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024. 1. 26. 금. AM 4:35.

<나의 어떤 무의식이 나르시시스트에게 지속적으로 당하게 하는가?ㅣ 무의식에 변화를 주는 방법, 정신과 의사가 알려드립니다>를 보고


나의 어떤 무의식이 나를 나르시시스트에게 이끌었는가. 지난날들을 떠올려 봤다. 내가 나를 방치하고, 내 감정을 타인의 감정보다 하찮게 여겼던 세월들을 생각했다. 착하고,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래야 하니까.

생일을 맞아 아주 예쁜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 안엔 예쁜 말들이 가득했고, 그중 '고운 마음이 유지되길 바란다.'라는 표현이 내게 오히려 상처가 됐다. 왜 그 예쁜 말이 발작버튼을 누르게 된 것일까. 고운 마음, 착한 마음을 가졌다는 칭찬은 좋은 표현인데, 오늘의 나는 그 표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그 표현들을 하는 사람들이 그 말들을 통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겪었기 때문이다.

새벽, 원은수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과거를 떠올린다. 고운 마음이라.. 20대 초반이었던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 A가 있었다. A가 공부할 때, 취업한 후에도, 결혼한 후에도 나는 A가 부를 때마다 교통수단으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A의 집에 가서 몇 주씩 자고 올 정도로 소중한 사이였다.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마다 나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사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잠자리를 가리는 사람이라, 타인의 집에서 잠을 거의 못 자는 데도  A의 집에서는 이상하게 오랫동안 머물렀다. 물론 머물고 돌아오면 한참 동안 아파야 했다. 잠을 자고는 있는데 거의 잠을 못 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부르면 어디든 달려가야 한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제였더라 A가 취업한 후 그녀의 집에 1주일 정도 머물렀을 때 청소를 할 때였다. 일기장이라면 보물을 인양 챙기는 A가 침대 머리맡에 일기장을 두고 나갔다. 나도 모르게 친구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 버렸는데, 지금도 후회한다. 열고 나서 A에게 한참 동안 미안하다고 했고, 용서받아야 했고, 너무 미안했다. 그때 친구의 일기에 '00가 악해지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말이 적혀있던 건  A와 B라는 친구 사이에 내가 끼게 됐기 때문이다. 00은 나다. 그런데 일기장 어디에도 B가 악해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문은 없었다. 억울했다.

B는 A의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부잣집 딸에, 아름답고, 유능하고, 똑똑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가난하고, 인기도 없고, 거의 혼자서 걸어 다닐 정도로 외로웠다. 반명 두 명의 친구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을 정도로 멋진 친구들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B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A가 내게 B를 부탁했을 때였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달리 친구에 대한 믿음이 좋아서 친구의 친구기 때문에 엄청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B에게 처음부터 후한 점수를 줬다. 직접 만나본 B는 너무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오늘의 나는 아직도 그 부분을 후회한다. 모든 관계의 시작을 0부터 시작해서 쌓아가야 하는데, 나처럼 처음부터 100점을 주고 시작해 버리면 상대가 그렇지 않았을 때 그 고통을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오늘의 나는 0이거나 마이너스부터 관계를 시작한다. 마이너스 점수가 어느 정도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관계를 끊는다.


기묘한 삼각관계 안에서

A와 B 사이에 낀 기묘한 삼각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B와 관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을 때 나는 마침 살인사건 피해자가 된 이후라서 강박증으로 하루의 모든 일들을 글로 남기던 때였다. 그때는 메모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지만 정신병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치게 적어댔다. 일주일 정도면 일기가 10포인트 A4로 100페이지가 넘어갔다. 그 정도로 나는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의 블로그 일기는 비공개에서 공개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람의 습관은 이렇게 무섭다.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극단의 두려움을 매일 느꼈는데 그럼에도 대학원에 가겠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해서 매일 공부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그때 B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찾아왔고, 아무리 피해 다녀도 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내게 많은 과제를 부여했다. 뭔가 B는 당연한 듯이 내게 뭔가를 해달라고 했다. 헤어진 남자친구를 찾아가서 자기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전해달라고 되찾게 해달라고 부탁하든지, 자기는 심리적인 엄마가 필요하니 내게 그 엄마 역할을 해 줘야 한다든지. 기타 등등.

