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며 보내는 시간>
2024. 12. 15. 일. 기말고사 끝.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은 심리적으로 큰 장벽 하나가 생긴다. 무엇을 해도 나는 되지 않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이 생겨나고, 스스로 아무 가치가 없다는 무능감을 끝없이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가 무가치하다는 생각과 느낌이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린다. 그래서 아무리 기본적인 바탕이 좋다고(좋았다고) 하더라도(지능, 성실, 과거의 업적 등) 마음이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려 무엇을 하든 반드시 실패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실패가 그 사람에겐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복된 실패가 그 사람 내면과 머릿속에 어떤 일이든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래밍한다.
성공할 것 같은 과업이 있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특별한 일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믿기 때문에 실패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된다. 외부적으로는 타인이 그 사람을 망가트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깊이 살펴보면 그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다는 걸 알알게 된다. 그리고 나를 망가트린 것이 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너무 아프기 때문에) 또 다른 특별한 일들을 찾아다니고 만들어 낸다. 그러니 그런 사실을 알아 갈수록 참 아프고 슬픈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이 엮이고 엮여 풀어낼 엄두조차 할 수 없다.
드디어 어제, 나는 나를 더 많이 알고 싶어 시작했던 심리학사 1학기를 마쳤다. 이제 2학기만 마치면 심리학사를 취득한다. 심리학사를 취득하면 앞으로 10년 정도 계획을 세워둔 심리학 대학원 진학이 가능해진다(아직까지는 임상심리사가 되고 싶다.). 물론 지금 당장 할 생각은 없다. 이것 다음에 할 계획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사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나를 더 많이 알고 싶어서였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반복적으로 실패를 마주한 덕분에 나는 내가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실패 후에는 무엇을 해도 잘되지 않았고(아무리 쉬운 과업이어도)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타인이 나를 그렇게 바라본 것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받아들이자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누가 뭐라 건 '나는 내가 하겠다고 한 것은 반드시 해 낸다.'가 모토였던 내가 더 이상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없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이뤄낸(어떤 것이라도) 사람을 보면 부러운 건 기본이고, 그 사람이 조금만 가시 돋친 말을 해도(네가 노력을 덜 했겠지.라는 말) 큰 내상을 입었다. 그래서 분명 상대가 밥을 사주고 나를 위해 줬던 시간이었는데도 나는 집에 와서 밤새 펑펑 울었다. 스스로가 너무 미워서, 하찮아서,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를 내가 만든 성에 가뒀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도 한때는 대단한 인간이라는 평을 들을 때가 있었다. 그것이 나를 더 깊고, 낮은 곳으로 처박히게 만들었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어디부터 시작된 걸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내 인생은 이렇게 마무리되어도 괜찮을까. 그런 생각들을 3년 동안 하면서 나는 내게 아주 작은 성취들을 쌓아 주기로 했다. 큰 것들은 안 되더라도,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 심리학에서는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성취들을 쌓아 보라고 권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아주 작은 것들부터 시작했다. 민간 자격증 공부를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무료로 책을 받아하는 서평을 제한 기간 안에 작성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골라 매일 꾸준히 하고 기록했고, 나를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집 정리를 등을 했다. 그렇게 나를 위해 작은 성취들을 열심히 쌓았다.
그리고 그 성취들이 쌓여 다음 단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 과정으로 선택한 것이 심리학사 학점을 취득이었다. 이 단계를 시작할 때 두려움이 얼마나 크던지 2년 동안 고민만 했다. 그 이유는 하다가 잘 못하면 어쩌지. 점수가 낮으면 어쩌지. 내가 이걸 한다고 해서 나중에 대학원에 가기는 할 수 있을까. 대학원에 가면 논문도 써야 하고. 학비는 어떻게 할 것이며 등등 보이지 않는 다음 단계들이 숨 막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천천히 하기로 했다. '하다 그만두면 어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 드디어 어제 끝났다. 그렇게 시작했던 학사 덕분에 과정들 속에서 다양한 나를 마주했다.
중간고사를 보고, 토론을 하고, 과제를 하기 위해 밤새 고민하고 쓰고, 매일 나눠 강의를 듣고, 쪽지시험을 보고 기말고사를 봤다.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더 많이 마주하고 무너졌던 마음을 명확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너무 놀랐다. 그 누구도 아니라 나의 적이 스스로였다니.
심리학사를 공부하고, 나름 심리 공부를 하고, 스스로에 대해 분석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남편을 제외한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했다. 그 이유는 트라우마와 상처로 인해 어떤 관계를 시작하더라도 과거의 경험을 재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기간 동안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더라도 만나지 않았다.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속에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해체하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들을 하면서 지금은 인간관계를 해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리학사 공부에서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이 어느 순간부터 친구처럼 느껴졌다. 7명의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8과목인데 1분이 두 과목 강의를 하셨다.) 그분들에게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그분들을 내 친우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이 지루하지 않고, 평탄하고 평안했다.
