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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를 읽고 기록

 

 

<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를 읽고 기록

 

  드디어 완독 후 기록을 남긴다. 한번 새겨진 고통은 몸과 마음에 남아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고통이 남긴 흔적인 트라우마를 마주할 때마다 두려움이 솟아나고, 고통은 배가된다. 트라우마가 없었던 최초 시기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상흔에 대한 대처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 그 방법을 배워가면서 우리는 오랜 시간 깊게 우려낸 사골국물처럼 깊은 맛이 나는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물론 트라우마를 덮어두고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덮어둔 트라우마가 다양한 형태로 삶을 갉아먹고 파괴하기 때문에 결국엔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을 회피하고 회피하다 더 이상 감춰둘 수 없을 만큼 고통이 커지고서야 어쩔 수 없이 병원과 상담실을 찾는다. 감출 수 없을 만큼 자라난 고통이 여러 형태로 삶을 망가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치료를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내면 치료는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발견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통해 진짜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물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내면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증상이 나타나면 트라우마 반응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고, 그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럽지만, 고통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다움이라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트라우마에 대한 대처법이 점 점 더 날카로워지고, 전문적이 된다. 그래서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과 관계에서 자신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상처가 깊은 만큼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도 얻게 되는 능력 중 하나다.

 

  내 안의 트라우마들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가면서 감사한 점이 있다. 고통 속에 머문 시간만큼, 타인의 고통을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내게 고통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타인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에게 주어진 (신이 주셨든, 우연히 주어졌든) 고통은 삶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도구가 되기 때문에 축복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솔로몬이 구하고, 그에게 주어진 지혜도 세상 지혜가 아니라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지혜였다고 한다. 그러니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 중 지혜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물론 고통으로 인해 잘못된 방향으로 고착되어 타인의 고통을 경시하고, 깔아뭉개는 사람이 된 경우도 있다. 다행스럽게 나는(신의 은총으로)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점에 참 안도한다.

 

  가끔 내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고통과 타인의 고통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깔아뭉개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끔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에 냉 얼음이 우수수 떨어진 것처럼 시큰하고 멍이 들었다. 말하는 상대가 왜 그렇게 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 됐는지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상대의 말에 깊게 베였다. 그래서 더 깊은 고통 속에 떨어질 때도 있었다.

 

  최근 써야겠다고 생각하던 글을 두 달째 제목만 써두고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제 며칠 안으로 반드시 정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과거를 마주하는 건 역시나 쉽지 않다는 걸 또 배웠다.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고통 속에 들어갔다가 잠식되어 나오지 못할까 두려워서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러니 트라우마를 직면하는 과정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전 몰아보기로 40편을 완드(완성 드라마)한 중국 고장극이 있다. 그 드라마 속 인물들의 일화 덕분에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자극 됐는지 며칠 내내 동생이 꿈에 나왔다. 내가 가장 아팠다고 생각했던(고등학생일 때) 그 시점에 동생은 중학생이었다. 오늘의 내가 동생의 당시 삶을 바라보는 꿈을 거의 날마다 꿨다. 이 꿈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지속됐다. 어둡고, 칙칙하고, 곰팡내가 나는 작은 방(상아방이라고 부르는) 구석에 앉아있는 아이가 배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나는 실제로 이 장면을 본 적이 없다. 꿈에서 만들어낸 허상이다.). 동생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말랐고, 배가 고 파보였다. 실제로 동생은 주말마다 내가 동생에게 갔을 때(기숙사에서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갈 수 있도록 외출이 허락됐다.) 사준 한 박스에 천 원 하던 초코파이(12개 들어있음)를 일주일 동안 나눠 먹었다고 했다. 과거 속 아픈 일들을 동생은 내가 성인이 된 후 우연한 기회에 눈물을 흘리며 알려줬다. 너무 배가 고팠다고. 초코파이가 떨어진 날엔 동전 한 닢이라도 있을까 봐 장판을 다 들췄다고 했다.

