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매일 마음을 정리했다.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를 읽고 기록
1. 글 하나를 쓰기 위해
어떤 글들은 글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의 밤이 필요했는지, 얼마큼 마음이 찢어져야 했는지 모른다. 지난 2년 동안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놨었다. 어차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이제는 될 수 있는 것도, 가질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벼랑으로 내몰았다.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으로 시작됐으니 그 이후 인생이 쉽게 열리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그러니까 모든 것들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어쩌면 2년 이내 내가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감정도, 몸도 망가진 상태였다. 간절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더 이상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고, 일어설 기운조차 완전히 사라진 그때가 돼서야 나는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잠들면 꿈속에서 내가 내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된 오랜 벗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나는 드디어 살기 위해 오랜 벗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2. 나를 되돌아보다
지난날들을 돼 밟아가며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말로는 내가 소중하다고 하면서도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법을 몰랐고, 소중하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어릴 때 설정됐던 기본값 대로, 과거에 가족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대로 그대로 나를 대했다. 오늘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소중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을 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감정을 살피느라 나의 감정을 방치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드디어 나는 차분하게 내 감정과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을 우연히 어떤 작가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선물 받으면서 그에게 서평 안 써도 되냐고 물었다. 서평을 쓰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니까. 책 안에서 내면의 소리를 찾게 되고, 그것들을 글로 적는 일은 책을 읽는 일보다 열 배 이상 노력이 요구됐다. 그리고 나는 나를 찾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의 소리와 색감을 찾는 일을 계속해왔다. 그렇게 작년을 서평단 등에 참여하고 글을 강제로 쓰면서 치열하게 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행위들은 없다고 생각했고, 있었더라도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나를 천천히 살아나도록 도와줬다.
책이 도착하자 표지를 살펴봤다. 표지에 거꾸로 그려진 소나무와 하얀색 배경 아래 여덟 명의 입양인 이야기라는 글을 보고 읽기 망설여졌다. 그들의 아픔들이 내 아픔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을 정말 아주 조금씩 읽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데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책을 다 읽은 날 새벽 나는 드디어 숱하게 마음에서 외쳐대던 소리를 드디어 찾았다.
그동안 썼던 글 중 어떤 글들은 그 글을 쓰는 데만 삼십 년(30)이 걸렸다. 누가 읽어줬으면 해서라기보다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남기고 싶었던 걸 이제는 안다. 혹자는 과거 이야기를 할 때 너무 담담해 보이는 글 속 화자를 보고 내가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밝히지만 나는 단단한 사람이라기보다 인내심이 병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을 뿐 보통인 보다 감정적으로 아주 여린 사람이다. 그래서 여린 나를 지키기 위해 인내심이라는 방패를 들고 오랫동안 나를 꽁꽁 숨겨왔다. 그리고 어떤 글들은 삼십 년이 넘어서야 겨우 가슴을 치며 쓴 글들도 있다.
세상에서 완전히, 완벽히 보잘것없다고 스스로가 느낀 시점부터 완전히 스스로를 내려놨다. 이때서야 드디어 글을 적을 수 있게 됐고, 그 순간부터 잃어버린 나를 천천히 찾아갔다. 영원히 감춰두고 싶었던 이야기, 감춰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까지 천천히 뱉어냈다. 뱉어낼 수 있었던 건 그 누구도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믿음 <?> 덕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굳이 글을 쓴 건 말로 뱉어내면서 상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매일 넘쳐나는 말들과 감정을 쏟아낼 무언가가 필요했고, 나는 글로 뱉어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나면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해서 오히려 일주일 동안 앓아누웠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때마침 제대로 시작되려던 정신 분석 상담료도 낼 돈이 부족했다. 인생에서 경제적, 감정적, 사회적으로도 나는 가장 보잘것없는 상태가 됐다.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 준 사람이 있었는데(아주 운이 좋게 이야기를 들어준 언니가 있었다. ) 나는 그녀에게 속 이야기를 하고 나면 너무 몸이 아파서 자고 또 자야 했다. 그리고 죄책감까지 느꼈다. 자고 또 자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나는 더 깊은 감정의 수렁에 빠졌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었을 때가 돼서야 컴퓨터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3. 책을 읽고 드디어 나는 나를 마주했다.
