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1. 글을 쓰는 것과 삶
글을 쓴다는 건
살아있다는 걸 표현하는
다른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새벽에 앉아 글을 쓰고,
혹은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인
한 낮에 글을 쓰고 있노라면
글이라는 건 참 많은 걸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분명 처음엔 누군가 시켜서
쓰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누구나 쓰기 시작한
어린 시절 그림 일기부터,
사촌 동생 대신 어쩔 수 없이
써야했던 일기와 글쓰기까지.
글은 어쩔 수 없이,
혹은 당연스럽게 참 많은
시간 나와 함께 살아왔다.
예전엔 메모광인 것처럼
글을 쓰곤 했다. 그리고
누군가 볼까 두려워
감추고 또 감추고 숨기기
바빴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작년을 거치면서
어차피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고, 어차피
엄청 나와 친분이 있는
친구조차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나서 얻은 자유함.
나는 그래서 글을 적는다.
아주 편안하게. 아주 생각없이.
숨길 필요 없이,
구구절절 이유를 생각할 것 없이,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나를 판단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 후
글이 편안해졌다.
어차피 글이라는 건
개인 기록일 뿐이니까.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읽어보기 위해,
존재를 스스로 인식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
글을 적고, 공개로 올리면
걱정스럽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여러번.
그리고 나는 되물었다.
"내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있어?"
"아니."
"그래, 너도 안 읽을 정돈데
누가 내 글을 읽는다고.
어차피 의미 없어. 그냥 적는거야.
내 글을 제대로 읽을만큼
시간이 많은 사람도 없을거고."
('그리고 지금은 내 주변엔 일단
나를 궁금해할 사람이 없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이 궁금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지도, 맺고 있지도 않고.')
뱉은 말과 뱉지 않는 말.
어차피 그 어느 것 하나 의미는
없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내 글을 왜 그냥 올리는지
누군가를 설득하고 설명해야하는
것일까.
당시에 저 물음이 귀에 앉았을 때
나는 되 묻고 싶었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뭐가 궁금한 거야?"
그러나, 하지 않았다.
공격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가끔 입까지 올라왔다가
삼키곤 하는 말이 있다.
그래 있다. 많다.
이 말을 하면 관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상대가 왜 저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냥 삼키곤 한다.
적게든, 혹은 많게든
관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뱉어대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한다.
가스라이팅.
저 사람은 언제부터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었던 것일까?
2. 어떤 사람들과 살아갈지
결정의 몫이 나에게 있다.
자존감에 관한 책들이
참 많다. 그런 책들을
긁어 모아 읽어봤는데,
좋은 책도 많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도 많았다.
여러가지 심리학, 정신의학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
지금 현재 내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만 남겨두려면
그리고 만나려면 일단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
건강한 내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는 건강해져버리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쓰레기통처럼 '나르' 녀석들만
꼬이던 나는 항상 친구에게
같은 말을 들었다.
"넌 왜 처음엔 다 좋다고 했다가
나중에 힘들었다고 이야기
하는거야?"
내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인가. 싶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가 입도
마음도 닫는다.
내게 다가왔던 소위 '나르'
녀석들은 처음엔 참 달콤했다.
정말 잘해줬다. 세상에 이 친구만
있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멋졌다. 닮고 싶은
면도 많았다. 게다가 공부도 잘하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항상 자신의 집이 부자라고 이야기
해댔다. (공통점인가? )
하나 하나 열거하자면 부족할 만큼
정말 멋진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알게 된다. 올가미처럼
목을 조여오는 관계적인 문제들이
하나씩 생겨나고, 그 안에서
스스로 공격하게 되는 이상한
자아성찰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칼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향한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내가 다 선택한 거니까.
내가 조금만 더...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
느끼지 못하게 감각은
무뎌지고 감정이 깨어져간다.
그리고 이상한 질병들이
몸 곳곳에서 발생한다.
자가면역질환, 혈관병, 고지혈증,
안구건조증, 만성대장염, 두드러기,
음식 알레르기, 기타 등등.