 

  꿈속에서 보인 동생의 가녀린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났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와 달리 중학생이었던 동생은 부모에게 버려져 배고픔과 서러움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나는 내 아픔에만 몰두하느라 동생의 어려움과 아픔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동생의 아픔을 느낄 수 있게 된 때에는 깊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마음이 조금 자라고 나서야 나와 동생이 각자의 집에서 살게 된 시점을 떠올렸다. 내가 5살이던 무렵 동생과 나는 친척집과 아버지 집을 두고 각 집에 누가 살게 될지 기로에 서 있었다. 어른들의 결정으로 보육시설에서 동생은 친척 집에, 나는 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그러다 우리는 다시 어른들의 결정으로 나는 친척 집에, 동생은 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그때 서로의 집이 바뀌지 않았다면 (어른들이 처음의 결정을 번복하고 나와 동생을 바꿔서 키우기로 했다.) 동생은 최소한 굶주리는 아이는 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생일 때 기숙사 생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굶지 않는 한 굶주리는 일도 없었고, 추운 방에 자야 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상대적으로 정말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다시 되돌아보고서야 내가 누렸던 많은 것들을 동생이 누렸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고통을 느꼈다(내가 받은 고통은 논외로 하고). 배고픔의 고통을 갖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나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시간을 극단적으로 폭식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한다며 거의 먹지 않고 지냈다. 동생은 내가 폭식과 절식으로 수많은 염증 질환들 때문에 병원에 다닐 때 거의 먹지 못해 뼈만 남은 상태였다. 이때 나는 몸무게가 한 달 사이에도 수차례 10kg -15kg을 쪘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내가 만든 고통 속에 갇혀서 동생이 극단적인 환경에 머물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참으로 몸도 마음도 성숙하지 못한 때였다. 그래서 오랜 시간 미안했고, 여전히 언니로서 해 준 게 없어 미안하게 생각한다.

 

  동생을 꿈속에서 계속 만나게 된 이유는 고장극 속에서 만난 두 여성 때문이었다. 두 여성은 시집갈 나이가 됐을 때 동생은 자신의 혼처를 언니와 바꿨다. 동생이 자신의 혼처를 언니와 바꾼 이유는 지인으로부터(집안 대소사를 관장하는 어멈) 시집가기로 정해진 곳 남편이 될 사람이 놈팡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혼처가 바뀐 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언니는 엄청난 지위를 갖게 된 남편의 아내가 돼서 궁궐 같은 집에 살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반면 잘 살아보려고 혼처를 바꾼 동생은 오히려 놈팡이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언니보다 낮은 지위를 갖게 됐고, 풍족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동생은 필요한 것이 생길 때마다 언니를 찾아가 떼를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죄책감을 자극했다. 드라마 속 동생이 혼자 남겨진 장면이 나올 때마다 동생은 '언니가 가진 모든 것은 원래 내 것이었어.' 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고, 자신의 것을 모두 가진 언니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리고 언니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받아냈고, 언니는 많은 것들을 주면서도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다. 나중에 전쟁 유사 상황이 돼서 동생이 또 찾아와 언니에게 자신을 책임지라면서 '원래 언니 것이 전부 내 것이었잖아.'라고 했다. 그러자 언니는 드디어 '나는 너에게 빚진 것이 없어.' 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동생은 소리 지르는 언니에게서 돌아 나오면서 '언니가 가진 것은 다 내 것이었어. 그러니까 전부 내 것이 되어야 해.' 라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했다. 그 장면들과 대화들이 내 내면의 문 하나를 열었다는 걸 지속된 꿈들을 통해 깨달았다.

 

  어릴 때 어른들은 나를 볼 때 동생 이야기를 자주 했다. 동생이 나 대신 시골에 와서 살았으면 내가 누리는 것들이 전부 동생 것이 됐을 거라면서 동생이 불쌍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혼자 방에 버려진 동생을 도와주진 않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도와달라고 동생이 전화했을 때 왜 도와줘야 하냐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동생이 나중에 말해줬다.) 그리고 그들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키워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자신들이 선택해 준 덕분에 내가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니 그만큼 은혜를 갚으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했다. 그러다 가끔 방학 때 동생이 오면 동생과 함께 돌아가버리라는 독한 말을 매번 하면서 나의 내면을 완벽히 베어냈다. 당시 나는 나 살기만도 벅차서, 가끔 만나는 동생이 반갑지 않았고, 언니로서 잘해주지 못했다. 그 덕분에 어른이라고 말할 나이가 될 무렵부터는 동생에게 많은 책임감과 죄책감, 죄의식을 느꼈다.