책을 읽다 한 부분에서 잠깐 덮고 태어나서 처음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내가 잉태됐기 때문에 함께 살기 시작한 아빠와 엄마를 떠올렸고, 아빠와 살기 위해 결혼을 반대한 가족과 영영 이별해야 했던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의 선택에 구가족의 열렬한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면서 소중한 구 가족을 잃었다. 나는 엄마의 가족을 내 나이 서른다섯이(35) 돼서야 만났다. 이 만남도 동생이 외가 식구들을 찾으면서 아주 잠깐 연결됐었다. 그 긴 기간 동안 외가 식구 누구도 우릴 찾지 않았다. 정말 당연하고, 이제는 성인이 됐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는 스쳐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남처럼 지냈다. 그랬기 때문에 어쩌면 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사실 친가도 남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기 때문에(차라리 남이었다면 더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삼십 년(30) 넘게 만나지 않은 외가 식구들이래야 말할 필요 있겠나 싶다.
여덟 명의 해외 입양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행이다 싶은 사례도 있었고, 가슴 아프고 속상한 사례도 있었다. 해외로 갔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겪게 됐고, 만난 가족들이 좋은 사람들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이 망가지고 감정까지 부서진 사례도 있었다. 어떤 사례 중에는 정말 좋은 가족을 만나 좋은 교육을 받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분도 있었다. 정말 행운이라고 할 만큼 적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난했기 때문에 너만큼은 잘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낸 부모님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드디어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는 어린 시절 보육 시설(고아원)에 있으면서 입양인으로서 살게 될 뻔한 적들이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내 입양도 막았을 뿐 아니라 동생 입양까지 막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그 누구도 내가 부리는 생떼와 온갖 행동, 소리 지름을 보고 데려갈 사람이 없었다. 물고, 때리고, 소리 지르고, 바닥에서 구르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아마 나를 보고 나와 동생을 데려가면 인생이 망할 거라고 누구든 생각했을 거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무지막지한 내 성격 덕에 지켜지고, 지켜지다 각자의 집으로 가게 됐다.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신 새엄마는 아버지와 만나면서 네 명(4)의 자식을 데려오셨다. 자식이 이미 많이 있었고 아버지와 사이에서 자녀를 더 낳을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새엄마는 단 한 명만 키울 수 있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어쩔 수 없이 분리되어 자랐다. 내가 자랐던 아버지의 동생 집은 원래 동생이 자랐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시골집에 간 동생이 사람을 너무 피해 다니고 구석에 숨는 일이 반복되자 시골 어머니께서 바꿔 달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번 운명이 바뀌면서 각자의 집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해외 입양을 가지 않아 다행이었던 건 타국의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다는 것과 언어로 인한 장벽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내 감정과 의견을 이야기하면 맞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한국에서 언어장벽을 겪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해외로 입양된 여덟 명의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이 성인이 돼서도 대한민국이라는 곳의 향수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뿌리를 갖게 해 준 부모님을 영원히 그리워하면서도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양가감정: 밉지만 사랑하는 마음).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버지 형제에게 입양되면서 타국살이의 외로움과 대한민국에 대한 향수, 언어장벽을 겪지 않아도 됐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책을 다 읽은 새벽 드디어 정리한 생각들이 있다. 동생은 나를 만나면 항상 자신이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엄마가 없는 건 매한가진데도 동생은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니 내가 자신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고,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그녀를 챙기지 않았을 때면 내게 어렵고, 불쾌하고, 아픈 일들을 감당하게 했다. 그 일 중 몇 개는 정말 말도 안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는 당당하게 내가 그녀를 챙기지 않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랬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했다. 그리고 내게 치르게 한 대가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억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그런 일들이 숱하게 반복됐고, 나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선지 동생과 같은 침대 위에서 잠들 때면 꿈속에서 만난 동생 앞에서 울고, 소리 지르고, 발로 차고 때렸다. 왜 꿈에서 동생을 만나면 때려야만 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나는 엄마가 없으니까. 언니가 나를 챙겨줘야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예전엔 동생이 가엽게 느껴져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생을 챙기지 못하면 미안하고, 속상해서 혼자 부채감을 느꼈다. 그래서 유난히 동생에게 약했고, 손해를 보더라도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몇 년 전 그 말을 다시 들었을 때 (시험에 실패 후 방구석 폐인이 됐을 때) 갑자기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다. 