입어야 하는 사람도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애적인 사람이 느껴야 하는 수치심을 자신이 가져와 내면화하는 순간, 자기애적인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 결국, 을은 갑의 수치심을 보관하는 저장소인 셈이다. -160쪽]

자신의 수치심까지 타인에게 떠 넘기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수치심과 죄책감을 수시로 떠넘기는 상대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 된다. 그런 사람이 가족 내에 있다면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갖게 되고, 인생은 원래 불행한 것이라는 생각이 기본 값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불안과 고통을 기본값으로 삼고, 삶의 고난과 고통을 친구 삼아 살아가야 하는 삶은 듣고, 보기만 해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실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경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스트의 피해자로 살아가야 하는 삶은 삶 자체가 고난의 행군이 된다. 가끔 한 번씩 건빵(빵 부스러기)을 주며 굶어 죽지 않게끔 행군을 시키다 보니 피해자는 그것마저도 은혜와 감사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은혜를 내려준 상대에게 고마워하지 못하는 마음 한 구석에 작게 존재하는 감정을 불편해하며 수치심을 느낀다. 그러니 피해자는 생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가해자가 주는 부스러기에 대한 은혜와 사랑을 되뇌고 또 되뇐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 누구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고, 대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난 삶들을 생존자로 살아오면서 나는 가해자들이 준 수치심과 불안,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덕분에 자기애가 낮고, 자긍심이 낮으며, 자아존중감이 없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게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인정과 애정을 구걸했다. 그것이 성인기에도 그대로 이어져 나를 학대할 만한 가정을 선택해 결혼했다는 것도 나중에 깨달았다. 정말 행복해 보였고, 수많은 시간 기도해서 선택한 새로운 가족이었지만, 돌아보니 더하고, 덜했을 뿐 원가정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가정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심리학이 왜 학문이 됐는지 깨닫게 됐다. 심리학에서 말하던 원가정의 재 반복이라는 통계가 완벽히 내 삶에 완성된 것이다. 원가정에서도 나는 스케이프고트였고, 선택한 새로운 가정에서도 스케이프고트가 됐다. 그걸 10년 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오자 기존에 입었던 정신적 외상을 더 깊게 만들었다. 그러니 오늘의 내게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도 말하고 싶다. 수치심은 당신 것이 아니라고. 당신은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말이다.

7. 취약성 사랑하기

[생존자는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해결사를 지칭하다. 낙관주의와 긍정적인 마음이 타고나다. 끝없이 용서한다. 자기애적 가족과 지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다. 이별이나 낯선 환경에 놓이다. 조급하게 결정한다. 트라우마, 배신 등의 상처가 있다. 186-200쪽 소제목들]

나르시시스트를 삶에 끌여들였다는 건 나르시시스트가 좋아할 만한 특성들을 생존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아무나 붙잡고 자존감 배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취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생존자가 모든 에너지와 삶을 소진하고 나르시시스트로부터 버림받으면 치유되지 않은 생존자의 경우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유해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니 처음부터 나르시시스트의 먹잇감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미 희생자가 됐다면 자신의 취약점을 보듬고 사랑하며 치유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생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생존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생존자가 되어 스스로를 파괴하며 살아갈 때 치유의 단계를 밟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생존자들의 영상, 강의, 책, 자료들을 만났다. 그리고 정말 멋진 생존자와 연결되기도 했다(썸머의 사이다 힐링 등). 그러면서 나도 치유된 생존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난날들을 다시 정리하고 바라볼 수 있었다. 정말 지금도 감사하고, 이 책에도 감사한다.

