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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옥상 소풍>



  나이가 들어갈수록(아직은 그래도 젊지만..) 새벽잠이 없어진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어야 기운이 난다. 새벽부터 일어나 고운 밥을 먹고 나 홀로 소풍을 만끽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왔다. 세상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들과 연을 스스로 끊고 지낸 지 3년이 넘어간다. 탐이 너무 나서 서울까지 뛰어가 친구를 사귀겠다고 했던 것도 3년 전 정도 되어가는 것 같다. 그때 멈추길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 생각하면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오늘의 내가 불과 1, 2년 전의 나를 생각해 봐도 과한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 인연을 계속 이어왔다면 상대방에게 반드시 큰 상처를 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모든 걸 멈추고 방안에 나를 가둔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내면의 건강을 많이 찾았다.

  세상과 끊어진 고요한 일상들 속에서 점차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간다. 한때는 스스로를 내향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점차 알아간다. 한 심리상담사는 내향인지 외향인지는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거라 바뀔 수 없다고 말했고, 또 다른 심리 분석가는 최근 3년 동안의 동향을 보면 된다고 했다.

  최근 3년은 완벽한 내향 인간으로 살았지만, 태어나서 자라오면서를 생각해 보면 완벽한 외향 인간이었다. 무대에 서고, 주목받는 걸 좋아해서 누구보다 먼저 나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극을 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나를 내향 인간이라고 하기 어렵다. 심지어 어린 시절 별명도 외향 인간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큼 나서는 걸 좋아해서 교회에서도 노래하고, 연극하고, 춤추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랬던 내가 온 갖 종류의 사람들과 상황들을 겪어 수치심과 죄책감, 죄의식의 늪에 깊게 빠지면서 아무도 없는 일상에서 행복과 평온을 느끼는 인간이 됐다. 지금은 나서서 노래 한자리 하라고 해도 부끄러워서 못한다.

  나 홀로 일상을 보내면서 글을 쓰고, 생각하고, 공부하고, 책을 읽고, 강의들을 섭렵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드디어 내가 왜 내향 인간이 됐는지 깨달았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심리학 강의에서 심리학자가 말하길 극단적인 트라우마를 유발할 만한 상황을 겪으면 외향형이 내향형으로 바뀐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완벽한 외향 인간이었던 내가 내향 인간이 된 이유를 알게 됐다. 안타깝지만 인간의 삶에는 항상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도 나는 태어날 때 외향으로 태어난 덕분에 사람들과 만나면 잘 웃고, 잘 놀고, 신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내향 인간이라고 하면(집에 몇 날 며칠 아무도 없이 있을 수 있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요?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내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의 내가 완벽한 내향 인간이 된 이유가 가면 때문이 아니라 상처 때문인 걸 알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뭐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이제는 어릴 때와 달리 사람들과 부대끼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충전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있는 것보다 혼자 집에 가만히 앉거나 누워있는 게 좋다. 혹자는 이런 걸 번아웃이라고도 하던데 이제 번아웃이라고 핑계를 대기엔 내 상태가 너무 건강하다. 이제는 외향도 내향도 아닌 내 성격이 다채로워서 좋기도 하고 편하다. 내향 인간이 가진 홀로 보내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성장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서다. 그리고 때에 맞춰 나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어 내가 마음에 든다.

  홀로 앉아있는 옥상의 아침은 벌써부터 해가 떠올라 눈이 부시다. 이제 조금 더 보내다 내려가야겠다. 햇빛에 까맣게 그을리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도 행복하게 보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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