나도 저도 엄마가 없긴 매한가진데 왜 동생은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면서 내게 죄책감을 씌우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종교 싸움(동생은 사회가 사이비라고 말하는 종교에 빠져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했다.)으로 동생과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외가 식구들이 나를 만나고 싶다며 연락해 오면서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됐고, 어김없이 동생은 또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다시 들은 날이 돼서야 나는 동생에게 너도 해 준 것 없지 않냐. 내가 힘들 때 너도 마찬가지라며 화를 냈다. 그런 나를 보며 동생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며 나를 탓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동생에게 왜 죄의식을 갖게 됐는지 드디어 깨달았다. 왜 나는 동생의 일과 말에 유난히 약한 건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드디어 찾았다. 책을 읽고 나는 동생과 보육 시설에 있으면서 나뿐 아니라, 동생의 입양까지 막았던 기억을 드디어 떠올랐다. 그 기억 속에서 죄책감과 죄의식의 근원을 찾았다. 동생이 좋은 곳에 입양됐더라면 지금처럼 이상한 <?> 종교에 심취할 일도 없었을 거고(동생은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친척에게 작업 돼서 오늘도 그 종교에 속해있고, 같은 종교를 가진 가족 구성원과 결혼까지 했다. ),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부모님을 만나 좋은 인성을 가지고, 멋진 인생을 살게 됐을 텐데 내가 그 기회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숱하게 당하면서도 내가 나쁘다고, 동생을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거라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동생은 내가 살인사건 피해자가 됐을 때도 응급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젖어 서 있는 나를 보고 내가 이렇게 된 건 자신의 종교에 오지 않아서 이런 일을 당한 거라며 비난하며 같은 말을 세 번이나 했다. 그런 동생의 말에도 오히려 동생이 아니라 내가 이런 일을 당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이해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물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성격이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날 했던 동생 말들이 나를 걱정해서 그리 말한 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오늘이 돼서 되짚어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걸, 그동안 동생이 나를 어떻게 나를 대했고, 생각해 왔는지 제대로 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죄책감과 죄의식의 근원을 찾았고, 그 죄책감의 소지자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동생이 입양을 가서 그곳이 좋은 집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걸 이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러니 동생에게 환상적인 인생이 주어졌을 거라는 것도 잘못된 판단이다. 그리고 성인이 돼서 지금의 삶들을 선택한 건 오로지 동생이었다. 운이 좋아 좋은 부모님이었을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생부처럼 알코올중독에, 폭력적이고, 극단적 나르시시즘을 가진 가족 구성원이 됐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다고 느끼는 건 오늘의 나도 그렇지만 동생도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오랫동안 동생에게 느낀 죄책감만큼 아버지가 겪었던 어린 시절과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려고 최선을 다했었다.
받지 못해서 주지 못하는 거라고 내가 많은 사랑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말을 들어도 상대에게 사랑의 말을 하고, 그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결국 내면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났을 때 나는 완전히 망가졌다. 그제야 아버지와 동생, 나를 키워줘서 고마워해야 한다는 친가 식구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드디어 남들이 보는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꿈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살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했고, 끊임없이 남을 위해 살았다. 왜 내가 그래야만 행복을 느끼고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알지 못하면서 멈추지 못하는 기차처럼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오늘 완전히 모든 것이 멈춰진 오늘들을 살아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제야 숨이 쉬어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타인의 삶과 감정을 온전히 타인이 책임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 누군가를 책임져야만 살 수 있었던 삶에서 이제 나를 온전히 책임지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 오늘들을 살아가며 만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은 내게 죄책감의 늪에서 나올 수 있도록 밧줄을 던져줬다.
이 글을 쓰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이 생각만 정리하는데 2주가 걸렸고, 지금도 정리 중이다. 가볍게 살자라고 매일 마음먹어도 정신과잉인인 나는 매일 혼자만 있어도 감당할 것들이 많다. 이제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삶을 음미하며 산다. 그런 오늘들에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고, 이제는 나에게 내가 정말 중요하다. 그러니 천천히 내가 나를 아끼는 것만큼 아껴주고 사랑해갈 사람들을 천천히 삶에 들여갈 것이다. 앞으로 모든 선택에서 총체적으로 건강하길 기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앞으로 나는 나와 정말 잘 살아가기로 했다. 그런 오늘에 만난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책은 내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줬다.
“당신들의 삶과 감정은 이제 당신들이 제대로 책임지고 살아가 주세요. 각자의 삶과 감정을 책임질 힘과 능력이 내게도 당신들에게도 충분히 있으니 까요.”
책을 보내주신 이시헌 작가님 고맙게 생각해요. 이번에 두 번째 책 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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