8. '끔찍한 사건 목록' 만들기와  나 자신을 수용하기

[근본적 수용을 실천하는 데 '끔찍한 사건 목록'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는 관계에서 일어난 모든 끔찍한 일들의 목록이다. 이 사람이 내게 했던 잔인한 말, 모욕, 불인정(무시), 배신, 거짓말, 조종, 망쳐버린 특별 이벤트, 온갖 가스라이팅을 적는다.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 수 있으며, 기억은 계속 떠오를 것이다. 이를 본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그들도 이 목록에 추가할 수 있다. 나는 상담자들이 내게 들려주었던 사건과 상대의 행동 혹은 내가 바라본 그들의 경험 과정을 토대로 이 목록을 작성하도록 도와주었다..... (중략).... 심리치료를 받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끔찍한 사건 목록이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다.... 자신이 머무는 관계의 나쁜 점을 모두 나열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이 목록은 자책감을 막고 현실적인 기대와 근본적 수용을 강화하여 상대의 조종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좌절시킨다는 내담자들도 있다. 힘든 감정이 욱하고 올라올 수 있어서 충분히 이해한다. 이 목록을 천천히 작성하라. 치유란 항상 자신의 리듬과 편안함을 존중하는 것이다. 258-260쪽]

이 책을 만나고 나는 드디어 끔찍한 사건 목록을 만들었다. 그동안 트라우마를 대면하기 힘들어서 생각만 하고 있다가 드디어 마음먹고 작성했다. 종이에 적고 다시 읽어보면서 나는 상대가 줬던 애정이 더 이상 그리워지지 않게 됐다. 애정 후 반드시 덮쳐올 조종과 고통을 인정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르시시트와의 경험이 내게 많은 유익점을 가져다줬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누구에게도 맞출 수 있는 성격,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 등을 얻었고, 진정한 내 목소리를 알게 됐다. 그래서 더 이상 나는 과거처럼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해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 인정과 사랑이 필요하면 언제든 스스로가 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이 점은 나르시시스트와의 경험을 통해 나에게 생긴 멋진 점 들이다.

그리고 전갈과 백조 일화를 읽고 내가 경험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받아들였다.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 대신 그 시간 동안 나를 더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나를 바꾼다.

9. 용서 안 해도 된다.

[나는 자기애적 학대를 당한 생존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때 용서를 적극 권하지 않을 것이다. 용서를 선택하는 생존자와 그렇지 않은 생존자를 모두 존중하고 응원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습적인 가해자를 계속 용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어느 쪽이 더 좋거나 나쁘지는 않다. 각자가 치유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것은 선택의 문제고, 마찬가지로 용서도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405-406쪽]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유함을 주는가. 용서할 대상은 가해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러면 진정한 해방을 얻게 된다는 걸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치유를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을 제시한다. 실제로 따라 해보니 치유에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이제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와 드디어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의 삶에서 나는 생존자로서 나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생각이다. 생존자로 살아가면서 나의 삶의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해방을 얻게 해 줄 수 있다면 더 없는 기쁨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기록을 남긴다.

책을 덮고, 나는 이 책이 반드시 중, 고교 학생들의 교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본 이론부터, 사례, 치유까지 전체를 통합적으로 묶어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에서 반드시 나르시시스트를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배우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삶을 걷느냐에 따라 인간의 인생은 망가질 수도 있고,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 생존자든, 아직 경험이 없는 사람이든 반드시 이 책을 만나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정리를 제대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0명 중 1명. 5명 중 1명은 반드시 나르시시스트라고 심리학자들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나와 우리는 반드시 그들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야 삶의 소진과 낭비를 줄이고,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멋지고 귀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나르시시스트와 이별한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적어놓은 글들을 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적어놨기 때문에 계속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가벼워졌다. 언제든지 글을 찾아 읽으면 어제처럼 기억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상대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받아들였기 때문에 기대가 없다. 그러니 용서할 것도 없고, 화가 날 것도 없고, 내 길만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매일을 산다. 전갈에게 전갈이 아닌 것처럼(독침을 쏘지 말라고) 살라고 말한 들 그렇게 될 리 없으니 말이다.

내 인생은 내 것으로, 당신 인생은 당신이(나르시시스트) 알아서.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내게 끊임없이 당신의 인생 빈 공간을 내 인생을 통해 채워 넣어야 한다고 말했던 인간들을 이제 떠나보낸다. 이젠 진정한 해방이다. 그 해방의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나르시시스트 관련 도서로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책을 만나서 행복했다.

RHK출판사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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