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체는 나>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누구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배우고 싶지 않았지만, 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반복하면서 이제 나는 누구도 나를 아프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가령, 누군가 무례함을 장난이라고 표현했다고 해 보자. 여기서 무례함은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을 장난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 무례한 장난을 내가 분위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갔다고 해 보자. 그러면 무례한 타인은 친절함과 배려, 이해심을 오히려 허락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무례한 인간은 내가 어느 선까지 참아낼 수 있는지 조금씩 조금씩 더 침범한다. 그리고 완벽히 상대를 장악했다 판단되면, 자신의 완벽한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한다(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무례한 타인은 상대를 봐 가면서 함부로 대하기 때문에 빠른 손절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이해와 배려를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한다.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타인 중 내 사람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제할 것인지 선택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 있다. 내 앞에 있는 타인이 나와 주변사람들을 진정 <!>으로 존중하는, 존중하려는 사람인지 봐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사람이 진정한 타인 존중과 배려가 가능하다. 무례한 타인은 처음 관계를 시작할 때 상대를 존중하는 척,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한다. 그래서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척하는 연기를 오랫동안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반드시 양의 탈 아래 있는 늑대 수염과 꼬리가 슬쩍슬쩍 드러난다. 그 표시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면 된다.
무례한 타인은 좋은 사람의 이해와 배려를 뭉개고 파괴하면서, 내면의 빈 공간과 상처를 채운다. 타인을 도구화하기 때문에 무례한 타인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반드시 인생을 잃고(시간, 돈, 열정), 내면이 파괴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례한 타인인지 알아봐야 하고, 빠른 손절을 해야 한다. 불쌍하지 않은 무례한 인간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경향도 버려야 한다. 무례한 인간의 무례함이 무슨 이유에서 나왔든지 불쌍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자. 무례한 인간이 불쌍하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끝이 없다. 마트로시카 같이 까고 까도 나올 것이다. 무례한 인간은 신(예수님, 부처님, 당신이 믿는 신)에게 맡기자.
인간관계를 숱하게 하면서 우리는 무례한 타인을 초장에 걸러낼 수 있는 경험치를 얻는다. 경험이 부족했을 때는 O인지 된장인지 반드시 먹어보고, 발라봐야겠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냄새만으로 바로 피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인간관계도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실패들을 통해 반복하지 않으면 되니까.라는 가벼운 마음을 갖고 문 밖으로 내보내자.
지금까지의 관계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 아무도(그 누구도) 내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는 것과 무례한 인간이 주는 부정적인 것들을 허락하지 않으면 된다는 점이다. 가족, 친구, 연인, 그 누구도 자기 자신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삶이 완전히 혼자가 되더라도 차라리 무례한 타인이 없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례한 인간들을 인간관계로 삼아 살아가느니, 차라리 혼자인 것이 낫고, 외로운 것이 낫다.
사기꾼에게 처음 피해 입은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피해자를 가엾게 여긴다. 그러나 피해자가 피해를 반복하면 오히려 문제는 피해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유였 건 사기꾼을 삶에 들인 것이 피해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것이 삶을 통해 배울, 배우게 되는 지혜다.
비단 사기 피해자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통용된다. 만약 가족 내에서 나를(나만)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피해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가족 역시 타인이기 때문에 사람을 봐가면서 행동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상처를 주는 가족도 과거의 어떤 상처 때문에 가족 내 누군가를 도구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가족도 타인으로 보고, 나를 대하는 태도와 말을 관찰한 후 결단해야 한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가족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고, 손절해도 된다. 그걸 삼십 대 후반이 돼서야 배웠다. 나만 배려해야 하는 관계라면 그게 가족이라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배려와 사랑은 반드시 상호적이어야 한다는 걸 기억하자.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는 동의의 주체는 나다. 그러니 상대에게 권리를 주지 말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내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지키고,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도 나라는 점을 기억하자. 그러면 혼자 남겨지더라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매일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과거를 곱씹는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관계를 삶에 들일 것인지 생각한다. 내 삶의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채울 것인지 모두 내 몫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매일이 평안하고, 행복하다.
흙 빛 세계에서 벗어나 드디어 노란 세상에 산다. 그리고 내 삶에 들어온 의미 있는 타인인 토오루(남편)도 노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사랑하고 배려한다. 그 누구도 나와 내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도록 나는 힘을 갖고 싶다. 그러니 오늘도 1mm 라도 성장하자라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