그들의 공통점, 혹은 내가 만났던
나르 녀석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본다.
서람님, 그리고 정신과 의사선생님들
그리고 심리학자 분들의 '나르'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되돌아봤다.
그 녀석,
분명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세부적인 내용들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되어있다.
어디서 배운지 모를만큼
연기에 능숙하고, 특히나 눈물
연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의 대가.
가스라이팅인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심리를
조작한다.
"내가 널 얼마나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를 하겠니.
다 널 생각해서 그러는거야."
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걸 통해
이득을 취하고 있다.
상대를 노예화시키고
상대의 감정이 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지배자로서의
승리감에 도취된다.
수 많은 '나르' 녀석들을
만났다. 나이가 나보다
30살은 많은 분들부터,
동갑내기, 혹은 나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분들까지.
하나같이 왜 그리도
그들은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비슷했는지..
심지어 나르에게 당하다 자신이
나르가 되버리고도 피해자인 척
가장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참 많은 시간 생각을 하고
또 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는 왜 이렇게 아프게 된 건지.
3. 글을 통해 나를 만났다.
작년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개인적인 시간이 참 많았다.
많은 시간들이 주어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되돌아보게 됐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나니까. 내 자신에 대해
제대로 직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제대로 탓해주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고 또 쓰면서
나를 만나게 됐다.
좋은 사람들만 선택해서
내 주변을 채울 거라는 거,
나 역시 정말 좋은 사람이
될 거라는 거.
가족도 앞으로는 내가
선택한 사람들만 가족이
될 거라는 것도.
1년을 철저하게 고립되고
나서야 다짐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당연스럽게
당해온 가스라이팅과
어른이 되선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아주 친절한 '나르'
들을 삶에 끌어들인 내가
이젠 '나르'가 아무리 잘해줘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분명 좋은 말을
해주고 잘해주고 있는데도
교감신경이 항진되어야만
나타나는 반응이 몸에 나타난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고, 피가 잘 통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고, 소화가 잘 안 된다.
스스로 '나르' 탐지기가
된 것 마냥, 내 몸은, 내 마음은
나르들과의 기억과 그들 특성에 대한
기억을 세포와 몸 곳곳에 저장했다.
그래서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그 아이가 싫었다.
분명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
같았지만, 몸에 나타나는 반응
어지러움과 무기력함.
몸이 너무 아파
어쩔 수 없이 '손절'
이라는 걸 해 낸다.
이젠, 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없는 내가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 든다.
탓하고 싶지만,
어쩌면 3-4명 중에 한명은
'나르' 진단을 받는다는
한국 사회에서 '나르' 자동
탐지기가 된 몸에 대해 칭찬
해 주고 싶기도 하고.
어쩌면 하나님은 일부로
수 많은 나르들을 인생에
보내주셔서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를 훈련시키신
것은 아니었는지 라는 생각도
해 봤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하나님의 뜻,
그리고 내가 살아온 과정,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
모든 것들은 어차피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무력하게 철저하게
밝혀지고야 만다.
시간의 마법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나는,
내 인생을 이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희생양으로 살아왔던
나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제대로 지켜낼 것이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글을 쓰고 나니, 날이 밝아졌다.
깊은 어둠 속에 있어야만
밝아오는 아침에 대한
진정한 감사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젠 타인과의 관계보다
내 자신과의 관계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가 됐다.
이 부분이 작년을 통과하면서
주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제게 주신 많은 이야기들,
저와 함께 같이 걸어와주신
시간들, 그 속에서 우리 참 많은
추억 만들었네요.
사랑해요. 아빠, 엄마 하나님.
나는 당신이 나를 세상에
보내줘서, 이렇게 나로 살게
해 주셔서, 내가 내가 될 수 있도록
훈련시켜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중에
슬픔이든, 아픔이든, 실패든,
기쁨이든 무엇하나 선물이
아닌 건 없었어요.
당신의 옳으심을 선하심을
믿어요. 나의 하나님.