그때 살인 사건 피해자였기 때문에 일주일에 여러 번 경찰서 강력부에 왔다 갔다 했었다. 그러면서 범인을 본 것 같다며 (이상하게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다. 신기하게 실체로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다가 새벽에 열차로 서울에 갔었단다. 안타까운 건 그가 국적이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수사대상에서 제외됐다는데.. 일주일 동안 10번에 가깝게 가는 곳마다 만날 수가 있겠는가. 심지어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알아보는 표정을 지었다. 홈플러스, 횡단보도, 도서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그를 봤다.) 그날그날 적은 일기를 형사님께 보여드렸다. 형사님은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며 이렇게 메모를 적고, 글을 적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형사가 천직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시면서 경찰이 돼 보는 건 어떠냐고 물으셨었다. 그 정도로 나는 매일 엄청난 양의 일기를 자세히, 깊게 적었다. 말하는 내용까지 모두 적어 댔는데 사실 나는 대학원에 다닐 때도 별명이 '속기사'라고 불릴 정도로 AI처럼 들은 내용을 바로바로 그대로 적을 수 있다.

예전에 A에게서 B이야기를 듣곤 해서 나는 B와는 오며 가며 얼굴만 봤지만 엄청난 일화들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떤 일화 중 하나는 단체로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고르며 이동하던 때였다. B는 단체로 식당에 가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식당에 가야 한다며 화를 내고 원하는 곳으로 갔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를 공주님으로 불렀다고.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시켰는데 맛이 없어서 주방 아주머니를 불러 대놓고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게 하느냐고 다그치고 화를 냈다고 했다. 돈이 아깝다고 말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식당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정말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A는 그런 B가 너무 멋있다고 했었다. 그런 멋있는 B를  A가 내게 붙여준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면 B가 나를 찾아와서 2-3시간씩 내 시간을 뺏어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매일 도서관 열을 옮겨 다녔는데 10개가 넘는 도서관 열을 어떻게 찾았는지 그녀는 반드시 나를 찾아냈다. 못 찾은 날은 집까지 찾아왔다. B와의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여기에 적을 수도 없고, 적지도 않을 거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다만, 그때 그 기묘한 삼각관계를 지속하면서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관계가 10년이 지나고 12년이 지나도 내게 영향을 줬다는 거다. B가 내게 줬던 상처와 피해 때문에 B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며 이야기하는 A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가 오히려 '악하게 되지 않게 해 달라.'는 평을 듣게 되다니.. 신화 속 진짜 에코가 된 것 같았다. 허공에 대고 혼자 소리치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때부터 그 기묘한 삼각관계를 그대로 뒀다. 단지, 어느 순간 이후에는 B에게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친구인 척하지 말라고 완벽히 끊었을 뿐이다.

B와 함께 했던 면접 스터디에서 B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가방이 싼 가방이라며 자기의 몇 백만 원 되는 가방의 깔판으로 사용했다. 그 자리에 지금의 내 남편도 있었는데, 대놓고 사람을 하대하고 하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가 유일할 거다.

나 - "왜 내 가방을 깔고 니 가방을 올리는 거야?"

B - "니 가방은 싼 거고. 내 가방은 비싼 거니까."

라며 당당하게 말했다니까.  A는 또 B가 역시 멋있다고 했다. 이 장소에 최소 5명은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대로 뒀다. 아직도 후회한다. 이것 말고도 어이없는 일들이 한 트럭 있다. 그럼에도 나는 A의 가장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니까 내가 참아야 한다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불평등하고 기묘한 관계 속에서 많은 일들과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 나는 그 내용들을 모두 일기로 남겨놨다. 그때의 강박증이 기록을 미친 듯이 남기게 해 준 덕분에 나는 후일 내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는 나를 위안하는 용도로 일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일기를 읽어보면서 내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 또 재확인하고 안도했다. 지금도 고마울 뿐이다. 한 번은 10년이 지난 후(B와도 만나지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게 된 게 10년이 넘었다. 나는 B와 관계를 끊은 이후에도 A에게 B와 친구니까 잘 만나라고 했다. 나와는 친구가 아니고 안 맞아서 안 만날 거라고 하니까 따로 만나라고 했었다.)에도 그 기묘한 관계가 나와  A의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가 될 줄은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안일함이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관계에 영향을 가져왔다.


이제 내가 끊는다.

