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나에게 명절이란>




  나에게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한때 내게도 명절이 두근거림을 주던 때가 있었다. 명절에는 드디어 아버지께서 나를 보러 오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명절이 참 기다려졌다.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는 유일한 날이 참 좋았다. 그리고 명절에는 언제나 부산스럽게 아침부터 밤까지 고운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들 틈바구니에 껴서 함께 음식을 만들었다. 전이 만들어질 때마다 하나씩 집어먹는 재미도 꽤나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명절은 내게 더 이상 두근거림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시는 것도 싫었고, 명절이 오는 것도 싫었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들은 나를 틈에 껴 놓고 아버지를 비난하고, 나를 비난했다. 비난의 정도가 너무 심각해서 나는 이때 들었던 비난의 말들을 벗어버리기 위해 성인이 돼서 오랫동안 눈물겨운 노력을 쏟아야 했다. 지속적으로 들었던 비난과 욕들은 마음에 비수처럼 박혀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면 나를 어둡고 칙칙한 깊은 골짜기로 데려갔다.  

  명절이 다가오고, 명절이 되면 어머니들은 나를 굳이 불러서 내가 얼마나 못난 존재인지, 사라져야 할 존재인지 인식시키고 또 인식시켰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대답을 할 때까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나는 명절과 아버지, 명절 음식, 내 이름까지 싫어졌다. 드라마와 소설 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가족이 언젠가 내게도 생길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시기를 보냈다.

  일 년 내내 노동력과, 시간, 돈을 투자해야 하는 농사와 농장, 하루 3끼 십 첩 반상과 국까지 곱게 올려야 하는 삶, 입 식구가 족히 열명이 넘어서 상추 하나를 씻더라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재료 준비까지(그 외에도 집안일과 바깥일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삶을 어머니들은 사셨다.). 어머니들의 삶은 누군가 옆에서 거들더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삶의 힘겨움을 잠시라도 내려놓기 위해 한 사람을 선택했고, 그 대상이 아버지가 됐다. 아버지는 명절 때만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입 타작을 해도 문제 되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선택을 당당히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죄성은 고스란히 내게 물려졌다.

  덕분에 나는 사춘기와 성인이 됐을 때 사람들의 눈초리와 생각이 무서웠다.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어머니들이 내게 준 많은 말들과 심리적 부담들이 나를 짓누르고 또 짓눌렀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나는 심리적 아픔을 신체화하기 시작했다. 신체화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나중에 심리 공부를 하면서 알았다. 위장이 아프고, 위가 파이고, 한 달 내내 설사를 하고, 만성 비염을 앓고, 심각한 변비를 겪고, 3초마다 한 번씩 재채기를 하고, 잠을 자지 못하고,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심장이 아프고.. 증상을 말하자면 끝도 없다. 키워주신 아버지가 의료 1종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갔고, 모두 병원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한편으론 참 감사하다. 후에 심리 공부를 하면서 심리적 폭행(정서적 폭행) 역시 육체적 폭력만큼 심각한 폭행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말로 박힌 마음에 상처는 어떻게 해도 잘 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됐다.

  성인이 된 후 누군가 내게 아름답다고 이야기해도 믿지 못했다. 오히려 그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하루 종일 곱씹고 또 곱씹었다. 스스로조차 자신을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어머니들의 말처럼) 고운 칭찬이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그 눈초리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느라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래서 나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이 나이가 돼서 명절을 맞이하고 나서야 그때 어머니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이 안타깝다. 하필 그 안에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나도 참 안타깝다.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다는 건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제 나에게도 진짜 가족이 생겼기 때문에 고운 김밥을 만들어 함께 나눠 먹는 일상이 명절이 됐다. 이제 명절은 쉼이면서 내게 허락된 아름다운 날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십여 년을 가족이라는 개념에 갇혀서 누군가들의 가족이 되려고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가족은 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10년을 사용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됐다.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입으로만 가족이라고 해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이때 철저히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진짜 내 가족이 될 사람을 드디어 내가 선택하기로 했다. 노력해서 누군가의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 나는 오늘의, 미래의 가족을 스스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의 토오루(남편)님과 진짜 가족이 되기로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명절이 참 좋다.

  과거의 명절들이 내게 지옥 같았다면(그중에 행복했던 작은 경험들도 있었겠지만) 오늘의 명절은 내게 참 좋은 날이다. 만약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에게 아름다운 명절들을 선물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을 가득 부어주고 싶다. 그래서 내 아이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선물하고 싶다. 어젯밤 꿈속에 내게 아이가 생겼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니 남편뿐이다. 좀 아쉽다. 물론 사랑받은 경험보다 그렇지 않은 경험이 훨씬 많은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두렵긴 하다.

  명절의 시작. 심리학 강의를 들으면서 어젯밤 만들어놓은 김밥을 먹었다. 남편은 새벽에 깨서 김밥을 먹고 잠이 든 듯하다. 명절을 맞이해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과거 명절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명절들 속에 즐거웠던 때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나는 어떤 하루를 살아갈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명확히 무엇인지 안다. 그러니 토오루(남편)님과 함께 하는 삶이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중요하다. 남편과 함께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것들도 남편 탓이 아니니 그냥 흘려보내기로 했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들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다만, 그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낼 것인지는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만 한다. 인생을 하나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소설 속 주인공이 역경과 고난을 겪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인물이 완성되어 가는 거니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을 내게, 남편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선물할 거다.

  이제는 아름다운 명절, 행복한 명절이다. 누가 뭐라든 나는 내 삶을 살아간다. 타인의 삶과 마음은 타인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문제니까 라며 단단히 선을 긋는다. 타인의 마음까지 책임지려던 과거를 생각해 볼 때, 그리고 심리학에서 의존적 인간에 대해 공부하고서 타인의 영역은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외에는 책임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해도 부족한 것이 상호 의존적 인간들의 이야기니까. 그들의 공생관계에서 과감히 빠져나와 내 삶을 살아간다. 뭣도 모르는 인간들이 효가 무엇이고,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블라 블라 뭐라고 떠들든 간에 너나 잘 사세요~ 라며 과감히 등을 돌리고 내 길을 걷는다.  

  하나님 제게 오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의 사랑이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고난이 가져다주는 유익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 하나님 덕분이에요.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