민간 자격증을 공부할 때는 정말 즐겁게 할 수 있었는데, 막상 심리학사 학점제를 시작하니 엄청난 부담감이 몰려왔다.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과거 대학 때 나를 이끌어줬던 내면의 완벽주의자인 나를 다시 만났다. 과거의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내면의 엄청난 완벽주의자(성과, 성취 주의자) 덕분에 대학 학점을 높게 받을 수 있었고, 토익 시험에 열을 올리고, 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외부 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완벽주의자 덕분에 아주 좋은 성취들을 종이에 적어 대학원에까지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면의 완벽주의자가 대학원에 가서부터는 엄청나게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작은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고,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밀어붙여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그 누구도 내게 공부를 잘하라고 강요한 사람이 없는데, 내면의 내가 미래를 위한다며 내게 많은 것들을 강요했다. 그 완벽주의자는 용서가 없었고, 내가 성취하지 못할 때마다 잔인한 말을 퍼부었다. 그래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공부해야 할 시간에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 그중 하나였다. 내가 엄청난 공의존자가 됐던 것도 그래서였다는 걸 지난 3년 동안 나를 분석하면서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 당장 내게 사랑과 인정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그 사람들을 만족시키면서 나를 달랬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정 욕구에 중독됐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나니, 내 안의 완벽주의자도 나를 포기했고, 나도 나를 포기했다. 타인들이 나를 포기한 건 덤이다. 실제로 꿈에서조차 내가 오늘의 시아버지께 "나를 좀 사랑해 주세요."라고 외쳤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다 심리학사를 공부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오랜만에 성취 과업을 주자 내부의 완벽주의자인 내가 다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잘해야 한다고, 완벽해야 한다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재밌는 일은 내 안에 완벽주의자인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내가 나를 부드럽게 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자인 내가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느낌이 들면 바로 스스로에게 '괜찮아. 잘하지 못해도. 즐겁게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라며. 다독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심리학사 1학기 공부를 정말 즐겁게 했다. 나는 과거에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법학 석사 학위가 있기 때문에 심리학사를 취득하기 위해 따로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에서 이미 들었던 교양 과목 학점을 제외한 전공과목 학점만 이수하면 됐다. 원래는 방송 통신대를 알아봤는데 심리학 사는 방송 통신대에 없었다.
15주 동안 완벽주의자인 내면의 나를 부드럽게 다독이면서 즐겁게 공부했다. 이 기간 동안 다른 일들을 가능하면 늘리지 않았고 학사 공부에 만 매진했다. 집안일을 하면서 강의를 듣고, 들었던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고, 자기 전에도 듣고, 들으면서 잠들기도 했다. 그래서 참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중간에 그만둘까 하는 마음도 들기도 했는데(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잘못하면 못한 대로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임하자 평안하게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하나님께 평안하게 평탄하게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고 기도도 했다.
이제 2학기 과정만 마치면 내가 원하던 심리학 대학원에 영어 점수와 함께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당장 대학원에 진학할 건 아니지만, 이것도 내가 쌓아 보려고 했던 작은 성취 중 하나기 때문에 만족한다.
심리학사 공부를 하면서 생각한 건데 '이건 운명이야~!'라고 느꼈다는 점이다. 진작 공부했더라면, 과거에 내가 나를 충분히 잘 알았더라면 오늘의 나는 달라졌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고, 보이지 않는 신이 이곳까지 나를 이끄셨다는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이 들 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행복하게 보낸 시간, 행복하게 공부한 시간.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알게 됐고, 그분들에게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던 시간을 이곳에 기록한다. 나중에 이 글을 보면 미래의 나는 내면에 어떤 성장을 이뤄냈을까라는 기대가 들어 행복하다. 외부적으로 성취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내면의 성장을 엄청난 속도로 이뤄냈다. 이제 오늘의 내가 그 누구보다 편안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참 감사하고 고맙다. 그래서 인생에 오는 실패가 가끔은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는 말이 절실히 공감된다.
아, 엊그제 은사님께서 내게 좋은 일자리를 또 소개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남편을 통해 들었다. 법률 상담을 할 수 있는 자리라고 들었는데.. 내가 누구보다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법무사가 안 되면 꼭 오라고 하셨단다. 그 말을 듣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래서 내가 보이지 않지만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을 수밖에.. 고맙고, 감사하다. 은사님 감사해요. 하나님 감사해요.
이제 나는 천천히 나를 다독이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인생에 쌓아갈 생각이다. 그것이 외면이든 내면이든 천천히 한 걸음씩 내 걸음으로 인생을 걸어갈 것이다. 내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나는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니까. 나는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 "과업"은 주어진 목표나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일이나 활동을 의미합니다. 개인, 조직, 또는 팀이 일정 기간 안에 수행해야 하는 구체적인 업무를 가리킵니다(출처 : 위키낱말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