기묘한 삼각관계가 끝난 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10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A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B가 나와 문제가 있었을 때 자기편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A와 관계가 끊어졌다고 했다. B가 A의 연락을 어느 날부터 안 받아서 따로 주변 친구들을 통해 이유를 알아봤단다. 이유들이 굳이 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이번 참에 한 번에 공격하자 느낌이었는지 나까지 껴 넣다니. 아.. 아마 그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하겠지라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안쓰러웠다. 어쩌면 정말 방어기제 덕분에 그걸 사살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거짓말 탐지기까지 속일 정도로 자기 스스로를 속일 정도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안나라는 드라마에서 안나가 '사람들은 자기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A가 친구들 사이에서 너무 불편해졌다고 했다. A와 B는 정말 많은 친구들을 공통친구로 가지고 있었다. 10년도 훨씬 지났는데 B의 심리조종과 정치성이 아직도 내게 영향을 주다니. 나는 A에게 그동안 B와의 이야기를 적은 일기장을 그대로 복사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정말 많을 건데 스스로 읽고 판단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A는 오히려 그건 내가 일방적으로 적은 거라며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화를 내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또 무능감을 느꼈고, 착하고 고운 마음을 지녔다는 게 얼마만큼 억울함을 감당해야 하는 건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나서 며칠을 앓아누웠다.

그리고 작년인가 재 작년인가(시간의 흐름이 남들과 달라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기를 찾아보면 정확하겠지.) 심리 공부를 하면서 내가 A와 건강하지 못하게 얽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심리 공부를 하면서 A에게 잠시 시간을 갖고 내가 좀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정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가 오늘까지 연락을 못하고 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친구가 얼마나 화를 낼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도 B를 내게 붙였던 A에게 아직도 화가 난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나도 아직 과거에 살고 있나 보다. 삼각관계 안에서 내가 감당했던 것들도 화가 나고. 3자 대면을 해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을 때 거절 당했을 때도 무능감이라는 수치심이 최대치에 이르렀다.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에 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그사세.라고 할까.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모든 관계들이 싫어졌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가 악성 나르시시스트를 끌어들이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차에 원은수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됐다. 그리고 알게 됐다. 어린 시절 누군가를 위해 감정을 항상 포기하고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끙끙거렸던 고운 아이가 이 상황들을 모두 만들었다는 거다. 고운 마음, 착한 마음을 가졌다는 게 누군가에겐 이용하기 쉽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대상이 된다는 게 억울하고 안타깝다. 지금도 B가 말하고 다니는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을 대면해서 하나씩 꺾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오지도 않을 거고 오게 하지도 않을 거다. B를 만난다면 정말 안 좋은 상황에 서겠지. B가 하는 정치질이래 봐야 A와 나눴던 대화들 뿐이니.. 그냥 내가 감당하고 가련다. 누가 뭐라든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거,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러든지 말든지 내 길을 가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 무의식을 완전히 치료하고 바꿔서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내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거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러고 보면 참 상처가 많은 아이였는데, 그 아이 옆에는 내 역할을 할 누군가가 또 있겠지. 그 아이는 또 얼마나 천사같이 착하고 고울까.. 참 마음이 아프지만, 그것도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기도하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한다.

일단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고, 나는 세상에서 모든 행복을 거머쥐며 살아가게 될 거니까. 여전히 400 만원이 넘는 가방을 들고 다닐 B와 달리 여전히 나는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나를 그렇게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많이 가진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B가 원했던 A와 나의 견고한 우정에 금이 갔으니 B의 정치질이 성공한 거겠지. 예전에 같이 공부했던 왕국의 사자같이 멋진 친구가 내게 그런 말을 해 줬다. '사자는 양의 의견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사자 같이 살아갈 거다. 누가 내게 뭐라든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니까.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인 토오루(남편)와 나, 예수님이 있으니 나는 뭐든 괜찮다. 명품백 하나 없고 에코백을 들고 마트에서 할인하는 물건을 찾아다니는 내가 나는 너무 좋다. 아마 돈이 정말 많아져도 오늘의 나는 그리 바뀌지 않을 거다. N(직관형) 성향이던 내가 S(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살아오면서 나는 두 개의 성향을 동시에 지닌 내가 정말 좋다.

#토킹닥터스
#나르시시스트아웃
#무의식치료하기
#토닥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