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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함께 기뻐하는 것보다
슬퍼하는 것이 더 어려울까>


요즘 심리 채널에서 주로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함께 기쁜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함께 기뻐하는 것보다 슬퍼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란다. 인간의 속성 상 슬픈 사람에게 오히려 에너지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소시오패스, 악성 나르시시스트, 악성에 가까운 나르시시스트 등) 그 부분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 이유는 스스로 느끼기에 기뻐하는 일은 누구나 함께 기뻐하기 쉽지만, 슬퍼하는 일에 함께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슬픈 일이 생기면 득달 같이 달려가 함께 위로하고, 선물도 주고, 최선을 다한단다. 그런데 가까운 이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질투 등의 감정으로 오히려 화를 내거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한단다.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생각을 거듭하다 드디어 이해했다. 그냥 그들의 기본 값이 그렇다고 말이다.

나는 그동안 슬픈 일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내 힘과 시간, 재정을 쪼개고 쪼개서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정작 나는 구하지 못했다. 슬픈 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구원자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다. 그래도 오늘의 나는 나의 취약점을  알기 때문에 과거 내 행동을 이해하기 쉽지만 당시엔 정말 힘들었다.

기쁜 일에 최선을 다해 기뻐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쁜 일에 참여하면 기쁜 기운이 내게도 올 것 같아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런데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 됐다.

그 이유를 찾고 찾다 드디어 찾았다.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다. 나는 대가족(3대가 모여 삼)의 구성원이었고, 그 덕분에 기쁜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움에 참여했다. 그러나 내게는 슬픈 일,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기대거나, 위로받거나, 함께 해 주는 이가 없었다. 물론 기쁜 일이 생겨도 그리 기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슬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었고(오늘의 나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는 가까운 친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기댈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슬픈 일이 생기면 주로 교회에 가서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내 이야길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독립적이다 못해 이기적으로 보일 만큼 나는 나를 숨길 수 있는 최대치로 스스로를 숨겼고, 좋은 모습만 타인에게 보였었다. 타인에게 보인 내 모습은 밝고, 쾌활하고, 말 많고, 명랑하다 못해 털털한 데다, 제 멋에 사는 고민 없는 아이였다.

어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이가 열 살이었는데 그 교통사고로 1년 동안 걷지 못했다. 학교에도 거의 나가지 못해 나만 유일하게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지 못했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왼쪽 발목 아래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는 큰 사고였다. 왼쪽 발목과 발을 살리기 위해 오랫동안 매일 항생제 주사 세 번(아침, 점심, 저녁)을 맞고, 항생제 약을 세끼 꼬박 먹었다. 그 덕분에 오늘의 나는 항생제 알레르기가 있다. 항생제만 먹으면 온몸에 발진이 생기고, 매우 아프다. 그때 치료를 위해 매일 발 위에 고름을 짜내고, 소독하고 붕대를 감았다. 그걸 1년 동안 혼자 하면서 반년을 목발을 짚고 다녔다.

소독하고, 거즈를 가는 행위 모두 열 살인 내가 혼자 구석에 앉아했다. 슬프고, 아프고, 외로운 감정이 들었겠지만 혼자 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어느 날은 홍합을 먹고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일주일 동안 온몸에 소독약을 바르고 맨 몸으로 누워 자야 했을 때도 나는 혼자였다. 그때 집 안에 경사가 있었는지 친척,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 그 식사에 유일하게 혼자 참여하지 못하고 소리만 들으면서 방에 누워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기생충에 감염돼서 기생충을 화장실에서 봐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게 몇 달간 지속돼서 고통스러웠는데 누구에게 말해도(키워주신 어머니 포함)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파들 파들 시들어갈 때쯤 장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께서 기생충 약을 며칠 먹게 해 주셨다. 정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 이후 기생충을 더 이상 화장실에서 만나지 않았다. 그 일 후로 나는 생고기(소고기 포함)와 회를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아무리 신선하다고 떠들어도 입에 넣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나는 누군가 슬픈 일을 당하거나, 힘든 일이 생겼다고 하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항상 어려웠다. 그리고 그걸 내가 대면하면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렵고 힘들 때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기쁜 일이 생기면 가족 모두가 큰 행사를 만들어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고, 담화를 나눴기 때문에 기쁜 일에 기쁘게 참여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기쁜 일에는 꼭 참여치 못해도 슬픈 일에는 꼭 함께 있어주고 위로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쁜 일에 기뻐하고 축하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기쁜 일에 참여하기 어렵다니. 이게 왜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이제야 나를 이해한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개인적인 상황에 머물렀기 때문에 나의 기쁨과 슬픔에 참여해 주는 건 예수님 뿐이셨다. 그래서 나는 돈이 생기면 과자를 사들고 예수님이 계실 것 같은 교회에 가서 과자를 드리고 한참 앉아 기도를 빙자한 혼잣말을 했다.