 

  꿈속에서 동생을 매일 만나면서 갑자기 어렴풋이 질문이 떠올랐다. 나도 성인이 아니었고, 동생 역시 성인이 아닌데 내가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게 맞나?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내 주변도 그렇고, 동생 주변도 그렇고 충분히 동생을 보살필 만한 어른이 많았다. 어른의 역할을 해야 했던 그들이 오히려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지지 않아도 될 나에게 죄의식을 준 덕분에 나는 그들이 충분히 할 수 있고, 해야 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방임, 새어머니의 폭력과 방임, 아버지의 돈을 가져가서 사업하는 친척들의 입 바른 소리와 폭력(정서적, 육체적)과 방임, 그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나와 동생이 갖게 됐다.

 

  수치심과 죄책감, 죄의식, 부족한 애착은 동생과 나를 각자의 구덩이 속에 빠지게 했다. 동생은 자신의 아픔을 회피하기 위해 종교에 빠졌고, 나는 나를 회피하기 위해 수많은 중독에 빠졌다. 다행히 그 중독에 약물, 알코올, 도박, 사치가 없어서 참 감사하다. 과거의 나는 독서 중독, 메모 중독, 종교 중독, 봉사 중독, 돌봄 중독, 드라마 중독, 영화 중독, 애정 중독 등의 중독에 빠졌다. 독서 중독에 걸렸을 때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서 매일 하루 열 권씩 책을 읽어대고, 메모 중독 때문에 온 방이 메모가 된 종이들이 붙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방도 부족해서 화장실 타일에까지 메모를 할 정도였다. 봉사 중독은 정말 할 멀이 없다. 그때는 숨을 쉬기 위해 남을 도왔다고 말할 정도다.

 

  중국 고장극과 꿈, 그리고 <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돌아다니던 생각들을 정리했다.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들, 내 책임이 아니었던 것들에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냄을 통해 타인에게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집 안에 도박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자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이 스스로의 몫을 살지 못한 덕분에 주변에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중독 인간 한 명만 없었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생존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상처를 대대로 물려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 사람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아주는 것이 오히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된다는 말이 참으로 맞다.

 

  남편과 일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를 기록하는 노트 위에 'OO에게 나는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다.'라는 말을 눈으로 보기 위해 글로 적었다. 내가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들을 드디어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내게 빚이 있다고 준 사람들이 오히려 책임자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걸 살면서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그러니 그 책임들을 책임자들에게 돌려주고, 내려놓기로 했다(책임자가 사실 있기는 할까.). 가해자의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가해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 역시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가해자들이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가해자들 역시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끝없는 미로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내려놓는 것이 가장 건강한 선택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피해자인(생존자) 상태에서 가해자가 되지 않는 아름다운 결론으로 과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죄와 고통의 끈을 내 대에서 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용서하고 놓았다고 해서 대상이 된 사람들과 화해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오직 용서하고, 놓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 내 자녀를 위해서니까. 상대와의 관계는 회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참 편안하게 해 준다(용서하더라도 화해할 필요 없어요.라는 영상을 보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한 질문자가 스님께 물었다. '스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었다. 스님은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것, 나를 안 괴롭히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답을 주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제야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책임을 억지로 떠맡지 않는 것,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답을 주는 것, 나를 괴롭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내게 주어진 트라우마라는 선물 꾸러미를 풀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빚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사랑으로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과 꿈과 드라마를 드디어 완독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내 인생을 책임지며 살아가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죄책감도, 미안함도 이제 내려놓고 자유롭게 살아가자고 과거의 나를 노란색이 가득한 따뜻한 방으로 이끈다. 이제 나는 내 몫의 삶을 잘 살아가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나를 다독이고 또 다독이며 오늘의 생각들을 마음의 책장에 접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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