다행히 어린 시절엔 하겠다고 한 일에서 실패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남들이 잘 되는 일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잘되는 것도 좋은 거고, 내가 잘되는 것도 당연했기 때문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플 일이 어린 시절의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과거를 떠올리면 나는 내가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특별히 잘 될 거라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거듭된 실패를 경험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족 관계도, 공부도 모두 쉽지 않았다. 노력할수록 더 많은 것들을 해야 했고, 급기야 내가 세상에서 없어져야 만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됐다. 그때부터 우울증을 겪기 시작했는데 나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때 슬픈 일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 사람들의 슬픔을 함께 감당하느라 기진맥진했다. 남의 일을 따라다니면서 하느라 내 일은 거의 하지 못했고, 내 일은 예수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라며 방임, 방치했다. 그걸 또 혼자 믿음으로 승화했다. 예수님의 의견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내면의 예수님이 알아서 응답하고, 응답에 따라 극단적인 구원자 증후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 친구 대신 죽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다.

드디어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떨어졌을 때가 돼서야 내가 문제가 있다는 걸 드디어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걸 2-3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그리고 지난 일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기회였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재 탄생했으니 그래서 실패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실패는 정말 쓰리고, 아프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요 며칠 왜 나는 타인의 슬픔이 내 슬픔보다 더 아플까 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제는 타인의 슬픔보다 내 슬픔에 먼저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슬픔은 항상 뒤로 미루고, 타인의 슬픔의 항아리에 기쁨을 채우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을 하다 보니 나는 내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이걸 코디펜던트라고 하던데. 어쨌든 나는 선천적 성향(태어났을 때부터 있었던 성향)과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성향 덕분에 너무 복잡한 인간이 됐다.


한 예를 들자면 내 방은 청소조차 못하고, 설거지도 쌓아 놓고선 남자친구 부모님 댁에 가서 청소를 하고, 심부름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했다. 그리고 추가로 시킨 잔 심부름까지.. 했다.  

오늘의 나는 누군가의 슬픔을 대면하면 과거의 나처럼 과하게 노력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슬픔에는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위로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정혜신 작가님 : '당신이 옳다' 책 중의 충조평판) 하지 않고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슬픈 일을 말하는 상대가 있으면 충분히 들어주는 것으로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과거처럼 타인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의 숱한 슬픔들을 마주하면서 마음이 아플 때마다 타인을 구하려고 했던 내가 누군가의 눈에는 타인의 슬픔을 충전기로 사용하려는 나르시시스트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말 타인의 슬픔을 충전기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내 주변에도 있었다는 걸 이제야 발견한다. 그래서 심리 영상들을 보고 들으면서 그렇기도 하고, 꼭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걸 드디어 정리했다.

이제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쁜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인생이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훨씬 많다지만.. 타인의 슬픔을 감당하기에 내 그릇이 너무 작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구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접고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쁜 일이 생기면 신나게 달려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선물도 주고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그 즐거움이 내게도 올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그리고 슬픈 일이 있는 사람에겐 그 슬픈 일이 빠르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그 슬픔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일이 없기를 타인의 일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긴다. 타인의 어려움을 내가 져 줄 수 없다는 걸 드디어 받아들인 오늘의 나는 내 짐을 먼저 들기 위해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오늘의 나를 정말 좋아하게 됐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를 너무 미워했기 때문에(미워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나를 힘들게 한 건 타인이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오늘의 나는 그냥 물 흐르듯 나와 함께 산다. 기쁜 일이 생기든, 슬픈 일이 생기든 인생이 원래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하루들에서 오히려 훨씬 많은 행복과 감사가 발견된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나는 타인의 불행을 책임지려는 나를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게 감당하기 어려운 나와 타인의 슬픔 모두 예수님께 맡기자고. 그분께 모두 올려드리고 가볍게 산다.

내 인생이니까, 이제 내 것으로 살아도 된다고 내가 내게 드디어 허락하니, 인생이 참 평안하고 귀하다. 이 글을 혹시라도 읽었을 누군가가 있다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 타인의 삶을 대신 살면서 나를 지워야 했던 것처럼 어쩌면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갖고 힘든 일들을 마주하며 살았을 누군가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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